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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월

칠월* 무참한 심경으로 문을 나섰습니다 간밤의 어여쁜 화가는 돌아올 기미가 없고 노래를 부르던 이는 세상을 등지고 말았습니다 김민기라는 이름을 가진 아침이슬이었습니다 까닭 모를 눈물이 마구 쏟아졌습니다 빗물인지 눈물인지 모를 물방울들이 흐르고 억장이 무너지는 소리만 밤새 들었습니다 떠나는 날 소식을 신문으로 접한 채 미처 못다 한 말들을 적어 편지를 부쳤습니다 장마는 절실함인 줄 알았지만 처절함이 될 줄 미처 몰랐습니다 무참한 심경으로 다시 들어온 방 안 고즈넉한 풍경 몇 장의 사진을 놓고 비로소 다시 시 앞에 서 있습니다 벽과 문 사이 희미한 빛 한 줄기 틈새의 먼지들 투명해진 상처로 흐르는 노래들 칠월의 노래입니다 * 허연, 칠월 (밤에 생긴 상처, 2024)

글/습작 2024.07.25

허연, '칠월' (“밤에 생긴 상처”, 민음 2024)

칠월      쏟아지는 비를 피해 찾아갔던 짧은 처마 밑에서 아슬아슬하게 등 붙이고 서 있던 여름날 밤을 나는 얼마나 아파했는지     체념처럼 땅바닥에 떨어져 이리저리 낮게만 흘러다니는 빗물을 보며 당신을 생각했는지. 빗물이 파 놓은 깊은 골이 어쩌면 당신이었는지     칠월의 밤은 또 얼마나 많이 흘러가 버렸는지. 땅바닥을 구르던 내 눈물은 지옥 같았던 내 눈물은 왜 아직도 내 곁에 있는지     칠월의 길엔 언제나 내 체념이 있고 이름조차 잃어버린 흑백영화가 있고 빗물에 쓸려 어디론가 가 버린 잊은 그대가 있었다     여름날 나는 늘 천국이 아니고, 칠월의 나는 체념뿐이어도 좋을 것    모두 다 절망하듯 쏟아지는 세상의 모든 빗물. 내가 여름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 허연, “밤에 생..

문학앨범/필사 2024.07.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