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노트 266

유영은, 퍼레이드를 기다리는 시간 (2022 문화일보 신춘문예 - 소설)

2022년 문화일보 신춘문예 소설 당선작 : 유영은, 퍼레이드를 기다리는 시간 https://m.munhwa.com/mnews/view.html?no=2022010301032812000001 퍼레이드를 기다리는 시간 - 유영은■ 단편소설주말에 디즈니랜드의 퍼레이드에서 조안의 영혼을 본 것 같다고 말했더니, 엄마가 너는 거기까지 가서 술을 얼마나 퍼마신 거냐고 물었다. 미키 귀가 달린 귀여운 컵에 생맥주를 팔m.munhwa.com "올해의 당선작은 ‘퍼레이드를 기다리는 시간’이다. 디즈니랜드 놀이공원에서 얼핏 본 ‘조안’을 찾기 위해 외삼촌과 함께 다시 그곳을 찾은 나의 이야기를 다룬 이 소설은, ‘시간의 흐름이 뒤틀리거나 어느 한구석이 잔뜩 구겨진 것만 같’은 사람들의 이야기다. 그 과정을 통해 가족의 ..

문학노트 2023.07.07

김보나, 상자 놀이 (2022 문화일보 신춘문예 - 시)

2022 문화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작 : 김보나, 상자 놀이 https://m.munhwa.com/mnews/view.html?no=2022010301032712000003 상자 놀이 - 김보나■ 시내 방엔 뜯지 않은 택배가여러 개 있다심심해지면상자를 하나씩 열어 본다오래 기다린 상자는갑자기 쏟아지는 풍경에 깜짝 놀라거나눈을 떴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그건 착각이야세계는m.munhwa.com "상자의 닫혀 있음과 열림, 그를 통해 드러나는 어둠과 빛이 팬데믹 시대의 도시적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속내를 주거 공간에 집약해낸다. 무엇보다 당선작과 함께 보내온 응모작들의 수준이 고른 점도 안심케 하는 대목이다." (심사평 중에, 나희덕/박형준/문태준) 금요일 아침입니다. 벌써 작년도 신춘문예까지 둘러본 것 같..

문학노트 2023.07.07

[문단소식] 문학사상 7월호 (2023)

역시 점심시간, 서울에서 온 달마 김해자 밥 잘 먹고 책상 앞에 꼿꼿이 앉아 있는 딸아이 시선이 먼 데 가 있다 아직도 근무 중인가 독서대에 세워진 책을 투과하여 벽을 째려보는 것 같다 텅 비었다 서울에서 온 달마 표정이 맹물 같다 열린 문 사이로 가만히 들여다봐도 달마는 미동도 없다 물속을 헤엄쳐 다니는 물고기가 물을 개의치 않듯이 공중을 날아다니는 새들이 허공을 문제 삼지 않듯이 한국사와 동아시아사와 세계사를 편집하고 교정하고, 답을 알고서 문제를 내는 선생과 교수들과 상사와 상사의 상사에 둘러싸여, 이미 나왔던 문제와 아직 안 나온 문제, 적당히 풀지 못할 역사의 문제와, 문제의 문제를 붙들고 씨름하던 달마는 시방 면벽面壁 수행 중, 무한대를 닮은 8년 8개월, 문제를 내는 책만 만들다 어느 날 갑..

문학노트 2023.07.06

[문단소식] 현대문학 7월호 (2023)

점심시간, 비밀 강우근 창을 뚫고 새가 들어왔다. 새가 밝은 빛처럼 날아들 때 나는 놀라는 표정을 숨길 수 없다. 빛에 의해 얼굴은 훼손되어가고 새로운 얼굴을 상상하며 이불을 뒤집어써도 소용없는 아침은 오지. 네가 나를 본다고 생각할 때 나는 오래된 장면 하나를 가졌다는 걸 알지. 왜가리, 제비, 참새, 벌새, 공작, 딱따구리...... 우리가 함께 본 새들은 많아서 전부 기억할 수는 없지만. 그래서일까 강가에서, 거리에서, 수영장에서, 공원에서, 놀이동산에서, 영화관에서...... 창을 뚫고 나를 쳐다본 새가 이번 한 번이 아니었어. 그때 내가 있는 모든 장소가 창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았지. 낯선 상황에서 익숙한 목소리로 걸려오는 전화처럼 지금의 나를 머뭇거리게 만드는 새를 간호해서 돌려보낸다면, ..

