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3일 동안의 짤막한 여행
정독, 종로학파 단평집
차례
저자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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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년 10월 10일 (화)
- 2023년 10월 11일 (수)
- ( 빈 칸을 채우시오* )
* 2023년 8월 3일 (목), 2023년 8월 12일 (토), 2023년 8월 15일 (화), 2023년 8월 24일 (목), 2023년 9월 1일 (금), 2023년 9월 4일 (월), 2023년 9월 6일 (수), 2023년 9월 10일 (일), 2023년 9월 16일 (토), 2023년 9월 18일 (월), 2023년 9월 19일 (화), 2023년 9월 20일 (수), 2023년 9월 21일 (목), 2023년 9월 24일 (일), 2023년 9월 25일 (월), 2023년 9월 26일 (화), 2023년 10월 12일 (목), 2023년 10월 13일 (금)
※ 산문 : 몇가지 단상 (수국, 종로학파)
저자의 말
지난 오월 말부터 시월 초까지의 약 넉 달 동안 카카오톡 문학 커뮤니티들을 대상으로 한 다양한 연재를 시도해본 흔적을 모아서 별도의 갈무리 차원으로 남겨놓을까 합니다. 기실 정식적 형태로서의 비평을 쓸 재간도 여유도 없었을 뿐더러 창작에 매진해야 했던 시절이기도 해 변변히 제대로 된 평론 한 편을 완성하지는 못하였는데도요. 그저 짤막한 단견들이나마 족적을 훑어보려는 건 올해 내내 제 가장 큰 화두 중 하나인 '문학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나름대로의 구상 또는 견해들을 이렇게라도 정리해두는 편이 좋을 것 같아서입니다.
벌써 가을입니다. 뜨거운 여름이 어느새 식어서인지 제법 차가운 바람이 새벽녘마다 일렁이고 다들 고요히 잠든 컴컴한 산책길을 묵묵히 걸어보곤 합니다. 때로는 즐거운 추억으로 또 때로는 괴롭기만 한 회한들로 점철된 이 길에서 또 다시 누군가를 만난다거나 또 누군가를 사랑하고 미워하는 일만큼은 이제 좀 익숙해져야 할 텐데, 전혀 그렇지가 못한 듯합니다.
첫 시집을 냈을 때의 서문에서는 꽤나 진지한 어투로 형이상학적 담화들만 쏟아낸 것 같아 이 자리에서는 보다 더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문장이 되고자 잠시 펜을 들었고요. (해당 글을 쓸 적에는 너무 이른 새벽에 깨곤 해서 글 한 편을 공유하는 시각마저 좀 저어했던 기억이 있습니다만, 이젠 저도 다른 이들처럼 충분히 늦게 자고 충분히 늦게 일어나는 편을 택하고 있기도 해요.)
다양한 시도들 중 그래도 제일 먼저 기억해둘만한 일은 최근 5년간의 각종 신춘문예들과 문학상들을 일목요연히 짚어둔 점이겠고, 최근까지 기억에 남는 시들과 임박해온 신춘문예 당선작들을 놓고 이따금씩 떠오른 주제들을 가볍게 다룬 짤막한 소품들이므로 읽어두기에도 안성맞춤이지 않을까 합니다. (무슨 대단한 소일거리를 만든 건 아니겠지만요.)
바람이 차갑습니다. 마음까지도 차가울 적 많았던 올 한 해, 이제는 좀 더 따스한 난로를 그리워할 계절이 곧 다가옵니다.
그래서 '집'은 언제나 '그리움'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정호승 시인의 '서울의 예수'를 생각하는 아침입니다.
2023년 10월, 가을 한복판의
호수를 품은 정발산 기슭에서
2023년 5월 25일 (목)
[촌평] 현상학? 구조시학? 해체? 그리고 ‘욕망’
- 임승유, '그러나 나는 설탕이 폭력적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나는 설탕이 폭력적이라고 생각한다
각설탕을 깨물어 먹고 싶었던 적이 있다
손가락에 침을 묻혀가며 읽었던
여자들의 가슴과 사내들의 아랫도리
이건 가학적인 포즈로 읽히기 십상이지
당신에겐 슬리퍼가 필요해요
릴렉스 릴렉스
어제 잡은 물고기, 라테, 빨간색이 사라진
귀여운 당신의 팬티
눈이 내린다
온몸을 던져 만들어내는 흰색들
티스푼으로 몇 날 며칠을 저어도
이상해요
달콤한 당신을 보면
나는 당신의 두 손을 만져보고 싶어져요
혼자 뒤뜰에서 벙그러지는
아름다운 꽃들처럼
속임수는 견딜 수 없게 아름다워요
내 치명적인 약점은 아름다움을 믿지 못한다는 거예요
에이프런을 두른 소녀가
밤새 당신의 창가에서
성냥을 그어대고 있어요
믿을 수 있겠어요?
당신이 우적우적 깨물어 먹고 있는
불빛 불빛 들
* 임승유, 아이를 낳았지 나 갖고는 부족할까 봐 (문지, 2015)
임승유의 시 ‘그러나 나는 설탕은 폭력적이라고 생각한다'를 처음 읽었을 때에는 무슨 ‘관능의 시학’ 같은 단어를 대뜸 떠올렸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여자들의 가슴과 사내들의 아랫도리”는 충분히 그 개연성을 갖기 때문이죠..
[강좌] 사진 고전 강독 시리즈1 - 롤랑 바르트 <밝은방(카메라 루시다)>... 허경 선생님
나중에야 제목의 문장이 롤랑 바르트의 ‘카메라 루시다’에서 인용한 구절이라는 걸 알았을 때엔 이미 늦었습니다. (처음부터가 오독이었으니, 제대로 된 비평이 나올 리 만무합니다.) 사진이라는 예술 쟝르에 미쳐 깊이 천착한 이 글에서 바르트는 그 어떤 부드러움도 사진에 있어서는 가히 “폭력적”이라는 말을 남기죠.. 굳이 이를 제대로 번역한다면, 아마도 ‘압도적’이라는 낱말이 더 적당하지 않을까 해요.
“어제 잡은 물고기, 라테”는 모두 흰색이었을까요? 대신에 “당신의 팬티”는 과연 하얀색이었을까도 좀 궁금해집니다. 눈이 내리는 장면에서는 그 하얀 빛깔이 갖는 ‘압도적’ 심상을 제대로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아무리 쓸어도 내리는 눈처럼 아무리 저어도 그 흰색은 아름답습니다.
시인은 차마 그 하얀 아름다움을 믿기가 힘든가 봅니다. “뒤뜰에서 벙그러지는” 꽃들의 아름다움에서 시인은 수줍은 진실 대신에 “속임수”라는 단정을 짓습니다. 그래서 더 “견딜 수 없게” 아름다움을 느낀다는 말. 선뜻 동의하기는 어려운 정서였던 것 같습니다..
“내 치명적인 약점은 아름다움을 믿지 못한다”는 맨 마지막 구절에서 “당신이 우적우적 깨물어 먹고 있는” 무신경함 내지는 무지함으로부터 비롯된 것일 수도 있겠습니다. 다만, 그 무신경함을 애써 달래고 또 설득력 있게 꾸준히 소통을 추구하는 게 작가의 자세라는 점에서는 오히려 일종의 ‘물귀신 작전’ 같게도 들렸습니다.
설탕이 갖는 흰색 그 ‘압도적’인 힘에 대한 시인의 찬미는 그리하여 ‘속임수’에 대한 찬미로, 화자의 낭만적 알리바이를 도출해는 데 성공한 것처럼 보여집니다. 하지만, 그런 ‘압도적’ 이미지가 혹여 원래 바르트가 말한 의미였는지 또는/아니면 가스통 바슐라르가 말한 또 김 현 선생이 번역한 그 ‘욕망’의 시학을 에둘러 말한 것인지조차 의문스럽긴 마찬가지였습니다. (설령 그렇다 해도.. 제 생각에는 이 시에서 갖는 가장 큰 힘을 오히려 그 ‘속임수’에 불과하다는 흰색이 갖는 실제로의 고고함에서도 찾아볼만한 일이긴 하겠으니까요.)
가스통 바슐라르, <촛불의 미학> - 욕구와 욕망의 차이 [BY 다반 디페랑스 출판사] “인간은 욕망의 창조물이지 결코 욕구의 창조물이 아니다.”
2023년 5월 26일 (금)
좋은 아침입니다.
이달말까지로 해 창비신인문학상 응모가 곧 마감됩니다. 내달부턴 7월말까지 문학사상 응모시즌이기도 해요. (실천문학은 아직 일정이 잡히지 않는군요.)
가을에는 민음사의 김수영문학상이 있겠고, 겨울 초입에는 드디어 각 신문사들마다 신춘문예의 향연이 또 열리게 됩니다. 봄의 문지, 창비부터 계속되는 일들이죠..
문예지와 신춘문예를 계속 도전하는 이유는? 등단과 입선은 그저 작은 결과물일 뿐입니다. 더 큰 이유는.. “마감에 맞추어 글쓰기를 단련하는 과정”일 뿐입니다.
퇴고를 반복할수록 안목과 내공이 쌓입니다. 프로들의 ‘합평’을 받아봐야 객관화된 진단/처방도 가능하겠죠. (그게 곧 심사과정 및 심사평일 뿐입니다.)
즉, 퇴고 이후부터 새로 쓰는 글쓰기를 위함이며, 담금질이 된 글쓰기는 좋은 책을 출간하는 한 과정이겠죠..
결국 최종 결과물은 당선과 수상이 아닌, ‘출간’입니다.
수해에 걸쳐 낙방을 거듭해 지친 분들을 더러 뵙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저 거쳐갈 뿐인 ‘과정’이라는, 온기있는 말 한마디가 조금이라도 위로가 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갈 길이 아직 멉니다. 너무 쉽게들 사소하게들 연연치 않는 게 ‘정석’입니다. 전 그렇게 생각합니다.. (아직 채 100번을 응모조차 해본 적도 없습니다.) 섣부른 판단보다는, “도대체 왜 글을 쓰는가?”를 자문하는 편입니다.
오늘도 의미있는 하루 되시기 바랍니다.
- 오늘의 글(말)입니다. ;
드라마, 영화, 연극, 단편, 독립영화. 매 작품마다 하나 할 때마다 저 개인적으로는 작은 배움의 성장이 있었던 것 같아요.
어떤 작품은 스스로 반성하게 되고, 어떤 작품은 위로받기도 하고, 또 어떤 작품은 작은 깨달음을 얻기도 하고, 그 깨달음을 같이 공유하고 싶기도 하고 그랬습니다.
지금까지 한 100편 넘게 작업을 해왔는데요.. 어떤 작품은 성공하기도 하고, 어떤 작품은 심하게 망하기도 하고, 또 어쩌다 보니까 이렇게 좋은 상까지 받는 작품도 있었는데요.
그 100편 다 결과가 다르다는 건 좀 신기한 것 같았습니다. 저 개인적으로는 그 100편 다 똑같은 마음으로 똑같이 열심히 했거든요.
돌이켜 생각을 해보면 제가 잘해서 결과가 좋은 것도 아니고, 제가 못해서 망한 것도 아니었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세상에는 참 많은, 열심히 사는 보통 사람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그런 분들 보면 세상은 좀 불공평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꿋꿋이, 그리고 또 열심히 자기 일을 하는 많은 사람들이 똑같은 결과는 또 그분들에게 똑같은 결과가 주어지는 건 또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서 좀 불공평하다는 생각이 드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망하거나 지치지 마시고 포기하지 마시고 여러분들이 무엇을 하든간에 그 일을 계속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자책하지 마십시오. 여러분 탓이 아닙니다.
그냥 계속하다보면은 평소에 똑같이 했는데 그동안 받지 못했던 위로와 보상이 여러분들에게, 여러분을 찾아오게 될 것입니다. 저에게는 동백이가 그랬습니다.
여러분들도 모두 곧 반드시 여러분만의 동백을 만날 수 있을 거라고 믿습니다.
힘든데 세상이 못 알아준다고 생각을 할 때 속으로 생각했으면 좋겠습니다. 곧 나만의 동백을 만날 수 있을 거라고요.
여러분들의 동백꽃이 곧 활짝 피기를 저 배우 오정세도 응원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제56회 백상예술대상 수상소감)
2023년 5월 27일 (토)
하루종일 비가 내립니다.
마치 엊그제까지 폭염에 지친 대지를 한꺼번에 달래주기라도 할 것마냥 끊임없이 내리는 비도 어김없는 여름을 예고할 뿐입니다.
‘때 이른 장마’ 같기도 한 습작 한편을 겨우 써냈고, 하루종일 방안에서 새로 깔았던 앱을 켜 아주 오래된 상형문자들을 탁본하듯 갤러리의 몇점들을 이것저것 꾸며서 만들어냈습니다. 굳이 일부러 만든 말이었던 “1일 1편”의 구호를 아직까진 스스로 잘 지켜내고 있는 편입니다만…
친구네 집 근처에 있는 유명한 동태탕집을 함께 찾기로 진작에 약속을 해놓고선 벌써 이주일째 지키지도 못한 상태입니다. 비라도 그치기만 하면 내일이라도 서둘러 찾아갈 작정예요. 함께 시를 쓰던 그 친구는 어느덧 인테리어 회사 사장님이 됐습니다. 전 아직도 직장인입니다.
창비에 투고한 시를 놓고도 몇가지 좀 물어볼까 싶었지만, 도로 접어두었습니다. 친구는 이제 시를 쓰지 않거든요. 학창시절 동안 동기들 중 가장 시인을 닮았던 친구였는데도요… 대신에 인테리어 목공과 줄눈시공의 노하우에 대한 자문을 구해볼 생각입니다.
새롭게 듣게 된 노래는 아직 없습니다. 유튜브에선 주로 옛 노래들을 검색하기 일쑤인데, 오늘 따라 유난히 양수경 노래 생각도 많이 났습니다.
시즌1을 막 끝낸 드라마 “어쩌다 마주친 그대”를 밤늦게까지 정주행을 해가면서 볼 계획이고요.
아직까진 안녕한 편입니다.
시집들도 거의 매일 한권씩은 꼬박꼬박 읽어내는 편이고요. 다만 소설은 여전히 손도 못하는 형편이네요. 아직도 더 분발해야 할 것들이 많습니다.
편안한 저녁시간 되시기 바랍니다.
2023년 5월 28일 (일)
이미지 파일에 시나 소설의 문구들을 붙여넣어 만드는 앱들이 요즘 유행인가 봅니다. 가만히 누워 시 몇편을 골라 폰트와 레이아웃, 효과 등을 지정해가면서 마치 시화전을 찍어내듯이 새로운 사진 한장을 만드는 데는 불과 몇분의 시간이면 족합니다. 쓸모가 많아졌습니다.
어제 쓴 습작을 마찬가지로 한번 해보는군요...
(나머지들은 기성 작품임.)
2023년 5월 29일 (월)
며칠째 계속된 비가 잠시 소강상태를 보이더니 드문드문 햇살이 내비치는 아침입니다. 길고 긴 비의 끝엔 늘 일종의 ‘회복’ 같은 기제가 필요해 보입니다.
모처럼 오랜 벗들을 만나 생태탕을 먹었고, 다음주 초부터는 경주로 떠난다는 안부도 들었습니다. 또 다른 인생을 살아간다는 일은 꽤나 큰 용기와 자신감을 가져야만 가능해질 일이기에 크게 응원하였고요.
때때금 스스로한테도 그 ‘또 다른 인생’을 되묻곤 하죠… 어떤 경우는 작가로, 또 어떨 때는 자영업으로 아니면 낙향도 아닌 어느 시골 정도를 생각하곤 했지만 번번이 용기와 자신감이 부족했으니까요.
연휴도 막바지입니다.
용기와 자신감은 그저 느낌과 감정이 아닌, 실물과 준비 즉 노력의 결과라는 걸 잘 압니다. 그 준비를 하여야 할 차례인 것 같습니다.
편안한 연휴 잘 마무리하시기 바랍니다.
(이원 시인의 데뷔작 한편을 올려놓겠습니다.)
시간과 비닐봉지
- 이원
검은, 비닐봉지 하나, 길바닥을 굴러다닌다 계속해서 시간은, 길보다 먼저 다리를 뻗는다, 검은 비닐봉지, 이번에는 계단이 있는 곳까지, 굴러가더니 멈춘다 잠시 따갑게, 부스럭거린다 시간은 다리를, 양 옆으로 길을 벌리며 간다, 가다 간판, 밑에서 멈춘다 무방비 상태로 옷의 앞을 모두, 풀어놓은 채 시간은 계속되고, 있다며 비닐봉지, 검은 쓰레기가 있는 곳으로 굴러 들어간다, 한참 나오질 않더니 검은, 그림자를 흔들며 헤집으며, 나무 밑에 멈춰 있다, 그곳에서 시간과, 비닐봉지가 같은 색으로 만난다, 나무에 등을, 기댄 시간의 한쪽 다리가 무릎에서, 잘려 있다 뒤를 보니 나무의, 중간쯤에 다리를 접어 올리고, 있다 비닐봉지는 여전히, 나무 밑에 머물러 있고 몸을 앞으로, 숙인 시간은 무엇인가를 뒤로, 껴안고 있다
* 세계의문학, 1992년 가을
2023년 5월 30일 (화)
[촌평] 굳은 얼음의 착각, 쓰다 만 답안지
- 이장욱, '얼음처럼'
얼음처럼
나는 정지한 세계를 사랑하려고 했다.
자신을 의심하지 않는 세계를
나는 자꾸 물과 멀어졌으며
매우 견고한 침묵을 갖게 되었다.
나의 내부에서
나의 끝까지를 다 볼 수 있을 때까지.
저 너머에서
조금씩 투명해지는 것들을.
그것은 꽉 쥔 주먹이라든가
텅 빈 손바닥 같은 것일까?
길고 뾰족한 고드름처럼 지상을 겨누거나
폭설처럼 모든 걸 덮을 수도 있겠지만
그것이 가위바위보는 아니다.
맹세도 아니다.
내부의 뜻밖의 계절을 만드는 나무 같은 것
오늘 아침은 영원이 아니라서 가능하다
는 생각 같은 것
알 수 없이 변하는 물의 표면을 닮은.
조금씩 녹아가면서 누군가
아아,
겨울이구나.
희미해.
중얼거렸다.
- 『영원이 아니라서 가능한』, 이장욱, 문학과지성사, 2016년, 12~13쪽
현 ‘창비 편집위원’이자 동국대 문예창작학과 교수이기도 한 이장욱 시인 (겸 소설가, 평론가)의 시 한편을 거꾸로 읽습니다. 요란스러울만큼 다양한 해석, 몇 편의 팬심 가득했던 소감문 등을 먼저 읽었고 정작 시는 맨 마지막에 읽게 됩니다.
(때로는 불편할만큼의 ‘능률’ 또한 필요해져서입니다.) 각설하고,
‘투명한 침묵’ 즉 ‘정지한 세계’는 ‘꽉 쥔 주먹’과 ‘텅 빈 손바닥’ 같은 또 ‘길고 뾰족한 고드름’이거나 ‘폭설’처럼 지상을 겨누고 모든 걸 덮어버리는 지향점을 갖는다면, 반대로 이 시의 결론에서 화자가 제시하고자 한 ‘전망’은 그 반대편에 있을 법한 ‘영원이 아니라서’ 새롭게 맞는 아침과 ‘변하는 물의 표면’을 닮아 ‘조금씩 녹아가면서’ 찾게 되는 또 다른 무엇인가 봅니다.
시집 제목에서 밝힌 “영원이 아니라서 가능한” 세계는 곧 절대적 운명 따위가 아닌 스스로 변화하는 맥락 속에서 자연스럽게 찾아져야 할 무언가로 귀착됩니다. 정지한 듯하면서도 끊임없이 흐르고 있는 겨울 강가의 물결처럼 보이지 않는 진실을 찾기 위해 애쓰는 흔적들도 역력합니다.
다만,
끝끝내 그저 “희미해” 하면서 중얼거릴 뿐인 태도는 무언가 새로운 변곡점 앞에서도 전혀 다른 반전의 계기를 제출하지도 못한 아쉬움은 더러 남습니다. 애쓰게 찾은 무언가를 이제 ‘찾았다’고만 말해버리는 기준은 무얼까요? 고작해야 ‘변증법’일까요.. 어찌 보면, 지극히 단순한 진실 하나쯤임에도, 그걸 녹여낼만한 대상을 정확히는 구체적으로는 찾아내지 못한 까닭은 아닐까 해 그게 좀 더 궁금해졌습니다. 그게 좀 더 아쉽습니다.
‘어두운 시대적 전망’에 관하여 몇차례인가 글을 쓴 적이 있습니다.
최근 우리 시단에서 하나의 광풍처럼 고착화된, 일종의 ‘주류’로 군림하고 있는 정서는 다름 아닌 ‘미래파’ 이후 내지는 그 영향력에 놓인 기형적 풍토일 것입니다. (이 풍토를 조성하는 데 아주 크게 기여한 인물 중 하나가 다름 아닌 이장욱이라는 이름 세글자이기도 합니다.)
대중예술이 대체해버린 탓에 시대적 정서를 아예 탈피해 상정해놓는 심상들은 점점 더 알 수 없는 언어로 치장을 했고 독자들과의 괴리감을 키웠으며 그 지독한 난해성과 허무주의 일색 뿐인 컬트적 애호품으로 일명 ‘그들만의 리그’ 안에서만 불과 수만 권 가량의 판매량을 놓고 “독자들은 무식하다”는 둥 “기존 정서는 이미 낡았다”는 둥 애써 변명을 해가며 유지해온, 새로운 아류에 지나지 않을 가련한 ‘기득권’ 신세인지도 모를 일입니다.
이 기류도 벌써 15년 가까이가 흐른 지금 이 시점, 맨 처음 ‘미래파’를 주창하고 이끌었으며 황인찬과 함께 그 수혜 역시 가장 톡톡히 입었던 한 인물로서의 이장욱은, 과연 그의 입에서는, 과연 계속 이대로 고립돼 석기시대의 골동품마냥 주변부에서 주저앉아만 있을 것인가를 감히 되묻지 않을 수가 없는 시점이기도 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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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5월 31일 (수)
오월의 마지막 날,
맨 마지막 시편은 또 다시 이제니 시인입니다.
창비 신인문학상을 마감으로 해 봄 한철의 격정도 꽃잎들처럼 무상히 잊혀질 법한 시절은 이제 신록에서 녹음으로 바뀐 섭씨 사십도의 여름을 예고하는 중입니다.
(이윽고 또 한해의 신춘문예 시즌을 준비하려는 마음들도 곳곳에서 들려옵니다.)
한달 남짓한 시간이었으나 여러 차례로 많은 말씀들이 오갔던 모양입니다. 덕분에 감정을 느낄 수만 있게 된다면 퍽 다행으로도 여기고 있습니다. 유독 요즘의 시들이 앓아온 무감각증에 비하면 반가울 일일 테죠.
GPT4의 시대에 가장 주변부 쟝르가 된 시단의 풍경을 논한다는 게 실은 꽤 맥락없는 서술이었고, 부질없는 짝사랑이었을 수도 있겠습니다. 주초부턴 회사에서도 정보보안을 이유로 챗GPT와 구글 바드 (더 쎈 놈)이 모두 막혔는데, 웬만한 대기업들은 이미 사내전용의 사설 AI를 장착해서 새로운 사내전용 브라우저를 내놓습니다. MS는 윈도우에 내장시킨다고도 발표했으니, 이젠 모든 이들이 쓰기 싫어도 늘 AI과 함께 지내게 될 시절이기도 합니다.
AI를 가장 닮은 듯한 시인들이 김수영문학상을 휩쓸던 최근 몇해를 두고 본다면, 이제 그 계보는 인간이 아닌 로봇의 세대순으로도 기록될까는 모르겠습니다. 제 무덤을 판 ‘미래파’는 도통 아무 말이 없습니다. 신서정이라고? 지나가던 개가 웃을 뿐입니다.
언젠가 친구가 무심히 툭 던진 말처럼, 그들이 냅다 집어던졌다는 박노해의 시가 왜 백만부 이상이나 팔렸는가를 누구나 다 외우기 쉽고 이해할 수 있는 문장들을 얘기하는가도 곱씹어야 할 숙제입니다.
아침부터 말을 하게 되면 늘 많아진 편입니다.
오늘 하루, 의미있게 보내시고 한달여의 봄 역시 잘 마무리되었으면 좋겠습니다.
2023년 6월 12일 (월)
제67회 현대문학상 (이제니, 발견되는 춤으로부터) :
보들레르, 발레리, 랭보의 시집들이 나온지도 벌써 백년이 넘는 세월이 흘렀습니다. 우리나라 시단에도 이미 1900년대 초반부터 적잖은 시인들한테 영향을 끼친 것으로도 유명한 이 일련의 '상징주의'는 고통스런 현실을 상징 속 구조로 자각해내는 (한편으론 지독히 난해하기만 한) 환상적 서술방식을 갖습니다만, 어째서인지 요즘 우리나라 현대시들의 풍토는 불과 십수년전 정도의 앞선 세대들과의 큰 단절을 갖는 대신에 오히려 한세기도 더 지난 그 경향들과는 훨씬 더 흡사해진 게 아닐까 하는 의문을 갖습니다. 21세기의 현실이 초기 자본주의의 그것보다도 더 잔인하고 끔찍하다는 것인지, 혹은 대체할만한 전망마저 아예 단념한 디스토피아에의 확신 탓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과연 시는 왜 쓰는가? 왜 쓰려고 하는가?...
- 이 질문이 불쑥 더 앞서곤 하는 요즘입니다.
이제니 시인의 67회 현대문학상 수상작 한편, 올려놓습니다.
새로운 한주입니다. 좋은 하루 되십시오. ;
발견되는 춤으로부터
- 이제니
멀리 성당의 첨탑에서 저녁 미사를 알리는 종소리 들려온다. 열린 창 너머로 어스름 저녁 빛 새어 들어오고 마룻바닥 위로 어른거리는 빛. 움직이면서 원래의 형상을 벗어나려는 빛이 있다. 어디로든 갈 수 있다고 속삭이는 옛날의 빛이 있다. 사제는 한 그릇의 간소한 식사를 마치고 자리에서 일어난다. 가장 낮은 자리로 물러나 무릎을 꿇고 기도를 올린다. 화면은 다시 정지된다. 일평생 봉쇄 수도원의 좁고 어두운 방에 스스로를 유폐한 채 기도에만 헌신하는 삶. 너는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는 그 기도가 누구를 도울 수 있는지 묻는다. 화면은 다시 이어진다. 너는 책상으로 가 앉는다. 맞은편에는 비어 있는 의자. 비어 있음으로 가득한 의자. 책상 위에는 먼 나라에서 보내온 엽서가 놓여 있다. 엽서는 북반구 소도시의 풍광 사진을 담은 것으로 단단한 얼음을 도려낸 듯한 작은 호수가 펼쳐져 있다. 한때의 죽음과도 같은··· 호숫가에는 걷거나 뛰는 사람들이 어딘가로 가려는 동시에 어딘가에 멈추어 서 있다. 멈추어 있는 채로 움직이고 있는 자전거 바퀴의 빛살이 아득히 눈부시다. 언젠가 너를 눈멀게 했던 호수의 빛. 한 발 한 발 천천히 걸어 들어가 남몰래 몸을 던지려 했던 깊고 쓸쓸한 물결의. 엽서 곁에는 작고 검은 돌이 몇 개 놓여 있다. 검은 돌··· 뚝뚝 눈물을 흘리면서 울고 있는 작은 돌. 돌의 표면 위로 무언가 흘러가고··· 돌연 가슴을 두드리는 슬픔이 지나가고··· 돌은 다시 발견된다. 돌은 그제야 제자리에 놓인다. 발견되는 돌 이전에는 발생하는 눈이 있었고. 눈. 바라보는 눈. 바라보면서 알아차리는 눈. 알아차리면서 흘러가는 눈. 흘러가면서 머무르는 눈. 머무르면서 지워지는 눈. 지워지면서 흘러가는 눈. 너는 엽서의 뒷장을 펼쳐 읽는다. 끝없는 설원의 가장자리로부터 한 사람이 베일 듯 걸어 나온다. 얼음의 꽃으로부터 향기를 간직하려던 사람이여. 닿을 수 없는 국경 너머를 향해 뿔피리를 불던 먼 생의 사람이여. 너는 이미 죽은 스승의 전생의 어머니이다. 몇 겁의 세월을 지나 이름 없는 여인이 낳은 구슬픈 눈을 가진 어린 린포체이다. 순간··· 마룻바닥 위로 한 번도 본 적 없는 설원의 어린 짐승이 지나가고 너는 네가 가보지 못한 곳의 겪지 못한 형국을 한눈에 다 바라볼 수 있다는 기이한 착각 속에 빠져든 채로··· 맞은편은 여전히 비어 있음으로 가득히 비어 있다. 의자에 앉은 너는 끝없는 설원 위를 끝없이 걷는다. 고행이라도 하듯이 앞서 걸어가는 네 자신의 옷자락을 간신히 붙잡고 가듯이. 정지된 화면은 다시 재생된다. 기도를 마친 사제는 책상으로 옮겨 앉아 먼 나라의 슬프고 아픈 사람에게 편지를 쓴다. 빛이 먼지를 지우고 있습니다. 밤이 어둠을 돕고 있습니다. 사이··· 푹푹 눈발에 빠지는 발소리가 누군가의 울음소리처럼 들려왔기에. 너는 의자에 앉은 채로 걸음을 멈춘다. 눈을 들어 옆을 바라보았을 때. 어느새 작고 어린 겨울 짐승이 네 곁을 따라 걷고 있었고. 너와 어린 짐승은 각각의 생각에 잠겨 각자의 길을 걷고 또 걸었다. 그것은 언젠가 전해 들은 믿음에 관한 이야기와도 같아서. 네가 바라보는 거울 속에서 너는 무엇이든 될 수 있고 무엇이든 볼 수 있다는 찰나의 깨달음에 관한 이야기로서. 너는 작고 검은 돌 위에서 두 번 다시 볼 수 없는 한 얼굴을 발견한다. 어슴푸레한 빛 속에서 무수히 떠오르는 몸짓들. 빛과 어둠의 경계 위에서 흩날리는 입자와 입자 사이의 흐느낌 속에서. 잊고 있었던 기억처럼 먼지의 춤이 발생한다. 춤이 발생하기 이전에는 하염없이 내리는 눈이 있었고. 하염없이 내리는 눈 이전에는 하염없이 덮이는 땅이 있었고. 하염없이 덮이는 땅 이전에는 하염없이 자기 자신으로 돌아가는 몸이 있었고··· 너는 멈추어 있는 채로 걸어가는 그 모든 사물의 표정과 목소리를 너 자신의 얼굴인 듯 읽어 내려간다. 사이··· 먼 나라의 사제는 온몸으로 세계의 울음을 듣는 사람이 되어 이 세상 속으로 한 걸음 더 걸어 들어가고 있었고. 어느덧 너는 더는 나아갈 수 없는 설원의 모서리에 도착해 있었으므로. 이제 그만 작별 인사를 하려고 고개를 돌렸을 때. 함께 걷던 작고 어린 겨울 짐승은 어느 결에 사라지고 없었고. 오직 너 혼자만이. 너 자신과 함께. 둘인 동시에 하나인 채로, 하나인 동시에 둘인 채로. 먼 길을 오래오래 홀로 함께 걸어가고 있었으므로. 걷고 걸어도 가닿지 못하는 설원의 빛 너머로부터. 누군가 멀리서 내내 당신을 돕고 있습니다. 춥고 어두운 골짜기에서 들려오듯 문득 서럽고 드넓게 울려오는 네 마음속 한 목소리가 있어. 너는 먼 곳의 얼굴 없는 사제를 네 영혼의 친척으로 여기는 것이다.
# 현대문학 8월 (현대문학, 2021)
[자료] 신춘문예 역대 당선작 목록 (2018~2023) :
2018 신춘문예 모음, http://www.news-paper.co.kr/news/articleView.html?idxno=22048
2019 신춘문예 모음, http://www.news-paper.co.kr/news/articleView.html?idxno=32001
2020 신춘문예 모음, http://www.news-paper.co.kr/news/articleView.html?idxno=72706
2021 신춘문예 모음, http://www.news-paper.co.kr/news/articleView.html?idxno=75744
2022 신춘문예 모음, http://www.news-paper.co.kr/news/articleView.html?idxno=76597
2023 신춘문예 모음, http://www.news-paper.co.kr/news/articleView.html?idxno=77532
2022 경향 신춘문예 시 당선작 :
백가경, 하이퍼큐브에 관한 기록
https://m.khan.co.kr/culture/culture-general/article/202112312037015#c2b
새롭게 시작하는 연재는 역대 신춘문예 당선작들을 한해씩 훑어보고, 올해의 시사점 내지는 '전망'을 도출해내는 작업이 될 것 같습니다. 제일 먼저는 경향신문부터 출발하도록 할게요. 작년도 신춘문예 당선작들 (시, 소설)입니다.
김행숙 시인이 입버릇처럼 말한 "정확한 사유와 진실"의 힘, 그 심사평을 한번쯤 생각해볼만한 아침입니다.
2022 경향 신춘문예 소설 당선작 :
김채원, 현관은 수국 뒤에 있다
https://m.khan.co.kr/culture/culture-general/article/202112312044005#c2b
세 친구들의 도심 속 동행, 그 단조로운 일상이 무려 신춘문예 타이틀을 따냈습니다.
2023년 6월 13일 (화)
2021 경향 신춘문예 시 당선작 :
윤혜지, 노이즈 캔슬링
https://m.khan.co.kr/article/202012311950005
이른 아침입니다.
공교롭게도 그제는 “준비없는 등단이야말로 폭삭 망하는 거다, 지금의 낙선작이 어쩌면 등단 이후의 후속작이 곧 될 터이니 등단 같은 건 신경 쓰지 말고 열심히나 써라”는 문장을 발견했었는데,
어제의 문학과사회 신인문학상 발표를 듣고 있자 하니 또 꼭 그렇지만은 않은 것 같기도 하네요. ㅎㅎㅎ
오늘 아침은 시창작을 잠깐 쉴까 해요, 회식도 있었고 분리수거도 해야 하고.. 대신에 경향 신춘문예의 역대 수상작들을 계속 살펴보는 시간만 좀 갖겠습니다.
좋은 아침시간 되세요~
2021 경향 신춘문예 소설 당선작 :
양지예, 나에게
https://m.khan.co.kr/article/202012311940005
오늘 아침에는 어제에 이은 과년도 경향 신춘문예 당선작 읽기입니다. 벌써 재작년이네요..
즐거운 하루들 되시기 바랍니다.
2023년 6월 14일 (수)
2020 경향 신춘문예 시 당선작 :
박지일, 세잔과 용석
https://m.khan.co.kr/article/20191231205501
좋은 아침입니다.
벌써 삼년전의 일입니다. 우연히 어떤 분의 소개로 새롭게 읽었던 시는 불과 삼년전의 신춘문예 당선작임을 뒤늦게 기억해냅니다. 기억의 속도보다도 훨씬 더 빠른 이 망각의 속도로는 과연 어디까지를 잊어낼까도 문득 궁금합니다.
벌써 수요일예요.. 하늘이 잠깐 흐렸었는데 금세 밝아진 걸 보니 장미꽃을 준비할 날씨같진 않아 보여요.
오늘도 의미있는 하루 보내시기 바랍니다.
2020 경향 신춘문예 소설 당선작 :
이유리, 빨간 열매
https://m.khan.co.kr/article/201912312100005
좋은 아침입니다.
요즘 저는 드라마 <어쩌다 마주친, 그대>를 계속 정주행하면서 지내는 편입니다. 벌써 14화까지 방송을 했는데 그 결말이 더더욱 궁금해지네요.. 개인적으로 이를 시대극처럼 먼 옛날 얘기로 쳐다보는 편인데, 음.. 적어도 IMF를 전후로 해 대한민국 사회가 많이 달라졌다는 생각을 자주 해오던 편이라서요.
낭만을 잃은 대신에 실리를 찾았고, 동지를 잃은 대신에 베프가 생겼고, 그리움을 잃는 자리엔 스마트폰이라는 물건이 등장했습니다.
어제 보내드렸던 소설도 채 못읽었는데, 또 한 편을 더 얹습니다. (경향은 차주초까지로 해 매듭을 짓고자 해서요.)
오늘도 즐거운 수요일 되시기 바랍니다.
2023년 6월 15일 (목)
2019 경향 신춘문예 시 당선작 :
성다영, 너무 작은 숫자
https://m.khan.co.kr/article/201812312103005
좋은 아침입니다.
어제는 하도 요란한 비가 오락가락해 마치 동남아의 아열대기후를 겪는 기분도 들더군요. 현 시대를 관통하는 두 키워드가 인공지능과 기후위기라면, 이 둘의 공통점은 인류의 ‘지속가능성’에 관한 것들이겠죠. (후쿠시마는 순전히 예외적 문제)
최근 약 5년 가량의 신춘문예를 되짚는 시리즈도 사실 제호보다는 심사자의 특징들을 더 닮아갈 문제라고도 보여져요. (미소한 주안점의 차이 정도 뿐? 뚜렷한 특징까진 갖지를 않고 있습니다.) 명멸해온 당선자들의 이력을 보면, 확실히 등단 자체보다도 “등단 이후의 퍼포먼스”가 훨씬 훨씬 더 중요한 법인 것 같습니다..
벌써 목요일이네요.. 이번 한주도 잘 지내셨겠죠?
슬슬 체력이 소진될 목요일인만큼 오늘 하루도 화이팅하시기 바랍니다.
2019 경향 신춘문예 소설 당선작 :
류시은, 나나
https://m.khan.co.kr/article/201812312107005
좋은 아침입니다.
