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앨범/필사

한백양, '미리보기 없음' ("2024 신춘문예 당선시집", 문학마을 2024)

단테, 정독... '종로학파' 2024. 7. 30. 04:39

   
   
   
   미리보기 없음 
 
 
 
   그릇이 깨지고 
   순두부찌개 집은 순식간에 결말로 치닫는다 
 
   그랬습니까, 그랬습니다, 따위는 없는 허리 구부림과 주인의 앞주머니가 훔치고 간 바닥의 김치 얼룩 
 
   누구도 피 흘리지 않았지만 
   누구나 피 흘리는 표정을 발견할 수 있다 
 
   정적의 용도가 달라진다 주인도 그릇을 내던진 사람도 좀처럼 말이 없고, 둘 사이를 오가야 마땅한 대화들을 티브이 소리가 뒤덮는다 올해의 경제에는 하한선이 없습니다, 종이로 급하게 숫자를 덧붙인 순두부찌개 백반의 가격부터 그릇을 내던진 사람의 맞은편 사람까지 붉고 창백한 화살표가 이어진다 정말로 최선이었습니까, 힐끗대는 가게 안의 공기가 요동치고 갑자기 재채기가 사방에서 울려 퍼진다 팡파르도 없이 정적이 입구까지 내달린 순간 
 
   그래서 죽겠니, 웃어버리는   
   
   웃으면 안 되는 사람이 웃었다는 사실 만으로도 다시 순두부찌개 뚝배기 안이 거세게 거품을 쏟아낸다 
 
   우리는 함께 작년을 끝낸 적 있어요, 그릇을 던진 사람의 맞은편 사람이 농담을 건네도 주인은 말이 없다 
 
   그릇 안을 아무리 헤집어도 
   불안이 투명해지질 않기 때문에 
 
   누군가 한 번 더 그릇을 던져줄 순 없을까, 그러나 새로운 손님과 새로운 다툼이 가게 안을 가로지른다 유난히 늙은 사내 하나 구겨진 만 원짜리처럼 거세게 가래를 뱉기도 한다 저, 저, 가리킨 곳에는 티브이가 있고, 앵커는 내년도 올해처럼 불행할 거라고, 우리가 열심히 살지 않아서라고 고백한다 최선을 다했지만... 안타까워하는 목소리와 안타까워하는 표정 아래에 놓인 얼굴들은 모두 음영이 또렷하다 한 숟갈 떼어진 순두부처럼 움푹함이 사라지지 않는다 
 
   가게 밖으로 나서도 사라지지 않는 그늘을 
   그늘이라고 부르지 말아야 한다 
 
   불어오는 바람마다 매운 냄새가 그득해서, 이를 쑤시거나 담배를 태우던 사람들은 하나같이 눈을 살짝 감았다가 뜬다 
 
   뭔가 달라질 줄 알았던 사람들에게로 
   뭔가 달라진 세계가 들이친다 
 
   순두부찌개가 만 원을 넘어가는, 깨진 그릇을 치우다 손을 벤 주인이 깨진 그릇보다 더 오래 그릇을 내던진 사람을 떠올리는, 어떤 세계는 끝장난 후에도 그것을 아무에게도 알려주지 않는다 과정을 알 수 없는 망가진 기분 때문에 사람들은 이따금 그릇을 내던진다 
 
   무지하고 안전한 환상이 
   던져진 뚝배기 안에서 끓고 있다 
 
   멀리까지 튕겼던 그릇이 깨지기 직전, 마지막으로 온전했던 한 순간에 대해서 
 
   그게 아니라, 실은 그것이므로 
   그게 아니라, 실은 아무도 모르므로 
 
  
  
   * 한백양, "2024 신춘문예 당선시집" (문학마을,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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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를 좋아하고 시인을 더 좋아하던, 사람들을 더 좋아한다던 한 사람이 있었다 
   사바세계에서는 이를 무어라 일컫는가를 잠시 또 생각해보게 되는 아침이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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