문학노트 2023.07.06

김화진, 나주에 대하여 (2021 문화일보 신춘문예 - 소설)

2021 문화일보 신춘문예 소설 당선작 : 김화진, 나주에 대하여 https://www.munhwa.com/news/view.html?no=2021010401032712000001 나주에 대하여 - 김화진■ 소설나는 너를 안다. 사실은 네가 이 회사에 지원한 두 달 전보다 훨씬 전부터. 네가 입사하기 전부터 입사할 때까지 빠짐없이 너를 알고 있다. 그러니까 네가 SNS를 그만두지 않는 한 나는 너www.munhwa.com “올해의 당선작은 ‘나주에 대하여’이다. 죽은 애인의 전 여자 친구인 ‘예나주’와 같은 회사에 근무하게 된 ‘김단’의 이야기. 이 예외적인 상황을 예외적이지 않게 만든 것은 이 작가의 문장 덕분일 것이다. 한 사람을 세밀하게 묘사해내고 그에 따른 정서의 변화를 놓치지 않고 따라간 문장들..

문학노트 2023.07.06

남수우, 아무도 등장하지 않는 이 거울이 마음에 든다 (2021 문화일보 신춘문예 - 시)

2021 문화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작 : 남수우, 아무도 등장하지 않는 이 거울이 마음에 든다 https://m.munhwa.com/mnews/view.html?no=2021010401032624000001 아무도 등장하지 않는 이 거울이 마음에 든다 - 남수우한 사람에게 가장 먼 곳은자신의 뒷모습이었네그는 그 먼 곳을 안으러 간다고 했다절뚝이며 그가 사라진 거울 속에서 내가 방을 돌보는 동안거실의 소란이 문틈을 흔든다본드로 붙여둔 유리잔 m.munhwa.com "올해부터는 예심과 본심을 통합하게 돼 심사하는 데 오래 걸리긴 했지만, 전체적인 수준이나 경향을 파악하면서 좋은 작품을 선별해갈 수 있었다. 725명의 투고작 3625편을 읽는다는 것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어려운 시절을 ..

문학노트 2023.07.06

황인찬, 이걸 내 마음이라고 하자 (시답지 않은 시로 등극한 '아이돌'의 현주소)

[베껴쓰고 다시읽기] 시답지 않은 시로 등극한 '아이돌'의 현주소 (황인찬) : 이걸 내 마음이라고 하자 눈을 뜨자 사람으로 가득한 강당이었고 사람들이 내 앞에 모여 있었다 녹음기를 들고 지금 심경이 어떠시냐고 묻고 있었다 사람들은 자꾸 말을 하라고 하고 그러나 나에게는 할말이 없어요 심경도 없어요 하늘 아래 흔들리고 물을 마시며 자라나는 토끼풀 같은 삶을 살아온걸요 눈을 다시 뜨니 바람 부는 절벽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지금 뛰어내리셔야 합니다 지금요 더 늦을 순 없어요 자칫하면 모두가 위험해져요 무서워서 가만히 서 있는데 누가 나를 밀었고 눈을 뜨면 익숙한 천장, 눈을 뜨면 혼자 가는 먼 집, 눈을 뜨면 영원히 반복되는 꿈속에 갇힌 사람의 꿈을 꾸고 있었고 그러나 어디에도 마음 둘 곳이 없군..

문학노트 2023.07.05

김경주, 간절기 ("시는 허구다"는 말, 현대의 서정)

[베껴쓰고 다시읽기] "시는 허구다"는 말, 현대의 서정 (김경주) : 간절기(間節期) 엄마는 아직도 남의 집에 가면 몰래 그 집 냉장고 안을 훔쳐본다 그런 날엔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이유 없이 화를 내던 엄마의 일기를, 고향에 가면 아직도 훔쳐보고 있다 궁금해지면 조금 더 사적이게 된다 애정도 없이 내 입술이 네 입술을 떠난다 너는 카페만 가면 몰래 스푼을 훔친다 우아한 도벽은 엄마의 철자법처럼, 걸인의 차양모자처럼 생기가 있다 세상의 기사(記事)들은 모두 여행기다 내일이면 아무도 기억하지 못하는 특종들, 사건 뒤에 잊힌 사람들의 이름을 외우고 다닌 적이 있다 나는 네 가계(家系)에 속해 있다 매일 사라질 가계를 다루고 떠나는 나의 행간은 활기차다 매일 똥을 오래 눈다 이것은 나의 기상에 해당한다 내 가..

