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노트/사람과 사람 사이 4

평양냉면

... 밍밍한 찬 육수에 고명들을 살짝 얹었다, 고명보다는 육수 맛이란 게지. 먼저 나온 온육수 한컵에 장을 달래놓고는 이내 한적한 식당 한켠의 그림을 쳐다본다. 평양만이 북한은 아니듯이 한복을 곱게 차려입는다 해도 무조건 나이가 드는 건 아닐 뿐. 금세 차려낸 밥상은 단촐하기만 하구나, 냉면 한그릇에 김치 두접시. 밍밍한 육수에 메밀면을 잘 말아서후루룩 먹기 시작한다. 조상들의 맛, 아무 맛도 없이 은은한 멋을 내기 시작한 시간들. 이게 평양냉면이다. ...

매미울음

... 천일을 기다린 여름은 불과 한달로 짧았어, 장마는 올해도 땅속을 기어다녔고 삼복더위는 창창한 소리를 내며 치열했지. 왜 그토록 치열할까에 대해선 일체 반성도 없었지. 마치 매미처럼 그 찰나의 찬란함을 위해 울음소리는 거창하기만 했어, 짧은 여름의 아쉬움만큼 윙윙대는 그 소리는 어느덧 석양을 마다한 채 여름밤으로 향하고. ...

문학3

... 창비가 만든 문학 '플랫폼'? 제목만으로도 벌써 거창해진다 문학의 이름이 소멸해버린 시대 문예지들만 내내 살아남았구나 더러는 여전히 등단을 꿈꾸지만, 어젠 또 김수영 시인을 얘기했다 결국 생계는 양계장 뿐이었다... 한 친구가 책을 냈다며 페이스북 한켠에 안부를 전해온다. 장하다. 몇년째 공사판 막일을 하면서도 결국 포기하지 않는 삶들이 있다. 정치도 스포츠도 연애도 그랬고 집착을 넘어선 사랑은 결국 희생 삶의 무언가를 지불해 얻는 소득 자본주의답게 '가치'관이 된다... '가치'가 있는 '플랫폼'이 화두다. 경제도 취향도 심지어 곧 희망도 정거장만큼 옛스런 운치도 줄까? ...

대답없던 날들을 위해

... 그 언제였나, 장산곶매를 읽던 여름날에서 내일은 해가 뜬다던 객지에서 숲 따라 길을 잃고 동지를 얻고 또 동지를 잃고 슬퍼하던 시절, 이별의 잔인함에 익숙해져갔고 그 숲을 어찌 헤쳐나오던 때도 명분이라는 건 있었지. ... 길 위에서 철 지난 노래를 듣다 어릴 적 꿈은요? 하고 물었다, 화가였지, 과학자였고, DJ의 꿈? 나, 등단했어. 필재의 말이었지. ... 팍팍하기만 한 술자리를 파해 터벅터벅 밤이슬을 맞는 길은 때때금 주어진 시간이 야속해 연신 담배만 피워대곤 하는데, ... 모질게 산 인생일수록 슬펐다. 주름만 깊어지고 지혜는 얕고 젊은 혁명은 농익지 못한만큼 매번 철부지마냥 징징댄다, ... 인터넷 혁명이 등극한 21세기, 모든 게 평화롭고 순조롭구나. 더 이상 숲은 존재하지도 않고 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