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글을 위한 모색 (편집 2025) 4

등단제도에 관하여

최종심에 오를 정도가 되면 다들 이미 등단 수준이라고 봅니다. 그렇다고, 공모전에서 당선작 외로 다수의 가작이나 입선을 두던 제도가 오히려 좋은 "대안"인데 유독 요즘의 문단에선 이조차도 거부하는 듯한 풍경이라고도 생각해요. 그걸 굳이 마다하는 건 일종의 '카르텔' 심리 같은 거라고 보는 편입니다. 등단제도 자체를 반대하는 건 아니지만, 등단방식에 관해선 충분히 비판받을 소지가 있어요. 최인호, 이문열, 황지우. 이들의 공통점은? 당선작을 못 내고 등단한 케이스들입니다. (입선 또는 가작으로도 등단)

글쓰기에 관하여

글쓰기에 관하여 생각을 해보니 글쓰기를 처음 시작한 게 한글을 배우고 갓 초등학교 때 시작한 그림일기부터인 경우가 아니었을까 합니다. 학교에서 오만가지 숙제를 내곤 해 이후부터의 글쓰기는 주로 억지였던 것 같아요. 학업에 매달리던 시기에도 글쓰기는 제게 일종의 사치였던 것 같습니다. 대학을 입학해 처음 일기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쓰다보니 어느덧 아직까지 유일하게 쓰고 있는 쟝르이기도 합니다. 때로는 습작노트처럼, 또 때로는 철학노트처럼, 또는 연애담과 무용담들이 펼쳐지기도 했습니다. 가장 많이 쓴 날은 스프링노트 절반 정도를 쓰기도 했던 게 기억납니다. 문학회에서는 어렸을 적에 참으로 많은 구박을 당했던 기억도 납니다. 철학과를 다니던 한 선배가 시를 너무 못쓴다고 여러번 면박을 주어서 제 동기들 사이에..

편집을 한다는 것

정독도서관이다. 시집 코너에서 안도현이 엮은 시선집을 잠시 읽어본다. 내 블로그가 가장 주되게 할 일도 결국 이런 류의 글쓰기, 즉 창작과 비평의 '변증법'일진대... 다분히 창작 뿐만이 아닌 비평 쪽에서의 (즉 글쓰기가 아닌 책읽기) 노력이 오히려 더 '시인'에 가깝다는 안도현 시인의 말이 먼저 와닿는다. 내가 시인이 되려면? 많은 창작보다도 또 더 많은 비평이 수반되어야 함을 잘 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