문학노트 2023.07.05

이덕원, 축복 (2020 문화일보 신춘문예 - 소설)

2020 문화일보 신춘문예 소설 당선작 : 이덕원, 축복 https://m.munhwa.com/mnews/view.html?no=2020010201033412000001 축복 - 이덕원■ 단편소설 당선작 - 이덕원용수 씨와는 이태 전 삼촌네 가게에서 함께 일한 사이였다. 3월 초부터 6월 말까지였으니까 넉 달에 조금 못 미치는,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기간이었다. 돌이켜보면 m.munhwa.com "어떤 소설은 독자에게 축복과 같다. 타인에 대한 시선과 연민을 놓치지 않고 또한 그것으로서 독자 자신의 하루를, 미래를 돌아보게 한다면 말이다. ‘축복’은 ‘달용이’라고 불리는 중국집 배달원들, 그 중에 사회성은 부족하지만 일에 관해서라면 베테랑 격인 배용수라는 인물에 관한 이야기다. 튼튼한 직장과 탄생을 앞..

문학노트 2023.07.05

차유오, 침투 (2020 문화일보 신춘문예 - 시)

2020 문화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작 : 차유오, 침투 https://m.munhwa.com/mnews/view.html?no=2020010201033312000001 침투 - 차유오■ 시 당선작 - 차유오물속에 잠겨 있을 때는 숨만 생각한다커다란 바위가 된 것처럼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손바닥으로 물이 들어온다 나는 서서히 빠져나가는 물의 모양을 떠올리고볼 수 없는 m.munhwa.com “본심에 오른 18명의 응모작은 고르고 안정된 수준을 보여주었으나 눈에 띄는 한 편은 잘 보이지 않았다. 마지막까지 남은 작품 ‘자백’은 높은 완성도와 주제에 대한 집중력이, ‘침투’는 세련되지는 않았지만 신인다운 신선함이 눈길을 끌었다. 숙고를 거듭한 끝에 ‘침투’를 당선작으로 결정했다.” (심사평 중에, 문정희/김기..

문학노트 2023.07.05

유진목, 작가의 탄생 (창작연구 : 시 안에 chapter를 두는 방식)

[창작연구] 시 안에 chapter를 두는 방식 : 연마다의 인위적 분절, 약한 연결고리의 상쇄, 많은 분량의 적절한 호흡조절, 상이한 내부구조 간 통일된 룰의 설정 등 다양한 목적에서 비롯되는 편입니다. (굳이 번호를 매기지 않아도 될만한 다른 장치들도 많은데, 아무튼 이 방식의 시쓰기가 지난 시대의 신춘문예 당선작들에서도 매우 흔히 접해온 방식인만큼 때로는 “각잡고” 써야 하는 경우에 헝클어진 머릿속을 정돈할 때에도 요긴한 경우들이 많겠죠.) - 어제 필사를 했던 유진목 시인의 경우입니다. ; 작가의 탄생 1. 나의 총은 1980년에 마지막으로 발사되었다. 총알은 배 한가운데 정확히 왼편의 삼 분의 일 지점을 뚫고 나갔다. 그 일로 나는 집을 치우느라 애를 먹었다. 뭉근해진 내장이 배를 타고 흘러내렸..

