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책로 벤치에 앉아 있는 노인들
강물을 바라보며
벤치에 앉아서 시간을 짰다 풀었다 하는 노인들
바다만 파도가 있는 게 아니어서
강물도 밀려왔다 밀려가며
강변에 수심 많은 모래톱을 만들고
거기 새들이 발자국을 찍으며 꼼짝 않고
물살을 쳐다본다
햇빛이 물살마다 어른거려
강물에도 주름살이 생기고
거기 비쳐나는 물빛이
노인들의 주름 팬 이마에 스민다
그래, 그들의 이마에는
주름살마다 빛이 배어 있고
아침부터 저녁까지 새들은 꼼짝 않고
물살 속 빛을 응시하다가 일순간 부리로 쪼아 먹는다
산책로에 드문드문 놓인 벤치마다 앉아 있는
노인들은 서로에게 무관심하다
강변의 모래톱이나 물속 삐죽 솟은 돌 위에
우아하게 한 발로 서 있는
물새들이 서로를 바라보지 않듯,
자신만의 세계에 속한다는 표시로
이마에 섬을 만드는 노인들의 조용한 노동
산책로의 벤치에 앉아 그들은
물레로 강물 소리를 감아올리며
생각의 실을 잣는다
강변에 쌓인 모래톱이 밀려온 물살에 쓸리며
새들의 발자국을 지우는 황혼 무렵
막 고치 속에서 기어나온 듯
환한 주름 하나 그림자 하나
- 줄무늬를 슬퍼하는 기린처럼 (창비,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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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멸을 통해 소외를 이야기하려는 형상화의 달인
벌써 등단을 했던 1991년이 이젠 삼십 년도 더 지난 옛날 이야기가 된 한 시인이 있습니다.
등단 33년차, 박형준 시인이 그동안 내놓은 시집들도 이젠 여럿입니다만 단연 돋보였던 작품들 중 하나인 <나는 이제 소멸에 대해서 이야기하련다>를 대신하여 오늘 꺼내 읽는 시는 지난 2020년에 출간된 창비의 "줄무늬를 슬퍼하는 기린처럼" 중에서 고른 한 편입니다.
자살률 1위, 노인빈곤율 1위라는 불명예스런 타이틀을 갖고 있는 나라에서 평범한 노년의 삶이 겪어야 하는 굴곡들처럼 험상궂고도 척박한 운명인 게 또 있을까 하는 걱정과 우려 따윈 안중에도 없이 실제로 주변에서 겪는 피폐한 일상들이 더 먼저 떠오를 법한 작품입니다. "산책로에 놓인 벤치마다 앉아 있는" 운명들은 그 가혹함에서 결코 자유롭지 못한 처연함을 갖습니다.
워낙 형용의 측면에서는 발군의 기량을 보여온 시인인만큼 "시간을 짰다 풀었다" 하며 "이마에 섬을 만드는" 노인들의 조용한 노동을 앞세우는 바람에 저절로 "강물 소리를 감아올리"는 물레로 짠 "생각의 실"을 함께 한 올씩 벗겨내보는 순간들을 함께 경험합니다.
"새들의 발자국을 지우는 황혼 무렵"에 이르는 노인들의 삶에도 이토록 아름다운 순간들이 있었을까 하는 감탄의 지경에까지 이르게 되면, 비로소 박형준이라는 이름이 갖고 있던 그 제법 오래된 무게감 역시 함께 실감하게 마련인 법일까요.
그동안 시인의 말들도 퍽 궁금해왔기에,
역시 2011년의 한 인터뷰에서 시인이 했던 말들을 다시 또 읽어볼만한 시간입니다. (인용) ;
"젊었을 때는 누구나 위대한 시인이 되고 싶죠. 자기가 위대하다고 생각하고요. 그런데 아버지를 통해 그런 생각이 바뀌었어요. 크지 않은 농사였지만 아버지는 작은 논밭을 아침부터 저녁까지 성실하게 가꿨어요. 나 역시 내 시의 영역이 크다, 적다 염두에 두면 시 쓰기에 자괴감도 생기고 좌절도 들 수 있다고 생각해요. 작은 것이라도 나에게 아직 뭔가 쓸 수 있는 게 있다. 그것으로 아버지처럼 성실하게 글 농사를 지어보면 내가 스스로 부끄럽지 않겠구나 생각했어요... 저는 시를 숙제하듯 꾸준히 써온 것 같아요. 특별하게 시가 찬란히 좋았던 적도 없었던 것 같고, 그렇다고 아주 박토는 아니었던 것 같고. 시를 써나가면 써나갈수록 천부적인 시인보다는 그냥 노력형이나 자기한테 주어진 걸 그냥 해나가는 시인이구나 싶어요... 서울 예전에 입학했을 때 오규원, 최하림 선생님이 계셨어요. 입학했을 땐 제가 시를 되게 잘 쓰는 줄 알았어요. (웃음) 선생님께 지도받고, 옆에서 그분들 시 세계를 엿보면서, 어떤 태도 같은 걸 배운 것 같아요. 항상 사물을 함부로 대하지 말라고 가르쳐 주셨거든요... 시적 자아가 생기게 된 건, 도시에서 소외감을 느끼기 시작하면서부터 아니었을까? 