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넉넉한 쓸쓸함
우리가 살아 있는 세계는
우리가 살아가야 할 세계와 다를 테니
그때는 사랑이 많은 사람이 되어 만나자
무심함을
단순함을
오래 바라보는 사람이 되어 만나자
저녁빛이 마음의 내벽
사방에 펼쳐지는 사이
가득 도착할 것을 기다리자
과연 우리는 점 하나로 온 것이 맞는지
그러면 산 것인지 버틴 것인지
그 의문마저 쓸쓸해 문득 멈추는 일이 많았으니
서로를 부둥켜안고 지내지 않으면 안 되게 살자
닳고 해져서 더 이상 걸을 수 없다고
발이 발을 뒤틀어버리는 순간까지
우리는 그것으로 살자
밤새도록 몸에서 운이 다 빠져나가도록
자는 일에 육체를 잠시 맡겨두더라도
우리 매일 꽃이 필 때처럼 호된 아침을 맞자
* 이병률, 바다는 잘 있습니다 (문지,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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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메모 ::
새벽녘에 나를 불러 세운 까닭이 무엇인지,
왜 간곡히 청한 편지에도 답신이 없었는지,
더는 묻지 않기로 한다
그럴만한 사정이 있음으로 미루어 짐작하자
말 못할 사정이 있으려니 하면 또 그만일 법
그대로 그렇게
이대로 이렇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