문학노트 2023.07.04

조온윤, 마지막 할머니와 아무르 강가에서 (2019 문화일보 신춘문예 - 시)

2019년 문화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작 : 조온윤, 마지막 할머니와 아무르 강가에서 https://m.munhwa.com/mnews/view.html?no=2019010201034112000001 마지막 할머니와 아무르 강가에서 ■ 시 당선작 - 조온윤할머니가 있어아직 사라지지 않은가판대 위 물고기의 눈알처럼죽어가면서도 시선을 잃지 않아서그 아득한 세월의 흔들의자에 앉아 여전히이승의 장경을 관망하고 있는아 m.munhwa.com “이 시는 지상의 수많은 삶과 죽음을 자신의 몸으로 겪어낸 것 같은 할머니가 자신의 마지막을 풍경화처럼 바라보는 시선과 개개의 삶을 넘어 생태계에 각인된 기억에 따라 움직이는 호랑이의 시선을 교차시키고 있다. 서로 얽히면서 소멸되어가는 두 시선은 자연의 냉혹한 질서와 죽음의 공포..

문학노트 2023.07.04

오선호, 버드워칭 (2019 문화일보 신춘문예 - 소설)

2019 문화일보 신춘문예 소설 당선작 : 오선호, 버드워칭 https://m.munhwa.com/mnews/view.html?no=2019010201034212000001 버드워칭 ■ 단편소설 당선작 - 오선호매니저가 테이블 위 담뱃갑을 집어 들자 쌍둥이 형제도 각자의 주머니를 뒤진다. 호프집 천장 높이 매달린 50인치 텔레비전에서 야구중계가 나오고 있다. 7회말 동점 m.munhwa.com “본심에서 주목했던 작품들은 주로 청년실업을 다룬 작품이었다. 실은 그런 소재가 압도적일 만큼 많았다. 딱히 실업은 아니더라도 작품 속의 인물들은 아르바이트, 인턴, 기타 한시적 비정규직을 전전하며 어쩌다 취업한 직장도 불만족스럽기는 마찬가지다. (중략) 가진 자의 오만과 못 가진 자의 불만이 정작은 동일한 욕망의..

문학노트 2023.07.04

이경란, 오늘의 루프탑 (2018 문화일보 신춘문예 - 소설)

2018 문화일보 신춘문예 소설 당선작 : 이경란, 오늘의 루프탑 https://m.munhwa.com/mnews/view.html?no=2018010201033412000001 오늘의 루프탑 ■ 단편소설 당선작 - 이경란옥상에서 내려다본 바닥은 어둡고 깊었다. 건물과 건물 사이에는 낮에도 해가 들지 않았다. 틈이 두 걸음 남짓밖에 되지 않아 바닥이 더 깊어 보이는지도 몰랐다. 이 m.munhwa.com “‘구겨진 지폐 뭉치가 떨어졌다. 지폐가 마른 잎처럼 굴렀다.’ 돈과 낙엽의 이미지가 겹치는 ‘오늘의 루프 탑’ 결말이다. 화폐는 사용가치와는 무관한 교환가치 시대의 산물이면서 기호가치에 의한 정치경제학적 지배를 받는다. 복잡한 얘기인데, 사람 나고 돈 났지 돈 나고 사람 났냐는 약한 소리는 해 봐야 소..

문학노트 2023.07.03

박은영, 발코니의 시간 (2018 문화일보 신춘문예 - 시)

2018 문화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작 : 박은영, 발코니의 시간 https://m.munhwa.com/mnews/view.html?no=2018010201033324000001 발코니의 시간 - 박은영 ■ 시 당선작필리핀의 한 마을에선암벽에 철심을 박아 관을 올려놓는 장례법이 있다고인은두 다리를 뻗고 허공의 난간에 몸을 맡긴다이까짓 두려움쯤이야살아있을 당시 이미 겪어낸 일이므로 m.munhwa.com “시는 말과 언어를 다루는 기술에서 나오는 게 아니라, 인간 삶의 내면을 응시하는 깊은 사고와 이해에서 나온다는 점을 투고자들이 간과하고 있는 듯해서 안타깝다. 우리 삶과 유리된 채 공연히 초현실적으로 매끄럽게 톡톡 튀는 느낌을 주는 작품이 많다는 것은 시를 쓰는 기술이 앞선 작품이 많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