그 소외를 나름대로 극복하려다 보니, 주변에 나처럼 소외 받은 것들에게 관심이 많아졌고요. 어떤 일이 생기면 곰곰이 되씹어보는 습관이 생겼어요. 사춘기 무렵에 겪은 일이라 더 그랬겠죠. 학교에서 돌아오면, 캄캄한 집에서 책을 읽던 기억도 많이 나고요... 특별하거나 특이한 소재보다는 스쳐 지나가는 것들이 시가 돼요. 예를 들어, 어느 대학에서 강의하려고 지방으로 가는 길에 잠깐 스쳐 지나가는 동네를 본다든지, 시골집에 들렀는데 아버지 어머니는 안 계시고, 우물가 빨래통에 부모님의 옷가지만 걸려 있다든지 그런 풍경들이 마음에 닿아요. 사소한 것들이 무의식적으로 마음속에서 올라와 시가 되는 거죠... 저는 특별히 감수성이 탁월한 아이도 아니었어요. 저 말고도 다른 사람들에게도 있을 텐데. 다만, 어떤 사물이나 풍경들이 나를 통해서 말하고 싶어 하는 게 있지 않았을까 싶고요. 그런 걸 의식하고 좋아하게 되면 내 안에서 조금씩 익어가거든요. 바깥으로 꺼내려면, 열심히 노력해야 해요. 새끼 새가 알을 깨고 나오려고 할 때 어미 새가 밖에서 쪼아주잖아요. 사실 누구나 다 자기 나름의 특별한 것을 안에 갖고 있고요. 모든 사람이 다 시인입니다. 다만 그걸 의식하지 못하고, 키워내지 못하고, 끊임없이 꺼내기 위해 쪼아주지 않을 뿐이죠... 유사한 상태를 끊임없이 경험해야 해요. 책도 많이 보고요. 저는 시를 쓸 때, 저와 유사한 시를 쓴 탁월한 시인들의 시도 많이 봐요. 남의 시를 조금 모방하더라도, 그 안에 조금이라도 진실한 게 있다면, 비슷하다 싶으면서도 새로 쓴 사람의 이야기라고 보거든요... 그분이 훨씬 위대한 길을 갔다고 보고, 나는 작은 샛길 정도라도 해봐요. 그 샛길을 잘 가기 위해 위대한 시인들이 자기 길을 어떻게 통과해나갔는지 보는 것은 중요해요. 샛길이라고 해서 누구나 쉽게 갈 수 있는 건 아니니까. 유용한 건 아무리 작은 길에도 있는 법이니까요... 표현하고 싶은 게 있으면 밤을 새워서라도 표현될 때까지 붙잡고 늘어져 보고요. 햇빛을 보고 기뻤다면, 그 햇볕이 어떻게 나한테 기쁨을 줬는지 잠새도록 써봐야죠. 그게 자기 글이 되는 순간, 독자들도 자기 안에 인식하지 못한 것을 그 글이 끄집어 내주면서 공감을 일으키는 거예요. 작가의 시선을 유사하게 느끼고 삶에서 인식할 수 있게 되죠. 세계를 바라보는 창을 제시하는 일이에요... 후배들 만나면 때때로 밥도 사줘야 인자한 모습을 보이죠. (웃음) 적어도 남에게 손 벌리지 않고 살고 싶고요. 시인으로서는, 그때까지 내가 쓸 수 있는 시가 있었으면 좋겠어요... 떠나가는 것에 집착하면 안 돼요. 과거에 저한테 사무쳤던 것들을 보내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것도 시 쓰는 이유 중의 하나예요. 도시에 살다 보면 바쁘잖아요. 떠나가야 할 것들을 제대로 떠나보낼 시간이 부족해요. 시를 쓰는 일은, 어떤 사물이나 추억을 흘려보낼 때, 그것이 잘 떠날 수 있도록 배려하는 힘이 생기는 것 같아요... 궁극적으로는 글을 쓴다고 위로가 되는 건 아닌 것 같아요. 글을 어떤 면에서 보면 의지라고 생각해요. 서정적이고 따뜻한 이야기라 하더라도, 어떤 현상이나 지나간 추억을 용납하기 위한 것만은 아니에요. 추억에 잠긴다는 것이 단순히 그것에 매몰되는 게 아니에요. 누군가의 동정을 받기 위해 어떤 슬픔을 시로 쓰고, 독자들의 감상만 이끌어낸다면 곤란하죠. 그 슬픔을 끄집어내서 그것이 저에게도 의지가 되고, 읽는 사람도 유사한 슬픔을 발견하고, 그것을 딛고 올라설 수 있는 하나의 벌판으로 시가 기능해야 한다고 봐요. 시에서 손톱만큼의 의지를 얻었다면, 제 시가 세상에 이바지한 바가 조금은 있다고 할 수 있겠죠... 때때로 아무리 자기 안에 슬픈 것들도 냉정하게 봐야 해요. 그래야 전혀 연결되지 않는 것들이 생명 기계처럼 서로 연결돼요. 여기 카메라하고 책이 연결될 수 있어요. 그런 의지와 냉정하게 볼 줄 아는 가슴이 필요해요. 물론 이런 시각에는 기본적으로 사랑이 깔린 거고요. 어떤 사물의 본질을 드러내야 하려면 사랑은 기본이에요... 그게 다 지워져 버리면 시를 못 쓸 것 같아요. 그럼 현실에 너무 만족하고 있다는 의미가 되기 때문에. 그러면 굳이 시를 쓸 이유가 없죠. 제가 쓰는 시는 어떻게 보면 결핍, 소외에서 나오는 것 같아요." (예스24 인터뷰 중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