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노트

김경주, 간절기 ("시는 허구다"는 말, 현대의 서정)

단테, 정독... '종로학파' 2023. 7. 5. 11:29

 

 

 

[베껴쓰고 다시읽기] "시는 허구다"는 말, 현대의 서정 (김경주) : 




   간절기(間節期)



   엄마는 아직도 남의 집에 가면 몰래 그 집 냉장고 안을 훔쳐본다
   그런 날엔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이유 없이 화를 내던 엄마의
   일기를, 고향에 가면 아직도 훔쳐보고 있다 궁금해지면
   조금 더 사적이게 된다 애정도 없이

   내 입술이 네 입술을 떠난다 너는 카페만 가면 몰래 스푼을 훔친다
   우아한 도벽은 엄마의 철자법처럼, 걸인의 차양모자처럼 생기가 있다

   세상의 기사(記事)들은 모두 여행기다 내일이면 아무도 기억하지 못하는 특종들,
   사건 뒤에 잊힌 사람들의 이름을 외우고 다닌 적이 있다
   나는 네 가계(家系)에 속해 있다 매일 사라질 가계를 다루고 떠나는
  
   나의 행간은 활기차다 매일 똥을 오래 눈다 이것은 나의 기상에 해당한다
   내 가짜 이름은 너의 기상에 자주 등장한다 나는 네 허영이 마음에 든다
   허영이 없는 사람을 사랑한 적이 없으니, 이불 속으로 들어가 푸딩을 떠먹는
   우리의 입술을 그려본다 예의도 없이

   짐승은 발톱을 깎아주면 신경질을 낸다 그렇게 서명은 피해가며 우리는
   침묵 속에서 자주 만난다 삶은 미묘한 차이를 견디는 일이다 수치심도 없이

   내가 낳은 혼혈아에게 두근거린다 이름을 지워도 결국 내 아이는 밝혀진다
   이미 나는 이 기상과 별거 중이다 나는 상투적으로 투정하며 살기로 한다
   신경질적으로 그리워지겠지만  


   
   - 김경주, 고래와 수증기 (문지, 2014)



   # 

 

 

  

   김경주 시인의 첫 시집인 <나는 이 세상에 없는 계절이다>에 쏟아졌던 "가장 주목해야 할" 또는 "한국어로 쓰인 가장 중요한 시집" 같은 수사가 담긴 호평들과 화려했던 데뷔 시절에도 불구하고 대필 파문 등 여러 추문들이 함께 불거진 이력 탓인지 오히려 명성이나 재능에 비해선 다소 덜 알려진 편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갖습니다.

   (2016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서는 시부문 심사위원이자 희곡부문 당선자가 된 이색적인 기록을 갖고 있기도 합니다.)   

   오늘 읽어보는 시는 그의 네번째 시집인 <고래와 수증기>에서의 한 편, '간절기'입니다. 어느덧 이제 마흔 일곱이 된 시인이 서른 일곱 즈음에 펴냈던 시집이기도 하죠. 

  

   어느 블로거의 독후감처럼 여기에서 시인이 말하려는 '간절기'가 어쩌면 대한민국 시단의 한 '과도기'를 상징했거나, 또는 말 그대로 개인 스스로 겪었던 간절기였거나 또 아니면 변곡점에 해당될만한 어떤 한 역사에 관한 것이었을 수도 있겠습니다. 

   '엄마'와 '가계'에 속한 나는 "사라질 가계를 다루고 떠나는" 운명, "신경질을 낸다"는 발톱과 그리움의 일부인지도 모릅니다. 그것들을 앞서서의 해석대로 벼랑 끝이게 된 시단의 풍경으로, 또는 "혼혈아에게 두근거리다"는 개인의 경험으로 내비치려 한 것인지도 열린 해석과 평가를 낳습니다. 다만 그 투정을 '간절기' 탓으로 보는 것인지, 아니면 '간절기'라서 겪는 정서인지는 다소 헷갈리기도 하네요.  

   일종의 '골계미' 역할을 하는 장치들은 이제 제법 익숙해진 편인데, "활기차다"는 행간과 "똥" 같은 이미지들이 이 시에선 그 역할을 맡습니다. (사소한 '극복'이 곧 유머요 해학이 되는 시적 분위기는 이제 또 다른 '전통'이 될 것 같기도 합니다. 개개인의 호불호와는 전혀 상관없이) 

 

   "시는 허구다"는 말, 어쩌면 현대시의 정서를 (특히 '미래파' 이후의) 가장 축약해서 드러낸 담화일 수도 있겠습니다.  

   데뷔시집의 돋보였던 수작 중 하나인 '내 워크맨 속 갠지스'에서도 그렇듯이 시인이 말하려는 '진실'은 더 이상 "현실" 속에 존재하지 않는, 오히려 "상상" 속 세계를 통해서만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는 과거의 전통적인 패턴과 서정시들이 갖는 진술의 힘과도 사뭇 그 궤를 달리 하죠. 즉, 인생의 의미나 세계의 진실 따윈 더 이상 "현실"에서 존재하지 않는다고 보는 편입니다. 

   혹자들은 이를 놓고 니체 이후의 현대철학에 따른 영향 또는 '미래파' 이후의 시단에 펼쳐진 '낯선 정서'의 영향 등을 열거하기도 하지만, 더 정확하게는 '거대담론의 붕괴 또는 이를 대체할만한 철학의 부재' 탓이 훨씬 더 큰 것 같습니다. ('불우한 미래'를 읊조린다거나 '광장'을 애써 도피하려는 히키코모리를 닮는 경향 등은 더더욱 이를 방증하는 양태들이기도 하고요. 역시 개개인들이 갖게 되는 호불호와는 아무런 상관없이, 그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