문학노트 2023.07.03

참고자료 : 2023년 신춘문예 - 시 심사위원 명단

[참고자료] 2023년 신춘문예 심사위원 명단 : 경향 - 김행숙, 황인숙, 이경수, 송경동 동아 - 조강석, 정호승 조선 - 장석주, 김기택 (이상 연재 순, 중앙은 폐지) 문화 - 나희덕, 박형준, 문태준 서울 - 신해욱, 오은, 정끝별 세계 - 안도현, 유성호 한국 - 이수명, 김민정, 박준 (향후 연재 순) http://www.news-paper.co.kr/news/articleView.html?idxno=77532 2023년 신춘문예 당선작 모음 및 당선소감, 심사평 총정리! - 뉴스페이퍼 2023년에도 신춘문예 결과가 나왔다.. 뉴스페이퍼는 [클릭]을 통해 신춘문예를 정리했다.서울에 회사가 위치한 언론사인 경향 동아 문화 서울신문 세계일보 조선일보 한국경제 한국일보는 여성 3 www.news-..

문학노트 2023.07.02

문단소식 : 하얀 전쟁, 은마는 오지 않는다, 헐리우드 키드의 생애

[문단소식] 하얀 전쟁, 은마는 오지 않는다, 헐리우드 키드의 생애 등 80/90년대 문단과 영화계에도 큰 화제작들을 남겼던 안정효 작가께서 별세하셨다는 소식입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https://www.lecturer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129963 베트남전 경험을 쓴 책 ‘하얀 전쟁’ 소설가 겸 번역가 안정효 작가 별세 - 한국강사신문 [한국강사신문 한상형 기자] 연합뉴스에 따르면 베트남 전쟁 참전 경험을 바탕으로 장편소설 \'하얀 전쟁\' 등을 쓴 소설가 겸 번역가 안정효 씨가 1일 별세했다. 향년 82세.유족에 따르면 암으로 www.lecturernews.com

문학노트 2023.07.02

참고자료 : 서울예대 문창과 과년도 실기문제 (창작연구 : "1일 1편")

[창작연구] 가끔 “1일 1편”을 실천하기가 힘들 때가 많죠? 개인적으로 저도 딱히 쓸만한 주제가 없는 날엔 주로 매일 아침마다 배달되곤 하는 12개 중앙일간지들의 헤드라인과 사설들 중에 골라서 쓸 때가 많았는데요... 정작 쓰고픈 주제랑 억지로 주어진 주제랑은 분명히 퍼포먼스도 꽤 다르기에 많은 분들이 자유주제를 더 선호하십니다. 가끔씩, 때로는, 쓰기가 거북한 주제로도 몇번씩 습작을 해보시면 여러모로 유익한 점도 많겠어서 불쑥 생각난 김에 삼아 몇줄 끄적여봅니다. ; 1. '조개껍질을 눈에 박은 사람이 안개 속에서 오래된 철교를 부수는 소리'에 관하여 쓰시오. 2. '동물원에 갇혀 있던 말레이곰이 우리집에 찾아오고 난 뒤 상황'을 전개해보시오. (서울예대 문창과 과년도 실기문제 중에서)

문학노트 2023.07.02

백영옥, 프로에 대하여 (비평원리 : "난해함"의 문제)

[비평원리] "난해함"의 문제를 놓고도 평단에서 꽤 오랫동안 갑론을박을 한 적이 있습니다. 최근의 시들이 갖는 경향에 대해 뭇 평론가들이 비슷한 논리를 펴는 건 아마 턱없이 쪼그라든 독자층에 얽힌 우려도 있겠지만, 갈수록 '인스턴트화'하려는 작가들의 섣부른 움직임에 대한 하나의 경종일 수 있겠다는 생각도 함께 갖는 편입니다. (그렇다면, 옥석의 구분은 어떻게? 여러 차례를, 다른 방식으로, 수차례 읽어보면 판별이 가능합니다. 질 좋은 '입체감'을 갖는 경우와 그렇지 못한, 그저 수수께끼 같은 -작품의 한계를 은폐하고자 어설픈 모호함으로 치장하려는- 암호문의 차이는 금방 드러날 수 있는 문제입니다.) 한 작가의 독백을 다시 들어봅니다. ; 프로에 대하여 쉽게 쓴 것처럼 읽히는 글을 쓰기 위해, 쉽게 부르는..