보름 가까이 동안 단편 하나를 완성하지 못한 채 지지부진한 글쓰기네요.. 그러고 보니 도서관에서 빌린 책들도 아직 다 못읽었습니다. (직장인들의 일상은 늘 피폐합니다.)
오늘은 진도를 좀 팍팍 내봤으면 좋겠군요. 합평이라도 한번 받아봐야죠. ㅎㅎ
시절이 시절인만큼 어제는 시집 두권을 통째로 필사하였습니다. 황인찬의 시집 네권을 이로써 모조리 다 필사하는 동안에도 여전히 그한테서 느낌을 받는 경우가 드물던데요.. 제 고심거리 중 하나예요. (도대체 이게 뭐가 좋다는 건지? 하는 의구심 따위)
즐거운 하루 보내시기 바랍니다.
2023년 6월 16일 (금)
2018 경향 신춘문예 시 당선작 :
박정은, 크레바스에서
https://m.khan.co.kr/article/201712312045015
좋은 아침입니다.
일주일의 피로가 쌓여서인지 저도 조금 늦잠을 잤네요, 오늘로써 경향 신춘문예 과년도 당선작들을 되짚는 시간도 얼추 마무리합니다. (주말에 틈이 난다면 몇편을 더 올려놓겠고, 차주부턴 동아일보를 소개할게요.)
가장 최근에 발표된 각종 공모전 입상자들의 면면에선 뚜렷한 공통점을 발견하기 어렵습니다만, 시적 경향에선 눈에 띌 법한 특징들을 몇몇 갖는다고도 볼 수가 있겠죠.
- 산문시들이 워낙 강세인지 운율은 이제 거의 실종
- 알레고리 등을 도입한 환상문학류의 광범위한 대두
- 창작전문학원 중심의, 세부적인 면까지의 보편화 (이 부분은 저도 정확하게는 모르겠어요.. 비전공인 까닭)
- ‘시대’보다는 ‘일상’에 더더욱 천착한 ‘은둔형’ 고백 등등이 아닐까 합니다..
음.. 이들을 문학사적으로는 또 어떻게 정리해 담을 것인가도 현 문단의 가장 큰 숙제 중 하나가 되리라 봅니다. (어쩌면 “별다른 성취가 없었다”고 쓸 수도요.)
한주 잘 마무리하시기 바랍니다.
2018 경향 신춘문예 소설 당선작 :
지혜, 볼트
https://m.khan.co.kr/article/201712312051005
좋은 아침입니다.
벌써 다섯 편의 소설을 올려놓는 셈입니다. (시워방에는 시 부문을 올렸는데, 소설방 역시 다음주부턴 동아일보 신춘문예를 되짚는 시간을 갖겠습니다.)
오늘 저는 재택근무 예정이므로, 일과는 좀 일찍 시작하겠고 대신에 여유있게 보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유월의 두번째 주를 이렇게 마무리하며 주말을 맞는군요.
오늘도 즐겁고 알차게 잘들 보내시기 바랍니다.
2023년 6월 19일 (월)
2018 동아 신춘문예 시 당선작 :
변선우, 복도
https://www.donga.com/news/Culture/article/all/20180101/87972911/1
유월의 새로운 한주입니다.
이번 한주는 동아일보 역대 당선작들을 살펴봅니다. 순서는 지난 2018년부터 먼저 거슬러 올라가보도록 할게요. (주말까진 작년 신춘문예로 닿겠어요.)
"소재를 다층적 은유로 확장시킬 줄 아는 시적 사유"는 김혜순 시인과 조강석 교수가 심사평에서 밝힌 핵심적 기준으로, 다양한 시창작에도 좋은 지침이 될 것 같아 따로 인용해놓습니다.
개인적으로 물상보다는 서사와 진술을 더 선호해온 까닭에 제 스타일은 아니지만, 좋은 '참고용'이 될 것 같아요. (정확친 않지만, 한남대 출신의 중앙일간지 당선자를 저도 처음 보는 것 같은데 소감에 나온 손미 시인도 눈에 띕니다. 요즘 시인들의 역량은 후학들에도 경쟁적으로 드러나는 편이네요.)
오늘도 좋은 한주의 시작입니다. ;
복도
- 변선우
나는 기나긴 몸짓이다 흥건하게 엎질러져 있고 그렇담 액체인걸까 어딘가로 흐르고 있고 흐른다는 건 결국인 걸까 힘을 다해 펼쳐져 있다 그렇담 일기인 걸까 저 두 발은 두 눈을 써내려가는 걸까 드러낼 자신이 없고 드러낼 문장이 없다 나는 손이 있었다면 총을 쏘아보았을 것이다 꽝! 하는 소리와 살아나는 사람들, 나는 기뻐할 수 있을까 그렇담 사람인 걸까 질투는 씹어 삼키는 걸까 살아있는 건 나밖에 없다고 고래고래 소리 지르는 걸까 고래가 나를 건너간다 고래의 두 발은 내 아래에서 자유롭다 나의 이야기가 아니다 고래의 이야기는 시작도 안했으며 채식을 시작한 고래가 있다 저 끝에 과수원이 있다 고래는 풀밭에 매달려 나를 읽어내린다 나의 미래는 거기에 적혀있을까 나의 몸이 다시 시작되고 잘려지고 이어지는데 과일들은 입을 지우지 않는다 고래의 고향이 싱싱해지는 신호인 걸까 멀어지는 장면에서 검정이 튀어 오른다 내가 저걸 건너간다면… 복도의 이야기가 아니다 길을 사이에 두고 무수한 과일이 열리고 있다 그 안에 무수한 손잡이
2018 동아 신춘문예 소설 당선작 :
강석희, 우따
https://www.donga.com/news/Culture/article/all/20180101/87972974/1
아직은 꽤 이른 새벽입니다.
실은 어제 폐막된 <서울국제도서전> 소식에 마음에 좀 무겁던 주말이었습니다... 이제 또 가벼이 일어날 차례죠.
동아일보 신춘문예를 모처럼 제대로 들여다보는 시간예요. (한때는 가장 권위있는 신춘문예이기도 했는데, 요즘은 꼭 그렇진 않은 듯합니다. 가장 인기있는 중앙일보마저 폐지한 탓에 더더욱 머쓱해질 일입니다만)
소설은 시원시원히 잘 읽힙니다. 심사평 또한 무난합니다. 다만 옥의 티는... 하필 심사자가 주말을 온통 뒤집어놓은 그 분인데, 다 지난 주말이기에 더는 언급하지 않습니다.
오늘도 의미있는 하루 되십시오.
2023년 6월 20일 (화)
2019 동아 신춘문예 시 당선작 :
최인호, 캉캉
https://www.donga.com/news/Culture/article/all/20190101/93509056/1
김혜순, 조강석 콤비는 2020년까지 동아일보 신춘문예 심사를 맡았고 김행숙 시인과 작고하기 전의 최정례 시인은 강남대 출신의 한 제자를 이 해의 등단자로 함께 탄생시켰습니다. (수상소감도 챙겨보는 까닭은 이런 계보를 어렴풋이 파악할 수 있기 때문)
경쾌한 리듬의 활달한 문장은 항상 좋은 평가를 받아온 편이죠. 보기 드물게 운율과 시의 구조를 갖춘 단 한 편의 매력이 당락을 갈랐던 이 해의 심사평도 유념해 읽어둘만합니다.
연차 덕분으로 사흘을 쉰 다음날입니다. 이제 출근을 곧 준비해야죠. 날씨가 걱정인데, 곧 비가 내린다는 소식도 있어 예보를 잘 살펴보시는 게 좋겠군요.
오늘도 좋은 하루 되십시오.
2019 동아 신춘문예 소설 당선작 :
장희원, 폐차
https://www.donga.com/news/Culture/article/all/20190101/93509038/1
여전히 이른 아침,
당선작 '폐차'를 미리 읽어둔 후에 인사를 쓰기로 해 조금 늦어졌습니다. 두 형제가 왜 차에 치인 고라니를 끝까지 꺼내지 않았는가를 도무지 이해하긴 어렵지만 그들의 뇌리에 박힌 상실의 트라우마만큼은 가늠하기 힘든 공포였을 것임이 분명해 말은 아끼기로 합니다. (오정희, 성석제 콤비는 2020년까지 계속 심사를 맡았습니다.)
이번 한주의 첫 출근을 앞둔 터라 조바심도 좀 있겠고 무엇보다 아직 탈고를 미처 끝내지 못한 습작 한편을 어떻게든 마무리해 좀 더 초라하지 않게 꺼내놓을 수 있어야 할 텐데요... 당장의 가장 큰 숙제가 될 것 같습니다.
오늘도 좋은 하루 되시기 바랍니다.
2023년 6월 21일 (수)
2020 동아 신춘문예 시 당선작 :
김동균, 우유를 따르는 사람
https://www.donga.com/news/Culture/article/all/20200101/99035657/1
"본심에 올라온 작품들을 일별하고 가장 먼저 든 생각은 개성적인 목소리가 드물다는 것이었다. 동화적 상상력에 기대어 흥미로운 이야기를 만들어 놓았지만 매력적인 문장을 찾기 어려운 작품이 다수 있었다. 공들여 말들을 조직해 놓았지만 그 이음매만 불거지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쉽게 몇몇 기성 시인의 영향을 떠올릴 수 있는 작품들도 종종 눈에 띄었다." (심사평 중에)
2020 동아 신춘문예 소설 당선작 :
서장원, 해가 지기 전에
https://www.donga.com/news/Culture/article/all/20200101/99035751/1
"당선작인 ‘해가 지기 전에’는 작가 스스로가 소설의 흐름을 적절히 제어하면서 차분하고 치밀하게 써내려간 수작이다. 자식의 선택과 자식에 대한 믿음, 자랑스러움이 ‘문제가 많은 우리나라 부모’와 뒤엉켜 환부는 계속해 커진다. 그것을 적절히 처치할 방법이 없는 사람들이 해결을 미룬 채 작은 기쁨에 골몰하는 모습이 대비되며 이 시대의 서글픈 초상화를 보는 듯한 느낌을 성공적으로 연출해 냈다." (심사평 중에)
2023년 6월 22일 (목)
2021 동아 신춘문예 시 당선작 :
이근석, 여름의 돌
https://www.donga.com/news/Culture/article/all/20210101/104724744/1
"우선 드는 생각은 다양성이 아쉽다는 것이다. 질적으로 고르지만 단정한 묘사와 소소한 토로가 주를 이뤘다. 예년보다 표준형에 수렴되는 경향이 강해졌다는 것은 모험과 담론이 활성화되지 않는 시단의 풍경을 보여주는 듯해 슬쩍 미안해지기도 했다." (심사평 중에)
2021 동아 신춘문예 소설 당선작 :
이소정, 밸런스 게임
https://www.donga.com/news/Culture/article/all/20210101/104724713/1
"몇 개의 문장이 있다. ‘소설은 태도다.’ 책상 앞에 포스트잇으로 붙여둔 것이다. 그 옆에는 ‘소설은 인물의 깊이를 더하는 방식이다.’ 가 있다. 너무 낡고 오래된 문장은 자주 떨어진다. 그런 날은 내 접착력을 의심한다. 당선 전화를 받던 날은 문장이 모조리 뜯긴 날이다. 마치 다시 붙이라는 말처럼 들렸다. 지금, 이 순간에도 떨어지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사람들이 있다. 불안과 공포 속에서 하루에도 몇 번씩 떨어졌다 다시 일어나는 사람들의 자국을 오래 들여다볼 줄 아는, 단단한 접착면을 가진 소설을 쓰고 쓰겠다." (당선소감 중에)
2023년 6월 23일 (금)
2022 동아 신춘문예 시 당선작 :
채윤희, 경유지에서
https://www.donga.com/news/Culture/article/all/20220103/111059750/1
“최종심에 올라온 작품들은 대체로 무난했다. 달리 말하면 위험도 모험도 드물었다는 말이다. 안정적 기량이 우선인 것은 틀림없지만 개성적인 목소리가 많지 않았다는 점에서 이 균일함은 우리가 보낸 한 해의 격동과도 거리가 있어 보였다. 시가 삶의 불안을 고스란히 드러낼 필요는 없지만 그렇다고 해서 동시대의 삶의 환경과 동떨어진 기예를 겨루는 경연도 썩 유쾌한 것만은 아니다.” (심사평 중에)
정호승 시인다운 심사평입니다. 김혜순 시인과 정호승 시인의 간극도 딱 이만큼인 듯합니다.
주말예요. 어떤 분들은 결코 아니겠지만, 일반적인 대한민국 직장인들의 평균적 삶에선 그렇다는 뜻이고요. (너무 서운해하지들 않으셨으면 해서) 한주 잘 마무리하시고 벌써 저무는 유월의 주말도 뜻깊게 잘 준비하셨으면 합니다.
2022 동아 신춘문예 소설 당선작 :
김기태, 무겁고 높은
https://www.donga.com/news/Culture/article/all/20220103/111059738/1
“본심에 오른 소설을 통독하면서 느낀 것은 끝이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의 창궐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 삶의 어두운 풍경이 소설을 통해 그대로 드러나고 있다는 것이었다. 현실을 상징하고 은유하는 새로운 소재를 찾고 공유하려는 노력이 계속되고 있다는 데서 희망을 발견할 수 있었다. 소설은 감정과 경험의 미디어로서 새롭게 출현하는 작가들에 의한 진화가 계속되고 있다는 것을 새삼 느꼈다.” (심사평 중에)
벌써 또 주말입니다. 다들 건강하셨으면 좋겠어요…
2023년 6월 24일 (토)
2023 동아 신춘문예 시 당선작 :
권승섭, 묘목원
https://www.donga.com/news/Culture/article/all/20230102/117247622/1
"소재를 취하고 정서를 진솔하게 표현하는 것도 시의 중요한 줄기가 될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감각을 통한 변용과 깊은 사유의 맛이 결여된 감상은 넋두리와 소품에 그칠 뿐이다. 구성이 승했던 때에 작위가 문제였다면 지나치게 감상적인 진술은 절제와 엄밀함을 통해 독자에게 호소하는 시적 문장의 힘을 아쉬워하게 만든다. 다시 한번 감수성과 지성의 통합이라는, 현대시와 관련한 고전적인 경구를 떠올리며 본심에 올라온 작품들을 읽었음을 덧붙여 본다." (심사평 중에)
정호승 시인이 버티고 있는 동아일보 신춘문예는 사실 올해 이후부터가 더 관심을 갖게 만듭니다. 다음주에는 (원래는 가나다 순으로 하려 했는데, 고심 끝에) 조선일보 신춘문예를 훑어보기로 하겠습니다.
즐거운 주말 되시기 바랍니다.
2023 동아 신춘문예 소설 당선작 :
공현진, 녹
https://www.donga.com/news/Culture/article/all/20230102/117247549/1
"당선작인 ‘녹’은 쉽게 보기 힘든 문제작이다.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지금, 이곳’에서 가장 민감한 부분 가운데 하나인 다문화가정과 사회적 약자 문제를 다루고 있는 이 작품은 문학이 좁은 과녁을 적중시키는 정확한 문장과 적절한 단어 선택, 치밀한 서술에 의지하는 장르임을 환기시킬 만큼 세부가 잘 벼려져 있다. 아이를 잃은 엄마, 아이를 맡겼던 엄마가 각기 다른 층위에서 받는 고통을 통해 이 시대의 환부를 ‘있는 그대로’ 드러냄으로써 함께 살아가는 동시대인들에게 모순과 아픔을 극복할 방법을 함께 성찰케 하려 한다는 점도 높이 평가받을 만하다." (심사평 중에)
어떠셨을까요. 지난 한 주를 강타한 문제의 소설가가 심사를 맡았던 동아일보 신춘문예는 여기까지입니다.
편안한 주말 되시기 바랍니다.
(지난 주말에는 올해 경향신문 신춘문예 당선작을 생략해, 한 편씩 더 올려드릴게요.)
버터
- 박선민
추우면 뭉쳐집니다
펭귄일까요?
두 종류 온도만 있으면
버터는 만들 수 있습니다
뭉쳐지는 힘엔 추운 거푸집들이 있습니다
마치 온도들이 얼음으로 바뀌는 일과 흡사합니다
문을 닫은 건 오두막일까요?
마른나무에 불을 붙이면
그을린 자국과 연기로 분리됩니다
창문 틈새로 미끄러질 수도 있습니다
문을 꽉 걸어 잠그고 연기를 뭉쳐줍니다
고온에 흩어지는 것이 녹는점과 비슷합니다
초록색은 버터일까요?
버터는 원래 풀밭이었습니다
몇 번 꽃도 피워 본 경험이 있습니다
어떤 목적들은 집요하게도 색깔을 먹어 치웁니다
이빨에 파란 이끼가 낄 때까지
언덕과 평지와 비스듬한 초록을 먹어 치웁니다
당나귀일까요?
홀 핀이 물결을 반으로 가릅니다
개명 후 국적을 바꾼 귤이 있습니다
노새는 두 마리입니다
한쪽의 양이 너무 많거나
갑자기 차가운 밖으로 밀려나면
두 개의 뿔이 돋아납니다
그래서 당나귀의 울음은 무게를 느끼지 못합니다
저울의 일종일까요?
버터는 뜨거운 프라이팬의 바닥에서 녹습니다
녹기 전에는 잠시
사각의 모양이었습니다
다방면을 갖고 있기도 합니다만
책상과 주로 이별에 쓰이는 인사를 닮기도 했습니다
안녕일까요?
아마도 그럴 것입니다
안녕의 모양은 제각각이라
한평생 뒤집어도 맞는 짝을 연속해 찾기란 어렵습니다
자신과 다른 모양을 가진 인사에
분명 트집을 잡고 있을 것입니다
부서졌군, 다른 말로 교체해달라는 뜻입니다
삐뚤어졌군, 새 말로 달라는 뜻이고요
밀항선을 타고
전 세계로 스며들었습니다
버터 한 덩어리에는 항로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난파된 배에서 떨어져 부유하다가 유빙처럼 발견된 버터도 있습니다
학자들은 이 유빙이 가로지른 국경선을 분석합니다
그리고 마침내 오랜 시간에 걸쳐
버터가 녹는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창문일까요? 아마도 그럴 것입니다
버터가 사각인 이유는
창문에 넣고 굳혔기 때문입니다
악천후를 뚫고 달리는 창문은
격렬한 속도입니다
2023 경향 신춘문예 당선작 :
시 - 박선민, 버터
https://m.khan.co.kr/article/202301012155005#c2b
2023 경향 신춘문예 소설 당선작 :
신보라, 휠얼라이먼트
[2023 경향 신춘문예 당선작] 휠얼라이먼트 - 경향신문 (khan.co.kr)
2023년 6월 26일 (월)
2018 조선 신춘문예 시 당선작 :
이린아, 돌의 문서
https://www.chosun.com/site/data/html_dir/2017/12/31/2017123100682.html
새로운 한주입니다.이번주에는 조선일보 신춘문예의 역대 당선작들을 살펴보는 시간이죠. 맨 먼저는 역시 5년전인 2018년으로 거슬러 올라가겠습니다. 현재 동아일보 심사위원인 정호승 시인이 당시에는 조선일보 심사를 맡았었군요.
당선소감을 읽다보면 가끔 합평 때의 논란들도 기억나곤 하는데, 짤막히만 인용해보겠습니다. “한때 스스로와 타자 사이를 화해시키려 애썼음을 고백합니다. 그 불화를 다독이다 시를 알게 되었다고 고백합니다. 그리고 시를 보이고 들었던 악평들에 감사합니다.”
오늘도 좋은 하루 되십시오.
2018 조선 신춘문예 소설 당선작 :
명학수, 폴이라 불리는 명준
https://www.chosun.com/site/data/html_dir/2017/12/31/2017123100707.html
중앙일간지 신춘문예 당선작들을 계속 잇는 시리즈의 금주는 조선일보 신춘문예를 되짚겠습니다.
1966년생으로 이 당시만 해도 이미 53세에 이르던 한 학원 수학강사의 놀랄만한 당선소식은 많은 시사점들을 제공합니다.
우연찮게 주말의 도서관에서 빌린 성석제 소설가의 단편집을 괜시리 한번 더 쳐다볼 계기가 되기도 하는군요.
시에 비해선 다소 분량이 많고 따로 아카이브 공간은 없지만 모쪼록 포스팅만이라도 유용한 참고들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항상 건필하시기 바랍니다.
2023년 6월 27일 (화)
2019 조선 신춘문예 시 당선작 :
문혜연, 당신의 당신
https://www.chosun.com/site/data/html_dir/2018/12/31/2018123101235.html
"내적 운율과 침묵으로 함축되는 시의 본질적 부분이 신인들의 시에서 도외시되는 까닭은 산문성에 기울어진 한국 시단의 유행을 비판 없이 쉽게 따른 탓이다. 산문 시대일수록 시인이라면 시의 고유한 본질을 지켜나가야 하나 그렇지 못하다."
가끔 심사평들이 메가트렌드에 역행하는 경우를 종종 봅니다. 나름대로로는 선의에 찬 선배들의 충고였을 텐데, 학교들에선 오히려 정반대로 향해온 탓이겠죠...
밤새 내리던 비가 잠시 멈추었습니다.
2019 조선 신춘문예 소설 당선작 :
서동욱, 당장 필요한
https://www.chosun.com/site/data/html_dir/2018/12/31/2018123101284.html
"아쉬운 작품들이 많았다. 완결된 구조를 이루지 못하거나 핵심을 놓친 작품들, 그런가 하면 너무 쉽게 이야기하는 경향도 눈에 띄었다. 실험적이라고 할 만한 작품들은 깊은 인상을 남기는 대신 이해하기 어려운 혼란을 남겼다. 서툴지만 참신하다거나, 미완이지만 패기가 있어 보인다고 말할 수 있는 작품이 드물었다." (심사평 중에)
33살의 한 직장인에게 영광의 칭호가 수여된 그해 신춘문예도 김인숙, 최수철 두 작가의 고심이 역력합니다. 선자들의 시각은 '네임밸류'를 고려치 않고 대체로 균일한 편입니다. 들쑥날쑥한 것은 오히려 심사자가 아닌 응모작들이었나 봅니다.
[베껴쓰고 다시읽기] ‘분노와 슬픔’을 넘어서는 ‘구도와 헌신’ (이제니, 발견되는 춤으로부터) :
발견되는 춤으로부터
- 이제니
멀리 성당의 첨탑에서 저녁 미사를 알리는 종소리 들려온다. 열린 창 너머로 어스름 저녁 빛 새어 들어오고, 마룻바닥 위로 어른거리는 빛, 움직이면서 원래의 형상을 벗어나려는 빛이 있다. 어디로든 갈 수 있다고 속삭이는 옛날의 빛이 있다. 사제는 한 그릇의 간소한 식사를 마치고 자리에서 일어난다. 가장 낮은 자리로 물러나 무릎을 꿇고 기도를 올린다. 화면은 다시 정지된다. 일평생 봉쇄 수도원의 좁고 어두운 방에 스스로를 유폐한 채 기도에만 헌신하는 삶, 너는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는 그 기도가 누구를 도울 수 있는지 묻는다. 화면은 다시 이어진다. 너는 책상으로 가 앉는다. 맞은편에는 비어 있는 의지, 비어 있음으로 가득한 의자, 책상 위에는 먼 나라에서 보내온 엽서가 놓여 있다. 엽서는 북반구 소도시의 풍광 사진을 담은 것으로 단단한 얼음을 도려낸 듯한 작은 호수가 펼쳐져 있다. 한때의 죽음과도 같은..... 호숫가에는 걷거나 뛰는 사람들이 어딘가로 가려는 동시에 어딘가에 멈추어 서 있다. 멈추어 있는 패로 움직이고 있는 자전거 바퀴의 빛살이 아득히 눈부시다. 언젠가 너를 눈멀게 했던 호수의 빛, 한 발, 한 발 천천히 걸어 들어가 남몰래 몸을 던지려 했던 깊고 쓸쓸한 물결의, 엽서 곁에는 작고 검은 돌이 몇 개 놓여 있다. 검은 돌.... 뚝뚝 눈물을 흘리면서 울고 있는 작은 돌, 돌의 표면 위로 무언가 흘러가고.... 돌연 가슴을 두드리는 슬픔이 지나가고...... 돌은 다시 발견된다. 돌은 그제야 제자리에 놓인다. 발견되는 돌 이전에는 발생한 눈이 있었고, 눈. 바라보는 눈. 바라보면서 알아차리는 눈. 알아차리면서 흘러가는 눈. 흘러가면서 머무르는 눈. 머무르면서 지워지는 눈. 지워지면서 다시 되새기는 눈. 너는 엽서의 뒷장을 펼쳐 읽는다. 끝없는 설원의 가장자리로부터 한 사람이 베일 듯 걸어 나온다. 얼음의 꽃으로부터 향기를 간직하려던 사람이여, 닿을 수 없는 국경 너머를 향해 뿔피리를 불던 먼 생의 사람이여. 너는 이미 죽은 스승의 전생의 어머니이다. 몇 겁의 세월을 지나 이름 없는 여인이 낳은 구슬픈 눈을 가진 어린 린포체이다. 순간...... 마룻바닥 위로 한 번도 가보지 못한 곳의 겪지 못한 형국을 한눈에 다 바라볼 수 있다는 기이한 착각 속에 빠져든 채로.... 맞은편은 여전히 비어 있다. 비어 있음으로 가득히 비어 있다. 의자에 앉은 너는 끝없는 설원 위를 끝없이 걷는다. 고행이라도 하듯이, 앞서 걸어가는 네 자신의 옷자락을 간신히 붙잡고 가듯이, 정지된 화면은 다시 재생된다. 기도를 마친 사제는 책상으로 옮겨 앉아 먼 나라의 슬프고 아픈 사람에게 편지를 쓴다. 빛이 먼지를 지우고 있습니다. 밤이 어둡을 돕고 있습니다. 사이..... 푹푹 눈밭에 빠지는 발소리가 누군가의 울음소리처럼 들려왔기에. 너는 의자에 앉은 채로 걸음을 멈춘다. 눈을 들어 옆을 바라보았을 때, 어느새 작고 어린 겨울 짐승이 네 곁을 따라 걷고 있었고 너와 어린 짐승은 각자의 생각에 잠겨 각자의 길을 걷고 또 걸었다. 그것은 언젠가 전해 들은 믿음에 관한 이야기와도 같아서. 네가 바라보는 거울 속에서 너는 무엇이든 될 수 있고 무엇이든 볼 수 있다는 찰나의 깨달음에 관한 이야기로서, 너는 작고 검은 돌 위에서 두 번 다시 볼 수 없는 한 얼굴을 발견한다. 어슴푸레한 빛 속에서 무수히 떠오르는 몸짓들. 빛과 어둠의 경계 위에서 흩날리는 입자와 입자 사이의 흐느낌 속에서, 잊고 있었던 기억처럼 먼지의 춤이 발생한다. 춤이 발생하기 이전에는 하염없이 내리는 누이 있었고, 하염없이 내리는 눈 이전에는 하염없이 덮이는 땅이 있었고, 하염없이 덮이는 땅 이전에는 하염없이 자기 자신으로 돌아가는 몸이 있었고...... 너는 멈추어 있는 채로 걸어가는 그 모든 사물의 표정과 목소리를 너 자신의 얼굴인 듯 읽어 내려간다. 사이..... 먼 나라의 사제는 온몸으로 세계의 울음을 듣는 사람이 되어 이 세상 속으로 한 걸음 더 걸어 들어가고 있었고, 어느덧 너는 더는 나아갈 수 없는 설원의 모서리에 도착해 있었으므로 이제 그만 작별 인사를 하려고 고개를 돌렸을 때 함께 걷던 작고 어린 겨울 짐승은 어느 곁에 사라지고 없었고 오직 너 혼자만이, 너 자신과 함께. 둘인 동시에 하나인 채로. 하나인 동시에 둘인 채로, 먼 길을 오래오래 홀로 함께 걸어가고 있었으므로 걷고 걸어도 가닿지 못하는 설원의 빛 너머로부터. 누군가 멀리서 내내 당신을 돕고 있습니다.. 춥고 어두운 골짜기에서 들려오듯 문득 서럽고 드넓게 울려오는 네 마음속 한목소리가 있어. 너는 먼 곳의 얼굴 없는 사제를 네 영혼의 친척으로 여기는 것이다.
* 현대문학 8월 (현대문학, 2021)
춤을 춘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분노와 슬픔을 한데 모아 발끝과 손끝에서 눈에 보이지 않는 리듬을 타고 가느라한 색실 같은 게 흘러나오면 그 실오라기를 부여쥔 채 하염없이 떠도는 공간, 그 속에서 찰나의 시간을 새겨넣는 일이라고 배웠습니다.
춤을 노래한다는 건 또 무얼까요.
분노와 슬픔이 형형색색으로 수놓기 시작하는 그 시간을 영속적인 것으로 만드는, 시간이 흘러서 더는 보지 못할 일들에 관한 추억을 미리 저장해놓는 일 따위.
미리 써놓는다는 일은 때때로 시덥지 못한 일이기 십상인 노릇입니다.
춤을 처음 발견할 무렵, 시인은 어쩌면 ‘분노와 슬픔’보다도 ‘구도와 헌신’을 더 먼저 깨달았는지도 모릅니다.
스스로를 유폐한 기도, 설원 위를 걷는 짐슴의 그것처럼 울음을 듣는 사람이 되어 어린 짐승을 돌보고 편지를 쓰는 일로 스스로를 규정하곤 합니다.
시를 쓴다는 것은 가끔씩 끓어오르는 분노를, 심연을 알 수 없을 슬픔을 빚어 꺼내는 눈물과도 같을 일이라고 여겼던 적이 있었습니다. 가끔은 그것들을 부여잡고 또 다독이면서 거리를 둔 채 그저 밋밋하게 담담하게 말할 줄 아는 게 또 시인의 태도라고도 여겼던 시절이 있습니다.
‘분노와 슬픔’을 넘어서는 ‘구도와 헌신’.
시인이 춤에서 처음 발견내해고자 한 그 무언가가 사제를 친척처럼 여기는 영혼으로, 멀리서 누군가를 돕는 존재로도 각인되려면 또 어떤 수행을 묵묵히 더해야 할 것인가를 묻는 것처럼도 들립니다.
이 시를 읽는 마음가짐이 이렇습니다.
2023년 6월 28일 (수)
2020 조선 신춘문예 시 당선작 :
고명재, 바이킹
https://www.chosun.com/site/data/html_dir/2019/12/31/2019123101348.html
“시를 쓴다는 것은 인간에 대한 이해와 성찰의 한 단면을 언어를 통해 표현하고 그것을 독자와 함께 나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이번에 본심 심사 대상이 된 시의 경우, 소통하기 어려운 시가 많았다. 인간의 삶은 존재하지 않고 언어만 존재해서 그 언어의 유기적 의미를 파악하기 어려웠다.
삶의 내용이 내포되지 않은 시의 언어는 그 의미를 잃는다. 의미를 잃고 형식만 남음으로써 소통이 불가능한 시들이 많다는 것은 분명 한국 시의 위기다.” (심사평 중에)
격정의 유월도 이렇듯 저물고 있습니다. 창비 신인문학상 응모자들한텐 정기구독권이라는 소박한 선물이 도착했다는 전갈입니다. 이제 수요일인만큼 한창 치열한 주중을 보내고들 계시겠죠… 차분히 시작해보는 새벽입니다.
2020 조선 신춘문예 소설 당선작 :
김수영, 종이집
https://www.chosun.com/site/data/html_dir/2019/12/31/2019123101415.html
“소설 속에서는 실제의 집을 짓고 팔고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와 종이로 집을 짓고 팔고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주인공의 섬세한 의식 속에서 서로 맞물린다.
그리하여 자신의 정체성과 자신의 '집'을 가지지 못한 채 살아가는 주인공은 '종이로 집을 짓는 행위'를 이를테면 치유의 상징으로 끌어올려서 자신을 반성하고 세상과 대면한다.
요컨대,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은, 면밀히 들여다보면, 어디든 의미로 가득 차 있고, 그 각각의 의미는 구체적인 상징을 통해 가시적으로 드러나며, 따라서 소설 혹은 예술은 그 상징의 가치를 우리에게 일깨워 삶의 의미를 되살려내는 것임을, 우리는 이 소설을 통해 다시 확인할 수 있다.” (심사평 중에)
[베껴쓰고 다시읽기] 가장 현대적인, 가장 가까운 정서로서의 ‘서정’ (박준, 입속에서 넘어지는 하루) :
입속에서 넘어지는 하루
길눈이 어두운 겨울이나
사람을 잃은 사람이
며칠을 머물다 떠나는 길
떠난 그 자리로
가난한 밤이 숨어드는 길
시래기처럼 마냥 늘어진 길
바람이 손을 털고 불어드는 길
사람의 이름으로
지어지지 못하는 글자들을
내가 오래 생각해보는 길
골목은
살아서도 죽어서도
그림자로 남고
좁고 긴 골목의 끝을
바라보는 일만으로도
하루가 다 지새워지는 길
달이 크고
밝은 날이면
별들도 잠시 내려와
인가(人家)의
불빛 앞에서
서성거리다가 가는 길
다 헐어버린 내 입속처럼
당신이 자주 넘어져 있는 길
*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 (문학동네, 2012)
현대시들이 갖는 특징들 중 하나는 한 두 행마다 연갈이를 하고 있다는 점인데, 이는 박준의 시집 뿐만이 아닌 황인찬의 그것들 속에도 자주 담겨 있습니다. (물론 이제니의 시집들은 반대로 한 문장을 시로 쓰는 경우도 꽤 많지만요.)
크게 보면, 독자들이 행간을 읽으며 스스로 이미지를 지어낼 줄 알게 된다는 게 가장 큰 메리트요 반대로 무성의한 행갈이로 비추어질 수도 있어 오히려 독해에 방해가 될 경우도 적잖습니다.
여린 듯하면서도 매우 견고한 그의 시어들은 차분히 응축된 형상화에 집중하는 편입니다. 그토록 오랜 세월을 갈고 닦은 우리의 시편들이 미처 찾아내지 못한 표현들을 눈부시게 구사하는 장면은 박준의 시들이 갖는 가장 큰 미덕이지 않을까 합니다.
“입속에서 넘어지는 하루”도 그렇겠지만 “가난한 밤이 숨어”들고 “시래기마냥 늘어진” 듯하면서도 “바람이 손을 털고 불어드는” 길은 다양한 변주 속에서 제 하나의 심상을 갖게 만듭니다. 그건 “오래 생각해보는” 일이기도 하며, “하루가 다 지새워지는” 일이기도 합니다. 때로는 “서성거리다가 가는” 일이며, 또 “당신이 자주 넘어져 있는” 일들은 모두 사랑, 그리움, 흔적, 연민 같은 단어들을 저절로 떠오르게 만들죠… 직접 그것들을 단 한 차례도 꺼내지 않습니다만, 저절로 부르게 되는 이 정서를 어쩌면 ‘서정’이라고 부르는 게 맞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21세기의 가파른 ‘미래파’ 열풍 속에서도 꿋꿋하게 그가 지켜온 이 ‘서정’의 버팀목은 무엇일까를 한참 생각해보는 아침입니다.
2023년 6월 29일 (목)
2021 조선 신춘문예 시 당선작 :
강우근, 단순하지 않은 마음
https://www.chosun.com/culture-life/2021/01/01/KVI54BP2ERCKXEWFPVYCHYUVFI/
“시는 한 번도 가보지 않은 영토를 가려 한다. 한 편의 시는 매번 새로운 길을 가려 한다. 그 길에 앞장 설 신예에게 기대하는 것은 모험의 불꽃일 것이다... 특히 전 지구적 재앙의 영향인지 고립된 현실에 대한 암중모색 속에서도 희망 혹은 미래에 대한 사유가 눈에 띄었다.” (심사평 중에)
드디어 문태준 시인이 등장했습니다.
2021년부터 조선일보 신춘문예는 문태준, 정끝별 두 명의 시인이 새롭게 심사를 맡게 됩니다. (정호승 시인은 이듬해부터 동아일보 신춘문예로 이동해 심사를 계속 맡았습니다.)
벌써 목요일입니다. 이틀밖에 남지 않은 6월입니다. 날씨가 너무 더운데, 건강에도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P.S. 우여곡절 때문인지 이듬해엔 이문재 시인, 또 올해는 장석주 시인이 심사를 맡게 됨도 미리 알려드립니다.
2021 조선 신춘문예 소설 당선작 :
윤치규, 일인칭 컷
https://www.chosun.com/culture-life/2021/01/01/QSZ6OISPRRCITHQ2UAJS4SYGMQ/
"당선작으로 결정한 ‘일인칭 컷’은 한정된 공간과 시간을 활용할 줄 아는 솜씨가 돋보였다. 희주라는 인물의 훼손당한 어떤 감정의 컷들을 보여주려고 시도한 점이나 그것을 내가 빗속에서 키가 큰 팜나무 숲을 올려다보는 그녀의 뒷모습을 지켜보는 장면으로 배치한 결말 또한. 그럼에도 불구하고 희주에게 팜나무란 무엇인지, 마치 울고 있는 듯 팜나무를 올려다보는 희주를 지켜보는 나에게 그 컷은 “삼인칭 피사체에 불과”했던 그 이전과 어떤 변화를 느끼게 하는지 모호하다는 점들이 못내 마음에 남았다." (심사평 중에)
[베껴쓰고 다시읽기] 그대 움츠려 앉은 구석에서 눈물이 빛날 때 (이병률, 슬픔이라는 구석) :
슬픔이라는 구석
쓰나미가 모든 것을 휩쓸고 지나간 마을에
빈 공중전화부스 한 대를 설치해두었다
사람들은 그곳에 들어가 통하지도 않는 전화기를 들고
세상에는 없는 사람에게 자기 슬픔을 말한다는데
남쪽에 살고 싶다는 생각만으로 휴전선을 넘어
남하한 한 소녀는 줄곧 직진해서 걸었는데
촘촘하게 지뢰가 묻힌 밭을 걸어오면서
어떻게 단 하나의 지뢰도 밟지 않았다는 것인지
가슴께가 다 뻐근해지는 이 일을
슬프지 않다고 말할 수 있겠나
색맹으로 스무 해를 살아온 청년에게
보정 안경을 씌워주자 몇 번 어깨를 으쓱해 보이더니
안경 안으로 뚝뚝 눈물을 흘렸다
보이는 모든 것들이 너무 벅차서라니
이 간절한 슬픔은 뭐라 할 수 있겠나
스무 줄의 문장으로는
영 모자랐던 몇 번의 내 전생
이 생에서는 실컷 슬픔을 상대하고
단 한 줄로 요약해보자 싶어 시인이 되었건만
상대는커녕 밀려드는 것을 막지 못해
매번 당하고 마는 슬픔들은
무슨 재주로 어떻게 요약할 수 있을까
슬픔이 오늘 만나자고 한다
* 이병률, 이별이 오늘 만나자고 한다 (문학동네, 2020)
목요일 아침을 여는 시로 적절한가는 잘 모르겠지만, 또 하나의 서정시를 발견할 수 있다는 건 그래도 괜찮은 편에 속한다고 생각합니다.
