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습작노트 14

노예의 시 5

- 임원인사 20년의 직장생활을 그만둘 차례? 윤대표는 혹 또 다른 계획을 짰을까 왓튼 MBA를 나왔고 내게 미학평론을 얘기하던 그도 나이 앞에선 무력하기만 했다 세월이 독이다 어중간한 연배에 아무 벼슬도 없는 내가 더 오래 회사를 다닐 거라곤 생각 못했었지 감옥이야, 먼저 탈출하는 게 위너다 막상 탈출을 한다면? 지옥이 펼쳐진다 주마등처럼 스쳐간 기억들은 이미 떠난 이들의 몫 신산스런 마음을 붙잡느라 노트북 앞 손놀림만 바빠졌고 결국 이렇게 끝나는 직장인생을 왜 그리 연연했을까, 모르겠어 담배를 꺼내 문다 연말, 새해의 사업계획은 또 어떤 신화를 꺼낼까 아무도 믿지 않을 신화도 이젠 지겨워졌어 사회? 조폭 양아치 집단이라고 봐야지 켜켜이 쌓인 해묵은 감정들을 쏟아낸다 이윽고 헤어질 시간이면 각자의 짐을..

글/습작노트 2022.11.30

노예의 시 4

- 현금의 흐름 통장이 또 바닥났어 월급날이 채 오기도 전에 우수수 빠져나간 돈은 또 어디로 사라졌을까 씀씀이가 헤퍼서 그래, 핀잔만 듣게 생겼다 부랴부랴 샀던 주식을 털고 더 생기지도 않을 월 수입을 탓하며 연신 담배만 피워 문다 지금도 늦지 않아, 하지만 대안도 없는데 현대판 샐러리맨의 가계는 미미하고 궁핍해 그날 그날의 용돈벌이가 대수롭진 않아도 그게 곧 생활의 큰 원천임을 안다는 일 출근을 준비해야 할 시각 오늘도 어김없는 미팅을 잡고 갑질에 익숙해 팀장은 별의별 잔소리만 또 다시 늘어놓겠지 억지웃음으로 버텨낼 하루 일과라면 가능해 돈을 번다는 게 어디야, 이 생각만으로 버틸 어디든 '알바' 소리를 듣지 않을 직장은 없어 스스로 위안도 해보겠지만, 꼭 그렇지도 않아 자꾸만 서성이게 돼 대학로의 배..

글/습작노트 2022.11.21

노예의 시 2

- 도서관 삶은 전쟁터 삶을 살아내는 방식 중 가장 고상한 게 공부 또 한번의 싸움을 치르기 위해 집을 나선다 때로는 걷고 또 때론 자전거를 타며 향하는 전쟁터의 사랑, 그 삶을 사랑하기 위해서다 서고에 빼곡히 꽂힌 책, 오늘 뭘 읽지 짐짓 망설인다, 발길이 더 익숙하구나 시집의 이름들을 빠르게 스캔하는 동안 내게는 바람 한번 일지 않았다 삶은 배움터 삶을 이겨낼만한 가장 치열한 방식, 공부 또 한나절의 득도가 열람실 안에 있었다 문장은 짧았어도 여운이 길게 남곤 했어 사랑해온 말들, 오래 익혀두고자 함이다 - 화석연료를 과연 언제까지 써야 할까 - 김민정의 시집 제목은 왜 그랬던 걸까 - 경제학자들이 왜 노벨상을 받아야 하나 : 몇몇 물음 앞에 섰다, 혼자 중얼거린다 찾지 못한 책들은 또 폐기된 모양이..

글/습작노트 2022.11.18

노예의 시 1

- 2023 수능 아내가 한참 잔소리를 한다 듣기 싫다고 했음에도 듣는 건 감수할 몫 묵묵히 술병을 잔에 기울여 안주를 집고 비좁은 부엌 한켠에 앉아 저녁을 마신다 밖에 나가면 소주가 5천원이야 대학 1학년, 포장마차에서 천원을 받던 반병이 생각났고, 이내 한병을 마셨다 박노해가 신새벽에 마셨던 소주가 있고 전화기를 붙잡고 노래한 임창정이 있고 김수영 시인을 얘기해준 선배도 있었지 모두 다 없어진 시절, 또 시를 써본다 도무지 다듬어지지 않는 시를 붙잡고 생각한다고 다 씌어지는 게 아니잖아 재주가 부족함을 탓해야지 별 수 없다 그래도 쓴다 노동하는 예술은 노예, 시도 노예다 이름이 있고 없음은 중요하지 않아 먹고 사는 일, 또 다른 시가 되겠지 그래서 쓴다 수능이 끝났다 아이들이 좋은 꿈을 꿀 수 있다면..

글/습작노트 2022.11.18

문학3

... 창비가 만든 문학 '플랫폼'? 제목만으로도 벌써 거창해진다 문학의 이름이 소멸해버린 시대 문예지들만 내내 살아남았구나 더러는 여전히 등단을 꿈꾸지만, 어젠 또 김수영 시인을 얘기했다 결국 생계는 양계장 뿐이었다... 한 친구가 책을 냈다며 페이스북 한켠에 안부를 전해온다. 장하다. 몇년째 공사판 막일을 하면서도 결국 포기하지 않는 삶들이 있다. 정치도 스포츠도 연애도 그랬고 집착을 넘어선 사랑은 결국 희생 삶의 무언가를 지불해 얻는 소득 자본주의답게 '가치'관이 된다... '가치'가 있는 '플랫폼'이 화두다. 경제도 취향도 심지어 곧 희망도 정거장만큼 옛스런 운치도 줄까? ...

글/습작노트 2019.07.11

졸업, 선물

책은 참 일방적인 선물이야 문학회 동기들끼리 술먹다 들었던 말 학창시절 때 을 읽었던 나도 를 자취방에서 읽고 무려 도 봤었는데 동녘의 를 사고팠다 김수영의 산문집은 또 어떨까, 소설도 사르트르의 도 곽재구의 도 생각났어 - 요즘 누가 그런 책들을 보냐?... 좀 더 덜 꼰대짓을 하면 어떨까 해 이란 게 필요해졌지 은 또 어때 철 지난 설렘으로 선물을 샀어 아이한테 건네주려는 순간 훽 돌아서며 내동댕이친다 비웃는다 운명은 시대는 공감대는 그렇게 쉽사리 얻어지는 것도 아니고 여전히 그래봤자 넌 꼰대야, 하면서 책은 참 일방적 선물이야 깨닫는다 - 요즘 누가 책이라는 걸 보냐?... 다신 책 사지 말아야겠구나 * 2019년 2월 13일

글/습작노트 2019.02.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