문학노트 2023.07.02

이제니, 거울을 통해 어렴풋이 (창작연구 : 마침표의 역할)

[창작연구] 이제니 시인의 시들에서 마침표가 갖는 역할은? 마치 행갈이를 대신하는 듯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한번 읽어보시지요. (언제 한번 이렇게 모작을 해볼까 해요.) ; 거울을 통해 어렴풋이 이제니 접어둔 꿈을 펼친다. 너는 잊어서는 안 되는 것을 잊었고. 텅 비어 있는 것은 다름 아닌 네 자신의 마음이었다는 것을 뒤늦게 알아차린다. 이해받지 못한다고 느끼는 연약하고도 슬픈 기질이. 아주 어린 시절부터 너를 문장이라는 말의 그늘로. 아니. 문장이라는 종이의 여백으로 이끌었고. 혼자만의 방에서도 오래도록 외롭지 않았던 것은. 네 오랜 꿈의 원형인 듯 책상 한구석에서 타오르던 어둡고 희미한 불꽃이. 매 순간 너와 함께 네 마음속에서 타오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접어둔 꿈을 펼친다. 거리는 거리로 이어지고 ..

문학노트 2023.07.02

전지영, 쥐 (2023 조선일보 신춘문예 - 소설)

2023 조선 신춘문예 소설 당선작 : 전지영, 쥐 https://www.chosun.com/culture-life/culture_general/2023/01/02/YVULNAEXXJGO3HFCFKU3VTLM7A/ [2023 신춘문예] 쥐 2023 신춘문예 쥐 단편소설 당선작 www.chosun.com "사모는 왜 그렇게까지 쥐구멍을 파는지, 처음 만난 윤진에게 사모는 왜 그런 대화를 시도했는지 등의 인과는 찾기 어려웠다. 그런데도 폐쇄적이며 계급으로 나뉜 공간에서 생활하는 여성들의 불안과 방향감 상실, 쥐가 상징한 보이지 않는 힘에 대한 추적은 돋보였다. “관사에 쥐가 돌아다닌다는 말” “쥐가 낮에 기어나오는 건 죽을 때 딱 한 번뿐이야”라는 대사 등으로 플롯을 움직이고 마지막까지 긴장을 이어나갈 줄 ..

문학노트 2023.07.01

이진우, 홈커밍데이 (2023 조선일보 신춘문예 - 시)

2023 조선 신춘문예 시 당선작 : 이진우, 홈커밍데이 https://www.chosun.com/culture-life/culture_general/2023/01/02/NK6QQVBTWZGLJJMNGG4JH6L7KE/ [2023 신춘문예] 홈커밍데이 2023 신춘문예 홈커밍데이 詩 당선작 www.chosun.com "최종심에 오른 열세 분의 작품들이 취업 절벽, 사회 양극화, 저출산, 이주 노동, 기후 재난 같은 사회의 현안을 제치고 기분에 쏠린 현상은 우리를 놀라게 한다. 기분이란 미시적 영역에 천착한 시편들을 읽으면서 이것이 이번 신춘문예의 공동 주제인가, 하는 의구심마저 품을 지경이다. 현실에 반향하는 내면의 메아리이고, 생의 사소한 기미를 머금은 감정 생활의 한 조각이라는 점에서 기분을 배제할 ..

문학노트 2023.07.01

박정대, 시 (가장 '전위적'인 섬, 격렬비열도에서 외친 혁명적 유머)

시 미스터 션샤인의 말투로 말하겠소 키치라 해도 좋소 무더운 여름밤을 건나가기엔 그 말투가 좋았던 것이오 자정이 넘은 코케인 창가에서 홀로 술을 마시며 바라보는 적막한 거리 풍경이 좋았던 것이오 햇빛 씨의 열기가 대낮의 조국을 뜨겁게 달구고 그 열기는 밤이 되어서도 식지 않았소 111년 만에 맞아온 최악의 폭염이라 했소 폭탄을 맞은 폐허의 도시처럼 허공에 떠도는 풍문은 흉흉했소 어디를 가도 숨이 가빠오는 숨 막힐듯 뜨거운 열기의 나날이었소 111년 전이면 1907년인데 나의 말투는 1907년의 고독 씨처럼 어느덧 그 시절을 흉내 내고 있었던 것이오 러브가 무엇이오 나는 모르오 시는 또 무엇이오 나는 모르오 조국이 이토록 뜨거운데 내가 어찌 조국보다 더 뜨거운 시를 쓸 수 있겠소 밤이면 코케인에서 술을 마..