몇몇 익숙한 이름들이 있었습니다. 울음이 타는 강, 비가, 사평역에서, 같은 제목들을 갖는 시들을 보면서 한 시절을 달래놓곤 했던 기억이 납니다. 슬픔의 무게는 시절들마다 제각각이어서 때로는 빛나고 또 때로는 끈적끈적한 질감의 포즈를 취하기도 합니다. 그 슬픔의 "구석"을 내건 사소함들이 시인의 현명한 선택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박용래의 그것도, 박재삼의 그것도, 또 최하림의 그것과 곽재구의 그것들도 아닌 조금은 더 여린 마음과 사소한 감정 같은 걸 일컫기 위함인지도 모를 일입니다.
TV에 처음 나온 박노해 시인이 직접 낭송하던 '너의 하늘을 보아'를 들었던 때도 문득 기억이 납니다. 어쩌면 지난 시대는 절망과 슬픔마저 온통 "시대"라는 감옥 속에서 지내야만 했다면, 이제 비로소 그 자유로운 몸의 "구석"을 찬찬히 들여다볼 시대가 될 수 있었음도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편입니다. 그 시절을 온몸으로 관통해온 시인의 이름들도 꽤 기억하는 편이고요.
이병률 시인을 처음 본 건 지난 2010년께의 어느 언저리였던 것 같은데, 꽤 익숙해진 신춘문예도 문지나 창비의 데뷔시집들도 아닌 트위터였던 것 같습니다. (요즘으로 치면 마치 인스타그램 같은 걸로 생각되기도 하는데)
국내 포털 서비스들이 통제를 받기 시작하면서 부쩍 대두된 당시의 해외 서비스들이 어느덧 제법 익숙한 일상이 된 채 아무렇지 않게들 이용하는 걸 보면 참으로 격세지감을 느낄만도 한 법이겠죠.
몇구절에 불과한 짤막한 문장들로도 위안을 얻던 시대도 있었고 지금은 아예 더 큰 '유행'도 됐습니다. 지난 그 시절을 함께 버텨주었다는 것만으로도 시인한테 고마움을 표해놓겠습니다.
2023년 6월 30일 (금)
2022 조선 신춘문예 시 당선작 :
고선경, 럭키슈퍼
https://www.chosun.com/culture-life/culture_general/2022/01/01/5BXLDN4Z4NDB7GHV57LZOMYHTQ/
"최근 시의 파장 안에 있으면서도 지금-여기의 사회 현실과 청춘의 당사자성이 감지된다는 미덕이 있었다. (중략) 퉁치면서 눙치고, 관(貫)하면서 통(通)하는 ‘행운’의 의미를 농담과 엮어내는 시적 패기를 높이 평가했다." (심사평 중에)
2023년의 상반기를 마감하는 날입니다. 이문재 시인의 심사평 중 '패기'라는 낱말이 나오는군요... 흔히들 '객기'와 혼동하지만 (나 잘 쓴다, 트렌드에 부합할 줄 안다 등) 적어도 평생 글을 쓰려면 갖추어야 할 첫번째 미덕 (등단보다 출간이, 삐까번쩍함보다 지고지순함이 더 중요한) 같은 게 아닐까 합니다. 문학이, 현대시가, 신춘문예가 바라는 지향점이 그렇다고 늘 생각합니다.
오늘도 좋은 하루 되시기 바랍니다.
2022 조선 신춘문예 소설 당선작 :
임현석, 무료나눔 대화법
https://www.chosun.com/culture-life/culture_general/2022/01/01/WJEP23Y2WJEH7KOFTQAB5FIUQI/
"이 응모작은 단편소설이 지녀야 할 미덕들을 거의 다 갖추었다. 필요한 이야기, 사건이 벌어지는 개연성, 인물의 감정과 행동에 대한 공감, 타인들이었던 서로에게 일어난 변화들. 그리고 유머까지. 날렵하고 영리하며 군더더기 없는 작품이다. 당선자가 소설을 오랫동안 써오고 좋아하는 사람이겠구나 하는 짐작이 틀리지 않기 바란다. 예의를 갖춘 어떤 호의(好意)들은 마음을 열어도 좋을 용기를 내게 하고 그렇게 인물들은 조심스럽게 서로 자리를 내어주기 시작한다. “가능하세요? 가능합니다.” 무릇 ‘무료 나눔의 대화’는 이런 것이며 이제 우리 시대의 이 귀한 호의를 독자에게로 스며들어 가게 하는 작품이다." (심사평 중에)
[베껴쓰고 다시읽기] 소멸을 통해 소외를 이야기하려는 형상화의 달인 (박형준, 산책로 벤치에 앉아 있는 노인들) :
산책로 벤치에 앉아 있는 노인들
강물을 바라보며
벤치에 앉아서 시간을 짰다 풀었다 하는 노인들
바다만 파도가 있는 게 아니어서
강물도 밀려왔다 밀려가며
강변에 수심 많은 모래톱을 만들고
거기 새들이 발자국을 찍으며 꼼짝 않고
물살을 쳐다본다
햇빛이 물살마다 어른거려
강물에도 주름살이 생기고
거기 비쳐나는 물빛이
노인들의 주름 팬 이마에 스민다
그래, 그들의 이마에는
주름살마다 빛이 배어 있고
아침부터 저녁까지 새들은 꼼짝 않고
물살 속 빛을 응시하다가 일순간 부리로 쪼아 먹는다
산책로에 드문드문 놓인 벤치마다 앉아 있는
노인들은 서로에게 무관심하다
강변의 모래톱이나 물속 삐죽 솟은 돌 위에
우아하게 한 발로 서 있는
물새들이 서로를 바라보지 않듯,
자신만의 세계에 속한다는 표시로
이마에 섬을 만드는 노인들의 조용한 노동
산책로의 벤치에 앉아 그들은
물레로 강물 소리를 감아올리며
생각의 실을 잣는다
강변에 쌓인 모래톱이 밀려온 물살에 쓸리며
새들의 발자국을 지우는 황혼 무렵
막 고치 속에서 기어나온 듯
환한 주름 하나 그림자 하나
* 박형준, 줄무늬를 슬퍼하는 기린처럼 (창비, 2020)
벌써 등단을 했던 1991년이 이젠 삼십 년도 더 지난 옛날 이야기가 된 한 시인이 있습니다.
등단 33년차, 박형준 시인이 그동안 내놓은 시집들도 이젠 여럿입니다만 단연 돋보였던 작품들 중 하나인 <나는 이제 소멸에 대해서 이야기하련다>를 대신하여 오늘 꺼내 읽는 시는 지난 2020년에 출간된 창비의 "줄무늬를 슬퍼하는 기린처럼" 중에서 고른 한 편입니다.
자살률 1위, 노인빈곤율 1위라는 불명예스런 타이틀을 갖고 있는 나라에서 평범한 노년의 삶이 겪어야 하는 굴곡들처럼 험상궂고도 척박한 운명인 게 또 있을까 하는 걱정과 우려 따윈 안중에도 없이 실제로 주변에서 겪는 피폐한 일상들이 더 먼저 떠오를 법한 작품입니다. "산책로에 놓인 벤치마다 앉아 있는" 운명들은 그 가혹함에서 결코 자유롭지 못한 처연함을 갖습니다.
워낙 형용의 측면에서는 발군의 기량을 보여온 시인인만큼 "시간을 짰다 풀었다" 하며 "이마에 섬을 만드는" 노인들의 조용한 노동을 앞세우는 바람에 저절로 "강물 소리를 감아올리"는 물레로 짠 "생각의 실"을 함께 한 올씩 벗겨내보는 순간들을 함께 경험합니다.
"새들의 발자국을 지우는 황혼 무렵"에 이르는 노인들의 삶에도 이토록 아름다운 순간들이 있었을까 하는 감탄의 지경에까지 이르게 되면, 비로소 박형준이라는 이름이 갖고 있던 그 제법 오래된 무게감 역시 함께 실감하게 마련인 법일까요.
그동안 시인의 말들도 퍽 궁금해왔기에,
역시 2011년의 한 인터뷰에서 시인이 했던 말들을 다시 또 읽어볼만한 시간입니다. (인용) ;
"젊었을 때는 누구나 위대한 시인이 되고 싶죠. 자기가 위대하다고 생각하고요. 그런데 아버지를 통해 그런 생각이 바뀌었어요. 크지 않은 농사였지만 아버지는 작은 논밭을 아침부터 저녁까지 성실하게 가꿨어요. 나 역시 내 시의 영역이 크다, 적다 염두에 두면 시 쓰기에 자괴감도 생기고 좌절도 들 수 있다고 생각해요. 작은 것이라도 나에게 아직 뭔가 쓸 수 있는 게 있다. 그것으로 아버지처럼 성실하게 글 농사를 지어보면 내가 스스로 부끄럽지 않겠구나 생각했어요... 저는 시를 숙제하듯 꾸준히 써온 것 같아요. 특별하게 시가 찬란히 좋았던 적도 없었던 것 같고, 그렇다고 아주 박토는 아니었던 것 같고. 시를 써나가면 써나갈수록 천부적인 시인보다는 그냥 노력형이나 자기한테 주어진 걸 그냥 해나가는 시인이구나 싶어요... 서울 예전에 입학했을 때 오규원, 최하림 선생님이 계셨어요. 입학했을 땐 제가 시를 되게 잘 쓰는 줄 알았어요. (웃음) 선생님께 지도받고, 옆에서 그분들 시 세계를 엿보면서, 어떤 태도 같은 걸 배운 것 같아요. 항상 사물을 함부로 대하지 말라고 가르쳐 주셨거든요... 시적 자아가 생기게 된 건, 도시에서 소외감을 느끼기 시작하면서부터 아니었을까? 그 소외를 나름대로 극복하려다 보니, 주변에 나처럼 소외 받은 것들에게 관심이 많아졌고요. 어떤 일이 생기면 곰곰이 되씹어보는 습관이 생겼어요. 사춘기 무렵에 겪은 일이라 더 그랬겠죠. 학교에서 돌아오면, 캄캄한 집에서 책을 읽던 기억도 많이 나고요... 특별하거나 특이한 소재보다는 스쳐 지나가는 것들이 시가 돼요. 예를 들어, 어느 대학에서 강의하려고 지방으로 가는 길에 잠깐 스쳐 지나가는 동네를 본다든지, 시골집에 들렀는데 아버지 어머니는 안 계시고, 우물가 빨래통에 부모님의 옷가지만 걸려 있다든지 그런 풍경들이 마음에 닿아요. 사소한 것들이 무의식적으로 마음속에서 올라와 시가 되는 거죠... 저는 특별히 감수성이 탁월한 아이도 아니었어요. 저 말고도 다른 사람들에게도 있을 텐데. 다만, 어떤 사물이나 풍경들이 나를 통해서 말하고 싶어 하는 게 있지 않았을까 싶고요. 그런 걸 의식하고 좋아하게 되면 내 안에서 조금씩 익어가거든요. 바깥으로 꺼내려면, 열심히 노력해야 해요. 새끼 새가 알을 깨고 나오려고 할 때 어미 새가 밖에서 쪼아주잖아요. 사실 누구나 다 자기 나름의 특별한 것을 안에 갖고 있고요. 모든 사람이 다 시인입니다. 다만 그걸 의식하지 못하고, 키워내지 못하고, 끊임없이 꺼내기 위해 쪼아주지 않을 뿐이죠... 유사한 상태를 끊임없이 경험해야 해요. 책도 많이 보고요. 저는 시를 쓸 때, 저와 유사한 시를 쓴 탁월한 시인들의 시도 많이 봐요. 남의 시를 조금 모방하더라도, 그 안에 조금이라도 진실한 게 있다면, 비슷하다 싶으면서도 새로 쓴 사람의 이야기라고 보거든요... 그분이 훨씬 위대한 길을 갔다고 보고, 나는 작은 샛길 정도라도 해봐요. 그 샛길을 잘 가기 위해 위대한 시인들이 자기 길을 어떻게 통과해나갔는지 보는 것은 중요해요. 샛길이라고 해서 누구나 쉽게 갈 수 있는 건 아니니까. 유용한 건 아무리 작은 길에도 있는 법이니까요... 표현하고 싶은 게 있으면 밤을 새워서라도 표현될 때까지 붙잡고 늘어져 보고요. 햇빛을 보고 기뻤다면, 그 햇볕이 어떻게 나한테 기쁨을 줬는지 잠새도록 써봐야죠. 그게 자기 글이 되는 순간, 독자들도 자기 안에 인식하지 못한 것을 그 글이 끄집어 내주면서 공감을 일으키는 거예요. 작가의 시선을 유사하게 느끼고 삶에서 인식할 수 있게 되죠. 세계를 바라보는 창을 제시하는 일이에요... 후배들 만나면 때때로 밥도 사줘야 인자한 모습을 보이죠. (웃음) 적어도 남에게 손 벌리지 않고 살고 싶고요. 시인으로서는, 그때까지 내가 쓸 수 있는 시가 있었으면 좋겠어요... 떠나가는 것에 집착하면 안 돼요. 과거에 저한테 사무쳤던 것들을 보내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것도 시 쓰는 이유 중의 하나예요. 도시에 살다 보면 바쁘잖아요. 떠나가야 할 것들을 제대로 떠나보낼 시간이 부족해요. 시를 쓰는 일은, 어떤 사물이나 추억을 흘려보낼 때, 그것이 잘 떠날 수 있도록 배려하는 힘이 생기는 것 같아요... 궁극적으로는 글을 쓴다고 위로가 되는 건 아닌 것 같아요. 글을 어떤 면에서 보면 의지라고 생각해요. 서정적이고 따뜻한 이야기라 하더라도, 어떤 현상이나 지나간 추억을 용납하기 위한 것만은 아니에요. 추억에 잠긴다는 것이 단순히 그것에 매몰되는 게 아니에요. 누군가의 동정을 받기 위해 어떤 슬픔을 시로 쓰고, 독자들의 감상만 이끌어낸다면 곤란하죠. 그 슬픔을 끄집어내서 그것이 저에게도 의지가 되고, 읽는 사람도 유사한 슬픔을 발견하고, 그것을 딛고 올라설 수 있는 하나의 벌판으로 시가 기능해야 한다고 봐요. 시에서 손톱만큼의 의지를 얻었다면, 제 시가 세상에 이바지한 바가 조금은 있다고 할 수 있겠죠... 때때로 아무리 자기 안에 슬픈 것들도 냉정하게 봐야 해요. 그래야 전혀 연결되지 않는 것들이 생명 기계처럼 서로 연결돼요. 여기 카메라하고 책이 연결될 수 있어요. 그런 의지와 냉정하게 볼 줄 아는 가슴이 필요해요. 물론 이런 시각에는 기본적으로 사랑이 깔린 거고요. 어떤 사물의 본질을 드러내야 하려면 사랑은 기본이에요... 그게 다 지워져 버리면 시를 못 쓸 것 같아요. 그럼 현실에 너무 만족하고 있다는 의미가 되기 때문에. 그러면 굳이 시를 쓸 이유가 없죠. 제가 쓰는 시는 어떻게 보면 결핍, 소외에서 나오는 것 같아요." (예스24 인터뷰 중에)
[베껴쓰고 다시읽기] 가장 '전위적'인 섬, 격렬비열도에서 외친 혁명적 유머 (박정대, 시) :
시
미스터 션샤인의 말투로 말하겠소
키치라 해도 좋소
무더운 여름밤을 건나가기엔 그 말투가 좋았던 것이오
자정이 넘은 코케인 창가에서 홀로 술을 마시며 바라보는 적막한 거리 풍경이 좋았던 것이오
햇빛 씨의 열기가 대낮의 조국을 뜨겁게 달구고 그 열기는 밤이 되어서도 식지 않았소
111년 만에 맞아온 최악의 폭염이라 했소
폭탄을 맞은 폐허의 도시처럼 허공에 떠도는 풍문은 흉흉했소
어디를 가도 숨이 가빠오는 숨 막힐듯 뜨거운 열기의 나날이었소
111년 전이면 1907년인데 나의 말투는 1907년의 고독 씨처럼 어느덧 그 시절을 흉내 내고 있었던 것이오
러브가 무엇이오 나는 모르오
시는 또 무엇이오 나는 모르오
조국이 이토록 뜨거운데 내가 어찌 조국보다 더 뜨거운 시를 쓸 수 있겠소
밤이면 코케인에서 술을 마셨소
창가에 앉아 혼자 술을 마시는 게 나는 좋았소
그렇게 여름을 지날 수만 있다면
말투야 어떻든 괜찮았던 거요
술을 한잔 마시고 돌아오는 새벽이면 생각했던 거요
나는 줄곧 적막한 새벽의 길을 걸어
거대한 고독의 시간을 횡단하고 있었다는 것을
꿈꾸는 자들은 언제나 대낮과 제국의 반대편이었고
오롯이 자기 꿈 동지였다는 것을 말이오
검은 말 한 마리 웅크리고 있는 밤이었소
여전히 깊고 어두운 검은 밤이오
춤이 없는 혁명은 일으킬 가치가 없는 혁명이오-브이 포 벤데타
미스터 션샤인이라 했소 누가 햇빛 씨인지는 나도 모르오
누가 누구의 햇빛이 될 수 있다는 건지도 나는 모르오
한낱 주말 밤에 방송되는 드라마라기엔 대사들이 깊었소
몇몇 깊은 대사를 이곳에 옮길 의도는 없소
다만 그 말투가 투박하고 좋았던 것이오 물론 그게 다였겠지만 말이오
퐁피두센터가 생기기 전 파리의 건물 고도제한은 25미터였소
먼 이국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보다가 문득 시를 쓰고 싶다는 생각을 했소
가난한 예술가들이 모여 살던 파리의 목조 건물 세탁소에 관한 기록도 보았소
그런 여름밤엔 밤새 시를 쓰고 싶었는데 밤에도 열대야는 계속되고 시는 써지지 않았소
조국이 이렇게 뜨거운데 내가 어찌 조국보다 더 뜨거운 시를 쓸 수 있겠소
그리고 슬픔이 시작되었소 몇 날 며칠 폭염과 염천의 하늘이 이어졌소
말을 타고 떠났는지 기차였는지 배를 타고 떠났는지 나는 모르오
어느 날 아침 뉴스를 보다가 그가 떠났다는 사실을 알았소
그것은 비보였소 살아생전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자의 죽음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자의 죽음이 이토록 사람을 황망하고 슬프게 만든다는 사실에 전율했소
아무것도 할 수 없었소 며칠 동안 술만 마셨소
나의 고독은 나의 침묵은 나의 음주는 아무것도 구할 수 없었소
그래서 고독했고 그래서 침묵했고 그래서 음주만 했던 것이오
나에겐 불의에 대항할 총이 없었고 허무에 맞설 사랑이 없었고 열대야를 재빠르게 건너갈 서늘한 신념조차 없었던 게요
귀하를 러브하오 그런데 러브는 과연 무엇이오
도대체 이 뜨거운 열기는 어디로부터 오는 것이오
귀하는 또 어디에서 이 뜨거운 밤을 혼자 건너가고 있는 것이오
밤하늘에 보이는 건 그저 깊고 깊은 그룸뿐이오
태양탐사선 유진파커호를 보냈다 하오
살아남은 자의 슬픔이 서로 연대하려는 지상의 밤이오
연락하오 귀하는 누구요 안녕
깊은 밤하늘에 그가 있소
* 박정대, 불란서 고아의 지도 (현대문학, 2019)
대한민국 최서단, 격렬비열도라는 낯선 이름만큼이나 더 유명해진 박정대 시인은 현존하는 가장 '전위적'인 시인 중 한 명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다만 벌써 그의 나이도 이젠 벌써 쉰여덟이나 되었다는 게 어쩌면 유일한 핸디캡이라고 할만한)
사실 오늘 이 자리에서 소개하고픈 시는 <의기양양 (계속 걷기 위한 삼중주)>였습니다. 지독한 난해함은 둘째치고 무려 시집으로만 오십 페이지에 가까운 이 엄청난 분량의 시 안에서 시인은 짐짓 "전직 천사"를 참칭하며 '혁명적 유머'와 그만의 시론을 유장하게 펼쳐냅니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유장함'이란 결코 '진지함'과는 거리가 먼, 오히려 급진적인 무언가에 더 가까울 것이기에 이를 '전위적'이라 표현하는 게 더욱 적절할 것 같습니다.
"단언컨대 모든 것은 시로부터 온다" (<의기양양> 중에서)
한창 TV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이 방영될 무렵, 시인은 너스레를 떨며 유친 초이의 말투를 흉내냅니다. 이미 앞에서 소개한 <의기양양>에서 한창 시론을 펼쳤음에도 무언가 또 다른 할 말이 더 남았다는 것인지 시 제목부터가 심상치 않은 <시>입니다. (실은 같은 제목을 갖는 또 다른 작품을 2021년에 펴낸 최근의 시집 "라흐 뒤 프루콩 드 네주 말하자면 눈송이의 예술"에도 수록한 바 있기도 하죠.)
스스로 "칼 마르크스"를 언급하면서도 대뜸 "키치"를 수용할만큼 그가 갖는 '포스트모던'함에 대한 자격지심은 전혀 느껴지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는 <의기양양>에서처럼 태연스럽게 사무엘 베케트, 라이프니츠주의자, 가스통 바슐라르, 알베르 카뮈 같은 이름들을 주절댑니다. 그렇다고 또 그들을 추앙하는 것도 아닙니다. "시란 무엇인가?"라는 물음 앞에 천연덕스럽게 수백 명의 이름들을 열거한 태도는 어쩌면 그가 그들 중 한 명에 불과하다는 자각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시인 스스로 이름을 붙인 "코케인"과 "아무르"는 여전히 중요한 상징들입니다. "코케인"에서 바라보는 풍경의 즐거움과 "조국보다 더 뜨거운 시"에의 절망 사이에서 시인의 "고독"은 "투박하고 좋았던 것"을 닮고 싶은 모양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것은 슬픔, 죽음, 그리고 고독과 침묵과 음주로 이어지는 일종의 알리바이입니다. "총이 없었고" "사랑이 없었고" "서늘한 신념조차 없었던" 시인이 이 지독한 시대를 살아가는 한 방식을 (또는 그 속에서의 "아무르"를) 스스로 구가하고 있을 뿐입니다.
2023년 7월 1일 (토)
2023 조선 신춘문예 시 당선작 :
이진우, 홈커밍데이
https://www.chosun.com/culture-life/culture_general/2023/01/02/NK6QQVBTWZGLJJMNGG4JH6L7KE/
"최종심에 오른 열세 분의 작품들이 취업 절벽, 사회 양극화, 저출산, 이주 노동, 기후 재난 같은 사회의 현안을 제치고 기분에 쏠린 현상은 우리를 놀라게 한다.기분이란 미시적 영역에 천착한 시편들을 읽으면서 이것이 이번 신춘문예의 공동 주제인가, 하는 의구심마저 품을 지경이다.현실에 반향하는 내면의 메아리이고, 생의 사소한 기미를 머금은 감정 생활의 한 조각이라는 점에서 기분을 배제할 이유는 없겠지만 이 쏠림은 다소 염려스럽다.이것이 타인의 고통에 무관심한 오늘의 비정한 세태를 반영한 징후이고, 자기애의 과잉 때문이 아닌가 하는 노파심 탓이다." (심사평 중에)
올해 상반기를 신춘문예로 마감합니다. 편안한 주말들 보내시기 바랍니다.
2023 조선 신춘문예 소설 당선작 :
전지영, 쥐
https://www.chosun.com/culture-life/culture_general/2023/01/02/YVULNAEXXJGO3HFCFKU3VTLM7A/
"사모는 왜 그렇게까지 쥐구멍을 파는지, 처음 만난 윤진에게 사모는 왜 그런 대화를 시도했는지 등의 인과는 찾기 어려웠다. 그런데도 폐쇄적이며 계급으로 나뉜 공간에서 생활하는 여성들의 불안과 방향감 상실, 쥐가 상징한 보이지 않는 힘에 대한 추적은 돋보였다. “관사에 쥐가 돌아다닌다는 말” “쥐가 낮에 기어나오는 건 죽을 때 딱 한 번뿐이야”라는 대사 등으로 플롯을 움직이고 마지막까지 긴장을 이어나갈 줄 아는 점도. 진실을 찾기 위한 며칠간의 여정 후 마침내 쥐구멍에 불이 붙었을 때 독자도 관사 여자들처럼 기묘한 안도와 카타르시스를 느끼며 한마음으로 무언가를 기다리게 되는 이 뜨거운 지점이 ‘쥐’의 미덕이 아닐까 싶다." (심사평 중에)
2023년 7월 2일 (일)
[창작연구] 이제니 시인의 시들에서 마침표가 갖는 역할은?
마치 행갈이를 대신하는 듯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한번 읽어보시지요. (언제 한번 이렇게 모작을 해볼까 해요.) ;
거울을 통해 어렴풋이
- 이제니
접어둔 꿈을 펼친다. 너는 잊어서는 안 되는 것을 잊었고. 텅 비어 있는 것은 다름 아닌 네 자신의 마음이었다는 것을 뒤늦게 알아차린다. 이해받지 못한다고 느끼는 연약하고도 슬픈 기질이. 아주 어린 시절부터 너를 문장이라는 말의 그늘로. 아니. 문장이라는 종이의 여백으로 이끌었고. 혼자만의 방에서도 오래도록 외롭지 않았던 것은. 네 오랜 꿈의 원형인 듯 책상 한구석에서 타오르던 어둡고 희미한 불꽃이. 매 순간 너와 함께 네 마음속에서 타오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접어둔 꿈을 펼친다. 거리는 거리로 이어지고 집은 집으로 이어져. 첫번째 집은 문이 없었고. 쉽게 다음으로 건너뛰지 못하는 미련한 마음이 다음 집과 다음 집도 첫번째 집으로 오인하도록 하였기에. 결국 네가 찾고 있는 것은 열리지 않는 문이라는 듯이 너는 너 자신을 속였으나. 이내 문이 있는 집이 나타났고. 당연하게도 너는 문을 열고 들어가지 않았고. 지금껏 줄곧 그래왔듯이 너는 첫번째 집을 찾아 헤매듯 다음 또 다음으로 천천히 천천히 집과 집 사이를 건너뛰었고. 결국 네가 찾고 있는 것은 문이 없는 집이라는 사실을 너 스스로도 인정할 수밖에 없었고. 그러니까 결국. 끝없이 끝없이 바깥으로만 바깥으로만 떠돌도록 하는 모종의 이유가 필요했을 뿐이라는 사실을 너는 인정해야만 했고. 건너뛰어 가는 동안. 종이 위로 새겨지는 네 목소리 위로 또 다른 목소리가 내려앉는 것을 너는 보았고. 들었고. 그것은 오래도록 내뱉지 못한 네 입속말의 부스러기들이었고. 바깥으로 향하는 목소리를 따라. 그렇게 바깥으로 향하는 공간으로 뛰어들기를 반복하여서 다시금 어제의 밤은 몰려왔고. 그러면 이제 무언가를 붙잡아야만 한다고. 그러면 이제 어딘가에 도착해야만 한다고. 그러나. 거울을 통해 어렴풋이 들여다보듯이. 희미한 것들은 희미하게 빛나고 있었고. 빛의 둘레로부터 어른거리며 물러나는 무언가를 너는 보았고. 들었고. 그 어렴풋한 그림자야말로 네가 잊어서는 안 되는 것이었고. 아니. 네가 잊을 수밖에 없는 것이었고. 그리하여 잊어버려서는 안 되는 것을 잊어버릴 수밖에 없었던 시간을 떠올렸고. 손을 펼치면 저 너머로부터 말들의 그늘이 번져오고 있었고. 더 이상 많은 낱말과 낱말로 말할 수 없게 되었다는 것을. 더는 숱한 비유와 비유로 문장을 꾸릴 수 없게 되었다는 것을. 너는 뒤늦게 알아차렸으나. 심연을 향해 나아가듯 같은 낱말이 또 다른 뜻으로 너를 향해 다가오고 있는 것을 너는 보았고. 들었고. 느꼈고. 연필을 쥔 너의 손가락은 어느새 종이 위를 빠르게 미끄러져갔고. 글자가 아닌 그림처럼. 그림이 아닌 음악처럼. 어떤 시선을. 어떤 흔적을. 어떤 공백을. 너는 읽으면서 쓰기를 멈추지 않았고. 심해로부터 번져오듯 같은 낱말이 다시 다가오면서 물러나고 있는 것을 너는 느끼면서. 자신의 표정을 제대로 들여다보기 위해서 다른 누군가의 문장을 인용하는 무수한 얼굴을 생각했고. 그리하여 다시. 마주 보는 이중의 거울 속에서. 끝없이 끝없이 맺히며 펼쳐지는 거울상의. 그 어떤 예비된 묵시들처럼. 그리하여 다시. 꿈은 어디로부터 흘러와서 어디로 흘러가는가. 빈칸을 건너뛰듯 희미한 보폭으로 사라져가는 저 무수한 길 위에서. 한 줄 건너뛰면 다시 한 줄 흔들리는 저 무수한 나뭇가지 사이에서.
* 그리하여 흘려 쓴 것들 (문지, 2020)
2023년 7월 3일 (월)
2018 문화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작 :
박은영, 발코니의 시간
https://www.munhwa.com/news/view.html?no=2018010201033324000001
" ‘발코니의 시간’은 삶의 고통에 대한 견딤이 죽음의 고통 또한 견디게 해준다는 중의적 의미가 내포된 시다. 정년퇴직한 뒤 발코니에서 화초를 키우는 아버지의 현재적 삶과 암벽에서 풍장의 과정을 겪고 있는 죽음의 삶을 발코니의 통유리를 경계로 대비함으로써 삶과 죽음의 동일성을 깨닫게 해준다. 자연적인 해체의 과정을 견디는 풍장 그 자체가 바로 오늘의 삶에서도 가장 요구되는 인내의 덕목이라는 것이다. 삶과 죽음이라는 관념성을 풍장 문화라는 구체성을 통해 나타내고 있는 점이 이 시의 힘이자 장점이다. 신춘문예에 당선된다는 것은 마치 하나의 새로운 우주를 만난 듯한 기쁨일 것이다. 진심으로 당선을 축하한다." (심사평 중에서)
2018 문화일보 신춘문예 소설 당선작 :
이경란, 오늘의 루프탑
https://www.munhwa.com/news/view.html?no=2018010201033412000001
" ‘구겨진 지폐 뭉치가 떨어졌다. 지폐가 마른 잎처럼 굴렀다.’ 돈과 낙엽의 이미지가 겹치는 ‘오늘의 루프 탑’ 결말이다. 화폐는 사용가치와는 무관한 교환가치 시대의 산물이면서 기호가치에 의한 정치경제학적 지배를 받는다. 복잡한 얘기인데, 사람 나고 돈 났지 돈 나고 사람 났냐는 약한 소리는 해 봐야 소용없다는 것. 하지만 돈 나고 사람 났다고 떠드는 축도 그다지 행복해 보이지 않는 세상이라는 것. 이쪽도 저쪽도 고단하고 예민해져 서로가 무너지는 건 마찬가지인데 어쩌다 이리되었나 허탈해지는 이야기이긴 하다. 그러나 ‘오늘의 루프 탑’이 기특한 것은 허탈해지지 않으려면 나 스스로 무엇을 놔 버려야 하는지를, 그러면 무엇을 얻게 되는지를 어렵지 않게 알려준다는 것이다." (심사평 중에서)
2023년 7월 4일 (화)
2019 문화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작 :
조온윤, 마지막 할머니와 아무르 강가에서
https://www.munhwa.com/news/view.html?no=2019010201034112000001
" 숙고와 논의를 거쳐 죽기 직전에 할머니가 바라본 풍경과 할머니의 죽음을 기억하는 호랑이의 시선을 스케일이 큰 상상력으로 진술한 ‘마지막 할머니와 아무르 강가에서’를 당선작으로 결정하였다. 이 시는 지상의 수많은 삶과 죽음을 자신의 몸으로 겪어낸 것 같은 할머니가 자신의 마지막을 풍경화처럼 바라보는 시선과 개개의 삶을 넘어 생태계에 각인된 기억에 따라 움직이는 호랑이의 시선을 교차시키고 있다. 서로 얽히면서 소멸되어가는 두 시선은 자연의 냉혹한 질서와 죽음의 공포, 삶의 애착을 무심하게 바라보는 어떤 거대한 눈을 떠올리게 한다. 이 시는 우리 현실과 다소 거리가 있는 소재와 한 편의 시가 감당하기 쉽지 않은 큰 주제로 인해 관념에 떨어질 위험이 있으나 세밀하고 끈질긴 상상과 삶과 죽음의 순환을 꿰뚫는 보이지 않는 힘에 대한 통찰이 그런 우려를 잘 떨쳐내고 있다." (심사평 중에서)
2019 문화일보 신춘문예 소설 당선작 :
오선호, 버드워칭
https://www.munhwa.com/news/view.html?no=2019010201034212000001
" 불만과 분노를 자기 욕망의 응시와 관리를 통해 해소하거나 넘어서 보려는 의지가 ‘버드워칭’에서는 좀 더 극대화돼서 ‘아무것도 하지 않음’의 단계까지 나아간다. 미래세대의 속내가 이 지경까지 이르렀나 싶어 무서워진다. 다만 소설 창작의 기술적 측면에서 볼 때 ‘목인의 나무’에서는 ‘신목인’과 ‘그 인간’의 대비가 어색하고, ‘올리버처럼’의 경우에는 좀 더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세부 사례를 통해 올리버라는 극 중 인물이 선명해졌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그에 비해 ‘버드워칭’은 화자의 발화가 얼핏 싱겁고 아리송한 듯해도 가만 보면 우리에게 매우 필요할 법한 신선한 ‘월드워칭’의 눈을 능청맞고 선선하게 제공한다." (심사평 중에서)
[창작연구] 시 안에 chapter를 두는 방식 (유진목, 작가의 탄생) :
연마다의 인위적 분절, 약한 연결고리의 상쇄, 많은 분량의 적절한 호흡조절, 상이한 내부구조 간 통일된 룰의 설정 등 다양한 목적에서 비롯되는 편입니다. (굳이 번호를 매기지 않아도 될만한 다른 장치들도 많은데, 아무튼 이 방식의 시쓰기가 지난 시대의 신춘문예 당선작들에서도 매우 흔히 접해온 방식인만큼 때로는 “각잡고” 써야 하는 경우에 헝클어진 머릿속을 정돈할 때에도 요긴한 경우들이 많겠죠.)
- 어제 필사를 했던 유진목 시인의 경우입니다. ;
작가의 탄생
1.
나의 총은 1980년에 마지막으로 발사되었다. 총알은 배 한가운데 정확히 왼편의 삼 분의 일 지점을 뚫고 나갔다. 그 일로 나는 집을 치우느라 애를 먹었다. 뭉근해진 내장이 배를 타고 흘러내렸고 한동안은 그것을 두고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늙은 개는 냄새를 맡고도 금방 일어서질 못했다. 먹으면 안 돼. 그럼 우린 함께 살 수 없어. 나의 개는 그럼에도 쏟아진 내장을 몇 점 주워 먹었다.
2.
나는 아이를 가졌고 이듬해 3월 셋째 날부터 진통이 시작되었다. 나흘을 앓다 죽은 아이를 배 속에서 꺼내어 묻고 아침이 올 때까지 엎드려 울었다.
3.
나의 아이는 불행히 살겠지만 언젠가 스스로 불행을 극복할 것이라 생각했다. 나를 닮아 사람을 멀리하고 늙은 개를 아끼면서 언제까지나 함께 살 수 없다는 것을 알았을 때 상처받을 것도 생각했다.
아이에게 줄 수 있는 것은 집 한 채와 총 한 자루가 전부였다. 마당에는 먹을 것이 있었고 언제든 그것 때문에 위험해질 수 있었다. 나는 창문 옆에 몸을 숨기고 총을 겨누는 법을 알려 줄 것이었다.
얼마간 시간이 흐른 뒤에는 혼자 생각한 것을 적을 수 있도록 글을 가르치고 나는 늙은 개를 앞세워 세상을 떠날 것이었다. 그러면 아이는 한번은 나와 같이 개를 묻고 또 한번은 혼자서 나를 묻고 나처럼 엎드려 울 것에 가슴이 아팠다.
4.
그러나 나에게는 아이가 쓴 글을 읽을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이 있었다. 내가 얼마나 많은 사람을 죽이고 살아남았는지 아이에게는 말하지 않을 것이었다. 너에게 주는 총이 네 아비를 죽인 총이라는 것도 말하지 않을 것이었다. 하지만 너를 만나고 싶어서 남자를 집에 들인 일은 말할 것이었다. 아이는 나를 증오하고 때로 내가 죽인 남자를 그리워하며 잠들지도 몰랐다.
