휴면기 오랫동안 시 앞에 가지 못했다. 예전만큼 사랑은 아프지 않았고, 배도 고프지 않았다. 비굴할 만큼 비굴해졌고, 오만할 만큼 오만해졌다. 세상은 참 시보다 허술했다. 시를 썼던 밤의 그 고독에 비하면 세상은 장난이었다. 인간이 가는 길들은 왜 그렇게 다 뻔한 것인지. 세상은 늘 한심했다. 그렇다고 재미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염소 새끼처럼 같은 노래를 오래 부르지 않기 위해 나는 시를 떠났고, 그 노래가 이제 그리워 다시 시를 쓴다. 이제 시는 아무것도 아니다. 너무나 다행스럽다. 아무것도 아닌 시를 위해, 더 이상 아무것도 아니길 바라며 시 앞에 섰다. * 허연, "밤에 생긴 상처" (민음, 2024) - :: 메모 :: 칠월 한 달 동안 고작 열 편 남짓 가량의 시편만을 썼다. 가장 부진했던 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