문학노트 2023.06.30

임현석, 무료나눔 대화법 (2022 조선일보 신춘문예 - 소설)

2022 조선 신춘문예 소설 당선작 : 임현석, 무료나눔 대화법 https://www.chosun.com/culture-life/culture_general/2022/01/01/WJEP23Y2WJEH7KOFTQAB5FIUQI/ [2022 신춘문예]무료나눔 대화법 2022 신춘문예무료나눔 대화법 단편소설 당선작 www.chosun.com "이 응모작은 단편소설이 지녀야 할 미덕들을 거의 다 갖추었다. 필요한 이야기, 사건이 벌어지는 개연성, 인물의 감정과 행동에 대한 공감, 타인들이었던 서로에게 일어난 변화들. 그리고 유머까지. 날렵하고 영리하며 군더더기 없는 작품이다. 당선자가 소설을 오랫동안 써오고 좋아하는 사람이겠구나 하는 짐작이 틀리지 않기 바란다. 예의를 갖춘 어떤 호의(好意)들은 마음을 열어도 ..

문학노트 2023.06.30

고선경, 럭키슈퍼 (2022 조선일보 신춘문예 - 시)

2022 조선 신춘문예 시 당선작 : 고선경, 럭키슈퍼 https://www.chosun.com/culture-life/culture_general/2022/01/01/5BXLDN4Z4NDB7GHV57LZOMYHTQ/ [2022 신춘문예] 럭키슈퍼 2022 신춘문예 럭키슈퍼 詩 당선작 www.chosun.com "최근 시의 파장 안에 있으면서도 지금-여기의 사회 현실과 청춘의 당사자성이 감지된다는 미덕이 있었다. (중략) 퉁치면서 눙치고, 관(貫)하면서 통(通)하는 ‘행운’의 의미를 농담과 엮어내는 시적 패기를 높이 평가했다." (심사평 중에) 2023년의 상반기를 마감하는 날입니다. 이문재 시인의 심사평 중 '패기'라는 낱말이 나오는군요... 흔히들 '객기'와 혼동하지만 (나 잘 쓴다, 트렌드에 부합할..

문학노트 2023.06.30

박형준, 산책로 벤치에 앉아 있는 노인들 (소멸을 통해 소외를 이야기하려는 형상화의 달인)

산책로 벤치에 앉아 있는 노인들 강물을 바라보며 벤치에 앉아서 시간을 짰다 풀었다 하는 노인들 바다만 파도가 있는 게 아니어서 강물도 밀려왔다 밀려가며 강변에 수심 많은 모래톱을 만들고 거기 새들이 발자국을 찍으며 꼼짝 않고 물살을 쳐다본다 햇빛이 물살마다 어른거려 강물에도 주름살이 생기고 거기 비쳐나는 물빛이 노인들의 주름 팬 이마에 스민다 그래, 그들의 이마에는 주름살마다 빛이 배어 있고 아침부터 저녁까지 새들은 꼼짝 않고 물살 속 빛을 응시하다가 일순간 부리로 쪼아 먹는다 산책로에 드문드문 놓인 벤치마다 앉아 있는 노인들은 서로에게 무관심하다 강변의 모래톱이나 물속 삐죽 솟은 돌 위에 우아하게 한 발로 서 있는 물새들이 서로를 바라보지 않듯, 자신만의 세계에 속한다는 표시로 이마에 섬을 만드는 노인..