어쩌면 나나 내가 죽인 남자에 대해서 아무런 관심이 없을지도 몰랐다. 늙은 개를 사랑해서 나보다 사랑해서 이 집에서 나는 아무것도 아니게 될는지도 몰랐다. 그러면 우리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 날들과 아무 데도 가지 않는 날들을 견디며 한집에서 살아갈 것이었다. 아이가 더 이상 나를 견딜 수 없는 날에는 나에게 총이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서 하지만 아이가 엉망이 된 집을 치우지 않아도 되도록 밖으로 나가 방아쇠를 당길 것을 생각하면서 나는 매일같이 마지막인 날들을 살아갈 것이었다.
5.
늙은 개는 그것이 무엇인지 모르고 그랬을 것이다. 나는 마당의 남자가 배를 채울 때까지 창문 옆에 서서 기다렸다. 그런 뒤 문을 열고 잠시 들어오겠느냐고 물었다. 남자는 더러운 발로 집에 들어와 내가 가진 것들을 살펴보았다. 앞으로의 날들에 기대를 품는 것 같았다. 멍청한 사람들이 그렇듯 남자는 쓸데없는 말들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그가 헐떡이는 동안에는 잠자코 누워 있었다. 나의 아이는 불행히 살겠지만 스스로 불행을 극복하고 자신의 생각을 글로 쓰는 사람으로 자라날 것이다.
어쩌면 나를 죽이고 늙은 개와 사랑하며 살아가는 것도 좋았다.
그리하여 총알은 배 한가운데 정확히 삼 부의 일 지점을 뚫고 나갔다. 늙은 개는 미지근한 내장을 몇 점 주워 먹고 부엌으로 돌아가 잠이 들었다.
6.
나의 총은 1980년에 마지막으로 발사되었다.
아이는 무럭무럭 자라나 글을 배우고 어느 날 문을 닫고 들어가 자신이 생각한 것을 오래도록 쓰고 있다. 나도 늙은 개도 죽지 않고 맞이하는 어느 아름다운 날의 일이었다.
* 유진목, 작가의 탄생 (민음, 2020)
2023년 7월 5일 (수)
2020 문화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작 :
차유오, 침투
https://m.munhwa.com/mnews/view.html?no=2020010201033312000001
“본심에 오른 18명의 응모작은 고르고 안정된 수준을 보여주었으나 눈에 띄는 한 편은 잘 보이지 않았다. 마지막까지 남은 작품 ‘자백’은 높은 완성도와 주제에 대한 집중력이, ‘침투’는 세련되지는 않았지만 신인다운 신선함이 눈길을 끌었다. 숙고를 거듭한 끝에 ‘침투’를 당선작으로 결정했다.” (심사평 중에, 문정희/김기택)
여전히 신춘문예의 전통은 ‘안정성’보다는 ‘도전성’을 더 선호해왔습니다. 신문사마다 또 심사위원들마다의 공통적 경향이 혹 있다면 아마도 이것이지 않을까 해요.
거센 돌풍이 몰아닥치는 새벽입니다. 장마인 줄 알았는데 무슨 태풍급인지요?… 날씨에 피해가 없도록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2020 문화일보 신춘문예 소설 당선작 :
이덕원, 축복
https://m.munhwa.com/mnews/view.html?no=2020010201033412000001
"어떤 소설은 독자에게 축복과 같다. 타인에 대한 시선과 연민을 놓치지 않고 또한 그것으로서 독자 자신의 하루를, 미래를 돌아보게 한다면 말이다. ‘축복’은 ‘달용이’라고 불리는 중국집 배달원들, 그 중에 사회성은 부족하지만 일에 관해서라면 베테랑 격인 배용수라는 인물에 관한 이야기다. 튼튼한 직장과 탄생을 앞둔 아이, 아주 좋아진 게 아니어도 내일을 맞을 수 있다는 점들 모두 축복일 것이다. 그리하여 “배달 가자”라는 마음으로 각자의 일터로 나갈 수 있는 매일 매일의 삶도." (심사평 중에, 구효서/조경란)
신춘문예 작품들을 읽고는 있지만, 정작 제 더 큰 관심사는 이달까지 탈고를 해야 할 습작이겠군요. 다들 마감에 쫓기면서 글을 쓰는 게 고역이 아닌 즐거움이 되셨으면 합니다.
[베껴쓰고 다시읽기] "시는 허구다"는 말, 현대의 서정 (김경주, 간절기) :
간절기(間節期)
엄마는 아직도 남의 집에 가면 몰래 그 집 냉장고 안을 훔쳐본다
그런 날엔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이유 없이 화를 내던 엄마의
일기를, 고향에 가면 아직도 훔쳐보고 있다 궁금해지면
조금 더 사적이게 된다 애정도 없이
내 입술이 네 입술을 떠난다 너는 카페만 가면 몰래 스푼을 훔친다
우아한 도벽은 엄마의 철자법처럼, 걸인의 차양모자처럼 생기가 있다
세상의 기사(記事)들은 모두 여행기다 내일이면 아무도 기억하지 못하는 특종들,
사건 뒤에 잊힌 사람들의 이름을 외우고 다닌 적이 있다
나는 네 가계(家系)에 속해 있다 매일 사라질 가계를 다루고 떠나는
나의 행간은 활기차다 매일 똥을 오래 눈다 이것은 나의 기상에 해당한다
내 가짜 이름은 너의 기상에 자주 등장한다 나는 네 허영이 마음에 든다
허영이 없는 사람을 사랑한 적이 없으니, 이불 속으로 들어가 푸딩을 떠먹는
우리의 입술을 그려본다 예의도 없이
짐승은 발톱을 깎아주면 신경질을 낸다 그렇게 서명은 피해가며 우리는
침묵 속에서 자주 만난다 삶은 미묘한 차이를 견디는 일이다 수치심도 없이
내가 낳은 혼혈아에게 두근거린다 이름을 지워도 결국 내 아이는 밝혀진다
이미 나는 이 기상과 별거 중이다 나는 상투적으로 투정하며 살기로 한다
신경질적으로 그리워지겠지만
* 김경주, 고래와 수증기 (문지, 2014)
김경주 시인의 첫 시집인 <나는 이 세상에 없는 계절이다>에 쏟아졌던 "가장 주목해야 할" 또는 "한국어로 쓰인 가장 중요한 시집" 같은 수사가 담긴 호평들과 화려했던 데뷔 시절에도 불구하고 대필 파문 등 여러 추문들이 함께 불거진 이력 탓인지 오히려 명성이나 재능에 비해선 다소 덜 알려진 편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갖습니다.
(2016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서는 시부문 심사위원이자 희곡부문 당선자가 된 이색적인 기록을 갖고 있기도 합니다.)
오늘 읽어보는 시는 그의 네번째 시집인 <고래와 수증기>에서의 한 편, '간절기'입니다. 어느덧 이제 마흔 일곱이 된 시인이 서른 일곱 즈음에 펴냈던 시집이기도 하죠.
어느 블로거의 독후감처럼 여기에서 시인이 말하려는 '간절기'가 어쩌면 대한민국 시단의 한 '과도기'를 상징했거나, 또는 말 그대로 개인 스스로 겪었던 간절기였거나 또 아니면 변곡점에 해당될만한 어떤 한 역사에 관한 것이었을 수도 있겠습니다.
'엄마'와 '가계'에 속한 나는 "사라질 가계를 다루고 떠나는" 운명, "신경질을 낸다"는 발톱과 그리움의 일부인지도 모릅니다. 그것들을 앞서서의 해석대로 벼랑 끝이게 된 시단의 풍경으로, 또는 "혼혈아에게 두근거리다"는 개인의 경험으로 내비치려 한 것인지도 열린 해석과 평가를 낳습니다. 다만 그 투정을 '간절기' 탓으로 보는 것인지, 아니면 '간절기'라서 겪는 정서인지는 다소 헷갈리기도 하네요.
일종의 '골계미' 역할을 하는 장치들은 이제 제법 익숙해진 편인데, "활기차다"는 행간과 "똥" 같은 이미지들이 이 시에선 그 역할을 맡습니다. (사소한 '극복'이 곧 유머요 해학이 되는 시적 분위기는 이제 또 다른 '전통'이 될 것 같기도 합니다. 개개인의 호불호와는 전혀 상관없이)
"시는 허구다"는 말, 어쩌면 현대시의 정서를 (특히 '미래파' 이후의) 가장 축약해서 드러낸 담화일 수도 있겠습니다.
데뷔시집의 돋보였던 수작 중 하나인 '내 워크맨 속 갠지스'에서도 그렇듯이 시인이 말하려는 '진실'은 더 이상 "현실" 속에 존재하지 않는, 오히려 "상상" 속 세계를 통해서만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는 과거의 전통적인 패턴과 서정시들이 갖는 진술의 힘과도 사뭇 그 궤를 달리 하죠. 즉, 인생의 의미나 세계의 진실 따윈 더 이상 "현실"에서 존재하지 않는다고 보는 편입니다.
혹자들은 이를 놓고 니체 이후의 현대철학에 따른 영향 또는 '미래파' 이후의 시단에 펼쳐진 '낯선 정서'의 영향 등을 열거하기도 하지만, 더 정확하게는 '거대담론의 붕괴 또는 이를 대체할만한 철학의 부재' 탓이 훨씬 더 큰 것 같습니다. ('불우한 미래'를 읊조린다거나 '광장'을 애써 도피하려는 히키코모리를 닮는 경향 등은 더더욱 이를 방증하는 양태들이기도 하고요. 역시 개개인들이 갖게 되는 호불호와는 아무런 상관없이, 그저)
[베껴쓰고 다시읽기] 시답지 않은 시로 등극한 '아이돌'의 현주소 (황인찬, 이걸 내 마음이라고 하자) :
이걸 내 마음이라고 하자
눈을 뜨자 사람으로 가득한 강당이었고 사람들이 내 앞에 모여 있었다 녹음기를 들고 지금 심경이 어떠시냐고 묻고 있었다
사람들은 자꾸 말을 하라고 하고 그러나 나에게는 할말이 없어요 심경도 없어요 하늘 아래 흔들리고 물을 마시며 자라나는 토끼풀 같은 삶을 살아온걸요
눈을 다시 뜨니 바람 부는 절벽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지금 뛰어내리셔야 합니다 지금요 더 늦을 순 없어요 자칫하면 모두가 위험해져요
무서워서 가만히 서 있는데 누가 나를 밀었고
눈을 뜨면 익숙한 천장, 눈을 뜨면 혼자 가는 먼 집, 눈을 뜨면 영원히 반복되는 꿈속에 갇힌 사람의 꿈을 꾸고 있었고
그러나 어디에도 마음 둘 곳이 없군
애당초 마음도 없지만
눈을 뜨니 토끼풀 하나가 자신이 토끼인 줄 알고 머리를 긁고 있었네
좋아, 이걸 내 마음이라고 하자
* 황인찬, 이걸 내 마음이라고 하자 (문학동네, 2023)
현 시단의 대표주자 격인 황인찬의 시를 이제서야 꺼내놓는 이유는 그렇습니다.
필요 이상으로 고평가된 시인이지 않은가 하는 우려, 정작 시인의 작품세계보다는 생뚱맞게도 그의 외양과 명성 쪽에 더 매몰된 듯한 희한한 분위기의 팬덤, 시를 읽고 분석하고 이해하려 하기보다는 그저 뭔 소린지는 몰라도 내 취향과 입맛에 맞기 때문에 그냥 "좋다"고만 말하는 무수한 독후감들까지... 한동안 그에 대한 평가를 보류해놓은 까닭이기도 합니다. (실은 올해 신춘문예를 준비하면서 일정 정도 그에 관한 실제비평을 작정해놓았던 탓일 수도)
화제의 신간인 <이걸 내 마음이라고 하자>를 교보문고에서 처음 접했던 소감은? 솔직히 말해 예전 시집들과 별반 다르지 않은 정서, 별반 달라지지 않은 화법, 별반 크게 다르지 않은 주제 등이 갓 나온 시집을 빠르게 읽어내며 느꼈던 제 첫 소감이었기도 합니다. (더구나 지난 2021년 현대문학상 수상작인 '이미지 사진' 등 상당수의 시편들은 이미 다른 지면들을 통해 읽었던 편이기도 해서 크게 새로울 게 없었던 점도 더러 작용하긴 했겠지만요.)
맨 앞의 허무개그 같은 말장난들을 뒤로 한 채 한참을 읽고 넘기다 보면 표제작을 만날 수 있는데요, 이 작품에서 짧게나마 그동안 느꼈던 부분을 몇 자 미리 적어놓기로 합니다. ;
뜻하지 않게 사람들은 "내 앞에 모여 있었"고 "묻고 있었"고 "자꾸 말을 하라고" 합니다만, 시인은 그럴 생각이 거의 없습니다. "할말이 없어요 심경도 없어요"는 솔직한 심경이었을 테며 급기야 "토끼풀 같은 삶"으로 스스로를 치부하기도 합니다.
여타의 작품들에서도 흔히 접할 수 있는 시인의 스탠스는 어쩌면 일종의 '당위' 같은 것들에 대한 강한 거부감이지 않을까로 해석하곤 해왔습니다. 이번 시에서도 웬 '절벽'이 등장했으며 누군가는 또 "지금 뛰어내리셔야 합니다"고만 말합니다. (심지어 누군가한테는 떠밀리기도 했고) 이 모든 정황들에서 시인은 전혀 의도한 바도 없이, 어처구니없게도 그저 '돌연 당하고 마는' 존재입니다.
시인이 "어디에도 마음 둘 곳이 없군"이라며 독백하는 부분은 설령 그것이 시인의 행동을 자극했거나 또는 시인 스스로가 그렇게 하기로 마음을 먹었다손쳐도 결코 그 "마음"을 둔 게 아니라는 뜻임을 밝힙니다. 아예 대놓고는 "토끼풀 하나가 자신이 토끼인 줄 알고" 있는 상태를 "내 마음이라고 하자"는 선언을 해버립니다. 이 대목에서 모든 '의미'는 돌연 '무의미'로 전락하게 되겠죠. (시인이 원하는 바가 뚜렷하게 드러난 지점을 그리 해석합니다.)
사실 이런 투의 독백은 황인찬의 기존 시들에서도 충분히 나타난 면이겠죠. 의미를 거부하는 몸짓, 좀 더 정확히는 그 어떤 '의미'를 지향하는 일이 덧없거나 불가능할 것이란 믿음이 훨씬 더 큰 탓으로 읽혀집니다. 그저 사사로운, 가벼운 말장난을 섞는, 돌연 얼버무리곤 하는 말투들의 원천 역시 그런 마음과 태도들에서 비롯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고요. 아무튼,
정과리 교수가 예전에 자신의 블로그를 통해 "젊은 시인들"에 관한 짤막한 평을 내놓은 적이 있었습니다.
과거의 전통적 화법과는 달리 어미 쪽에서 문법을 탈피하려는 움직임 (예를 들면 "~다"로만 끝나는 천편일률적 관행에서 "~까?" 또는 "~네" 등의 대화체가 주로 채용된다는 측면) 그리고 은유의 일차적 적용을 뛰어넘는 현상 등을 지적했었고요. (예를 들면 "의미의 부분적 일치"보다는 형상, 동작, 소리 등 모든 부면의 최소한의 유사성들로 확산해가는 움직임을 뜻하는데... 이는 "인간은 생각하는 갈대"라는 표현에서 아예 "잔뜩 인대가 늘어난 하늘", "무른 말에도 잘 베이는 나뭇잎들은 어떻게 초록인지"와 같은 씩씩하고도, 희롱적이면서도, 동시에 연대를 갈구하는 듯한 현상을 주목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즉, 이런 움직임들은 단지 황인찬 시인만의 그것이 아니라 이미 2020년대를 살아가는 모든 현대시, 그가 예로 들었던 강혜빈과 류진과 박윤우와 이원하 등등을 열거하면서 총칭하고 있는 모든 "젊은 시인들"에게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일종의 시류요 경향과도 같은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고로, 그런 것들만을 근거로 해 황인찬의 시들이 단연 '으뜸'이라고 추켜세우는 일은 좀 적절치가 않아 보인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오히려 개인적으로는, 그의 데뷔시집 중 뛰어난 소품이었던 (사실상 김수영문학상 수상작이 된 큰 이유 중 하나였던) '단 하나의 백자가 있는 방'에서처럼 끝끝내 둔탁하고 묵직하면서도 그저 담담했던, 반대로 그 내면은 온통 '치열함'일 뿐인 시인만의 어조가 가장 돋보일만한 지점들은 따로 있지 않았겠나 하는 생각도 듭니다.
예를 들면 무덤덤해진 그리움, 속절없는 안타까움, 딱히 정해지지 않은 방향에 관한 물음 내지 방황 따위가 어쩌면 이런 부분들에 해당될 터인데... 실제로 대부분의 시들이 그런 뉘앙스로들 읽히면서도 마치 이것들만이 이 시대를 대표할만한 어떤 '정서'의 차원쯤으로 해독되어 전파되곤 하는 '오버스러움'에 대해선 여전히 무척 달갑지 않은 현상이라는 입장인 탓입니다.
그렇다면? 반대로 시인 스스로가, 훨씬 더 점층적인 해법에 의한 처연함이거나 슬픔과도 같을 독백의 처방일지라도, 괜시리 '겉멋' 따위가 아닌 진솔함으로 와닿는 새로운 화법을 발견해야만 할 것 같은 생각도 들었습니다. 혹은, 그저 "덧없다"는 말 한마디로도 충분할 기이한 '히키코모리'의 세계를 벗어나 좀 더 낯설고 두려운 또 다른 '장소'를, 또 다른 '진지'를 물색해야 할 시점인지도 모르겠습니다.
2023년 7월 6일 (목)
2021 문화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작 :
남수우, 아무도 등장하지 않는 이 거울이 마음에 든다
https://m.munhwa.com/mnews/view.html?no=2021010401032624000001
"올해부터는 예심과 본심을 통합하게 돼 심사하는 데 오래 걸리긴 했지만, 전체적인 수준이나 경향을 파악하면서 좋은 작품을 선별해갈 수 있었다. 725명의 투고작 3625편을 읽는다는 것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어려운 시절을 통과하고 있는 이 시대의 풍경과 사람들의 내면을 읽어내는 일이기도 해서 더 각별하게 느껴졌다. 예년보다 무겁고 우울한 분위기가 강해졌고 상상력도 다소 위축된 것처럼 보였지만 경제적 어려움과 심리적 고립, 관계의 단절 등을 뚫고 희미한 빛을 찾아 나가려는 고투가 시편마다 절실하게 담겨 있었다." (심사평에서, 나희덕/박형준/문태준)
좋은 아침입니다.
2021 문화일보 신춘문예 소설 당선작 :
김화진, 나주에 대하여
https://www.munhwa.com/news/view.html?no=2021010401032712000001
“올해의 당선작은 ‘나주에 대하여’이다. 죽은 애인의 전 여자 친구인 ‘예나주’와 같은 회사에 근무하게 된 ‘김단’의 이야기. 이 예외적인 상황을 예외적이지 않게 만든 것은 이 작가의 문장 덕분일 것이다. 한 사람을 세밀하게 묘사해내고 그에 따른 정서의 변화를 놓치지 않고 따라간 문장들은 정확하고 또 때론 날카로웠다. 그 구체적인 문장들이 말하는바 우린 너무 많이 ‘안다’고 착각하고 있다는 것. 누군가를 알 수 있는 방식은 늘어났지만 그로 인해 실제 우리가 마주하게 되는 것은 정작 나의 민낯뿐이라는 것. 그러니까 이 소설은 ‘나주에 대하여’가 아니고 실상 ‘김단에 대하여’가 맞다. 그 점을 작가가 밀도 높은 구성으로 끝까지 밀고 나갔다.” (심사평 중에, 구효서/조경란/이기호)
2023년 7월 7일 (금)
2022 문화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작 :
김보나, 상자 놀이
https://m.munhwa.com/mnews/view.html?no=2022010301032712000003
"상자의 닫혀 있음과 열림, 그를 통해 드러나는 어둠과 빛이 팬데믹 시대의 도시적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속내를 주거 공간에 집약해낸다. 무엇보다 당선작과 함께 보내온 응모작들의 수준이 고른 점도 안심케 하는 대목이다." (심사평 중에, 나희덕/박형준/문태준)
금요일 아침입니다.벌써 작년도 신춘문예까지 둘러본 것 같습니다. 최근 몇년 동안은 엇비슷한 패턴이 계속 반복될 뿐이어서 '변곡점' 같은 경향은 아직 잘 나타나지 않는 모양새입니다. (이건 어쩌면 "천편일률적"이란 비아냥조차 감수하면서 아예 "시공장" 시스템이 돼버린 듯한 각 학교들의 문창과 커리큘럼부터 그 변화를 살펴보는 게 오히려 더 빠르게 감지될 수도 있겠단 생각마저 드네요.)
오늘도 좋은 하루 되시기 바랍니다.
2022년 문화일보 신춘문예 소설 당선작 :
유영은, 퍼레이드를 기다리는 시간
https://m.munhwa.com/mnews/view.html?no=2022010301032812000001
"올해의 당선작은 ‘퍼레이드를 기다리는 시간’이다. 디즈니랜드 놀이공원에서 얼핏 본 ‘조안’을 찾기 위해 외삼촌과 함께 다시 그곳을 찾은 나의 이야기를 다룬 이 소설은, ‘시간의 흐름이 뒤틀리거나 어느 한구석이 잔뜩 구겨진 것만 같’은 사람들의 이야기다. 그 과정을 통해 가족의 상처 또한 하나하나 드러나지만 그 태도가 결코 감상적이지 않고 유머러스하면서 절제돼 있었다. 우리는 모두 알라딘이 타고 떠난 양탄자의 밑바닥만 볼 수 있는 사람들이지만, 그렇게 누군가를 잘 떠나보내는 것이 우리의 삶이라고 말하는 소설이었다. 서사적 완결성과 균형이 돋보였고, 캐릭터의 구축에도 나무랄 곳이 없었다." (심사평 중에, 구효서/조경란)
[비평원리] "난해함"의 문제를 놓고도 평단에서 꽤 오랫동안 갑론을박을 한 적이 있습니다.
최근의 시들이 갖는 경향에 대해 뭇 평론가들이 비슷한 논리를 펴는 건 아마 턱없이 쪼그라든 독자층에 얽힌 우려도 있겠지만, 갈수록 '인스턴트화'하려는 작가들의 섣부른 움직임에 대한 하나의 경종일 수 있겠다는 생각도 함께 갖는 편입니다.
(그렇다면, 옥석의 구분은 어떻게? 여러 차례를, 다른 방식으로, 수차례 읽어보면 판별이 가능합니다. 질 좋은 '입체감'을 갖는 경우와 그렇지 못한, 그저 수수께끼 같은 -작품의 한계를 은폐하고자 어설픈 모호함으로 치장하려는- 암호문의 차이는 금방 드러날 수 있는 문제입니다.)
한 작가의 독백을 다시 들어봅니다. ;
프로에 대하여
쉽게 쓴 것처럼 읽히는 글을 쓰기 위해, 쉽게 부르는 것처럼 들리는 노래를 부르기 위해 얼마나 많은 퇴고와 연습이 필요한지 사람들은 알지 못한다. 그래서 ‘자연스러운’이라는 단어는 프로가 듣는 최고의 상찬 중 하나다. 예전에는 열정이 좋아하는 것을 향해 돌진하는 ‘뜨거운 것’이라고 착각했다. 하지만 이제 열정이 포기할 순간에도 포기하지 않는 ‘서늘한 인내심’이라는 걸 안다.
원하는 글을 쓰기 위해 작가는 원치 않는 많은 글을 쓰고, 원하는 옷을 입기 위해 모델은 혹독한 식단 조절을 한다. “영감을 찾는 건 아마추어고, 우리는 그냥 일어나서 일하러 간다”는 소설가 필립 로스의 말처럼 프로는 ‘그냥’ 하는 사람들이다. ‘그냥’은 그냥 만들어지는 게 아니라, 열정의 다른 이름인 ‘인내’가 만든다. 좋아하는 곳에 가기 위해 좋아하지 않는 더 많은 곳에 기꺼이 가 본 사람, 우리가 그들을 프로라 부르는 이유다.
- 백영옥 (소설가)
2023년 7월 8일 (토)
2023 문화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작 :
김혜린, 백자가 되어가는 풍경
https://m.munhwa.com/mnews/view.html?no=2023010201032712000001
"시 부문에 응모한 작품들을 세밀하게 읽었다. 작년에 비해 응모 편수는 조금 줄었지만, 응모작들의 수준은 높다는 데에 심사위원들은 의견을 같이했다. 일정 수준 이상의 작품들이 많아서 우열을 가리기 어려웠다. 응모작들은 개인적 서사를 시로 풀어낸 작품들의 비중이 컸는데, 이 작품들을 통해 삶의 질곡과 통증, 소통의 회복에 대한 열망을 느낄 수 있었다. 시적 모티프로 폐점과 채무, 구직과 고된 노동 등이 두드러지게 눈에 띄어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곤고한 일상을 체감할 수도 있었다. 심사위원들이 마지막까지 주목한 작품들은 ‘행방’ ‘비광’ ‘인공눈물’ ‘어린이는 자란다’ ‘백자가 되어가는 풍경’이었다." (심사평 중에, 나희덕/박형준/문태준)
즐거운 주말 되십시오.
2023 문화일보 신춘문예 소설 당선작 :
양수빈, 낮에 접는 별
https://m.munhwa.com/mnews/view.html?no=2023010201032833000001
“작품마다 이야기와 주제의식이 상이했지만 중심인물이 어려운 세계 속에서 하루하루 힘겹게 버텨나가는 소설이 많았다. 인물은 일할 곳을 알아보고, 열정을 쏟을 의미와 대상을 고민했으며, 머물 방과 집을 찾았다. (중략) 소설은 이야기의 줄거리를 정리한 문장들의 모음이 아니다. 소설 속엔 작가의 마음과 감정이 깃들고, 타인과 세계에 대한 시각과 입장이 보이며, 선택한 단어와 문장 속엔 고유한 개성과 감각이 육체를 입고 생생하게 표현된다. 사건과 상황을 보여주는 것을 넘어 독자가 그것을 왜 봐야 하는지, 그 속에서 발견하게 될 것은 무엇인지, 알게 해주는 단계까지 나아갔더라면 더 좋았을 소설도 많았다.” (심사평 중에, 조경란/정소현/정용준)
[창작연구] '낭만'이란 무엇인가? (박정대) :
그때까지 사랑이여,
내가 불멸이 아니어서 미안하다
그날 불멸이 나를 찾아왔다
나는 낡은 태양의 오후를 지나, 또 무수한 상점들을 지나 거기에 갔으므로 너무나 지쳐 있었는지도 모른다
내 등 뒤로는 음악 같은 나뭇잎들이 뚝뚝 떨어지고, 서러운 풍경의 저녁이 짐승처럼 다가오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나는 주머니 속에서 성냥을 꺼내어 한 점의 불꽃을 피워 올렸다, 영원은 그렇게 본질적인 불꽃 속에 숨어 있다가 어느 한 순간 타오르기도 한다
그날 불멸이 나를 찾아왔다, 아니 그날 내가 불멸을 찾아 나섰는지도 모른다, 뿌연 공기들을 헤치며 이 지상에는 없는 시간을 찾아 나는 나섰다
내가 한 마리의 식물처럼 고요했던 시간, 내가 한 그루의 짐승처럼 그렇게 타올랐던 시간, 바람과 불의 시간을 지나 공기의 정원에서 내가 얼음꽃을 피워 올렸던 그 단단한 침묵의 시간을 찾아 나는 나섰다
그런데 불멸이 나를 찾아왔다
나는 늘 불멸을 꿈꾸었지만, 그렇게 불멸을 만나리라고는 생각지도 않았으므로, 나는 오히려 불멸이 너무나 낯설었는데, 어쨌든 불멸은 내가 갔던 거기에, 그렇게 당도해 있었다
네가 불멸이니, 그때 너무나 당황했으므로 나는 속으로 그렇게 물어 보았는지도 모른다
불멸이 이제 나에게 당도했으므로 나는 어찌할 줄을 모른다, 오랫동안 불멸을 꿈꾸어 왔지만 불멸이 나에게 당도했을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 나는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나는 이제 불멸 앞에서 이 세계의 본질적인 사랑을 생각한다
불멸도, 사랑도, 내 생각으로는 그저 저 스스로 존재하는 그 무엇일 뿐이다
그리고 그 누군가는 나에게 또 불멸의 아름다운 시를 쓰라고 한다, 그러나 나는 이제 쓰지 않는다, 불멸의 아름다움이란, 느끼는 자의 내면 속에서 수시로 숨쉬고 존재하며, 자라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것은 시가 아니다
시가 아니므로 불멸이 아니고, 불멸이 아니므로, 이것은 불멸의 시가 된다
그렇다, 당신이 이 글에서 시를 읽어내려고 했다면 당신은 이미 시인이다, 그러나 시 아닌 그 무엇을 읽어내려 했다면 이미 당신은 또 하나의 불멸인 것이다
그대를 찾아 나섰다가 나는 불멸을 만났다, 그러나 나는 아직 불멸이 몹시도 불편하고 어색하다
불멸이 나를 찾아왔을 때 나는 불멸이 아니었지만, 나도 언젠가는 내가 꿈꾸던 불멸에 닿을 것이다
나도 언젠가는 저 별들에게로 돌아갈 것이므로, 나도 언젠가는 불멸인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먼 훗날, 태양이 식어가고 낡고 오래된 천막 같은 밤하늘의 모퉁이에서 서러운 별똥별로 다시 만난다 하더라도, 나는 아직 살아 있으므로, 나는 불멸이 아니라 오래도록 너의 음악이다
그때까지 사랑이여, 내가 불멸이 아니어서 미안하다
그때까지 사랑이여, 내가 사랑이 아니더라도 나를 꿈꾸어다오
* 박정대, 아무르 기타 (문학사상, 2004)
https://m.hani.co.kr/arti/culture/book/482268.html
2023년 7월 10일 (월)
2018 서울신문 신춘문예 시 당선작 :
박은지, 정말 먼 곳
https://m.seoul.co.kr/news/newsView.php?id=20180101032001
“2000년대 이후 서정시의 갱신은 탈주체의 문제나 문법적 해체와 맞물려 진행되어 왔다. 본심에 올라온 열다섯 명의 작품들에서도 그런 변화가 확연히 느껴졌다. 주체가 불분명한 진술들과 지나치게 비틀어서 소통 불가능할 정도의 문장들이 적지 않게 눈에 띄었다. 하지만 그러한 단절과 비약이 항상 새로움으로 느껴지는 것은 아닌 듯하다. (중략)
박은지의 ‘정말 먼 곳’을 당선작으로 뽑게 된 데에는 과잉된 수사가 주는 피로감 속에서 그의 간결하고 명징한 언어가 상대적으로 돋보였기 때문이다. 다른 투고자들보다 작품의 편차가 크지 않고 전체적으로 안정된 호흡을 지니고 있다는 점도 신뢰감을 갖게 했다.” (심사평 중에, 이문재/나희덕)
새로운 한주입니다. 이문재/나희덕 시인이 버티던 서울신문 역대 당선작들을 살펴볼 한주가 되겠습니다.
장마 속 무더위도 잘 이겨내시기 바랍니다.
2018 서울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작 :
김민수, 플랫폼
https://m.seoul.co.kr/news/newsView.php?id=20180101029001
“‘플랫폼’은 기계 인간에 의한 인간 밀반출 사건을 다룬 도전적인 작품이다. 수준급의 문장력이 돋보였고, 동시대의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현재의 구체적 후신(後身)인 미래의 정황을 상상하는 수준이 어지간했다. 다양한 서사 요소들을 절묘하게 엮어 내면서 고도로 가공된 인공적 서사의 또 다른 차원을 안내하는 것처럼 보였다. 실체 없는 경험들, 선형적으로 엮이기 어려운 서사 조각들을 다독이며, 인공지능의 약진 이후 호모 사피엔스라는 종의 미래에 대한 불안을 잘 빚어냈다.” (심사평 중에, 우찬제/권여선)
2023년 7월 11일 (화)
2019 서울신문 신춘문예 시 당선작 :
류휘석, 랜덤 박스
https://m.seoul.co.kr/news/newsView.php?id=20190101032001
“당선작으로 뽑은 ‘랜덤 박스’ 외 2편은 다소 장황한 듯 하지만 시적 사유와 문제의식을 끝까지 밀고 간다는 점에서 믿음이 갔다. 우울한 판타지에 가까운 그의 시들은 특히 ‘허’나 ‘허기’, ‘죽음’ 등에 예민한 촉수를 대고 있다. “매일 허들을 넘다 실패하는 광대들”처럼 종이상자에 갇혀 누군가의 손길을 기다리는 현대인의 일상은 부단한 실패와 실종을 겪은 자만이 그려낼 수 있는 우리 시대의 음화(陰畵)가 아닐까.” (심사평 중에, 나희덕/안도현)
심사자 명단에 안도현이, 수상자 명단에 류휘석이 새롭게 등장했군요. 재밌는 한해의 기록입니다.
날씨가 많이 덥습니다. 초복입니다. (비올 확률 60%)
2019 서울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작 :
채기성, 앙상블
https://m.seoul.co.kr/news/newsView.php?id=20190101029004
“동시대의 전락 이미지를 중첩적으로 구성한 ‘바나나의 깨달음’에서 아웅이 구체적으로 살아 있는 인물로 그려졌더라면 우리 고민은 더 깊었겠다. 결국 불투명한 타자와 대면하면서 나와 너, 의식과 자기, 자유와 운명, 과거와 현재를 재인식할 수 있는 독특한 렌즈와 더불어 이야기 가치를 제고한 것으로 보이는 ‘앙상블’에 최종적인 눈길을 주기로 했다.” (심사평 중에, 우찬제/권여선)
남녀간의 사랑, 이별만큼 흔한 소재는 없는 것 같습니다. 앞으로의 작품들이 가져야 할 색다른, 참신함 등과 같은 미덕을 계속 강요하게 되는 근본적인 연유죠.
한 편의 애틋함을 전달해줄만한 소설입니다.
오늘도 좋은 하루 되십시오.
2023년 7월 12일 (수)
2020 서울신문 신춘문예 시 당선작 :
이원석, 그림자 숲과 검은 호수
https://www.seoul.co.kr/news/newsView.php?id=20200102043008
"당선작은 ‘접촉경계혼란’이라는 심리적 현상을 숲과 호수의 데칼코마니를 통해 역동적으로 전개하면서 “달리는 덤불” 하나를 눈앞에 보여 준다. 앞으로도 그가 현실과 꿈과 무의식을 유연하게 넘나들며 어떤 새로운 모험의 결과물들을 우리 앞에 부려 놓을지 기대를 갖게 된다." (심사평 중에, 나희덕/안도현)
가장 요즘의 시들과 유사한 '시풍'을 갖는 당선작을 보면서 이게 '심사자들의 취향' 탓이 아닌, 일련의 '경향'이 있음도 간파할 수 있을만한 작품이 아닐까로 보여집니다. (서울신문의 지면에선 유독 잦은 광고들 탓에 가독성이 떨어져 아쉽습니다만)이 '경향'을 어찌 받아들이냐 역시 전적으로 작가들과 독자들의 몫이자 책임이 아닐까로도 생각하는 편입니다.
오늘도 좋은 하루 되십시오.
2020 서울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작 :
전미경, 균열 아카이브즈
https://www.seoul.co.kr/news/newsView.php?id=20200102040001
"당선작은 ‘균열 아카이브즈’이다. 이 작품은 문장과 내레이션과 소재 모두 낯설어서, 초반에는 독특함인지 미숙함인지 판단을 유보할 수밖에 없었다. 카라얀의 마지막 연주 현장에서 일어나는 사건이고 주인공은 그 연주장의 안내인이다. 문장은 문어체 번역투이고 결말 또한 고전 영미소설의 클리셰 느낌이 났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거기에서 오는 긴장이, 에피소드에 그칠 수 있는 단순한 이야기에 무게를 실어주었다. 기침을 막는 목캔디나 동파된 수도관, 라벨의 ‘볼레로’ 등의 디테일도 시스템의 이중성에 대한 폭로라는 메인 서사와 잘 조율되어 있다. 다소 모험적인 선택이라고 생각했지만 낯선 세계를 그려내는 상상력의 패기에 박수를 보내기로 결론을 내렸다. 큰 축하를 보낸다." (심사평 중에, 우찬제/은희경)
2023년 7월 13일 (목)
2021 서울신문 신춘문예 시 당선작 :
김민식, 최초의 충돌
https://www.seoul.co.kr/news/newsView.php?id=20210101032007
"‘최초의 충돌’ 외 두 편은 상상력의 스케일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크고 빛나는 장면을 문장으로 포착해내는 솜씨가 탁월했다.과거와 미래, 현실과 초현실, 미시적인 시각과 거시적인 시각을 넘나드는 화자의 폭넓은 관점, 예언을 떠오르게 하는 언술 방식에서 고요한 카리스마를 느낄 수 있었다.관찰이 곧 발명이 되는 시의 세계에서, 예리한 시선과 명징한 목소리로 고유의 세계를 그려내는 실력에 믿음이 갔다. 긴 논의 끝에 ‘최초의 충돌’ 외 두 편을 당선작으로 뽑았다." (오은/신해욱/박연준)
긴 여름휴가를 앞두고 있습니다.
신춘문예 당선작들을 되짚어보는 이 시리즈도 주말까지의 마무리를 목표로 하겠습니다.
2021 서울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작 :
윤치규, '제주, 애도'
https://m.seoul.co.kr/news/newsView.php?id=20210101029002&cp=seoul
"‘제주, 애도’는 긍정적인 의미에서 교과서적인 작품이었다. 제주의 현재와 과거의 서울이 병치되는 구성도 그렇거니와 이야기의 인물들과 갈등이 선명했다. 탄탄한 문장을 토대로 서사의 리듬을 형성하는 능숙함도 엿보였다. 무엇보다 사고로 남편과 아이를 잃은 인물의 애도를 ‘산뜻하게’ 그려내는 방식이 매력적이었다. (중략)문학 작품에 등수를 매길 수 없다는 말에 다소 어폐가 있다고 여기는 편이지만 본심작에 한해서는 맞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각 작품이 가진 매력들 중 그날 심사장에 모인 사람들에게 조금 더 도드라진 어떤 작품이 선택되는 것이고 무책임하게 들릴 수도 있겠지만 그것은 운이다." (김미정·노태훈·강영숙·김이설·박형서)
2023년 7월 14일 (금)
2022 서울신문 신춘문예 시 당선작 :
이선락, 반려울음
https://m.seoul.co.kr/news/newsView.php?id=20220103037005
“젊음은 젊은 상태, 혹은 젊은 기력을 가리킨다. 젊은 시가 있다면 그 상태를 잊거나 잃지 않고자 기력을 쏟아붓는 시일 것이다. ‘고픔’과 ‘아픔’을 외면하지 않는 시, 질문을 그치지 않는 시일 것이다. 일상의 한 장면에서 지나간 시간을 길어 올리고 작금의 감정을 그 위에 내려놓는 시일 것이다. ‘반려울음’은 쓰면서 고파지는 시, 배가 뱃가죽과 배꼽을 소환하는 시, 마침내 쏟아버리면서 동시에 쏟아지는 시였다. “버썩거리는” 일상을 비집고 다른 존재를 향한 유일한 감정이 솟아오르며 빛나는 시였다. 울음을 껴안으면서 울음과 함께 살겠다고 다짐하는 시였다.” (신해욱/오은/박연준)
2022 서울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작 :
함윤이, 되돌아오는 곰
https://m.seoul.co.kr/news/newsView.php?id=20220103033002
“현실을 반영하고 사회 제반의 여러 요소를 고민하면서 세태의 흐름도 놓치지 않을 수 없는 소설 장르의 경우 특히 지난 2년여의 코로나19 팬데믹이 창작자들을 곤란하게 했던 것 같다.
이를 증명이라도 하듯 가족이나 친구, 연인 등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 ‘돌봄’과 ‘죽음’에 관한 작품이 다수를 이뤘다. 거리를 두고 서로의 눈만을 바라보며 지내는 시절이 길어지면서 소설 역시 다시금 우리가 타인을 어떻게, 얼마나 이해할 수 있는지에 대해 골몰하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심사평 중에)
2023년 7월 15일 (토)
2023 서울신문 신춘문예 시 당선작 :
임후성, 볼트
https://www.seoul.co.kr/news/newsView.php?id=20230102032015
"하늘에 계신 어머니, 아버지 그립습니다. 존경하는 극작가이신 아내 김성민님께 감사드립니다. 당신은 늘 저를 보호하고 삶과 문학을 위한 수공업적 자세를 길러 주셨습니다. 저는 문학과 예술의 동료로서 당신에게 속합니다. 외롭고 높게 인문 연극하는 극단 피오르에 감사드립니다... 당신들은 나의 변증법입니다." (당선소감 중에)
주말, 올해의 신춘문예 당선작입니다.
1968년생... 올해 만55세의 연극 연출자인 당선자가 갖는 거룩함은 이루 형용키 어려운 '시심'을 느끼기에도 충분하였습니다.
신춘문예가 원래 신인들만의 '등용문' 따위가 아닌, "한 해의 전할 말을 제대로 전하는 자리"라는 본연의 위치를 재확인하는 풍경입니다.
모두들 건필하십시오.
2023 서울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작 :
김사사, 체조합시다
https://www.seoul.co.kr/news/newsView.php?id=20230102029012
"새로운 소설가를 세상에 내보이는 신춘문예의 특성을 염두에 둘 때 ‘이후’에 대한 기대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고, 바로 그런 점에서 ‘체조합시다’가 당선작으로 결정될 수 있었다. 이 작품은 작가의 서사적 장악력이 돋보이고 캐릭터들의 매력이나 관계망이 매우 흥미롭지만 소설의 메시지나 주제적 측면에서 모호하다는 지적이 많았다. 또한 기성작가들의 면면이 엿보이는 기시감도 군데군데 드러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작가가 가진 모종의 확신에, 그리고 다음 작품이 보여 줄 가능성에 심사위원들은 과감하게 동의했다. 모쪼록 당선자가 이 기대에 넘치게 부응해 주기를 바란다.소설이라는 서사의 형식에 여전히 애정을 가지고 있는 모든 응모자들에게 감사와 위로의 말씀을 전한다." (심사평 중에)
2023년 7월 17일 (월)
2018 세계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작 :
우남정, 돋보기의 공식
https://m.segye.com/view/20171231001304
“싱싱하고 싱그럽고 신선할 듯한, 새파란 청년 응모자가 줄어드는 추세는 아마도 생존문제가 절박한 ‘77만원 세대’에게 시가 사치여서가 아닐까. 문학에 뜻이 있었으나 생활에 쫓겨 ‘습작 단절’ 시기를 가졌다가 다시금 문학을 시작하는 이들이 많아진 것 같다. 그대로 묻혔으면 아까울 재능을 발굴한 듯한 즐거움이 각별하다.” (심사평 중에)
새로운 한주, 세계일보 신춘문예 역대 당선작들을 둘러볼 시간입니다. 다음주까지로 해 한국일보를 마저 훑게 되면 중앙일간지들은 모두 다 바라본 셈이 될 테죠.남은 시간들도 나름대로의 의미를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2018 세계일보 신춘문예 소설 당선작 :
도재경, 피에카르스키를 찾아서
https://m.segye.com/view/20171231001300
“당선작 ‘피에카르키스를 찾아서’는 주인공이 제작한 다큐멘터리 ‘긴 벽’이 담고 있는 ‘과거’와 의혹에 가득 찬 피에카르스키라는 인물의 족적을 더듬어 나가는 ‘현재’를 하나로 교직해 나간다. ‘기억’이라는 주제는 참혹한 과거사를 가진 우리뿐이 아니라 인류의 주제로 현재진행형이 되어 온 지 오래다. 이 작품 역시 기억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오늘의 이 재난의 세상에서 결코 잃어버릴 수 없는 꿈을 찾아서 가는, 아름다운 작품이다.곳곳에서 빛을 발하는 정확하고 유려한 문장과 함께 이야기를 침착하게 풀어나간 서술력도 돋보인다. 대화와 지문을 아름답고 간결하게 연결하는 수법에서도 유연하다. 이런 것들이 세련된 문장과 함께 그동안 각고의 수련과정이 있었음을 짐작하게 한다.” (심사평 중에)
2023년 7월 18일 (화)
2019 세계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작 :
박신우, 역대 가장 작은 별이 발견되다
https://m.segye.com/view/20181231002629
"심사자들은 상당한 시간 동안 양자의 장단점을 진지하게 비교 검토하였다. 「풍선론」은 이미지도 분명하고 시적 언어도 안정된 모습을 보여 주었으며 「역대 가장 작은 별이 발견되다」는 옥탑방의 화자를 통해 발견이라는 새로움을 무리 없이 전개하고 있었다. 먼저 시적 완성도라는 점에서는 「풍선론」이 앞서 있었으나 그로 인해 발전 가능성은 작아 보였고 마지막 결말의 처리가 추상적이었다. 「역대 가장 작은 별이 발견되다」는 완성도가 상대적으로 미진한 대신 참신성이나 발전 가능성은 더 높게 보였다. 여기서 심사위원들은 숙고의 과정을 거쳐 신춘문예 본래의 기능이라고 할 수 있는 참신성을 더 높이 평가하기로 하고 「역대 가장 작은 별이 발견되다」를 당선작으로 결정하였다." (심사평 중에)
2019 세계일보 신춘문예 소설 당선작 :
이한슬, 어떤 사이
https://m.segye.com/view/20181231002638
"소설을 쓰는 사람은 알 것이다. 소설은 내용이 형식을 만나는 지점에서 시작된다는 사실을. 그런 의미에서 ‘어떤 사이’의 첫 문장―루에게 먼저 살자고 한 건 그녀였다―은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제대로 된 점화이다. 엄마의 빈자리에 루를 끌어들이면서 소설의 구조를 얻은 것이다. 개인적인 독립성과 자율성을 지키는 경계와, 필요가 충족되고 친밀함이 유지되면서 침범하지 않는 관계의 거리, 그 사이 어딘가에서 영원히 엄마를 놓쳐버린 상실과 애도를 섬세하고 정교하며 때론 날카롭기도 한 구도 속에서 잔잔하게 그려냈다. 침묵이 만드는 여백과 관계에 대한 다양한 성찰 속에서 인간의 체온과 삶의 풍경이 은은하게 배어나오는 깊고 안정된 작품이다." (심사평 중에)
2023년 7월 19일 (수)
2020 세계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작 :
김지오, 오른쪽 주머니에 사탕 있는 남자 찾기
https://m.segye.com/view/20191223516324
“상당한 논의 끝에 김지오의 ‘오른쪽 주머니에 사탕 있는 남자 찾기’를 당선작으로 한 이유는 대화체, 소설화법을 활용한 내용 전개의 신선감 때문이었다.
자칫하면 외설스럽게 읽힐 수도 있는 한 남자의 호주머니 속 심벌을 화두로 내세워 사탕·사랑·꽃의 의미로 발전적으로 승화시키는 시적 능력이 예사롭지 않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어머, 꽃 피우는 당신, 마법사였군요” 같은 마지막 부분의 발랄한 표현이 이를 증명할 것으로 본다. 당선자에게 축하의 박수를 보내드리고 아깝게 탈락한 분들에게는 격려의 말씀을 전해드린다.” (심사평 중에)
2020 세계일보 신춘문예 소설 당선작 :
정무늬, ‘터널, 왈라의 노래’
https://m.segye.com/view/20191223516321
“당선이 나를 단박에 아무것으로 만들어 주리라곤 믿지 않는다. 머리 쥐어뜯는 것도 순서가 있고, 분노를 토할 때도 나름의 음계가 있는 법이다. 주량이 늘고 주사가 느는 동안 수도 없이 더듬던 나를 모르랴. 당선 소식을 접한 지금, 깃털 하나를 주운 기분이다. 빠진 것인지 돋은 것인지 알 수 없다. 알고 싶지도 않다. 단지 조금 조급해진다.아무것도 아닌 것으로서 즐기던 나태함을 반납할 때가 왔다.부족한 글의 어깨를 두드려주신 심사위원 선생님들께 감사드린다. 구르는 것을 멈추지 않는, 굵고 알찬 돌멩이가 될 것 역시 약속드린다.” (당선소감 중에)
2023년 7월 20일 (목)
2021 세계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작 :
변혜지, 언더독 / 한준석, 돌고래 기르기
https://m.segye.com/view/20201223519685
"저마다 고립된 외딴섬처럼 단절과 멈춤이 뼈저렸고, 과연 우리가 우리를 위기에서 구할 수 있을까, 물음만으로도 버겁고 지난했던 시기. 예심을 거친 스물다섯 분의 시편들이 공통적으로 시절의 무력감에 대응하며 상처와 아픔을 치유코자 대변하고 있었으니, 왜 문학이 우리에게 커다란 위안을 안기며 시대의 가늠자 역할을 자임하는지 여실히 실감케 했다." (심사평 중에)
일전에 당선 외에도 가작, 장려 등으로 등단의 관문을 '합리화'할 필요가 있겠다는 주장을 편 적이 있습니다. 이 해에 '가작'으로 등단한 두 시인 역시 그 말을 증명해야 할 시기가 아닐까 하는 생각부터 드네요. 휴가관계로 좀 늦어졌지만 올려드립니다.
2021 세계일보 신춘문예 소설 당선작 :
남현지, 그때 나는
https://m.segye.com/view/20201223519677
"오랜 시간, 나는 아무도 읽지 않는 소설을 써 왔다.소설을 쓰는 시간은 소설만을 생각했던 시간이며 그래서 나를 생각하지 않는 시간이기도 했다. 어렵고 힘든 시간이었지만 그보다는 기쁨이 더 큰 시간이었다. 알 수 없는 힘에 이끌려 무언가를 써 내는, 신비롭고 불가해한 시간. 나는 그 시간이 좋았다.그러나 소설을 다 쓰고 나면 나는 무력해졌다.왜 나는 아무도 읽지 않는 소설을 계속 쓰고 있는가?누구도 답을 주지 않았고 스스로 답을 찾지도 못했다.포기라는 말을 몇 번이고 노트에 썼다. 그러나 그다음이 떠오르지 않았다.포기 이후. 그다음의 삶. 없는. 나에게는 없을 삶.그러니 나는 계속 쓰는 수밖에 없었다." (당선소감 중에)
2023년 7월 23일 (일)
2022 세계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작 :
이신율리, 비 오는 날의 스페인
https://m.segye.com/view/20211220518435
"이신율리씨의 ‘비 오는 날의 스페인’은, 비가 내리는 풍경 속에서 구성해가는 사람살이의 외관과 생태와 속성이 인생론적 깊이를 함축하고 있는 수작이다. 그 안에는 음식들에 관한 숱한 기억의 구체성과 함께, 스페인보다 더 멀리 떨어져 있어도 더 멀리 떠나 있어도 좋을 사랑과 불꽃과 시간이 아름답게 펼쳐져 있다. 수없는 ‘사이’에서 벌어지는 생의 파노라마가 환상성과 역동성을 함께 거느리면서 그림처럼 사진처럼 다가온 선물이자 이벤트였다. 더욱 성숙한 시편으로 세계일보 신춘문예의 위상을 높여주기 바란다." (심사평 중에)
2022 세계일보 신춘문예 소설 당선작 :
박민경, 살아있는 당신의 밤
https://m.segye.com/view/20211220518437
"‘살아있는 당신의 밤’은 유려한 문장, 세밀한 묘사, 문명과 원시의 조화, 기억과 현재를 오가는 구성, 환상으로 매듭지은 결말 등 다채로운 미덕을 갖춘 작품이다.‘무제’라는 제목으로 숲과 나무와 동물들을 찍던 옛애인과의 기억을 생생하게 서술하는 한편 결혼식을 앞둔 현재의 상황은 매우 무덤덤하게 그려내는 방식으로 이 작가는 꿈과 현실의 괴리를 적절하게 짚어내는 데 성공했다. (이 부분을 일러 한 심사위원은 그게 생활이지, 라고 말했다), 죽은 옛애인의 흔적을 좇아 문장대에 오르는 장면도 좋았고 꿈인 듯 현실인 듯 하얀 새가 등장하는 장면도 주제를 형상화하기에 적절한 방식이었다. 환상성의 여운을 좀더 길게 끌 수 있도록 처리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점은 아쉬움으로 남았으나 이를 상쇄할 만큼 진중한, 내공이 느껴지는 소설이었다." (심사평 중에)
2023 세계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작 :
민소연, 드라이아이스 - 결혼기념일
https://m.segye.com/view/20221221518969
"당선작으로 선정된 민소연씨의 ‘드라이아이스’는 전언의 구체성과 표현의 개성, 착상과 비유의 구현 과정이 매우 안정된 역량을 보여주었다고 평가되었다. 특별히 드라이아이스가 가진 물리적 속성과 사랑의 제도적 결실인 결혼의 상징적 속성을 연동하면서 펼쳐낸 희뿌옇고 서늘한 감각이 탁월하게 다가왔다. “영원한 타인”과 살갗이 들러붙는 과정을 발견한 순간이야말로 ‘결혼기념일’의 가장 큰 페이소스이자 빛나는 선물이 아닌가 생각되었다." (심사평 중에)
2023 세계일보 신춘문예 소설 당선작 :
하가람, 수박
https://m.segye.com/view/20221226516244
"이 소설에서 ‘아무것도 아닌’ 여름 한 철의 과일인 수박에 대한 새로운 시선과 독창적인 사유로 이야기를 흥미롭게 펼쳐내는 작가의 역량에 신뢰가 갔다. 여름이라는 계절과 흐르는 시간과 지루한 삶이 사물들 사이의 숨겨진 유사성을 통해 하나의 형태를 갖추는 작품이 되는 과정을 잘 그려냈다. 르네 마그리트의 ‘지는 저녁’이라는 초현실주의 작품을 말미에 소개하면서 독자들에게 풍부한 해석의 가능성을 열어둔 것도 좋았다. 기존소설의 고정관념이나 문법을 배반하는 신인의 패기 있는 철학적 탐구가 돋보여서 당선작으로 선정하게 되었다. 당선자의 앞날에 큰 격려와 축하의 박수를 드린다." (심사평 중에)
P.S. 함께 읽어두기,
http://nzine.kpipa.or.kr/sub/coverstory.php?ptype=view&idx=550&page=$page&code=coverstory
2023년 7월 24일 (월)
2018 한국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작 :
이원하, 제주에서 혼자 살고 술은 약해요
https://m.hankookilbo.com/News/Read/201801010485319124
"무엇보다 '내'가 있는 시였다. 시라는 고정관념을 발로 차는 시였다. 시라는 그 어떤 강박 속에 도통 웅크려본 적이 없는 시였다. 어쨌거나 읽는 이들을 환히 웃게 하는 시였다. 웃는 우리로 하여금 저마다 예쁜 얼굴을 가져보게도 만드는 시였다. 그 어떤 이견 없이 심사위원 모두의 의견이 한데 모아진 데서 오는 즐거운 불안 말고는 아낄 박수와 격려가 없는 시였다. 앞으로 '제주에 사는 웃기고 이상한 사람'의 유쾌한 행보를 설렘으로 좇아볼 예정이다. 건필을 빈다." (심사평 중에, 박상순/손택수/김민정)
중앙일간지 역대 신춘문예 당선작들을 톺아보는 맨 마지막 주, 가나다 순에 따른 맨 마지막 순번은 한국일보입니다. (총 84회차 중 이번이 73회째네요... 어느덧 종착역이 꽤 가까워졌습니다.)
2018 한국일보 신춘문예 소설 당선작 :
김수온, ( )
https://m.hankookilbo.com/News/Read/201801010432326699
"결정적인 사건은 없지만 환상적인 이미지와 소설을 지배하는 아득한 슬픔의 정조는 투명한 감각을 선사했다. 2000년대 이후 등장한 젊은 작가들의 감성과 상상력을 연상시키는 것은 아쉬움이었지만, 이런 문장을 무기로 가지고 있다면 글쓰기의 도약은 충분할 것이라는 믿음을 주었다. 사라지는 것들에 대한 애도로서의 괄호의 상상력은 종말론적인 비전으로 확장되고, 결국 수채화로 그린 듯한 묵시록의 이미지를 남겨 놓는다. 단편에서 중요한 것은 글쓰기의 자유도를 소설의 평균적인 완성도라는 잣대를 무화시키는 데까지 끌어 올릴 수 있는가 하는 점, 결점조차 소설의 다른 가능성이라는 것을 독자에게 설득시킬 수 있는가 하는 점이기 때문이다. 모든 글 쓰는 자들의 건투를 빈다." (심사평 중에, 이광호/은희경)
2019 한국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작 :
노혜진, 엄마는 저렇게 걸어오지 않는다
https://m.hankookilbo.com/News/Read/201812261551318136
"요즘 시가 시답지 않게 길다, 최근 시는 언어를 정제하지 못한다, 산문시의 경향이 한국시를 망친다 등등. 그런데 과연 그러한가? 그렇게 쉽게 말할 수 있는 일인가? 노혜진의 시는 분명하게 아니라고 답하는 듯하다. 가령 “여성이 되기 위해 꽃을 사들이고 무늬를 사들입니다 우리는 부분적으로 우아합니다”라는 다소 소설적인 문장은 시에 대한 평균적인 인식에 비해 길게 나열된 ‘엄마’의 특정되지 않은 성격으로 인해 그 의미가 넓어진다. 그렇게 우아해진 부분 외 나머지 것들을 더 궁금하게 한다. 나는 이런 전개를 시적이라 부르지 않을 자신이 없다." (심사평 중에, 김민정/황인숙/서효인)
2019 한국일보 신춘문예 소설 당선작 :
전예진, 어느 날 거위가
https://m.hankookilbo.com/News/Read/201812261574754602
"‘어느 날 거위가’는 좀 특이한 소설이었다. 기발한 상상력이 바탕이 되고 있지만, 이 소설을 이루고 있는 주된 정조는 차분하고 현실적이며, 때로는 섬뜩했다. 소설 속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차분하지만 날카롭게, 위트있지만 시니컬하게 서술하는 균형감 있는 전개 방식은 결국 심사위원들이 이 소설의 손을 들게 만들었다. 단단하게 두 발을 땅에 딛고 있는 듯한 안정감을 주면서도 읽는 사람을 매혹시키는 힘이 있었다. 사족이지만, 심사를 하면서 느낀 것은 이 세상의 많은 사람들이 어디선가 여전히 자신의 이야기를 쓰기 위해 각양각색의 방식으로 고군분투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의미없는 말일지 모르겠지만, 최종심에 오르신 분들이 고군분투를 멈추지 않아 주시기를, 진심으로 바라고 있다." (은희경/백가흠/손보미/이광호/신수정)
2020 한국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작 :
차도하, 침착하게 사랑하기
https://m.hankookilbo.com/News/Read/201912241162768739
"다락방에 몇 년은 묵힌 것 같은 누르스름한 종이에 볼펜으로 눌러쓴 시가 있었다. 잘 풀리지 않는 가정사의 고달픔과 그럼에도 살고자 하는 의지를 쓴 것이었는데, 시보다는 일기에 가까웠다. 당연히 박스에 다시 들어갈 원고였지만 어쩐지 들여다보게 되는 것이다. 시가 되든 안 되든 쓴다는 행위의 거룩한 순간을 가늠해보는 것이다. 그 중에 함부로 대할 수 있는 순간은 없을 것이다. 이번 신춘문예에 시를 보낸 모든 이들이 이미 시인이라 믿는다. 그분 중에서 한 명의 시인을 공식적으로 호명할 수 있어 두렵고 영광이다. 안타깝고 기쁘다." (심사평 중에)
이제 이틀의 휴가만을 남겨둔 시점이라서 부득불 세 해의 당선작들을 한꺼번에 좀 올려놓습니다.
내일까지로 해서 신춘문예는 곧 마무리하려 합니다.
2020 한국일보 신춘문예 소설 당선작 :
신종원, 전자 시대의 아리아
https://m.hankookilbo.com/News/Read/201912241170357779
"먼저 언급한 두 작품이 중심에서 비켜나 주로 주변과 공백으로 채워진 서사였다면, ‘전자 시대의 아리아’는 정확히 그 반대편에 놓여 있었다. 특히 소설 속의 공간을 설계하고 구축하는 과정이 대단히 정교했는데, 단단하게 쌓아올린 이 세계를 허투루 다루는 장면이 거의 없을 정도였다. 요컨대, 음성신호를 재현해내는 낯선 방식이나 파편화된 이미지들은 모호하게 처리되기보다는 그 자체로 “변질”과 “왜곡”에 대한 작가의 의도를 더욱 선명하게 드러내주고 있다." (심사평 중에)
2023년 7월 25일 (화)
2021 한국일보 신춘문예 소설 당선작 :
강보라, 티니안에서
https://m.hankookilbo.com/News/Read/A2020122213120005364
"중학생 때 이들은 몸을 함부로 굴리는 여자애들이라는 의미로 ‘걸레’라고 불리며 괴롭힘을 당한 적이 있었던 것이다. 그러니까 작가는 여행 내내 백인 남성들과 거리낌없이 어울려 노는 수혜의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독자들에게 ‘지금 당신은 이 여성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가?’ 질문하고, 혹시라도 그 대답이 이 인물들이 받았던 그 폭력적 시선에 닿아 있지는 않은지 되짚어보게 만드는 구조로 소설을 만들어낸 것이다.
분명한 질문과 함께, 태평양 전쟁의 흔적이 남아 있는 섬을 배경으로 과거의 무게에 사로잡히지 않는 인물들을 그려냈다는 점 역시 이 작가가 앞으로 써낼 이야기들을 궁금하게 만들었다." (심사평 중에)
2021 한국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작 :
신이인, 작명소가 없는 마을의 밤에
https://m.hankookilbo.com/News/Read/A2020122214390002255
"심사에서는 완벽한 관리자와 특별한 난동꾼 중 하나라도 그 자리에서 나오길 바라게 된다. 관리자이면서 난동꾼이 될 수 있는 시인이 등장하길 차마 바랄 수는 없다. 그런 일은 잘 없으니까. 그 어려운 일이 올해 한국일보 신춘문예에서 일어났다. '작명소가 없는 마을의 밤'은 정돈되면서 어질러진 시였다. 익숙한 지명을 동원하고 친숙한 어투로 말을 건네어 귀를 붙잡아 두면서도 “안에도 밖에도 속하지 못한/ 실오라기” 같은 긴장감을 불러일으킨다. 정리된 채 구성된 이미지 속에서도 곳곳에 돌출하는 의외성이 시 읽는 재미를 더해 주었다. 지금의 시만큼 앞으로의 시 또한 기대된다. 기대하는 자의 설렘을 담아, 축하의 마음을 전한다." (심사평 중에)
2022 한국일보 신춘문예 소설 당선작 :
남궁순금, 바둑 두는 여자
https://m.hankookilbo.com/News/Read/A2021122314300001473
"대유행병이 창궐한 사회는 인력 대신 척력으로 유지된다. 강제로 격리된 인간은 낯선 고독을 견디기 위해 고양이와 죽은 친구와 도망친 어머니와 이주 노동자, 편의점과 게임방과 반지하방과 우주선을 중얼거린다. 기억과 상처, 상실에 대한 사족은 넘치지만 관계와 욕망, 전망에 대한 징후는 희미하다. 말하기의 절반은 듣기일 텐데, 자신의 이야기를 듣는 타인을 명확히 상상하지 못해 결말은 어색해지고 말았다. 육화되지 않은 상상력은 손에 움켜쥔 모래와 같다." (심사평 중에)
2022 한국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작 :
오산하, 시드볼트
https://m.hankookilbo.com/News/Read/A2021122314130005262
"본 심사평은 시의 어디어디가 부족하다는 식의 충고를 담고 있지 않다. 자기 작품에 관한 엄혹한 평가를 원하는 분도 있겠고, 적절한 지적은 실제로 창작과 퇴고에 도움이 된다. 다만 투고자에게 필요한 건 비판보다 응원이라고 믿는다. 계속 시를 써도 좋다, 이런 말을 누가 해주었으면 하고 바랐던 날이 내게도 있었다. 시가 나를 부른 적도 없고, 그래서 나 없이도 시가 행복하게 잘 사는 것 같아 싫고 무서웠다. 이번 심사평을 통해 당신들 없이는 우리 시가 별로 안녕하지 못하리라는 예견과 확신을 전하고 싶다." (심사평 중에)
2023 한국일보 신춘문예 소설 당선작 :
전지영, 난간에 부딪힌 비가 집안으로 들이쳤지만
https://m.hankookilbo.com/News/Read/A2022122713050000281
"잘 알려진 격언대로 이 소설에 등장하는 ‘총’ 역시 결국 격발되고야 마는데, 탄탄한 구성을 바탕으로 서사의 굴곡과 긴장감을 조성하는 솜씨가 뛰어났다. 더구나 두 인물의 비극적인 사연에서 주목하게 되는 증오와 죄책감이라는 감정이 말미에 이르러 더욱 단단해지거나 단숨에 해소되는 것이 아니라, 고작 견디고 버티는 쪽으로 나아간다는 점이 인상 깊었다. 집 안으로 빗물이 들이치는 순간이 아니라, 제목이 암시하는 바대로 그 이후에 계속되는 생활을 그리고 있는 이 작가의 신중하고 성숙한 시선으로부터 비롯된 결말이었다. 무엇보다 증오와 죄책감을 혐오와 경멸이 대신하지 못하도록 애쓰는 노력에 대해, 그런 마음에 지고 싶지 않은 그 맹렬함에 지지를 보낸다." (심사평 중에)
2023 한국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작 :
이예진, 나의 마을이 설원이 되는 동안
https://m.hankookilbo.com/News/Read/A2022122711280001909
"시와 문학은 현실을 위해 존재하지 않는다. 순하게 응하는 법이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반하는 일에만 복무하는 것도 아니다. 다만 살아가며 여전히 읽고 쓰는 일만 우리에게 남을 것이다. 낙선한 분들에게 마음을 다해 위로를 전하고 싶다. 아직 말해지지 않은 시와 살아낼 시간들을 열렬히 응원하는 마음도 함께.
우리는 또 어떤 새로운 시간을 마주하게 될까. 불안전하고 불완전한 세계에서 얼마나 많은 의심을 품어야 할까. 그러면서도 어떤 온전한 미감에 깨어지지 않을 삶을 기대야 하겠지. ‘신춘문예’. 계절만 벌써 새봄이다." (심사평 중에)
박준 시인의 심사평을 끝으로 신춘문예 시리즈를 마감합니다. 또 올해의 신춘문예를 기약하면서...
2023년 7월 26일 (수)
2017년 제36회 김수영문학상 수상작 :
문보영, "책기둥" (민음, 2017)
https://m.blog.naver.com/minumworld/221128586015
이른바 '문학도'들에겐 총 3회의 관문이 기다리고 있다고들 하죠, 그 첫째는 수십/수백대 일의 경쟁률을 뚫고 문창과 또 문과대 등을 포함한 '진학'의 문제요 둘째는 훨씬 더 높고 어려운 관문인 수천대 일의 경쟁률 속에서 당선 또는 입상을 통해 이루게 될 '등단'의 절차입니다.
맨 마지막으로는, 굳이 전공을 않더라도 또 어쩌면 등단을 하지 않아도 될 '작가'의 길에서, 영원히 갖게 될 꿈 내지 목표가 될 '문학성' 자체라고 볼 수가 있겠죠. (물론 "베스트셀러"는 별개로 전적인 '경제'의 문제이기도 해요.)
한해에만 대략 삼천여 권의 시집들이 출간되고 그들 중 단 한 명에게만 수여되는 문학상의 가치와 위상은 그래서 가장 높은 주목도를 갖습니다. 역대 신춘문예에 이어 국내 주요 문학상들의 궤적을 살펴보겠습니다. ;
책기둥
도서관에 간다. 밖에서 볼 땐 가로로 긴 직사각형이나 들어가면 첨탑이다. 높은 벽은 거대한 스테인드글라스 창을 달았다. 너무 큰 창은 벽을 약하게 하며 창은 지나가는 것을 모두 수긍해 버린다는 나의 생각이 들렸다고, 도서관 사서인 에드몽 자베스는 말한다.
에드몽이 쓴 글라스의 왼쪽 알에 달린 얇은 줄이 어깨까지 드리운다. 이곳은 천장이 아주 높다, 생각하자 책을 높이 쌓아야 하니까, 에드몽이 대답한다. 그는 램프의 뚜껑을 열어 기름을 채운 뒤 촛불을 켠다.
서가에는 책만이 있다. 책은 기둥 모양으로 쌓여 있다. 그 주변을 난쟁이들이 서성인다. 난쟁이들은 허리를 굽히고 고개를 가로로 비틀어 책의 제목을 살핀다. 책기둥의 가장 아래쪽을 살핀다. 읽고 싶은 책은 늘 기둥의 가장 아래쪽에 있다. 나는 읽고 싶은 책을 머릿속으로 떠올린다. 그러자 그 책은 기둥의 가장 아래에 위치한다.
책기둥들은 어디론가 기울었다. 나는 기울어진 건물을 떠올린다. 피사의 사탑과 같이 똑바로 서지 못한 것들에 사람들은 환호한다. 언제 쓰러질지 모르는 것이 주는 감동은 책기둥이 주는 그것과 유사하다. 기우는 것은 어디론가 편향되니까. 심장은 왼쪽으로, 간은 오른쪽으로 치우쳐 있으므로 사람은 똑바로 걷는다. 기울어진 건물은 내부에 벽으로 치우쳐 자는 사람을 기른다, 는 내 생각을 읽은 에드몽이 나 대신 내 생각을 말한다.
그는 지팡이로 바닥에 널브러진 장서들을 옆으로 치우며 길을 만든다. 이따금 난쟁이들의 숱 없는 작은 머리를 지팡이로 내려친다. 난쟁이들이 독서에 집중하지 않아서, 라고 말하는 그는, 책기둥에 등을 대고 앉아 책에 푹 빠진 난쟁이들만을 골라 때린다.
난쟁이들이 책기둥을 무너뜨리고 원하는 책을 얻는다. 다시 기둥을 쌓는다. 난쟁이들은 책을 때리고 책을 향해 침을 뱉고 욕설을 퍼붓는다. 그럴 만도 하다, 고 나는 생각한다. 책은 무례하니까. 책은 사랑을 앗아 가며 어디론가 사람을 치우치게 하니까. 벽만 바라봐서 벽을 약하게 만드니까. 벽에 창문을 뚫고 기어이 바깥을 넘보게 만드니까.
난쟁이들은 맨 아래 깔린 책을 얻기 위해 기둥을 무너뜨린다. 책은 쌓여 기둥이 된다. 기운다. 치우친다. 쏟아진다. 다시 쌓인다. 맨 아래 깔린 책을 읽으면 그 위에 쌓인 모든 책을 다 읽은 거나 다름없다고, 그 한 권의 책은 그 위에 쌓인 책들을 집약한다, 는 나의 생각이 안일하다고 에드몽은 꾸짖는다. 햇살이, 몇 가닥 되지 않는 얇고 구불구불한 난쟁이들의 머리칼에서 반짝인다. 빛이 그들의 오래된 생각을 때린다. 난쟁이들은 이제 지친 게 아니겠느냐고 생각하는 내가 아직 책을 덜 읽었다, 고 에드몽이 말한다.
문보영, "책기둥" (민음, 2017)
https://m.blog.naver.com/demain10/222259581870
2018년 제37회 김수영문학상 수상작 :
이소호, "캣콜링" (민음, 2018)
https://m.blog.naver.com/minumworld/221392056945
2014년에 <현대시> 신인상을 통해 등단한 이소호 시인은 서른 살이 되던 2018년에야 이 상을 수상하면서 비로소 첫 시집을 내놓습니다. (사실 대부분의 등단 시인들이 데뷔 후 그 정도 기간이 걸린다는 통계에 비추면 그리 늦은 편도 아니었고요. 다만 오로지 '등단'만을 목표로 해서는 정작 가장 중요한 목표일 '출간'까지의 험난한 과정이 도사리고 있음을 너무 쉽게 간과할 수도 있겠어서 이 우울한 통계를 미리 주지시켜둘 뿐이지만요.)
상당히 도발적인 내용을 담은 데뷔시집은 출간 직후부터 큰 반향을 일으켰던 기억도 납니다. 더구나 국내에서도 크게 일어난 '페미니즘' 열풍 탓에 이 시집 역시 그 도그마에서 크게 자유롭진 못할 수밖에 없는 형편이었죠... 다분히 비슷한 맥락을 갖고 읽게 되는 불편한 독서, 그 맞은편에 훤히 드러난 남한 사회의 가부장제 질서를 날세워 증명할 뿐입니다.
개인적으로, 똑같은 생각과 고민을 갖더라도 조금은 덜 충격적이고 덜 공격적인 어투 또한 필요해진 시대는 아닐까를 감히 제안해봅니다만... 그런 수법이 도통 먹혀들 일 없는 공고한 기득권 앞에서는, 안타깝지만, 그저 무력감일 뿐인 아주 "나이브"한 발상일 뿐인지도 모르겠습니다. ;
캣콜링
헤이뷰티풀 순백의 빅토리아 스키릿 이매진 웨얼아유고일 허밍으로 돈츄스피크잉글리쉬 침 튀기는 안초비 프린스 두유해브타임 개들이 살 비비는 센트럴 파크 따발총 칭챙총 호퍼의 창문 하루 종일 키스미 미트볼 뚱뚱한 금용일 고져스 에이비씨 애비뉴 전깃줄에 묶인 발레리나 행아웃위드미 한밤중의 컴히얼 망아지 산책 교실 인용구로 남은 스마일걸 아유얼론 뒤뚱뒤뚱 섬마을의 소낙비 드링크위드미 계단 위의 미로 허드슨 리버 가운데 굶주린 바케쓰 왓츠유얼폰넘버 소호 허니 도살장 나이스바디 플라타너스 아이러브 교회 탑 사방의 호각소리 마이럽 엉킨 바지를 벗었다 룩앳미 여러 켤레의 히치하이커 헤이 헤이룩앳미 젖은 레코드판 빈티지 미녀 룩앳미걸 두유워너퍽 수수깡으로 지은 경찰청 헬로헬로 종이컵 속에서 짤랑짤랑 우는 치나 오솔길 지름길 아유이그노잉미 낯선 몸과 학교로 가고 구석에서 조는 퍼킹비취 엄마 괜찮아요 잘 살고 있어요 행복해요 그사이 나의 소원은 고백투유어컨트리
이소호, "캣콜링" (민음, 2018)
2023년 7월 27일 (목)
2019년 제38회 김수영문학상 수상작 :
권박, "이해할 차례이다" (민음, 2019)
https://blog.naver.com/minumworld/221706667333
사실 김수영문학상은 갓 등단한 신인부터 데뷔 10년차 미만, 대개는 3~5년차 수준의 젊은 '주니어 그룹'만을 대상으로 한다는 점에서 예전에 함께 있었던 문학상들 중에는 '오늘의 작가상'과도 성격이 꽤 유사한 편입니다. (이제는 폐지된 '오늘의 작가상'과 가장 닮은 편인 게 문학동네에서 주관하고 있는 '젊은작가상'이기도 하죠.) 더구나 요즘의 시단에서는 '등단'이라는 높은 벽 또한 여러 문제들을 노정해온 탓에 지난 2006년부터는 아예 미등단 작가들까지도 함께 대상으로 포함하고 있는 유일한 문학상입니다.