문학노트 2023.06.30

윤치규, 일인칭 컷 (2021 조선일보 신춘문예 - 소설)

2021 조선 신춘문예 소설 당선작 : 윤치규, 일인칭 컷 https://www.chosun.com/culture-life/2021/01/01/QSZ6OISPRRCITHQ2UAJS4SYGMQ/ [2021 신춘문예] 일인칭 컷 2021 신춘문예 일인칭 컷 단편소설 당선작 www.chosun.com "당선작으로 결정한 ‘일인칭 컷’은 한정된 공간과 시간을 활용할 줄 아는 솜씨가 돋보였다. 희주라는 인물의 훼손당한 어떤 감정의 컷들을 보여주려고 시도한 점이나 그것을 내가 빗속에서 키가 큰 팜나무 숲을 올려다보는 그녀의 뒷모습을 지켜보는 장면으로 배치한 결말 또한. 그럼에도 불구하고 희주에게 팜나무란 무엇인지, 마치 울고 있는 듯 팜나무를 올려다보는 희주를 지켜보는 나에게 그 컷은 “삼인칭 피사체에 불과”했던 ..

문학노트 2023.06.29

이병률, 슬픔이라는 구석 (그대 움츠려 앉은 구석에서 눈물이 빛날 때)

슬픔이라는 구석 쓰나미가 모든 것을 휩쓸고 지나간 마을에 빈 공중전화부스 한 대를 설치해두었다 사람들은 그곳에 들어가 통하지도 않는 전화기를 들고 세상에는 없는 사람에게 자기 슬픔을 말한다는데 남쪽에 살고 싶다는 생각만으로 휴전선을 넘어 남하한 한 소녀는 줄곧 직진해서 걸었는데 촘촘하게 지뢰가 묻힌 밭을 걸어오면서 어떻게 단 하나의 지뢰도 밟지 않았다는 것인지 가슴께가 다 뻐근해지는 이 일을 슬프지 않다고 말할 수 있겠나 색맹으로 스무 해를 살아온 청년에게 보정 안경을 씌워주자 몇 번 어깨를 으쓱해 보이더니 안경 안으로 뚝뚝 눈물을 흘렸다 보이는 모든 것들이 너무 벅차서라니 이 간절한 슬픔은 뭐라 할 수 있겠나 스무 줄의 문장으로는 영 모자랐던 몇 번의 내 전생 이 생에서는 실컷 슬픔을 상대하고 단 한 ..

문학노트 2023.06.29

강우근, 단순하지 않은 마음 (2021 조선일보 신춘문예 - 시)

2021 조선 신춘문예 시 당선작 : 강우근, 단순하지 않은 마음 https://www.chosun.com/culture-life/2021/01/01/KVI54BP2ERCKXEWFPVYCHYUVFI/ [2021 신춘문예] 단순하지 않은 마음 2021 신춘문예 단순하지 않은 마음 詩 당선작 www.chosun.com “시는 한 번도 가보지 않은 영토를 가려 한다. 한 편의 시는 매번 새로운 길을 가려 한다. 그 길에 앞장 설 신예에게 기대하는 것은 모험의 불꽃일 것이다... 특히 전 지구적 재앙의 영향인지 고립된 현실에 대한 암중모색 속에서도 희망 혹은 미래에 대한 사유가 눈에 띄었다.” (심사평 중에) 드디어 문태준 시인이 등장했습니다. 2021년부터 조선일보 신춘문예는 문태준, 정끝별 두 명의 시인이 ..

문학노트 2023.06.29

박준, 입속에서 넘어지는 하루 (가장 현대적인, 가장 가까운 정서로서의 ‘서정’)

입속에서 넘어지는 하루 박준 길눈이 어두운 겨울이나 사람을 잃은 사람이 며칠을 머물다 떠나는 길 떠난 그 자리로 가난한 밤이 숨어드는 길 시래기처럼 마냥 늘어진 길 바람이 손을 털고 불어드는 길 사람의 이름으로 지어지지 못하는 글자들을 내가 오래 생각해보는 길 골목은 살아서도 죽어서도 그림자로 남고 좁고 긴 골목의 끝을 바라보는 일만으로도 하루가 다 지새워지는 길 달이 크고 밝은 날이면 별들도 잠시 내려와 인가(人家)의 불빛 앞에서 서성거리다가 가는 길 다 헐어버린 내 입속처럼 당신이 자주 넘어져 있는 길 -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 (문학동네, 2012) # 가장 현대적인, 가장 가까운 정서로서의 ‘서정’ 현대시들이 갖는 특징들 중 하나는 한 두 행마다 연갈이를 하고 있다는 점인데, 이는 ..

문학노트 2023.06.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