다른 수상작들과는 달리 '표제작'이 아닌 시집 제목을 달고 출간한 첫 시집에서 권박 시인의 눈에 띄는 특징 중 하나는 엄청난 주석의 활용인데요, 이는 지난 1980년대의 일부 시들에서도 활용된 장치였기도 하죠. "할 말이 없다"던 시에서 맨 끝에 빼곡하게 써놓은 주석들을 보면서 어떤 분은 '뺨을 맞았다'고까지 일갈할 정도였는데요... 아무튼 독특하면서도 꽤 오랜 '전통'을 갖는 구석입니다. 오늘은 수상작들 중 그 '표제작'에 해당되는 '마구마구 피뢰침'을 한번 읽겠습니다. ;
마구마구 피뢰침
메리 울스턴크래프트 고드윈 셸리(들)에게1)2)3)4)
기상관측소
이번에는 기상관측소입니까?5)
기상관측소는 신의 의도를 기록한 책6)이기 때문입니다.
이번에는 벼락을 꽉 붙잡고 있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7)
짜깁기한 197개의 심장에,8) 나의 뇌를 피뢰침 삼아,9) 다시 벼락을 덧대어, 처음의 흉측함과 만난다면, 흉측함의 흉측함으로써,
묻겠습니다.
"아직도 공동체의 완성은 보호받는 여자인데 어떻게 해야 합니까?"
공동체의 (미)완성
천사는 집 안에만 있어야 하는데,10)
악마도 집 안에만 있어야 했는데,11)
집 안에 있는 천사는 왜 집 밖으로 나가면 천사가 아니게 되는 겁니까?
집 안에 있는 악마는 왜 집 밖으로 나가면 더 끔찍한 악마가 되는 겁니까?
형평성이 탄생했습니다.
비극 ː 형평성의 탄생
그리하여 나의 책에는 비극이 형평성의 탄생이란 의미로 쓰여 있습니다.
유해한 여성이 만들어졌기 때문에 유해한 남성도 만들어진 것 아니겠습니까?12)
대화를 나눕시다.
나는 나 이외의 사람과 대화를 나눈 적이 없으므로,
대화를 나눕시다.
당신은 한 번도 나와 대화를 나누려 하지 않았으므로,
대화를 나눕시다.
그런데 대화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대화¹ ː 플라스틱이거나 새벽의 벤치이거나 북동부 외곽에서 발견된 덫이거나
대화² ː 거절¹
거절² ː 뺨!
거절³ ː 세련된 방식의 삿대질
이번에도 벼락을 꽉 붙잡고 있을 수 없었습니다.
나는 아직 내 이름조차 제대로 짓지 못했으므로 피뢰침 위에 걸려 있는 헐렁한 살 껍데기를 걷어온 뒤,13)
이번에는 기상관측소에서 관측된 "새로운 흉측함"14)을 따라가 붙잡겠습니다. "새로운 흉측함"을 붙잡고, 흉측함의 흉측함으로써,
조언하겠습니다.
이름이 없는 사람은 말이 없는 사람이어야 한다는 편견이 대화를 거절한다면, 편견의 노예에게, 편견은 편견이 없다는 편견에게,
똑같은 방식으로, 삿대질하라고!
"나에 대해 묻는 나는 왜 괴물입니까?"
그러니까, 왜, 나는 없는 이름입니까?
나는 낮 없는 밤입니다.
밤을 찢으면 낮입니까?
밤입니까?
뺨입니다.
뺨! 한 뼘 한 뼘, 짜깁기한, 후려치면, 팽그르르,
동서남북 마구마구 도는 나침반 같은, 뺨, 순간,
튀어나온, 핏줄과 핏줄로 뜬, 혓바닥들, 눈동자들,
선을 긋지 말아 주시겠습니까?
혓바닥들,
눈동자들,
한뼘한뼘,
믹서기에 넣고 돌리겠습니다.15)
내가 만든
벼락소리
들으며
돌리며
나는 마구마구 피뢰침입니다.
완벽하게 뒤틀린 얼굴입니다.
일부러 부러뜨린 갈비뼈인 나는
빨강을 6이라고 6을 무덤이라고
말하겠습니다.
"순진한 척해야 하는 건 질렸다."고.
"불순한 척해야 하는 건 질렸다."고.
무덤의 식물성으로 무덤의 독백으로 무덤의 침착함으로 악착같이
"경멸하겠다."고 말하겠습니다.
경멸은 냉혹해서 낭만적이므로
낭만적으로
흉측함으로
관통하고 싶습니다.
피를 뿌리겠습니다!
피의 책
그리하여 벼락에 맞고 맞아 수많은 못이 박혀 있는 200개의 심장이 짜깁기될 수 있었습니다.16) 살아남은 나의 뇌를 피뢰침 삼아, 다시 벼락을 덧대겠습니다.
이번에는 택배사무소입니다.
아직도 남자의 이름으로 살고 있는 여자들을 위해,17) 명명할 수 없는 것을 이름 짓는 이 이름 없는 방식으로18) 짜깁기된 201개의 심장을 보내 드리겠습니다. 아름답지 않은 방식으로 짜깁기된 피의 책을,19) 그러나 기본적으로는 평범한 방식으로 짜깁기된 피의 책을,20) 보내 드리겠습니다.
이번에는 벼락을 꽉 붙잡고 있을 수 있을 것 같습니까21)?
⸺⸺⸺⸺
1) 윌리엄 고드윈(William Godwin)은 딸을 출산하다 죽은 아내를 기리는 마음으로 아내의 이름으로 딸의 이름을 지었다. 그런 연유로 메리 울스턴크래프트 고드윈 셸리(Mary Wollstonecraft Godwin Shelley)는 어머니의 이름이면서 딸의 이름이기도 하다. 학자들은 편의상 어머니를 메리 울스턴크래프트(Mary Wollstonecraft)로 딸을 메리 셸리(Mary Shelley)로 부른다. 나는 블루스타킹 서클(Bluestocking Circle)의 지원을 받아 쓴 「마구마구 피뢰침」을 메리 울스턴크래프트 고드윈 셸리(들)에게 헌정하고자 한다.
2) 이름 없는 여자들이 있었다. 17세기, 여자에게 교육 받을 기회를 제공하고 여자의 사회 참여를 장려해야 한다는 의견이 대두되었지만 그것은 엄연히 교양 형성의 문제였다. 여자는 전문 지식인은 될 수 없다는 것이 계몽주의자들의 주장이었다. 글을 쓰는 일은 남자의 영역으로 간주했는데, 특히, 직업적으로 글을 쓰는 작가들은 펜(pen)을 남자의 무기인 페니스(penis)에 비유할 정도로 남자만이 누릴 수 있는 권력이라고 생각했다. 영국에서 여성 시인 최초로 시집을 출간한 앤 핀치 윈칠시 백작부인(Anne Finch, Countess of Winchilsea)은 여자들이 "바보로 태어났다기보다는 바보로 교육"되었다고 분개하며, "글을 쓰고자 하는 여자는" 남자의 권리를 침해하는 것으로 인식되어 "어떤 미덕으로도 회복될 수 없"으며 "소용없는 어리석음", "주제넘은 잘못"으로 여겨져 "주제넘은 피조물로 간주"당한다고 비판했다. 그녀는 1701년 이름을 밝히지 않고 시집 『Spleen』을 출간했으며, 1713년 여자라고 밝힌 후에야 이름을 밝힐 수 있었다. 당시 여자들은 글 쓰는 것을 조심스러워했고, 글을 쓰는 대부분의 여자들은 익명으로 글을 발표하거나 남자 이름으로 글을 발표했다. 일레인 쇼왈터(Elaine Showalter)는 당시 여성 작가들이 이중적인 문학 기준에 대처하기 위한 방편으로 남자 이름을 썼다고 보았다.
독일의 최초 여성 소설가인 조피 폰 라 로슈(Sophie von La Roche)는 1771년 『슈테른하임 아씨 이야기(Geschichte des Fräuleins von Sternheim)』를 출간할 때 이름을 밝히지 않고 문학적으로 영향을 많이 받았으면서 책의 편집자이기도 했던 빌란트(Wieland)에게 서문을 부탁했다. 빌란트는 서문에 "나의 친구인 그녀는 세상을 위해 글을 쓰거나 예술작품을 만들어낼 생각은 결코 하고 있지 않다."라고, 썼다. 그녀는 『슈테른하임 아씨 이야기』 출간 후 친구에게 다음과 같이 토로한 적이 있다. "사람들은 여자들이 책을 쓰는 것을 이성에 어긋난 죄를 짓는 것으로 여긴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은 돌려서 이렇게 말한다. 여자가 소설가가 되는 것은 너무 따분해서라고. 내가 바르트하우젠 생활을 견디기 힘들어하고 또 딸들을 연달아 수녀원으로 보내지 않을 수가 없었기 때문에 속상해서라고."
시인인 카롤리네 폰 귄더로데(Karoline von Günderode)는 1804년 『Gedichte und Phantasien』을 출간할 때 티안(Tian)이라는 남자 이름을 썼다. 그녀는 일기에 "나는 왜 남자가 되지 못하나!" "나는 이렇게 살아갈 것이고 살아가야만 한다. 왜냐하면 나는 여자이기 때문이다."라고, 토로했다. 크리스타 볼프(Christa Wolf)는 귄더로데의 서간집을 읽고 "저항의 작업"으로 그에 대한 소설을 쓴다. 크리스타 볼프의 소설 『어디에도 설 땅은 없다(Kein Ort. Nirgends)』에서 귄더로데는 "여자 귄더로데(Die Frau, Günderode)"로 표현되어 있고 남자인 클라이스트는 "한 인간 클라이스트(Einer, Kleist)"로 표현되어 있는데 이는 귄더로데가 살았던 시대를 반영한 것이다. "여자 귄더로데"는 남자 이름으로 시를 발표한다. "한 인간 클라이스트"는 "여자 귄더로데"가 시를 쓰는 것에 대해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한다. 시를 쓴다는 이유로 "여자 귄더로데"는 여자에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 된다.
샬럿 브론테(Charlotte Brontë), 에밀리 브론테(Emily Jane Brontë), 앤 브론테(Anne Brontë) 자매는 각자 커러 벨(Currer Bell), 엘리스 벨(Ellis Bell), 액턴 벨(Acton Bell)이라는 남자 이름으로 1846년 『커러, 엘리스, 액턴 벨의 시집(Poems by Currer, Ellis and Acton Bell)』을 출간한다. 1847년 샬럿 브론테는 커러 벨이라는 가명을 유지한 채 『제인 에어(Jane Eyre: An Autobiography)』를 출간했고, 1849년 에밀리 브론테도 엘리스 벨이라는 가명을 유지한 채 『폭풍의 언덕(Wuthering Heights)』을 출간했다. 샬럿 브론테가 1849년 출간한 『셜리(Shirley:A Tale)』는 기존에 사람들이 가지고 있던 이름에 대한 인식을 깬 것으로 의미가 있는 작품이다. 소설의 인기로 인해 그동안 남자 이름으로 쓰여 왔던 셜리라는 이름이 여자 이름으로 쓰이게 된 것이다. 소설에 나오는 다음 대목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나는 지주다! 지주 셜리 키일다가 나의 스타일이고 나의 직함이 되어야 한다. 그들은 나에게 남자의 이름을 주었다. 나는 남자의 지위를 가지고 있다. 그것은 나에게 남자다움을 충분히 느끼게 한다."
소설가 조지 엘리엇(George Eliot)의 본명은 메리 앤 에반스(Mary Anne Evans)이다. 남자 이름을 필명으로 사용했기 때문에 활동 초반 사람들은 그녀를 남자라고 생각했다. 그녀는 데이비드 프리드리히 슈트라우스(David Friedrich Strauss)의 『예수의 생애(The Life of Jesus)』를 번역할 당시 폴리안(Polian)이라는 이름을 썼다. ≪웨스트민스터 리뷰(Westminster Review)≫에서는 채프먼을 편집장으로 내세웠기 때문에 그녀는 부편집장으로 있었다. 1860년 출간한 『플로스강의 물방앗간(The Mill on the Floss)』은 그녀의 자전적인 소설이다. 여자들은 무엇이나 조금씩은 배울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회에서 여자들이 할 수 있는 적당한 역할이 무엇일까? 의문을 던지는 매기는 라틴 문구 "죽음은 모든 사람에게 공통적인 것이다."에 관심을 가진다. 여자가 남자와 같은 입장이 될 수 있는 때는 죽음밖에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3) 이름이 없어서 존재를 부정당한 여자들이 있었다. 메리 셸리는 1818년 『프랑켄슈타인(Frankenstein: Or the Modern Prometheus)』을 처음 출간했을 때 이름을 밝히지 못했다. 시인이자 그녀의 남편인 퍼시 셸리(Percy Bysshe Shelley)가 서문을 썼는데, 그는 서문에서 소설을 쓴 계기에 대해 다음과 같이 썼다. "두 명의 다른 친구들과 나는 초자연적인 사건을 토대로 각자 이야기를 써보기로 동의했다." 소설을 쓴 메리 셸리와 그 자리에 같이 있었던 클레이몽이 없는 사람 취급을 당했다는 것은 2판에서 메리 셸리가 서문을 쓰면서 밝혀진다. 그녀는 소설을 쓴 계기를 다음과 같이 밝힌다. "'우리 각자가 유령 이야기를 쓰기로 하지.' 바이런 경이 제안했다. 우리 모두 그의 제안에 동의했다. 그 자리에 네 사람이 있었다."
여자는 남자처럼 될 수 없다고 생각하는 사회였다. 여자는 남자처럼 될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한 인간으로도 받아들이지 않는 사회였다. 여성 작가는 괴물 같은 존재로 취급하는 사회였다. 그래서 어떤 연구에서는 『프랑켄슈타인』에 등장하는, 죽은 인간들의 살과 뼈로 만들어진 이름 없이 존재하는 괴물이 메리 셸리를 의미한다고 보기도 한다. 프랑켄슈타인이 죽은 인간들의 살과 뼈를 모아 괴물을 만들었듯, 메리 셸리가 어머니 메리 울스턴크래프트에게 영향을 받아 『프랑켄슈타인』을 썼다고 보는 것이다. 메리 울스턴크래프트가 작가이자 여성운동가인 점이 그런 해석에 밑바탕이 되었다. 메리 울스턴크래프트는 여자는 남자를 기쁘게 하기 위해 존재하며, 여자의 교육은 독자적으로 기획될 수 없고 남자와의 관계에서 기획되어야 하며, 남자에게 복종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루소와 계몽주의자들의 의견에 반박해 1792년 여성의 권리 옹호(A Vindication of the Rights of Woman)를 출간했는데, 첫 출간 때는 이름을 밝히지 못했고, 2판에서 이름을 밝힐 수 있었다.
4) 메리 셸리가 밀턴(John Milton)의 『실낙원(Paradise Lost)』에 등장하는 인간을 빌려 『프랑켄슈타인』을 썼으나 그와는 전혀 상관없는 괴물을 탄생시켰듯 나는 메리 셸리의 『프랑켄슈타인』에 등장하는 괴물을 빌려 「마구마구 피뢰침」을 썼으나 그와는 전혀 상관없는 괴물을 탄생시켰다. 괴물을 때때로 악마라고 부르는 것 역시 그와는 전혀 상관없다. 그러나 일부분 그 괴물의 환경에 영향을 받았다는 사실을 부인하지는 않겠다.
5) 나는 혼자서 벼락을 맞으러 다닌다. 벼락을 맞고 살아난 사람들이 모여서 벼락을 맞으러 다니는 모임이 있는데 그중 가장 알려진 모임은 《아다드》이다. 《아다드》에서는 벼락을 맞을 준비를 하는 것을 "공포를 받아들일 준비"를 한다고 표현한다. (김영하, 「피뢰침」, 『엘리베이터에 낀 그 남자는 어떻게 되었나』, 문학과지성사, 1998.)
6) 연금술 실험실은 두 권 책으로 비유되어 왔다. 연금술을 기독교적인 측면에서 옹호한 사람들로부터 신의 말씀이 담긴 경전(the Bible)이라고 비유되었다. 인간의 기술이 자연을 모방하는 것은 물론 자연을 완벽하게 하고 자연을 뛰어넘을 수도 있다고 주장하는 헤르메스주의를 옹호하는 사람들로부터는 신의 뜻이 담긴 피조물로서의 자연(the Book of Nature)으로 비유되었다. 나는 연금술 실험실에서 파생된 기상관측소를 신의 의도를 기록한 책으로 비유하고자 한다.
7) 나는, 벼락을 "꽉" 붙잡고 있을 수 있는 사람에게 피뢰침을 일 년에 한 번씩 구입한다. (허먼 멜빌, 「피뢰침 판매인」, 『세계문학단편선17』, 김훈 옮김, 현대문학, 2015.)
8) 세 개의 심장을 토대로 백구십칠 개의 심장을 짜깁기했다.
첫 번째 심장은 갈바니(Luigi Aloisio Galvani)의 것이다. 벼락을 동반한 비가 내리던 어느 날 갈바니의 부인이 개구리 요리를 준비하고 있었다. 갈바니는 벼락이 칠 때마다 도마 위에 잘려 있던 개구리 다리가 살아 있는 것처럼 움직이는 것을 발견했다. 그 발견에서 착안해 죽은 개구리 다리에 전기를 모으는 장치나 해부용 나이프 같은 금속을 닿게 했는데, 그때마다 스파크가 생기면서 개구리 다리 근육이 수축하는 것을 보고 전기는 동물의 뇌에서 만들어진다고 생각했다. 이에 대해 1791년 발표한 「근육운동에 대한 전기의 효과에 대한 주석서(De Viribus Electricitatis in Motu Musculari Commentarius)」를 참고할 만하다. 갈바니는 이를 동물전기라고 불렀고, 후에 볼타(Alessandro Volta)는 갈바니즘이라고 불렀다.
두 번째 심장은 알디니(Giovanni Aldini)의 것이다. 알디니는 삼촌의 연구인 동물전기 이른바 갈바니즘에 몰두했다. 그는 1803년 1월 17일 런던의 뉴게이트에서 사형된 조지 포스터(George Forster)의 시체를 실험했다. 《The Times》에서 이 실험에 대해 보도했는데 다음은 참관한 관중의 인터뷰의 일부분을 발췌한 것이다. "마치 남자가 부활하고 있는 것 같았다." 18세기 말에 런던에서 발간된 범죄사례 편찬서인 『Newgate Calendar』에서도 이 실험에 대해 언급했는데 다음은 그중 일부분을 발췌한 것이다. "사망한 사형수의 턱이 떨리면서 얼굴 근육 전체가 끔찍하게 뒤틀리기 시작했다. 한쪽 눈꺼풀이 열렸다. 실험이 계속 진행되자 오른손이 올라갔고 다리와 허벅지가 움직였다."
세 번째 심장은 유어(Andrew Ure)의 것이다. 그는 횡격막을 자극하면 질식, 익사, 교수형으로 죽은 사람을 살릴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를 입증하기 위해 1818년 글래스고 대학의 해부학 강당에서 사형된 매튜 클라이즈데일(Matthew Clydesdale)의 시체를 실험했다. 다음은 그가 쓴 실험 기록을 간단히 정리한 것이다. "전류를 가하자 사형수의 얼굴 근육이 꿈틀거렸다. 분노, 공포, 절망, 괴로움, 소름끼치는 미소가 차례로 떠올랐다. 그 끔찍한 움직임에 참관했던 남자 한 명이 기절했고, 구경꾼 몇몇은 이곳을 떠나 이사를 가야 했다." 그는 교수형에 처해질 때 목뼈가 부러지지만 않았다면 죽은 시체를 살릴 수 있었을 것이라고 결론 내렸다.
9) 나의腦를避雷針삼아 (이상, 「烏瞰圖 詩第七號」, 『이상문학전집 1』, 문학사상사, 1989.)
10) 코벤트리 페트모어(Coventry Patmore)는 1854년 시집 『집안의 천사(The Angel in the House)』를 출간했다. 아내 에밀리(Emily)에게 바치는 시집으로, 집안의 자애로운 어머니와 순종적인 아내의 모습에 대해 썼다. "집안의 천사"라는 말은 이후 빅토리아 시대에 이상적인 여성상으로 사용되었다. 버지니아 울프(Virginia Woolf)는 19세기의 이러한 순결의식이 여성 작가들에게 영향을 미쳐 여성 작가들이 이름을 밝히지 못하고 숨기게 만들었다고 보았다. 그리고 여전히 여성 작가들이 이름을 숨기고 정체를 감추어야 한다는 생각이 이어지고 있다고 말한다. 버지니아 울프는 "집안의 천사"가 되기를 거부함으로써 작가로 자리 잡고자 하였다. 『자기만의 방(A Room of One's Own)』에서 무슨 수를 써서라도 여자들은 글을 써야 한다고 말하며, 여자들이 글을 쓰기 위해서는 독립할 수 있는 여건, 가령 자기만의 방과 500파운드 정도의 돈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교육을 받지 못하고 직업을 얻을 수도 없으며 재산소유권도 주장할 수 없는 상태에서는 "집안의 천사"밖에 될 수 없기 때문이다. 버지니아 울프는, 여자들이 "집안의 천사"를 거부함으로써, 공적인 것과 사적인 것, 물질인 것과 정신인 것 모두가 불가분의 관계에 있듯, 여성인 것과 남성인 것을 나누지 않고 화합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러한 버지니아 울프의 주장은 샬럿 브론테, 에밀리 브론테, 앤 브론테 자매 그리고 당시 수많은 여성 작가들의 고민에서 비롯된 것이기도 했다. 샬럿 브론테는 글을 쓰기 위한 여건에 대해 다음과 같이 토로한 적이 있다. "글을 쓰고 싶다는 우리들의 꿈은 계속 이어졌지만 현실 앞에서 한쪽으로 밀렸다. 먹고살 돈을 벌어야 했기 때문이었다. 여동생들과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직업은 두 가지뿐이었다. 교사가 되든지 가정교사로 돌아가든지. 그러나 두 직업은 내가 혐오하는 '얽매인 노역'이었다." 빅토리아 시대에 여자가 돈을 벌기 위해 할 수 있는 직업은 열악한 근로 조건의 직공을 제외하고 교사와 가정교사 같은 것으로 제한적이었다. 샬럿 브론테가 교사와 가정교사를 '얽매인 노역'이라면서 혐오했던 이유는 가정교사라는 직업은 안정성과 임금도 문제 되었지만 노동계급이면서 중산계급의 이상적인 여성성을 흉내 내어야만 하는 직업이기에 사회적 지위가 낮을 뿐만 아니라 멸시의 대상이 되었기 때문이었다. 샬럿 브론테는 『제인 에어』를 통해, 앤 브론테는 『아그네스 그레이(Agnes Grey)』를 통해 실제 경험을 투영해 가정교사 문제를 담아냈다. 샬럿 브론테는 더 나아가 여자들이 남성 중심의 지배 구조에 투쟁하며 사회에 참여할 수 있는 방식에 대해 고민하며 『셜리』를 썼다.
11) 『프랑켄슈타인』에 등장하는, 죽은 인간들의 살과 뼈로 만들어진 이름 없이 존재하는 괴물은, 흉측한 모습으로 자신을 만든 사람에게서도 버려지게 된다. 버려진 채 집 안에 혼자 있던 괴물은 집 밖으로 뛰쳐나와 인간과 어울리고자 하지만 오히려 악마 취급을 받고 공격 받는다.
12) 영국 옥스퍼드 사전은 2018년 올해의 단어로 'toxic(유해한 또는 유독성의)'을 선정했다. 옥스퍼드딕셔너리 닷컴에서 'toxic' 검색이 작년 대비 45% 증가했는데, 문자 그대로 쓰이기도 했고, 은유적인 측면에서 다양한 맥락('해로운 남성성(toxic masculinity)', '유해한 레토릭(toxic rhetoric)', '유해 공기(toxic air)' 등)으로 쓰이기도 했다. 'toxic'과 함께 가장 많이 쓰인 단어는 'chemical'(화학물질)'이고, 그다음은 'masculinity(남성성)'이다. '미투 운동(Me Too movement)'이 전 세계적으로 번지면서 '해로운 남성성(toxic masculinity)'이 같이 쓰인 것으로 보인다.
13) 나는 촛불로 밥을 짓는 어머니와 이름이 없는 자식에 대한 노래를 들은 적이 있다. 자식에게 이름이 없는 이유는 죽어가고 있기 때문인 것으로 추측된다. 몸이 피뢰침에 걸려 있는 데다 암이 목구멍까지 올라온 상태이며 손톱이 빠지고 성기가 잘리고 목에 꽂힌 칼은 빠지지 않은 채 심장까지 도려내어진 상태로 죽어가는 자식을 보고도 어머니는 계속 촛불로 밥을 짓고 있는데 그것은 오히려 자식을 포기하지 않았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된다. 그 노래를 복기해 보면 다음과 같다.
어머니가 촛불로 밥을 지으신다 비가 오기 시작하는데 어머니가 촛불로 밥을 지으신다 날도 어두워지기 시작하는데 어머니가 촛불로 밥을 지으신다 하늘이 죽어서 조금씩 가루가 떨어지는데 어머니가 촛불로 밥을 지으신다 나는 아직 내 이름조차 제대로 짓지 못했는데 어머니가 촛불로 밥을 지으신다 피뢰침 위에는 헐렁한 살 껍데기가 걸려 있는데 어머니가 촛불로 밥을 지으신다 암이 목구멍까지 올라왔는데 어머니가 촛불로 밥을 지으신다 맥박이 미친 듯이 뛰는데 어머니가 촛불로 밥을 지으신다 손톱이 빠지기 시작하는데 어머니가 촛불로 밥을 지으신다 누군가 나의 성기를 잘라버렸는데 어머니가 촛불로 밥을 지으신다 목에는 칼이 꽂혀서 안 빠지는데 어머니가 촛불로 밥을 지으신다 그 칼이 내장을 드러냈는데 어머니가 촛불로 밥을 지으신다 펄떡거리는 심장을 도려냈는데 어머니가 촛불로 밥을 지으신다 담벼락의 비가 마르기 시작하는데 어머니가 촛불로 밥을 지으신다 (정재학, 「어머니가 촛불로 밥을 지으신다」 전문, 『어머니가 촛불로 밥을 지으신다』, 민음사, 2003.)
14) "새로운 흉측함"이 탄생하기까지 세 개의 사건이 있었다.
첫 번째 사건은 2016년 5월 강남역 여성 살해 사건으로 이 사건을 계기로 여성혐오에 대해 많은 여자들이 분노를 표출했고 조직적인 대응으로 커졌고 이에 맞선 여성혐오자들의 역공격으로 젠더 사이의 격렬한 갈등이 촉발되었다.
두 번째 사건은 2016년 9월 소셜 미디어에 해시태그(#문단_내_성폭력)를 달고 몇몇 문인들을 고발한 것에서 문단 성폭력에 대한 문제가 제기된 것이다. 2017년 1월 문화예술계 성폭력 해결방안에 대한 국회토론회 <#문화예술계_내_성폭력 어떻게 할 것인가?>에 한국작가회의, 출판계의 성폭력 심각성을 인지한 작가들이 모인 페미라이터 등이 참여해 대화를 나누는 등 문제를 해결하려는 시도가 꾸준히 이루어지고 있다.
세 번째 사건은 2017년 10월 할리우드 영화제작자인 하비 와인스타인(Harvey Weinstein)의 성추문을 폭로하고 비난하기 위해 소셜 미디어에 해시태그(#Me Too)를 다는 것에서 미투 운동이 큰 반향을 일으킨 것이다. 2017년 『황해문화』 겨울호 특집은 이러한 시류를 반영해 '젠더 전쟁'으로 잡았는데, 이때 시인 최영미의 시「괴물」이 게재되었다. 이후 문단 내 성폭력 논란이 재점화 되었다.
15) 연금술 실험실은 부엌에서부터 시작되었다.
16) 사우디아라비아 최초의 여자 영화감독인 하이파 알만수르(هيفاء المنصور, Haifaa al-Mansour) 는 2017년 『메리 셸리: 프랑켄슈타인의 탄생(Mary Shelley)』을 연출했다. 그녀는 연출 의도를 다음과 같이 밝혔다. "메리 셸리는 완벽한 인물이 아니기에 의문의 여지가 있는 선택도 하고 때론 실수도 한다. 하지만 그녀는 낙담하지 않고 상실로 인한 괴로움에 굴복하지도 않는다. 그저 계속 앞으로 나아간다. 가지고 있던 고통의 짐을 심오한 예술작품으로 바꾸는 과정에서 언제라도 포기하거나 뛰어난 부모 혹은 남편을 따르는 게 쉬울 수도 있었을 텐데도 메리 셸리는 결국 자기만의 내면의 목소리를 찾는다. 나 역시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영화를 만드는 건 메리 셸리처럼 모든 사회적 편견을 깨고 나아가는 과정이었다. 나는 상실과 괴로움을 딛고 내면의 목소리를 찾았던 메리 셸리처럼 강한 여성의 삶을 기록하고 싶었다."
17) 혼자 사는 여자를 위한 안전 팁 중 하나는 택배 수신인 이름을 남자 이름으로 대신 사용하는 것이다. 2018년 개봉된 공효진 주연의 『도어락(Door Lock)』에서는 혼자 사는 주인공이 현관에 남자 구두를 놓아둔다든가 창문이 보이는 베란다에 남자 속옷을 걸어 두는데, 이 역시 혼자 사는 여자를 위한 안전 팁에 속한다.
18) 메리 셸리의 『프랑켄슈타인』은 출간되자마자 연극으로 만들어졌다. 그러나 판권을 계약한 출판사가 소유권을 내놓지 않았기 때문에 과학자가 피조물을 만들었다는 원본 텍스트의 중심 에피소드만 유지한 채 무대 각색본이 계속 변형되고 패러디의 패러디가 거듭되어 나왔다. 또한, 연극으로 만든 초기에는 괴물 역할을 했던 배우의 이름 옆에 빈 선을 그어 놓은 것이 관례였다고 하는데, 그러한 관례를 알게 되었을 때 메리 셸리는 명명할 수 없는 것을 이름 짓는 이 이름 없는 방식이 마음에 든다고 말했다.
19) 앤 핀치, 윈칠시 백작부인은 남자들이 "글을 쓰고자 하는 여자"들은 "성과 도리를 잘못 알고 있다고" 비난하며, "예의범절, 유행, 춤, 옷치장, 유희" 같은 것들이 여자들이 "갈구해야 하는 소양"이며, "쓰고, 읽고, 생각하고, 탐구하는 것은" "아름다움을 흐리게 하고 시간을 고갈시키"는 것이라고 충고하는 것을 비판하였다.
20) 헬렌 디윗(Helen DeWitt)은 1990년대 후반에 『피뢰침(Lightning Rods)』을 썼지만 독특한 방식의 소설이라는 이유로 여러 출판사에 거절당하다 2011년에 출간할 수 있게 되었다. 『피뢰침』은 브리태니커 백과사전과 일렉트로룩스 청소기 판매에 실패한 세일즈맨 조 슈모가 피뢰침 사업으로 성공한 사업가가 되기까지의 과정을 소설의 형식을 취하면서 자기계발서나 CEO의 자서전 같은 느낌이 들게 쓴 풍자 소설이다. 조 슈모는 직장 내 성 문제로 가해자에게 가해지는 처벌이 가혹하다고 생각하며, "한 남자가 여성을 존중하는 법을 못 배우고 자랐고 그건 그의 잘못이 아닌데, 그 약점 때문에 그의 커리어 전체가 위험에 빠져도 되는가?" 안타까워한다. "가정교육을 잘못 받은" 탓에 "개자식이 되고 싶어서 된 게 아"닌 남자들을 옹호하며, "가뜩이나 불리한 위치에서 하버드나 예일 출신의 남자들과 경쟁해야 하는데, 여직원들과 가까이 있을 때마다 커리어가 위태로워지는 불이익까지 짊어져야" 하는 남자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방안으로 피뢰침 사업을 구상하기에 이른다. 기업들을 찾아다니며 "현대 업무 환경에서 젠더 간 및 젠더 내 상호 교류는 지뢰밭으로 통하는데" "피뢰침"은 "성적 금기가 존재하는 환경에서 발생하는 긴장을 완화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피력한다. "비난을 도맡아 주는 사람"의 역할을 하는 "천 명 중 한 명"의 여직원을 피뢰침으로 고용해 혜택을 주는 것을 조건으로, 장애인 전용 화장실 벽에 구멍을 뚫고 직원들의 성행위가 이뤄질 수 있게 하는 방식으로, 남자들 입장에서는 매춘부를 만나지 않아도 성욕을 배출할 수 있어 직장 내에서 성희롱이나 성폭행을 저지르지 않아도 되는 한편 여자들 입장에서는 직장 내에서 성희롱이나 성폭행을 당하지 않아도 되기에 합리적이면서 익명에 기반 하여 안전한 피뢰침 사업을 성공시킬 수 있었다. 조 슈모는 자신이 평등한 기회를 주는 고용주라고 자부하지만 그 이면에는 피뢰침으로 고용된 여직원들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 몇몇 피뢰침들이 피뢰침을 한 이후 성공하긴 하지만 "성공한 피뢰침은 모두 특출난 사람들이었"고, 성공의 문제를 떠나 도덕적으로 문제가 되는 일이지만 그는 사업가일 뿐이기에 그런 식의 "도덕적 판단"은 그의 몫이 아니다. (헬렌 디윗, 『피뢰침』, 김지현 옮김, 열린책들, 2019.)
21) 1991년 『백래시(backlash)』를 출간한 수전 팔루디(Susan Faludi)는 2018년 10월 이데일리 W페스타에서 "최근 한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페미니즘 폭발' 현상이 흥미롭다."고 했다. "미투 운동이 봇물 터진 지금이 한국에서 여성이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최고의 시기이자 최악의 시기"라고 보이는데, "성 평등을 향한 여성의 목소리는 점점 커졌지만 그에 따른 반격 역시 거듭"되는 역사의 흐름에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한국을 포함해 세계에서 기록적인 수의 여성들이 거리로 나와 행진하고 페미니즘의 부흥이 일어나고 있지만, 동시에 우파 정권과 강력한 권력을 행사하는 남성 리더들이 등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수전 팔루디는 "남녀 간 상호이해만이 화합"을 이끌어낼 수 있다고 말한다.
권박, "이해할 차례이다" (민음, 2019)
2020년 제39회 김수영문학상 수상작 :
이기리, "그 웃음을 나도 좋아해" (민음, 2020)
https://m.blog.naver.com/minumworld/222146681447
"단어 뜻대로라면 일종의 ‘문학장’에 등장한 사람은 누구나 등단한 것이지만, 실제 단어의 쓰임새는 다르다. 신춘문예 등 일정한 제도 절차를 통과한 사람에게만 ‘등단’했다는 표현이 쓰인다. (중략) 위계 만들기는 그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어느 신문사, 어떤 문예지를 통해 ‘등단’하는지에 따라 그 안에서도 급은 나누어진다." (배용진, <뉴스페이퍼> 2020)
“등단·비등단을 칼같이 가르는 등단 제도도 모두 남을 통해 자신을 확인하려는 열등감 문화의 소산이다” (황현산, <한겨레> 2016)
최초로 비등단 작가한테 김수영문학상이 주어진 2020년 역시 '학교폭력'이라는 날카로운 주제를 현재진행형으로 드러낸 바 있습니다. 중학교 1학년 시절에 정호승 시인의 '너에게'를 읽고 시를 쓰기로 결심했지만, 거듭된 낙방 속에 마지막 응모라는 심경으로 신춘문예를 준비하다가 “수상 전화를 받고 통화를 끊자마자 길바닥에서 15분을 펑펑 울었던 것 같다”는 인터뷰도 남 얘기 같지가 않았습니다. 앞으로의 건필을 응원합니다.
그 웃음을 나도 좋아해
마침내 친구 뒤퉁수를 샤프로 찍었다
어느날 친구는 내 손목을 잡더니
내가 네 손가락 하나 못 자를 것 같아?
커터 칼을 검지 마디에 대고 책상에 바짝 붙였다
친구는 나의 손가락을 자르지 못했다
검지에는 칼을 댄 자국이 붉게 남았다
내 불알을 잡고 흔들며 웃는 아이들의 모습이 유리문에 비쳤다
엎드려 자고 있을 때
뒤로 다가가 포옹을 하는 뒷모습으로
옷깃을 풀고 가슴속으로 뜨거운 우유를 부었다
칠판에 떠든 친구들을 적었다
너,너,너
야유가 쏟아졌다
지우개에 맞았다
불 꺼진 화장실에서 오줌을 쌀 때마다 어둠 속에서 어떤 손아귀가 커졌고
천장을 뚫고 들어오는 수십 개의 검지가 이마를 툭툭
종례 시간이 끝나도
다행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선생님이 나를 끌어안았다
선생님에게 장래 희망을 말했다
저녁을 먹고 혼자 시소를 타면
하늘이 금세 붉어졌고
발끝에서 회전을 멈춘 낡은 공 하나를
두 손바닥으로 조심스럽게 들어 올렸다
진흙이 지구처럼 묻은
검은 모서리를 가진
낮과 밤의 길이가 같아진다는 건
세상으로부터 주파수가 맞춰지는 느낌
이제 다른 행성의 노래를 들어도 될까
정말 끝날 것 같은 여름
구름을 보면
비를 맞는 표정을 지었다
이기리, "그 웃음을 나도 좋아해" (민음, 2020)
2023년 7월 28일 (금)
2021년 제40회 김수영문학상 수상작 :
최재원, "나랑 하고 시픈게 뭐에여?" (민음, 2021)
https://m.blog.naver.com/minumworld/222603402282
해마다 동일한 형식을 취해온 민음사 블로그는 무슨 연유에서인지 유독 이 해의 김수영문학상 발표내용만은 따로 게시해놓지 않은 바 있었습니다.
시집의 내용은 다소 '충격적'이지만, 그만큼 지극히 '현실적'인 내용을 담고도 있습니다. (제법 자극적일 수도 있는만큼 별도로 "19금" 사인을 넣어둡니다.)
"모든 것들이 언어였습니다. 말이 아닌 것들도 언어였습니다. 언어가 꼭 말은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나는 어떤 한 언어로 말을 해야 할 필요가 없었던 것입니다. 나는 꼭 이해받을 필요가 없었던 것입니다. 나는 헤맴의 궤적을 통해서도 말을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서면 수상소감 중)
"민족사관고를 졸업한 그는 미국 유학길에 올라 명문 프린스턴대에서 물리학과 시각예술을 공부했다. 고3 때 수학에 빠진 게 물리학을 선택한 계기였다. 대학에서 원하던 전공을 공부했으나 마음은 다른 곳을 향했다." (인터뷰 기사 중)
나랑 하고 시픈게 뭐에여?
그가 생글생글 웃으며 묻는다. 끝이 여엉 하고 뭉개진다. 눈에도 웃음. 입에도, 말에도 묻어나는 웃음. 연습한 걸까? 그와 자고 싶은 건 아니다. 자라면 못 잘 것은 없겠지만 어떻게 생겼든 웬만하면 그의 자지를 굳이, 딱히, 보고 싶지는 않다. 다 벗더라도 거기만은 가리라고 하고 싶다. 아니, 천을 휘감긴다든가, 맥퀸이 만들던 맥퀸이나 베르사체가 만들던 베르사체 같은 것을 입히고, 아니, 아니야, 그냥 티셔츠, 보풀이라든가, 올이 보이지 않는, 그런 티셔츠를 입히고, 아니야, 옷이야 상관없겠지. 깨끗하기만 하면 된다. 아니, 구겨진 옷이라도, 흉한 밴드 처리가 되어 있는 운동복이라도, 드러난 손목, 발목, 거기에 감긴 것은 그것이 무엇이든 어떤 완벽함을 얻게 될 것이다. 구불구불 대는 밴드와 거기에 박음질된 실, 살에 눌어붙는 밴드의 압박, 이런 것들을 왠지 참을 수 있을 것 같다. 거기에 붙어 있는 먼지나 솜털 같은 것들도 마치 그려 넣은 것처럼 의도를 얻게 될 것이다. 너의 눈썹은 빛으로 그려져 있다. 너의 눈은 아직 결정하기 전의 유리, 입술과 입술이 아닌 것의 그 연한 경계, 가장 확신 가득하며 초조한 피어나는 튤립 같은 입술. 그러나 너는 너무 가깝다. 내가 니가 있는 곳으로 온 것인지, 니가 내가 있는 곳으로 온 것인지, 그의 입술이 열리고 거기서 나온 소리의 진동이 내 귀의 고막을 울리는 것부터, 이미 잘못된 것이다. 이미 너는 너무 가깝다. 귀에 닿는 너의 숨소리가 불결하게 느껴진다.
어떻게 알고 왔어요? 나 알아요?
그럼요. 알죠.
아 씨발. 밖으로 생각했나 보다. 안다고? 뭘? 니가 뭘 아는데?
누나, 왜 욕을 하고 그래……. 밥 먹었어요?
너와 먹고 싶지도 자고 싶지도 않다. 나는 너를 박제하고 싶다. 약품 처리된, 내장이 없는, 까맣게 구슬이 되어 버린 눈동자, 그런 박제 말고 너의 가장, 가장, 표면에 있는 것들이 너의 가장 아득한 곳을 담을 수 있도록, 가장 표면에 있는 것들을 하나도 남김없이, 숨도, 생명도, 심지어 내장이라 할지라도. 너만은 시간의 흐름에서 구해 주고 싶다. 그것은 박제와 가깝지만 박제는 아니다. 그것은 어떤 흔들림의 보장, 니가 하루 종일 거울 앞에 서 있을 자유, 니가 끝없이 스스로에게 빠져들 자유, 끝없이 자신을 소모할 수 있을 힘.
그가 손을 뻗는다. 나는 움츠린다.
그가 실없는 소리를 한다. 그건 음악 같은 소리다. 오직 그의 입술에서 나온 소리의 진동, 진동과 진동의 사이, 그 템포, 높낮이, 쉼표만이 의미를 가진다. 그러니까 그는 의미를 밟고 가는 사람인 것이다. 그가 걷는 곳마다 의미가 피어나는 사람인 것이다. 아. 어떻게 그를 가지고 싶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그러나 사정해야 한다는 강박이 어디엔가 있다. 사정은 끝까지 피하고 싶다. 그러나 그렇게 빌드업만 하다가는 아마 뒈져 버리겠지. 잠을 재우지 않는 것과 비슷할 것이다.
조, 조금만 뒤로 가 줄래?
나는 아득해질 대로 아득해져서 아무 말이나 지껄이고 싶어진다. 그를 끌어안고 싶은 마음과 이대로 도망치고 싶은 마음이, 그의 머리부터 발끝까지 찬찬히 뜯어보고 싶은 마음과 구석구석 핥고 싶은 마음이, 그가 너무 입체적이라는 사실이. 그는 바람이 빠진 것처럼, 조명이 꺼진 것처럼. 나는 자꾸 역겨워진다. 역겨워하는 내가 역겹고 자꾸 구토할 것 같다.
나랑 잘래?
누가 말했는지는 알 수 없다. 그가 말했다면 음악이 되었을 것이다. 내가 말했다면 그것은 덕지덕지 더러운 말이 되어 부스러기를 잔뜩 남긴 채 바닥에 부서져 있을 것이다. 나는 내려다보기가 두려웠다. 내가 사정하지 못할 것은 뻔했고, 나는 그가 사정하기를 원하지 않는다. 그런 것은 허락되지 않아. 나는 그의 손을 뒤로 묶고 그저 그가 찍어내는 이미지와 사운드를, 그의 목이 앞으로 떨어졌다 귀찮다는 듯 뒤로 젖혀지는 것을, 그의 손이 꼼지락거리는 것을, 그의 이마에 삼각형으로 떨어지던 해가 점점 늘어지며 긴 삼각형이 코에 음영을 만들고, 얼굴을 붉게 타오르게 만드는 것을, 그가 뱉어 내는 소리의 간격과 빠르기를, 그의 예정된 종류의 아름다움을 즐길 것이었다. 그의 아름다움은 그런 종류의 것이었다. 운명처럼 견고한 것, 닿는 모든 것이 그 의미를 가지게 되는 것, 이미 예정된 것.
# 최재원, "나랑 하고 시픈게 뭐에여?" (민음, 2021)
2022년 제41회 김수영문학상 수상작 :
김석영, "돌을 쥐려는 사람에게" (민음, 2022)
https://m.blog.naver.com/minumworld/222931216311
맨 마지막 수상자는 작년의 김석영 시인이었습니다. 이미 2015년에 <시와 반시>를 통해 등단했으며, 불혹의 나이를 넘어 김수영문학상 수상자라는 영광의 타이틀을 얻었습니다. (역시 수상작들 중 표제작 격인 '정물처럼 앉아'가 아닌 다른 제목의 시집으로 출간됐고요.) 아무래도 김수영문학상은 일종의 '청소년 월드컵' 차원인만큼, 이제 '성인 월드컵'에 해당될만한 수준의 권위를 갖는 문학상들로는 어떤 상들이 있을까요? 아무래도 각 문예지 및 재단에서 주관하고 있는 대표적인 문학상들이 있겠는데, 해당 목록은 아래와 같습니다. (편의상 각 문예지들의 위상 및 상금의 규모 등에 따른 순서이며, 각종 신인상/신인문학상의 경우는 '등단' 제도의 성격에 국한되므로 제외합니다. 단, 창비에서 주관하고 있는 '신동엽문학상'은 데뷔 10년차 미만의 작가들만을 대상으로 하는 점에서 김수영문학상과 유사한 성격이므로 함께 포함해놓도록 하겠습니다.)
- 대산문학상 (대산문화재단, 국내 최대규모)
- 만해문학상/신동엽문학상/백석문학상 (창비)
- 소월시문학상 (문학사상)
- 현대문학상 (현대문학) 등이며,
그밖에도 이산문학상 (문학과지성사, 2007년 이후 폐지), 김달진문학상 (서울신문), 정지용문학상 (옥천군), 현대시작품상 (현대시) 등등이 있겠지만, 일단 이번 시리즈에서는 제외하도록 하겠습니다.
정물처럼 앉아
호박빛의 실내에서
나와 너는 가만히 앉아 휘날리는 눈을 바라본다
온도의 빛과 빛의 온도를
발음해보면서 궁글어지는 맛
호박 몇 조각을 뒤집어보면서
"눈은 방향이 없구나."
한낮의 호박과 호박빛의 환한 속내를
어둡게 들여다볼 것이지 궁금해진다
둥근 유리 주전자 속에서
오래도록 우러나는 호박
물속에서 세배쯤 커 보인다
색깔을 밀어내면서
향은 풀어지고 뒤섞인다
옅어진 물빛에 호박이 스며 있다
기억이 났다 실처럼 오래 풀리느라
컴컴해진 실내에서
차를 마시고
서로 같아진 우리의 색
누군가는 밖으로 나갔다
너는 이곳에 없어도
누군가는 만족스럽다
"내가 정물처럼 앉아 있으면
당신이 나를 그려주기를,
사람으로"
눈이 그쳤고
실내가 다시 밝아오고 있었다
은은하게 빛나던 색을 우리는 알았다
김석영, "돌을 쥐려는 사람에게" (민음, 2022)
- 김수영문학상 (민음사)
- 현대문학상 (현대문학)
- 대산문학상 (대산문화재단)
- 만해문학상 (창비)
- 백석문학상 (창비)
- 신동엽문학상 (창비)
- 소월시문학상 (문학사상) 순.
[자료] 김수영문학상 역대수상작 목록 :
(수상년도 ## 《서명》 시인 /출판사 순)
1981년 1회 《저문 강에 삽을 씻고》 정희성 /창작과비평사
1982년 2회 《뒹구는 돌은 언제 잠 깨는가》 이성복 /문학과지성사
1983년 3회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 황지우 /문학과지성사
1984년 4회 《아니다 그렇지 않다》 김광규 /문학과지성사
1985년 5회 《고슴도치의 마을》 최승호 /문학과지성사
1986년 6회 《맑은 날》 김용택 /창작과비평사
1987년 7회 《햄버거에 대한 명상》 장정일 /민음사
1989년 8회 《천로역정, 혹은》 김정웅 /문학과지성사
1990년 9회 《우리 낯선 사람들》 이하석 /세계사
1991년 10회 《산정묘지》 조정권 /민음사
1992년 11회 《새떼들에게로의 망명》 장석남 /문학과지성사
1993년 12회 《지상에서 부르고 싶은 노래》 이기철 /문학과지성사
1994년 13회 《해가 지지 않는 쟁기질》 차창룡 /문학과지성사
1995년 14회 《바늘 구멍 속의 폭풍》 김기택 /문학과지성사
1996년 15회 《세운상가 키드의 사랑》 유하 /문학과지성사
1997년 16회 《불쌍한 사랑 기계》 김혜순 /문학과지성사
1998년 17회 《그곳이 멀지 않다》 나희덕 /민음사
1999년 18회 《지금 어디에 계십니까》 백주은 /민음사
2000년 19회 《붉은 눈, 동백》 송찬호 /문학과지성사
2001년 20회 《제비꽃 여인숙》 이정록 /민음사
2002년 21회 《수련》 채호기 /문학과지성사
2003년 22회 《꽃막대기와 꽃뱀과 소녀와》 이윤학 /문학과지성사
2004년 23회 《자명한 산책》 황인숙 /문학과지성사
2005년 24회 《말랑말랑한 힘》 함민복 /문학세계사
2006년 25회 《바다로 가득 찬 책》 강기원 /민음사
2007년 26회 《검은 표범 여인》 문혜진 /민음사
2008년 27회 《스윙》 여태천 /민음사
2009년 28회 《시차의 눈을 달랜다》 김경주 /민음사
2010년 29회 《귀 없는 토끼에 관한 소수 의견》 김성대 /민음사
2011년 30회 《백 년 동안의 세계대전》 서효인 /민음사
2012년 31회 《구관조 씻기기》 황인찬 /민음사
2013년 32회 《양파 공동체》 손미 /민음사
2014년 33회 《모스크바예술극장의 기립 박수》 기혁 /민음사
2015년 34회 《세상의 모든 최대화》 황유원 /민음사
2016년 35회 《감은 눈이 내 얼굴을》 안태운 /민음사
2017년 36회 《책기둥》 문보영 /민음사
2018년 37회 《캣콜링》 이소호 /민음사
2019년 38회 《이해할 차례이다》 권박 /민음사
2020년 39회 《그 웃음을 나도 좋아해》 이기리 /민음사
2021년 40회 《나랑 하고 시픈게 뭐에여?》 최재원 /민음사
2022년 41회 《돌을 쥐려는 사람에게》 김석영 /민음사
[자료] 현대문학상 역대수상작 목록 :
(## 수상년도 : 시인 - 수상작 순)
제 1회 1956년 : 김구용 - 잃어버린 자세 / 그네의 미소
제 2회 1957년 : 박재삼 - 춘향이 마음
제 3회 1958년 : 이수복 - 꽃씨
제 4회 1959년 : 구자운 - 이향이수 / 묘비명
제 5회 1960년 : 정공채 - 석탄 / 자유
제 6회 1961년 : 김상억 - 비교록서
제 7회 1962년 : 이종학 - 피의 꿈속에서
제 8회 1963년 : 박봉우 - 4월의 화요일
제 9회 1964년 : 수상자 없음
제10회 1965년 : 박성룡 - 동양화집
제11회 1966년 : 이성교 - 산음가
제12회 1967년 : 수상자 없음
제13회 1968년 : 황동규 - 사행시초
제14회 1969년 : 김후란 - 장도와 장미
제15회 1970년 : 이성부 - 이성부시집
제16회 1971년 : 유경환 - 겨울 저녁 바다
제17회 1972년 : 김영태 - 연필화 몇 점
제18회 1973년 : 박재릉 - 밤과 연화와 상원사
제19회 1974년 : 김광협 - 천파만파
제20회 1975년 : 강우식 - 사행시초
제21회 1976년 : 문정희 - 새떼
제22회 1977년 : 최원규 - 비 속에서
제23회 1978년 : 함혜련 - 강물이 되어 바다가 되어
제24회 1979년 : 박제천 - 심법
제25회 1980년 : 임성숙 - 소금장수 이야기
제26회 1981년 : 김혜숙 - 예감의 새
제27회 1982년 : 오규원 - 이 땅에 씌어지는 서정시
제28회 1983년 : 김종해 - 천노 일어서다
제29회 1984년 : 이승훈 - 사물들
제30회 1985년 : 김원호 - 행복한 잠
제31회 1986년 : 김석규 - 저녁 혹은 패주자의 퇴로
제32회 1987년 : 이수익 - 단순한 기쁨
제33회 1988년 : 김형영 - 다른 하늘이 열릴 때
제34회 1989년 : 박정만 - 다 가고
제35회 1990년 : 이건청 - 하이에나
제36회 1991년 : 황지우 - 게 눈 속의 연꽃
제37회 1992년 : 강은교 - 그대의 들
제38회 1993년 : 임영조 - 갈대는 배후가 없다
제39회 1994년 : 조정권 - 튀빙겐 가는 길
제40회 1995년 : 정현종 - 내 어깨 위의 호랑이
제41회 1996년 : 김초혜 - 만월
제42회 1997년 : 홍신선 - 해, 늦저녁 해
제43회 1998년 : 천양희 - 오래된 골목
제44회 1999년 : 장석남 - 마당에 배를 매다
제45회 2000년 : 김명인 - 그 등나무꽃 그늘 아래
제46회 2001년 : 김기택 - 불룩한 자루
제47회 2002년 : 최승호 - 두엄
제48회 2003년 : 나희덕 - 마른 물고기처럼
제49회 2004년 : 김선우 - 피어라, 석유!
제50회 2005년 : 김사인 - 노숙
제51회 2006년 : 박상순 - 목화밭 지나서 소년은 가고
제52회 2007년 : 최정례 - 그녀의 입술은 따스하고 당신의 것은 차거든
제53회 2008년 : 이성복 - 기파랑을 그리는 노래
제54회 2009년 : 마종기 - 파타고니아의 양
제55회 2010년 : 고형렬 - 옥수수수염귀뚜라미의 기억
제56회 2011년 : 진은영 - 그 머나먼
제57회 2012년 : 김소연 - 오키나와, 튀니지, 프랑시스 잠
제58회 2013년 : 이근화 - 한밤에 우리가
제59회 2014년 : 허연 - 북회귀선에서 온 소포
제60회 2015년 : 이기성 - 굴 소년의 노래
제61회 2016년 : 김경후 - 잉어가죽구두
제62회 2017년 : 임승유 - 휴일
제63회 2018년 : 황인숙 - 간발
제64회 2019년 : 안미옥 - 지정석
제65회 2020년 : 유희경 - 교양 있는 사람
제66회 2021년 : 황인찬 - 이미지 사진
제67회 2022년 : 이제니 - 발견되는 춤으로부터
제68회 2023년 : 황유원 - 하얀 사슴 연못
[자료] 대산문학상 역대수상작 목록 :
(수상년도 ## 《수상작》 시인 순)
1993년 제 1회 《내일의 노래》 고은
1994년 제 2회 《죽지 않는 도시》 이형기
1995년 제 3회 《미시령 큰바람》 황동규
1996년 제 4회 《세상의 나무들》 정현종
1997년 제 5회 《들림, 도스토예프스키》 김춘수
1998년 제 6회 《어머니와 할머니의 실루엣》 신경림
1999년 제 7회 《어느 날 나는 흐린 주점에 앉아 있을 거다》 황지우
2000년 제 8회 《그로테스크》 최승호
2001년 제 9회 《지리산》 이성부
2002년 제10회 《花開》 김지하
2003년 제11회 《처음 만나던 때》 김광규
2004년 제12회 《아, 입이 없는 것들》 이성복
2005년 제13회 《파문》 김명인
2006년 제14회 《가만히 좋아하는》 김사인
2007년 제15회 《새벽 세 시의 사자 한 마리》 남진우
2008년 제16회 《당신의 첫》 김혜순
2009년 제17회 《고양이가 돌아오는 저녁》 송찬호
2010년 제18회 《쓸쓸해서 머나먼》 최승자
2011년 제19회 《종이》 신달자
2012년 제20회 《그 모든 가장자리》 백무산
2013년 제21회 《훔쳐가는 노래》 진은영
2014년 제22회 《체 게바라 만세》 박정대
2015년 제23회 《마흔두 개의 초록》 마종기
2016년 제24회 《영원이 아니라서 가능한》 이장욱
2017년 제25회 《여수》 서효인
2018년 제26회 《Lo-fi》 강성은
2019년 제27회 《나는 이름이 있었다》 오은
2020년 제28회 《무슨 심부름을 가는 길이니》 김행숙
2021년 제29회 《백지에게》 김언
2022년 제30회 《가능주의자》 나희덕
[자료] 만해문학상 역대수상작 목록 :
(수상년도 ## - 저자 및 분야 『서명』 순)
1974년 제 1회 - 신경림 시집 『농무』
1975년 제 2회 - 천승세 단편 「황구의 비명」 「폭염」
1988년 제 3회 - 고은 시집 『만인보』 1, 2, 3
1989년 제 4회 - 황석영 장편 『무기의 그늘』
1990년 제 5회 - 현기영 장편 『바람 타는 섬』
1991년 제 6회 - 민영 시집 『바람 부는 날』
1992년 제 7회 - 김명수 시집 『침엽수 지대』
1993년 제 8회 - 이문구 소설집 『유자소전』
1994년 제 9회 - 송기숙 장편 『녹두장군』 전12권
1995년 제10회 - 조태일 시집 『풀꽃은 꺾이지 않는다』
1996년 제11회 - 신경숙 장편 『외딴 방』
1997년 제12회 - 백무산 시집 『인간의 시간』
1998년 제13회 - 수상작 없음
1999년 제14회 - 박완서 소설집 『너무도 쓸쓸한 당신』
2000년 제15회 - 임형택 『실사구시의 한국학』
2001년 제16회 - 정희성 『詩를 찾아서』
2002년 제17회 - 김지하 『花開』
2003년 제18회 - 박범신 장편 『더러운 책상』 유홍준 『완당평전』
2004년 제19회 - 홍석중 장편 『황진이』
2005년 제20회 - 김원일 연작 소설 『푸른 혼』
2006년 제21회 - 김규동 시집 『느릅나무에게』
2007년 제22회 - 김영하 장편소설 『빛의 제국』
2008년 제23회 - 윤영수 소설집 『소설 쓰는 밤』
2009년 제24회 - 공선옥 소설집 『나는 죽지 않겠다』 『명랑한 밤길』
2010년 제25회 - 강만길 자서전 『역사가의 시간』 박형규 회고록, 신홍범 정리 『나의 믿음은 길 위에 있다』
2011년 제26회 - 천양희 시집 『나는 가끔 우두커니가 된다』
2012년 제27회 - 이시영 시집 『경찰은 그들을 사람으로 보지 않았다』
2013년 제28회 - 조갑상 장편소설 『밤의 눈』
2014년 제29회 - 한강 장편소설 『소년이 온다』
2015년 제30회 - 수상작 없음
2016년 제31회 - 본상 이인휘 소설집 『폐허를 보다』, 특별상 김형수 『소태산 평전』, 공동수상 416세월호참사 작가기록단『다시 봄이 올 거예요』
2017년 제32회 - 본상 김정환 시집 『내 몸에 내려앉은 지명(地名)』, 특별상 황석영 이재의 전용호 기록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
2018년 제33회 - 김해자 시집 『해자네 점집』
2019년 제34회 - 본상 황정은 연작소설 『디디의 우산』, 특별상 김두식 지음 『법률가들: 선출되지 않은 권력의 탄생』
2020년 제35회 - 본상 최진영 장편소설 『이제야 언니에게』, 특별상 김종철 문학론집 『대지의 상상력』
2021년 제36회 - 본상 김승희 시집 『단무지와 베이컨의 진실한 사람』, 특별상 김용옥 『동경대전』(전2권)
2022년 제37회 - 본상 김명기 시집 『돌아갈 곳 없는 사람처럼 서 있었다』, 특별상 비마이너 기획, 정창조 강혜민 최예륜 홍은전 김윤영 박희정 홍세미 지음 『유언을 만난 세계: 장애해방열사, 죽어서도 여기 머무는 자』
[자료] 백석문학상 역대수상작 목록 :
(수상년도 ## - 저자 및 분야 『서명』 순)
1999년 제 1회 - 이상국 시집 『집은 아직 따뜻하다』, 황지우 시집 『어느 날 나는 흐린 酒店에 앉아 있을 거다』
2000년 제 2회 - 최영철 시집 『일광욕하는 가구』
2001년 제 3회 - 김영무 시집 『가상현실』
2002년 제 4회 - 신대철 시집 『개마고원에서 온 친구에게』
2003년 제 5회 - 박영근 시집 『저 꽃이 불편하다』
2004년 제 6회 - 이시영 시집 『바다 호수』
2005년 제 7회 - 정양 시집 『길을 잃고 싶을 때가 많았다』
2006년 제 8회 - 고형렬 시집 『밤 미시령』
2007년 제 9회 - 김정환 시집 『드러남과 드러냄』
2008년 제10회 - 김해자 시집 『축제』
2009년 제11회 - 안도현 시집 『간절하게 참 철없이』
2010년 제12회 - 박철 시집 『불을 지펴야겠다』
2011년 제13회 - 도종환 시집 『세시에서 다섯시 사이』
2012년 제14회 - 최정례 시집 『캥거루는 캥거루고 나는 나인데』
2013년 제15회 - 엄원태 시집 『먼 우레처럼 다시 올 것이다
2014년 제16회 - 전동균 시집 『우리처럼 낯선』
2015년 제17회 - 백무산 시집 『폐허를 인양하다』
2016년 제18회 - 장철문 시집 『비유의 바깥』
2017년 제19회 - 신용목 시집 『누군가가 누군가를 부르면 내가 돌아보았다』
2018년 제20회 - 박성우 시집 『웃는 연습』
2019년 제21회 - 나희덕 시집 『파일명 서정시』
2020년 제22회 - 황규관 시집 『이번 차는 그냥 보내자』
2021년 제23회 - 안상학 시집 『남아 있는 날들은 모두가 내일』
2022년 제24회 - 진은영 시집 『나는 오래된 거리처럼 너를 사랑하고』
[자료] 신동엽문학상 (신동엽창작기금~) 역대수상작 목록 :
(수상년도 ## - 수상자 /분야 『서명』 출간년도 순)
1982년 제 1회 - 이문구 /장편소설 『산너머 남촌』 1990 출간
1983년 제 2회 - 하종오 /시집 『넋이야 넋이로다』 1986 출간, 송기원 /시집 『마음속 붉은 꽃잎』 1990 출간
1984년 제 3회 - 김명수 /시집 『피뢰침과 심장』 1989 출간, 김종철 /산문집 『아픈 다리 서로 기대며』 1995 출간
1985년 제 4회 - 양성우 /시집 『그대의 하늘길』 1987 출간, 김성동 /장편소설 『집』 상·하 1989, 1990 및 『길』 1991 출간
1986년 제 5회 - 이동순 /시집 『지금 그리운 사람은』 1986 출간, 현기영 /장편소설 『바람 타는 섬』 1989 출간
1987년 제 6회 - 박태순 김사인
1988년 제 7회 - 윤정모 /장편소설 『들』 1992 출간
1990년 제 8회 - 도종환 /시집 『당신은 누구십니까』 1993 출간
1991년 제 9회 - 김남주 /시집 『사상의 거처』 1991 출간, 방현석 /장편소설 『십년간』 상·하 1991 출간
1992년 제10회 - 곽재구 /시집 『참 맑은 물살』 1995 출간, 김하기 /장편소설 『항로 없는 비행』 상·하 1993 출간
1993년 제11회 - 고재종 /시집 『날랜 사랑』 1995 출간
1994년 제12회 - 박영근 /시집 『지금도 그 별은 눈뜨는가』 1997 출간
1995년 제13회 - 공선옥 /장편소설 『시절들』 1995 출간
1996년 제14회 - 윤재철 /시집 『생은 아름다울지라도』
1997년 제15회 - 유용주 /시집 『크나큰 침묵』
1998년 제16회 - 이원규 /시집 『돌아보면 그가 있다』
1999년 제17회 - 박정요 /장편소설 『어른도 길을 잃는다』
2000년 제18회 - 전성태 /소설집 『매향』
2001년 제19회 - 김종광 /소설집 『경찰서여 안녕』
2002년 제20회 - 최종천 /시집 『눈물은 푸르다』
2003년 제21회 - 천운영 /소설집 『바늘』
2004년 제22회 - 손택수 /시집 『호랑이 발자국』
2005년 제23회 - 박민규 /소설집 『카스테라』
2006년 제24회 - 박후기 /시집 『종이는 나무의 유전자를 갖고 있다』
2007년 제25회 - 박성우 /시집 『가뜬한 잠』
2008년 제26회 - 오수연 /소설집 『황금 지붕』
2009년 제27회 - 김애란 /소설집 『침이 고인다』
2010년 제28회 - 안현미 /시집 『이별의 재구성』
2011년 제29회 - 송경동 /시집 『사소한 물음들에 답함』, 김미월 /편소설 『여덟번째 방』
2012년 제30회 - 김중일 /시집 『아무튼 씨 미안해요』, 황정은 /소설집 『파씨의 입문』
2013년 제31회 - 박준 /시집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 조해진 /장편소설 『로기완을 만났다』
2014년 제32회 - 김성규 /시집 『천국은 언제쯤 망가진 자들을 수거해가나』, 최진영 /소설집 『팽이』
2015년 제33회 - 박소란 /시집 『심장에 가까운 말』, 김금희 /소설집 『센티멘털도 하루 이틀』
2016년 제34회 - 안희연 /시집 『너의 슬픔이 끼어들 때』, 금희 /소설집 『세상에 없는 나의 집』
2017년 제35회 - 임솔아 /시집 『괴괴한 날씨와 착한 사람들』, 김정아 /소설집 『가시』
2018년 제36회 - 김현 /시집 『입술을 열면』, 김혜진 /장편소설 『딸에 대하여』
2019년 제37회 - 신철규 /시집 『지구만큼 슬펐다고 한다』, 김세희 /소설집 『가만한 나날』, 양경언 /평론 「비평이 왜 중요한가: 비평이 혁명을 의미화하는 방식」
2020년 제38회 - 주민현 /시집 『킬트, 그리고 퀼트』), 김유담 /소설집 『탬버린』
2021년 제39회 - 이정훈 /시집 『쏘가리, 호랑이』), 박상영 /연작소설 『대도시의 사랑법』), 장은영 /평론 「인간적인 죽음, 그런 미래를 상상하는 일: 김사이론」
2022년 제40회 - 최지인 /시집 『일하고 일하고 사랑을 하고』, 정성숙 /소설집 『호미』, 김요섭 /평론 「피 흘리는 거울: 군사주의와 피해의 남성성」
[자료] 소월시문학상 역대수상작 목록 :
(## 수상년도 / 수상자 <수상작> 순)
1회(1986) / 오세영 〈그릇1〉
2회(1987) / 송수권 〈우리 나라의 숲과 새들〉
3회(1988) / 정호승 〈임진강에서〉
4회(1989) / 이성복 〈숨길 수 없는 노래〉
5회(1990) / 김승희 〈떠도는 환유〉
6회(1991) / 조정권 〈산정묘지〉
7회(1992) / 김명인 〈화엄에 오르다〉
8회(1993) / 황지우 〈뼈아픈 후회〉
9회(1994) / 임영조 〈고도(孤島)를 위하여〉
10회(1995) / 천양희 〈단추를 채우면서〉
11회(1996) / 문정희 〈키 큰 남자를 보면〉
12회(1997) / 김용택 〈사람들은 왜 모를까〉
13회(1998) / 안도현 〈고래를 기다리며〉
14회(1999) / 김정란 〈사랑으로 나는〉
15회(2000) / 김혜순 〈잘 익은 사과〉
16회(2001) / 고재종 〈백련사 동백숲길에서〉
17회(2002) / 이문재 〈지구의 가을〉
18회(2003) / 정일근 〈둥근 어머니의 두레밥상〉
19회(2004) / 박정대 〈아무르 강가에서〉
20회(2005) / 박주택 〈시간의 동공〉
21회(2006) / 문태준 〈그맘때에는〉
22회(2007) / 나희덕 〈섶섬이 보이는 방〉
23회(2008) / 정끝별 〈크나큰 잠〉
24회(2009) / 박형준 〈가슴의 환한 고동 외에는〉
25회(2010) / 송재학 〈공중〉
26회(2011) / 배한봉 〈복사꽃 아래 천년〉
27회(2012) / 이재무 〈길 위의 식사〉
28회(2013) / 유홍준 〈북천 까마귀〉
29회(2014) / *수상자 없음
30회(2019) / 나태주 《마음이 살짝 기운다》(알에치코리라, 2019)
* 2014년~2018년까지 5년 동안 시상이 중단되었음.
* 29회(2014년)는 문예연감에 '수상자 없음'으로 나와 있음.
* 제28회까지는 최종심사에 오른 10편 가운데 최우수작 1편은 대상, 나머지는 우수작으로 선정하였음.
* 제30회(2019)부터 최근 1년 내에 발표된 신작 시집으로 대상을 바꾸었음.
2017년 제62회 현대문학상 수상작 :
임승유, 휴일
https://www.hdmh.co.kr/front/book/bookDetail?idx=2441
“삶의 요령부득과 허망함을 독특한 형언形言으로 받아내고 있는 임승유의 시들은 2000년대 이후 출현한 한국 시의 젊은 어법을 한 단계 갱신하고 있다고 보인다. 그의 어투는 그런 만큼 낯익고 또 그만큼 낯선데, 어느 경우건 드문 생생함을 유지하고 있다. 꾸밈말이 극단적으로 절제되거나 구문과 구문, 말과 말들이 독특한 각도로 어긋나거나 교차되며 일상어에 긴장을 부여하는 임승유의 시적 모험은, 생의 치욕과 무력감에 대한 대응으로서 충분히 새롭고 성실한 것이라고 여겨진다.” (심사평 중에)
제일 먼저는 가장 오래된 문학상 중 하나인 ‘현대문학상’을 살펴보겠습니다. 가장 최근에는 황인찬, 이제니 등 당대를 대표할만한 시인들도 이름을 올려놓았으니 권위와도 무관히 계보를 이해해둘 필요는 좀 있겠어서요.
휴일
휴일은 오고 있었다. 휴일이 오는 동안 너는 오고 있지 않았다. 네가 오고 있지 않다는 것을 어떻게 아는지 모르는 채로 오고 있는 휴일과 오고 있지 않는 너 사이로
풀이 자랐다. 풀이 자라는 걸 알려면 풀을 안 보면 된다. 다음 날엔 바람이 불었다. 풀을 보고 있으면 저절로 알게 된다. 내가 알게 된 것을
모르지 않는 네가
왔다가 갔다는 걸 이해하기 위해 태양은 구름 사이로 숨지 않았고 더운 날이 계속되었다. 휴일이 오는 동안
* 2017년 제62회 현대문학상 수상작
2018년 제63회 현대문학상 수상작 :
황인숙, 간발
https://www.hdmh.co.kr/front/book/bookDetail?idx=2470
[알쓸신잡] 역대 최초로 '그랜드슬램'을 달성한 시인은?
무릇 문학상의 권위라는 게 현존하는 경우에만 국한해 얘기를 할 수 있기 때문에, 문학과지성사에서 주관을 했던 중요했던 상인 이산문학상 등을 모두 제외하면 크게 네 가지 정도로 일명 "메이저급"을 구분해볼 수 있습니다. (현대문학상, 창비의 3개 문학상들, 소월시문학상, 대산문학상으로 가장 상금이 큰 대산문학상의 경우는 김수영문학상의 5배 규모인 5천만원을 상금으로 수여합니다.)
이들 각각의 메이저급 문학상들에서 모두 수상을 한 시인은 그동안 황지우 시인이 유일했습니다.
1983년에 이미 수상을 했던 김수영문학상을 포함해 1991년 현대문학상부터 차례대로 소월시문학상, 백석문학상과 대산문학상을 각각 수상하면서 총 5관왕을 달성한 시인인 셈입니다.
김명인, 김사인, 이성복 시인 등이 총 3군데에서 수상을 한 이력이 있고, 특히 이성복 시인 역시 제2회 김수영문학상 수상을 기록했으므로 총 4관왕까지를 달성한 셈인데 이는 나머지 두 시인들이 이미 그전에 등단을 한 경우라서 '신인 중심'이던 김수영문학상의 대상으로는 포함되지 않았던 까닭입니다. (김사인 시인은 이 해의 심사평을 쓰기도 했죠.)
가장 최근에 대산문학상을 수상하면서 황지우 시인에 이어 두번째로 총 5관왕을 달성한 시인이 있는데, 바로 나희덕 시인입니다. 1998년의 김수영문학상부터 2022년의 대산문학상까지 무려 25년 동안을 꾸준히 정진해온 이력으로도 읽습니다.
황인숙 시인의 경우는 지난 2004년의 김수영문학상에 이은 두번째 메이저급 문학상 수상을 기록한 해입니다.
간발
앞자리에 흘린 지갑을 싣고
막 떠나간 택시
오늘따라 지갑이 두둑도 했지
애가 타네, 애가 타
당첨번호에서 하나씩
많거나 적은 내 로또의 숫자들
간발의 차이 중요하여라
시가 되는지 안되는지도 간발의 차이
간발의 차이로 말이 많아지고, 할 말이 없어지고
떠올렸던 시상이 간발 차이로 날아가고
간발의 차이로 버스를 놓치고
길을 놓치고 날짜를 놓치고 사람을 놓치고
간발의 차이로 슬픔을 놓치고
슬픔을 표할 타이밍에 웃음이 터지기도 했네
바늘에 찔린 풍선처럼 뺨을 푸들거리며
놓친건 죄다 간발의 차이인 것 같지
누군가 써버린지 오랜
탐스런 비유도 간발로 놓친 것 같지
간발의 차이로 놓치기만 했을까
잡기도 했겠지, 생기기도 했겠지
간발의 차이로 내 목숨 태어나고
숱한 간발 차이로 지금 내가 이러고 있겠지
간발의 차이로
손수건을 적시고, 팬티를 적시고
* 2018년 제63회 현대문학상 수상작
2023년 7월 29일 (토)
2019년 제64회 현대문학상 수상작 :
안미옥, 지정석
https://www.hdmh.co.kr/front/book/bookDetail?idx=2532
“시 앞에서 나는 한없이 부끄럽고 자신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를 더 만나고 싶다. 시를 더 깊게 경험하고 싶다. 수상 소식을 들은 날, 자전거를 타고 불광천을 한참 달렸다. 쓰고 싶다. 무엇을 쓸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좋은 시를 쓰고 싶다. 질문을 놓지 않으면서 살고 싶다. 그런 마음으로 가득했다.” (수상소감 중에)
[토막상식]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문학상은?
한국시인협회에서 주관하는 ‘한국시인협회상’으로 1956년부터 시작된 현대문학상보다도 9년이 더 빠른 1947년에 제정되었습니다. 제1회 수상자는 김수영 시인이었으며, 제2회 수상자는 김춘수 시인이었습니다.
지정석
왜 그냥 넘어가지지가 않을까
귤을 만지작거리면
껍질의 두께를 알 수 있듯이
혀를 굴려보면
말의 두께도 알게 될 것만 같다
창틀엔 무수한 손
의자 모서리엔 많은 무릎이 겹쳐 있다
숨어 있는 의미를 헤아리려
애쓰는 사람이 되지는 말자고
못이 가득 쌓인 상자 안에서
휘어진 못을 골라내면서
생각한다
빗나간 망치가 내려친 곳을
두 귀를 세우고 뛰어가던 토끼가
멈춰 서 뒤를 돌아보았을 때처럼
앞니가 툭
바닥으로 떨어질 것 같다
붉어진 두 눈엔 이유가 없고
나의 혼자는 자꾸 사람들과 있었다
* 2019년 제64회 현대문학상 수상작
2020년 제65회 현대문학상 수상작 :
유희경, 교양 있는 사람
https://www.hdmh.co.kr/front/book/bookDetail?idx=2588
"시를 쓰는 일은 두 개의 터널과 고가도로 하나 세 곳의 궁을 지나 어디론가 가는 일이며 기다리고 기다리다 무얼 기다리는지 잊어버리는 일이며 혼자가 되는 일이나 건너편의 나를 우두커니 들여다보게 되는 그런 일이라고 믿습니다. 열두 해 동안 오가며 그렇게 시를 써왔습니다. 도중에 그만둘 수도 있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러고 싶었던 적은 없습니다. 시를 쓰는 일을 좋아하기 때문입니다. 좋아하는 것과 잘하는 것은 별개입니다." (수상소감 중에)
강성은, 김기택, 백은선, 서윤후, 안희연, 양안다, 이장욱... 당해년도 후보작들의 면면이었습니다. 이 치열한 경쟁을 뚫고 어렵게 수상한 유희경 시인은 2008년 조선일보 신춘문예로 등단을 해 데뷔 12년만에야 생애 최대의 타이틀을 거머쥐었습니다.
교양 있는 사람
교양 있는 사람은 노크하며 묻는다 똑똑 계십니까 교양 있는 사람이여 기다렸습니다 하지만 여기에는 문이 없군요 당신을 위해 던져 버렸으니까요 그것은 아래로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그는 반듯하게 접힌 손수건을 꺼내 자신의 선한 이마를 훔친다 경치가 훌륭하군요 여기까지 올라오는 동안 정말 많은 생각을 했답니다
나는 두 손을 가지런히 모으고 기다린다 어서 그가 말해 주기를 한 층 한 층 올라설 때마다 떠올렸던 영광된 기억과 희망찬 미래의 이야기들을 거기서 얻어 낸 빛나는 영감들 그리고 그가 낚아챈 상념의 거센 발버둥과 울음소리에 대해서도
몹시 피곤하군요 그는 졸린 눈으로 나를 본다 나는 그에게 의자를 가져다주고 그러면 교양 있는 사람은 자리에 앉아 깊은 잠에 빠지는 것이다 이런 일은 매번 반복되지만 나는 두 손을 가지런히 모은 채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는 내가 기다리는 교양 있는 사람이고 언젠가 내가 기다리는 말을 해 주리라는 사실을
2020년 제65회 현대문학상 수상작
2021년 제66회 현대문학상 수상작 :
황인찬, 이미지 사진
https://www.hdmh.co.kr/front/book/bookDetail?idx=2634
“수상작들은 평범한 일상의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이야기 사이에 생략을 통한 여백이 풍부하고 노래하는 듯한 리듬을 타고 있어서 긴장감과 울림이 크다. (중략) 그 목소리는 목과 어깨에서 힘을 빼고 무심하고 표정 없는 어투로 딴청을 부리는 듯하다. 애써 심오한 의미를 드러내려 하거나 문장을 뒤틀어 어떤 효과를 노리지는 않지만, 쓰지 않으면서도 더 많이 쓴 이 여백은 독자들이 들어와 상상력으로 읽으며 시에 참여하도록 유도한다.” (심사평 중에)
2010년에 <현대문학>으로 등단을 해, 세 권의 시집을 내는 동안에도 현대문학상과는 인연이 없던 황인찬 시인의 이 수상작은 지난 2020년 <현대시> 8월호에 실렸던 작품인데요, 3년 뒤인 올해에 출간된 그의 다섯번째 시집 “이걸 내 마음이라고 하자”에 뒤늦게 수록되었습니다.
이미지 사진
아름다움 하나
나무 의자 둘
잠시 찾아와서 내려앉는 빛
이 장면은 폐기되었고
이해하자 좋은 마음으로 그런 거잖아 하나
서양 난 화분이 쓰러진 모양이 둘
너는 그런 걸 어떻게 다 기억하니(다 날아가고 눈 코 입만 남은 사진 그것이 아름답다고 생각했던 날들의 기억)
사진관에 모이는 것으로 마음을 남기던 시절의 기억 속으로 내려오는 저녁이 하나 휘어지는 빛이 둘
(이 순간을 어떤 영화에서 본 것만 같다고 잠시 느꼈을 때, 그것이 어떤 시절에만 가능한 착각이라는 점을 뒤늦게 알아차리고 나서의 부끄러움)
죽은 아름다움 하나
부서진 나무 의자 다섯
자꾸 뭘 기억하려고 그래(여전히 떠나지 않고 남아 있는 빛) 예전에는 이렇게 많이들 날려서 찍었지?
(작은 강의실이 젊은 옛날 사람들로 가득하다 이미지가 무슨 말을 하고 싶어 하는지 귀를 기울이세요 말하는 사람과 이미지인데 왜 귀를 기울여요 말하는 사람)
웃으세요
친구끼리 왜 그렇게 멀찍이 서 있어요
그 말을 듣고 그냥 웃는 사람의 얼굴이 하나
웃음기가 사라진 얼굴이 사라짐
그 장면은 경험하지 않은 것으로 하고
빛이 들어가면 다 상하니까
어둡고 서늘한 곳에 보관하세요
불 꺼진 실내에 웅크리고 앉은 빛
* 2021년 제66회 현대문학상 수상작
2022년 제67회 현대문학상 수상작 :
이제니, 발견되는 춤으로부터
https://www.hdmh.co.kr/front/book/bookDetail?idx=2777
"“발생하는 눈” “바라보는 눈, 바라보면서 알아차리는 눈, 알아차리면서 흘러가는 눈, 흘러가면서 머무르는 눈, 머무르면서 지워지는 눈, 지워지면서 다시 되새기는 눈”을 통해 경험의 시선에서 시적인 언어의 시선으로 이동한다. ‘기이한 착각, 비어 있음으로 가득히 비어 있는 것’을 통한 차원의 변화, 그리고 “빛과 어둠의 경계 위에서 흩날리는 입자와 입자” 사이에서 발생하는 ‘춤, 눈, 땅’으로 나아가는, 물러서지 않는 언어의 동력이 눈부시다.
(……) 이렇게 의식의 눈을 찌르는 언어, 발견되는 언어를 통해 이제니의 시는 ‘시적’으로 ‘시답게’ 빛난다." (심사평 중에)
오십을 넘긴 나이에 최고의 영예를 안은 이제니 시인. '꺾이지 않는 마음'을 스스로 실현한, 진짜 '시인'입니다. ;
발견되는 춤으로부터
- 이제니
멀리 성당의 첨탑에서 저녁 미사를 알리는 종소리 들려온다. 열린 창 너머로 어스름 저녁 빛 새어 들어오고, 마룻바닥 위로 어른거리는 빛, 움직이면서 원래의 형상을 벗어나려는 빛이 있다. 어디로든 갈 수 있다고 속삭이는 옛날의 빛이 있다. 사제는 한 그릇의 간소한 식사를 마치고 자리에서 일어난다. 가장 낮은 자리로 물러나 무릎을 꿇고 기도를 올린다. 화면은 다시 정지된다. 일평생 봉쇄 수도원의 좁고 어두운 방에 스스로를 유폐한 채 기도에만 헌신하는 삶, 너는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는 그 기도가 누구를 도울 수 있는지 묻는다. 화면은 다시 이어진다. 너는 책상으로 가 앉는다. 맞은편에는 비어 있는 의지, 비어 있음으로 가득한 의자, 책상 위에는 먼 나라에서 보내온 엽서가 놓여 있다. 엽서는 북반구 소도시의 풍광 사진을 담은 것으로 단단한 얼음을 도려낸 듯한 작은 호수가 펼쳐져 있다. 한때의 죽음과도 같은..... 호숫가에는 걷거나 뛰는 사람들이 어딘가로 가려는 동시에 어딘가에 멈추어 서 있다. 멈추어 있는 패로 움직이고 있는 자전거 바퀴의 빛살이 아득히 눈부시다. 언젠가 너를 눈멀게 했던 호수의 빛, 한 발, 한 발 천천히 걸어 들어가 남몰래 몸을 던지려 했던 깊고 쓸쓸한 물결의, 엽서 곁에는 작고 검은 돌이 몇 개 놓여 있다. 검은 돌.... 뚝뚝 눈물을 흘리면서 울고 있는 작은 돌, 돌의 표면 위로 무언가 흘러가고.... 돌연 가슴을 두드리는 슬픔이 지나가고...... 돌은 다시 발견된다. 돌은 그제야 제자리에 놓인다. 발견되는 돌 이전에는 발생한 눈이 있었고, 눈. 바라보는 눈. 바라보면서 알아차리는 눈. 알아차리면서 흘러가는 눈. 흘러가면서 머무르는 눈. 머무르면서 지워지는 눈. 지워지면서 다시 되새기는 눈. 너는 엽서의 뒷장을 펼쳐 읽는다. 끝없는 설원의 가장자리로부터 한 사람이 베일 듯 걸어 나온다. 얼음의 꽃으로부터 향기를 간직하려던 사람이여, 닿을 수 없는 국경 너머를 향해 뿔피리를 불던 먼 생의 사람이여. 너는 이미 죽은 스승의 전생의 어머니이다. 몇 겁의 세월을 지나 이름 없는 여인이 낳은 구슬픈 눈을 가진 어린 린포체이다. 순간...... 마룻바닥 위로 한 번도 가보지 못한 곳의 겪지 못한 형국을 한눈에 다 바라볼 수 있다는 기이한 착각 속에 빠져든 채로.... 맞은편은 여전히 비어 있다. 비어 있음으로 가득히 비어 있다. 의자에 앉은 너는 끝없는 설원 위를 끝없이 걷는다. 고행이라도 하듯이, 앞서 걸어가는 네 자신의 옷자락을 간신히 붙잡고 가듯이, 정지된 화면은 다시 재생된다. 기도를 마친 사제는 책상으로 옮겨 앉아 먼 나라의 슬프고 아픈 사람에게 편지를 쓴다. 빛이 먼지를 지우고 있습니다. 밤이 어둡을 돕고 있습니다. 사이..... 푹푹 눈밭에 빠지는 발소리가 누군가의 울음소리처럼 들려왔기에. 너는 의자에 앉은 채로 걸음을 멈춘다. 눈을 들어 옆을 바라보았을 때, 어느새 작고 어린 겨울 짐승이 네 곁을 따라 걷고 있었고 너와 어린 짐승은 각자의 생각에 잠겨 각자의 길을 걷고 또 걸었다. 그것은 언젠가 전해 들은 믿음에 관한 이야기와도 같아서. 네가 바라보는 거울 속에서 너는 무엇이든 될 수 있고 무엇이든 볼 수 있다는 찰나의 깨달음에 관한 이야기로서, 너는 작고 검은 돌 위에서 두 번 다시 볼 수 없는 한 얼굴을 발견한다. 어슴푸레한 빛 속에서 무수히 떠오르는 몸짓들. 빛과 어둠의 경계 위에서 흩날리는 입자와 입자 사이의 흐느낌 속에서, 잊고 있었던 기억처럼 먼지의 춤이 발생한다. 춤이 발생하기 이전에는 하염없이 내리는 누이 있었고, 하염없이 내리는 눈 이전에는 하염없이 덮이는 땅이 있었고, 하염없이 덮이는 땅 이전에는 하염없이 자기 자신으로 돌아가는 몸이 있었고...... 너는 멈추어 있는 채로 걸어가는 그 모든 사물의 표정과 목소리를 너 자신의 얼굴인 듯 읽어 내려간다. 사이..... 먼 나라의 사제는 온몸으로 세계의 울음을 듣는 사람이 되어 이 세상 속으로 한 걸음 더 걸어 들어가고 있었고, 어느덧 너는 더는 나아갈 수 없는 설원의 모서리에 도착해 있었으므로 이제 그만 작별 인사를 하려고 고개를 돌렸을 때 함께 걷던 작고 어린 겨울 짐승은 어느 곁에 사라지고 없었고 오직 너 혼자만이, 너 자신과 함께. 둘인 동시에 하나인 채로. 하나인 동시에 둘인 채로, 먼 길을 오래오래 홀로 함께 걸어가고 있었으므로 걷고 걸어도 가닿지 못하는 설원의 빛 너머로부터. 누군가 멀리서 내내 당신을 돕고 있습니다.. 춥고 어두운 골짜기에서 들려오듯 문득 서럽고 드넓게 울려오는 네 마음속 한목소리가 있어. 너는 먼 곳의 얼굴 없는 사제를 네 영혼의 친척으로 여기는 것이다.
# 2022년 제67회 현대문학상 수상작
2023년 7월 30일 (일)
2023년 제68회 현대문학상 수상작 :
황유원, 하얀 사슴 연못
https://www.hdmh.co.kr/front/book/bookDetail?idx=2836
"제 머릿속에 들어와 살고 있는 문장 가운데 이런 게 있습니다. “inquietum est cor nostrum, donec requiescat in te.” 아우구스티누스의 『고백록』에 나오는 문장으로, ‘당신 안에서 안식을 얻기 전까지, 우리의 마음은 쉬지 못합니다’ 정도로 번역하는 게 적당하겠지만, 저는 이 문장을 ‘당신 안에서 쉬기 전까지, 우리 마음은 정처 없습니다’로 의역하길 좋아합니다. 계속, 정처 없겠습니다. 당신 안에서 쉬기 전까지." (수상소감 중에)
수상 후보작들은 권박, 김승일, 김현, 송승언, 안희연, 이영광 이영주 등이었습니다. 어쩌면 '미래파' 이후 현대시가 거쳐온 이정표 또는 가야 할 길을 밝히는 등대들인지도 모릅니다.
하얀 사슴 연못
백록담이라는 말에는 하얀
사슴이 살고 있다
이곳의 사슴 다 잡아들여도 매해 연말이면 하늘에서 사슴이
눈처럼 내려와 이듬해 다시
번성하곤 했다는데
이제 하얀 사슴은 백록담이라는 말
속에만 살고
벌써 백 년째 이곳은 지용의 『백록담』 표지에서
사슴 모두 뛰쳐나가고 남은
빈자리 같아
그래도 이곳의 옛 선인들이 백록으로 담근 술을 마셨다는 기록이 있는 것을 보면
백록은 어쩌면 동물이 아니라
기운에 가깝고
뛰어다니기보다는 바람을 타고 퍼지는 것에 가까워
백록담, 이라고 발음할 때마다 『백록담』 표지 밖에서 표지 안으로
돌아오는 것도 같고
하얀 사슴 몇 마리가 백록담 위를 찬바람처럼 달려가고 있을 거라는 생각만으로도 머릿속은
청량해진다
연못에 잠시 생각의 뿔을 담갔다
빼기라도 한 것처럼
사실 지용이 『백록담』을 썼을 때 사슴은 이미 여기 없었다
표지의 사슴 두 마리는 없는 사슴이었고
길진섭의 그림은 그저 상상화일 뿐이었는데
어인 일일까
백록담, 이라고 발음할 때마다
살이 오른 사슴들이
빈 표지 같은 내 가슴속으로 다시 뛰어들어와
마실 물을 찾는다
놀랍게도 물은 늘
그곳에 있다
* 2023년 제68회 현대문학상 수상작
2023년 7월 31일 (월)
2017년 제19회 백석문학상 수상작 :
신용목, 누군가가 누군가를 부르면 내가 돌아보았다
https://www.changbi.com/newsDetail?newsid=5261
"시대 현실을 관통하는 가운데 타자에 대한 깊이 있는 사유와 자유로운 언어적 모험을 감행함으로써 '세월호 이후의 시'가 다다른 일단의 성취를 보여주며, 시인의 시력에 있어서도 한 절정을 이룬다고 평가되어 신용목 시인이 만장일치의 지지를 받았다" (심사평 중에, 김행숙/안도현/최원식)
새로운 한주는 창비에서 주관하는 3개의 문학상들 중 '자격제한'이 없는 백석문학상을 중심으로 해 살펴보겠습니다. (신동엽문학상은 10년차 미만, 만해문학상은 10년차 이상으로 제한)
모래 시계
잤던 잠을 또 잤다.
모래처럼 하얗게 쏟아지는 잠이었다.
누구의 이름이든
부르면,
그가 나타날 것 같은 모래밭이었다. 잠은 어떻게 그 많은 모래를 다 옮겨왔을까?
멀리서부터 모래를 털며 걸어오는 사람을 보았다.
모래로 부서지는 이름을 보았다.
가까워지면,
누가 누군지 알 수 없었다.
누군가의 해변이 끝없이 펼쳐져 있었다.
잤던 잠을 또 잤다.
꿨던 꿈을 또 꾸며 파도 소리를 듣고 있었다. 파도는 언제부터 내 몸의 모래를 다 가져갔을까?
누군가가 누군가를 부르면,
내가 돌아보았다.
누군가가 누군가를 부르지 않아도
나는 돌아보았다.
- 신용목, 누군가가 누군가를 부르면 내가 돌아보았다 (창비, 2017)
2018년 제20회 백석문학상 수상작 :
박성우, 웃는 연습 (2017)
https://www.changbi.com/NewsDetail?newsid=5306
“『웃는 연습』은 농촌 공동체의 일상에서 길어올린 진솔하고 질박한 언어로 고향에 뿌리를 박고 살아가는 이들의 면면과 갖가지 사연, 그리고 그 속에서 포착한 통찰을 들려준다. 경쟁과 효율을 앞세우는 도시적 생활 감각과 속도를 존재의 한 부면에 상처처럼 새기는 한편, 이를 거슬러 자연과 어우러지는 사람살이 본연의 리듬을 창출해내고 이제는 희귀해져버린 토박이의 삶과 언어를 새롭게 발견한다는 점에서 백석의 시정신을 계승한다고 평가되어 올해 수상작으로 선정했다.” (심사평 중에)
어제 소개해드린 신용목 시인과 함께 창비시선 400호 앤쏠로지를 엮었던 박성우 시인이 공교롭게도 이듬해의 제20회 백석문학상을 수상했습니다. 한때는 대학교수였음에도 “더 좋은 시인이 되고자” 홀연 사직서를 던진 이력 또한 이채롭습니다.
마흔
거울을 본다 거울을 보다가 거울 속으로 들어가 거울을 보고 있는 사내를 본다 광대뼈가 불거져 나온
마흔의 사내여, 너는 산다 죽을 둥 살 둥 살고 죽을 똥 살 똥 산다 죽을 똥을 싸면서도 죽자 사자 산다 죽자 사자 살아왔으니 살고 하루하루 죽은 목숨이라 여기고 산다 죽으나 사나 산다 죽기보다 싫어도 살고 죽을 고생을 해도 죽은 듯이 산다 풀이 죽어도 살고 기가 죽어도 살고 어깨가 축축 늘어져도 산다 성질머리도 자존심도 눌러 죽이고 산다 죽기 살기로 너를 짓눌러 죽이고 산다 수백 번도 넘게 죽었으나 죽은 줄도 모르고
늦은 밤 거울 앞에 앉은 사내여, 왜 웃느냐 너는 대체 왜 웃는 연습을 하느냐
- 박성우, 웃는 연습 (창비 2017)
2023년 8월 1일 (화)
2019년 제21회 백석문학상 수상작 :
나희덕, 파일명 서정시
https://www.changbi.com/NewsDetail?newsid=5349
"『파일명 서정시』는 감시와 착취, 죽음과 절망이 도처에 존재하는 시대현실과 정면으로 맞서는 시집이다. 시인의 주변을 포함하여 세월호로부터 아우슈비츠, 아프리카 초원의 누에 이르기까지 이 세계에 편재한 죽음의 증후들 속에서 비극적 인식의 언어를 거침없이 토로하면서 이제까지는 없었던 전혀 다른 시세계를 보여준 이 시집이 리얼리즘 시의 예리한 갱신을 이루었다고 평가되어 올해 수상작으로 선정했다." (심사평 중에)
1989년 중앙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한 나희덕 시인이 데뷔 30년차에 백석문학상을 수상했습니다. 그는 3년 뒤의 대산문학상 수상까지를 합해 김수영문학상, 소월시문학상, 창비 주관 3대 문학상 및 현대문학상과 대산문학상까지를 두번째로 모두 수상하는 대단한 위업을 달성하게 됩니다.
파일명 서정시
그들은 <서정시>라는 파일 속에 그를 가두었다
서정시마저 불온한 것으로 믿으려 했기에
파일에는 가령 이런 것들이 들어 있었을 것이다
머리카락 한줌
손톱 몇조각
한쪽 귀퉁이가 해진 손수건
체크무늬 재킷 한벌
낡은 가죽 가방과 몇권의 책
스푼과 포크
고치다 만 원고 뭉치
은테 안경과 초록색 안경집
침묵 한병
숲에서 주워온 나뭇잎 몇개
붕대에 남은 체취는 유리병에 밀봉되고
그를 이루던 모든 것이 <서정시> 속에 들어 있었을 것이다
물론 그의 서정시들과 함께
그들은 이런 것조차 기록해두었을 것이다
화단에 심은 알뿌리가 무엇인지
다른 나라에서 온 편지가 몇통인지
숲에서 자빠귀와 어떤 대화를 나누었는지
옷자락에 잠든 나방 한마리를 어떻게 바라보았는지
하루에 물을 몇통이나 길었는지
재스민차를 누구와 마셨는지
도서관에서 어떤 책을 대출받았는지
강의 시간에 학생들과 어떤 말을 주고받았는지
저물 무렵 오솔길을 걷다가 왜 걸음을 멈추었는지
국경을 넘으며 어떤 표정을 지었는지
이 사랑의 나날 중에 대체 무엇이 불온하단 말인가
그들이 두려워한 것은
그가 사람의 마음을 열 수 있는 말을 가졌다는 것
마음의 뿌리를 돌보며 살았다는 것
자물쇠 고치는 노역에도
시 쓰는 일을 멈추지 않았다는 것
파일명 <서정시>에서 풀려난
서정시들은 이제 햇빛을 받으며 고요히 반짝인다
그의 생애를 견뎌온 문장들 사이로
한 사람이 걸어나온다, 맨발로, 그림자조차 걸치지 않고
- 나희덕, 파일명 서정시 (창비, 2018)
2020년 제22회 백석문학상 수상작 :
황규관, 이번 차는 그냥 보내자
https://www.changbi.com/newsDetail?newsid=5393
"『이번 차는 그냥 보내자』는 노동 경험의 핍진성을 존재론적 기원의 한 축에 두고, 다른 한 축에 분명하고 서늘한 자연 사물의 운행 원리를 배치해가는 ‘시인 황규관’의 서정성이 보물처럼 빛나는 결실이다. 나태와 일상을 거부하는 평범치 않은 ’발언’이 촘촘히 박힌 이 시집은 한국 리얼리즘시의 한 수준을 보여주면서도 우리 시가 발딛고 있어야 할 현실과 그 광활한 지평선을 활짝 열어주었다고 평가되어 올해 수상작으로 선정했다." (심사평 중에)
'리얼리즘' 시정신을 계속 견지하고 있는 문예지의 대표주자 격인 창비에서 문학동네의 시집인 황규관 시인을 추천했다는 건 그리 놀랄만한 일이 아닙니다. 스물다섯의 나이에 전태일문학상으로 데뷔를 해 쉰 살의 나이에 펴낸 여섯번째 시집으로 첫 메이저 타이틀을 얻게 됩니다.
이번 차는 그냥 보내자
이번 차는 그냥 보내자
웃음이 너무 많다 노래는
없고 이파리 한 장 내밀지 못하는
언어가 객차 안에 가득하다
이번 차는 등을 돌리자
모험은 건조한 형식이 아닌데
내 몸이 당신의 맥박을 차갑게 하는
이번 차는 내 것이 아니다
행선지가 너무 명확하다
진리여 법이여
폐허의 입을 틀어막는 환희여
이번 차는 모른 척 보내고
우두커니 혼자가 되자
혼자가 되어
멀리서 내리는 빗소리를 듣자
다음 차도 보내고
다음다음 차도 보내고
저물녘에 우는 늙은 새울음도 보내고
슬픔에 사로잡힌 영혼도 보내고......
- 황규관, 이번 차는 그냥 보내자 (문학동네, 2019)
[베껴쓰고 다시읽기] 33년의 추억, 33년의 궤적... 변함없는 노동의 세월 (오민석) :
일터로 가는 아내에게
어젯밤, 늦은 밤일을 마치고 너는 돌아왔다. 충혈된 눈동자, 휘어진 허리, 꿈도 없이 스러져 잠든 너의 피로가 이 훌륭한 가을 아침에도 가시질 않는구나. 무얼 구하러 일터로 가는 건지, 일할수록의 가난, 오늘따라 몸이 말을 안 듣는다며 대답 없는 깃발을 하염없이 흔드는 너를 두고 내가 무얼 답하랴. 흔들 것 하나 없는 내가― "이곳에선 있이 사는 거도 죄야"라고 말하면 너에게 죄가 될까― 더욱더 흔들린다. 이 땅의 대다수 사람들처럼 너 역시 농민의 자식의, 지식의 자식의 자식의... 자식의... 자식으로 태어나, 마찬가지로 농민의 자식의 자식의 자식의... 노동자의 자식으로 태어난 나와 만나, 수, 수... 세대에 걸친 가난, 수, 수세대에 걸친 이 뒤틀림을 의복으로 걸치고 있다. 이 출신 성분. 이것은 역사이다. 안 즐거운, 안 즐거웠던 노동의 역사. 누구는 아니라지만, 누구는 안 된다지만, 누구는 산 넘어 산, 계란으로 벽치기라지만, 이래서는 정말 안 된다는 생각이 오늘 아침 벽치기로 내 머리를 때린다. 올림픽이 끝난 지 얼마 안 되는 이 가을, 하늘 맑은 대한민국에서 만세, 만세, 길이 잘 잘 보존하고픈 것이 어찌 너와 나 뿐이랴. 그러나 이 땅의 대다수 형제 누이들이 만세, 만세 억겁 시름이었다면, 이 수세기의 역사를 어찌할꼬. 일터로 가는 아내여! 가는 길마다 그리고 오는 길마다 지천에 널려 있는, 숨어 안 보이는 이 악마의 세월을 눈 깨어 보자. 그리고 눈 닫지 말자. 오늘도 안 즐거운 일터로 가서, 꿈도 없이 스러져 돌아올 내 사랑, 아내여!
# <한길문학> 신인상 당선작 (1990년 5월, 창간호)
한길사에서 1990년에 새롭게 출간된 <한길문학>을 폐간될 때까지 줄곧 구독했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창간기념 신인상 공모에서 당선돼 등단을 한 오민석 시인은 1993년 동아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평론가로도 등단하게 됩니다. (역시 폐간된 <시와 사회>에서 그의 시론을 읽었던 게 기억납니다. 현재는 단국대 교수로 재직 중이기도 하죠.)
요즘의 정서로 치면 살짝 '비합' 같기도 했던 당시의 시절들 속에서는 <실천문학>이 무크의 형태로 발행되기도 하였고, 비로소 복간을 했던 <창작과비평> 그리고 새로운 이름을 달게 된 <문학과사회> 역시 빼놓을 수 없는 추억들인 셈입니다. 역시 비슷한 시절인데, 또 <노동해방문학>에 실린 공지영이라는 신인의 소설 광고 같은 게 더러 기억에 남기도 합니다. (뭐니뭐니해도 '화살' 시 논쟁으로 촉발된 여러 문예지들 간의 활발한 리얼리즘 논쟁이 1990년대 초반의 문단에서는 아무래도 가장 핫하지 않았을까로도 기억하는 편입니다. 이미 사그라든 그 '리얼리즘' 논쟁은 벌써 30년을 훌쩍 넘긴 포스트모더니즘의 시대에도 여전히 유효하면서도 아주 강력한 아젠다 중 하나이지만요.)
오민석의 데뷔작을 굳이 꺼내 읽는 건 이 시가 유일하게 실려 있는 그의 첫 시집이 무려 25년만에야 출간되었던 탓에, 또 그 시집을 구하기도 힘들고 또 누군가가 따로 블로그 같은 데에 이를 올려놓았던 적도 없었기에 정작 이 시를 접한 지 33년만에야 다시 조우하게 되는 기분 또한 영 남달라서입니다.
한 세대가 교체될만한 세월 속에서, 그렇게 흘러온 시간들 속에서 과연 그가 남겨놓은 '노동'의 의미는 어떻게 늙었으며 어떤 의미로 문양을 남겼을까도 잠시 생각해보는 시간입니다. (더러는 '비정규직'이라는, 또는 '긱경제'라는 "최첨단"의 그늘 속에서 동일한 문제를 겪는 한 체제에 관해서도)
2023년 8월 2일 (수)
2021년 제23회 백석문학상 수상작 :
안상학, 남아 있는 날들은 모두가 내일
https://www.changbi.com/NewsDetail?newsid=5435
"『남아 있는 날들은 모두가 내일』은 영원히 돌아오지 않을 한 시대를 증언하면서도 우리의 미래를 투시해내고 있다. 삶의 터전을 민속학적으로 재현해내는 백석 시와의 친연성뿐 아니라, 개인의 삶이 역사적 사실로 변성되는 과정에서 발산하는 시적 에너지가 어떤 담론의 흔적보다도 곡진한 우리네 삶을 돌아보게 하는 힘을 지녔다고 평가되어 올해 수상작으로 선정했다." (심사평 중에)
'걷는사람'이라는 작은 출판사의 큰 반란이었습니다. (해당 시인선에는 김신용, 김개미, 김은지, 손음 같은 유명한 이름들이 실리기도 했군요.) 1988년 중앙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했던 안상학 시인은 환갑의 나이에 이르러 백석문학상이라는 큰 영광을 안게 되었습니다.
생명선에 서서
이쯤일까
생명선 어디 이순의 언저리에 나를 세워 본다
앞으로 남은 손금의 길 빤하지만 늘 그랬듯이
한 치 앞을 모르겠다
지나온 길은 내가 너무도 잘 아는 길
오늘은 더듬더듬 그 길을 되돌아가 본다 이쯤에서
딸내미가 환한 얼굴로 살아가고 있다 다행이다 지나간다
송장 같은 내가 독가에 처박혀 있다 지나간다
다 죽어가던 내가 점점 살아나고 나는 지나간다
온갖 말들의 화살을 맞고 피 흘리는 내가 있다 지나간다
딸내미에게 용서를 구하는 내가 있다 지나간다
나는 나로 살겠다고 다짐하던 몽골초원 자작나무 지나간다
권정생 선생이 살아나고 나는 서울이다 지나간다
우울한 여인이 나타나고 환해지고 사라진다 지나간다
새벽 거리에서 울고 있던 나를 지나가면 이쯤에서
울고 있는 어린 딸내미가 다시 서럽게 혼자서 울고 있다
지나간다 뺑소니가 지나가고 오토바이가 일어나고
아버지가 술배달을 하고 있다 나는 모른 척 지나간다
시를 접고 공사판에서 오비끼를 나르는 나를 지나가고
없는 아내가 있다가 사라진다 지나간다
차마 말하기 힘든 청년을 만났다 지나가고
청년이 알던 처녀의 소녀가 있다 지나간다
시를 쓴다 쓰지 않는 우울한 소년을 지나간다 이쯤에서
새새어머니의 빗자루가 지나가고 새엄마가 칼을 맞고 있다
지나간다 엄마 같던 새엄마가 햇감자를 쪄주던
1974년 생일날, 지나간다
무덤에서 나온 엄마가 병원에 누워 있다 지나간다
어느새 엄마는 훈련소 길목에서 가겟방을 하고 있다
홍역을 지나가고 라면을 먹던 군인들을 지나간다
닭을 잡아 시장에 내다팔던 아버지를 지나간다
크림빵을 훔쳐 먹던 나를 노려보는 엄마를 지나간다
가물가물 연탄가스에 중독된 나를 지나가면 이쯤에서
강원도 탄광에서 야반도주 온 외삼촌네 가족이 있다
식구 많은 밥상이 여러 개 놓여 있다 지나간다
종이 제비를 접어 날려 주던 작은외삼촌을 지나간다
흙을 퍼먹던 네다섯 살 나를 지나간다
월남방망이 사탕에 까무러치던 누이를 지나간다
가물가물, 이쯤에서, 이쯤에서 길은 끝난다 손금의 길은 빤한데
더 이상 어려지지 않는 길 앞에서 길을 잃는다 이쯤에서
분명 지나왔을 과거도 미래처럼 한 치 앞이 보이지 않는다
망연하고 자실하여 돌아선다
되짚어 나갈 길이 아득하다
저 길을 다시 어떻게 걸어가나 두 번 다시 못 걸을 길
굽어보는 그 길 오른쪽으론
떠나가는 것들, 눈물 나는 것들, 사라지는 것들, 쓰러지는 것들, 절망하는 것들, 그리운 것들, 그늘진 것들이 있고,
굽어보는 그 길 왼쪽으론
돌아오는 것들, 눈물 닦는 것들, 나타나는 것들, 일어서는 것들, 희망하는 것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는 것들, 햇살 바른 것들이 있다
아직도 그들은 서로 한데 있지 못하고 따로 따로 서 있다
영원히 화해하지 못할 그 길을 지나가고 지나가고 지나가서
나는 나를 다시 이순의 언저리에 세워 본다
# 안상학, 남아 있는 날들은 모두가 내일 (걷는사람, 2020)
2022년 제24회 백석문학상 수상작 :
진은영, 나는 오래된 거리처럼 너를 사랑하고
https://www.changbi.com/NewsDetail?newsid=6234
"『나는 오래된 거리처럼 너를 사랑하고』는 일찍이 스스로 제기한 ‘시와 정치’론에 대한 골똘한 시적 응답이자 언어의 풍요로움과 아름다움을 통해 사랑을 선언하고 약속하는 시집이다. 또한 ‘나’와 세계 사이의 관계를 살펴보게 하며 도처에 존재하는 슬픔의 공동체를 묵념의 시간에서 건져내는 적극적인 발걸음이다. 이 치열함으로 다다른 시적인 것과 정치적인 것의 균형이 최고의 성취로 이어진 이 시집을 올해 수상작으로 선정했다." (심사평 중에, 예심: 박소란, 황인찬 / 본심: 김행숙, 최원식, 황규관)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시인 중 한명인 진은영 시인이 이제 53세의 나이로 현대문학상, 대산문학상에 이어 3관왕에 올랐습니다. 아마도 황지우, 나희덕 시인에 이은 세번째 '그랜드슬램'의 강력한 후보 중 한명이겠죠.
P.S. 소월시문학상이 지난 2019년의 나태주 시인 수상을 끝으로 사실상 중단된 상태라서 다음 시간부터는 국내 최대규모 문학상인 대산문학상을 살펴보겠습니다.
청혼
나는 오래된 거리처럼 너를 사랑하고
별들은 벌들처럼 웅성거리고
여름에는 작은 드럼을 치는 것처럼
네 손바닥을 두드리는 비를 줄게
과거에게 그랬듯 미래에게도 아첨하지 않을게
어린 시절 순결한 비누거품 속에서 우리가 했던 맹세들을 찾아
너의 팔에 모두 적어줄게
내가 나를 찾는 술래였던 시간을 모두 돌려줄게
나는 오래된 거리처럼 너를 사랑하고
벌들은 귓속의 별들처럼 웅성거리고
나는 인류가 아닌 단 한 여자를 위해
쓴 잔을 죄다 마시겠지
슬픔이 나의 물컵에 담겨 있다 투명 유리조각처럼
# 진은영, 나는 오래된 거리처럼 너를 사랑하고 (문지, 2022)
2017년 제25회 대산문학상 수상작 :
서효인, 여수 (2017)
https://daesan.or.kr/business.html?d_code=3327&uid_h=447&view=history
시 : 고은, 이형기, 황동규, 정현종, 김춘수, 신경림, 황지우, 최승호, 이성부, 김지하, 김광규, 이성복, 김명인, 김사인, 남진우, 김혜순, 송찬호, 최승자, 신달자, 백무산, 진은영, 박정대, 마종기, 이장욱, 서효인, 강성은, 오은, 김행숙, 김언, 나희덕.
소설 : 이승우, 이청준, 최인석, 이호철, 박완서, 김주영, 서정인, 이윤기, 황석영, 김원우, 송기원, 윤흥길, 김연수, 김인숙, 김훈, 구효서, 박범신, 박형서, 임철우, 정영문, 김숨, 김원일, 황정은, 김이정, 손보미, 최은미, 조해진, 김혜진, 최은영, 한강.
지난 30년 동안 시와 소설에서 각각 '대산문학상'을 수상한 작가들의 명단입니다.
명실상부한 국내 최고 권위의 문학상으로 발돋움한 '대산문학상'은 교보에서 출자를 해 설립된 대산문화재단이 주관하고 있는 문학상으로, 지난 1993년에 제정되었습니다. (영화계로 치면 연혁만로는 대종상에 미치지 못해도 현 시기의 가장 확고부동한 위상을 갖는 청룡영화상과도 비교해볼만한 성격을 갖습니다. 더구나 해당 상금 규모는 대략 1~2천만원에 불과한 웬만한 문학상들의 2~5배에 이르는 5천만원으로 국내 최대 규모이기도 하죠. 작가라면 누구나 한번쯤 꿈꿔볼만한 상이겠습니다.)
8월의 첫 주는 대산문학상의 역대 수상작들을 살펴보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여수
사랑하는 여자가 있는 도시를
사랑하게 된 날이 있었다
다시는 못 올 것이라 생각하니
비가 오기 시작했고, 비를 머금은 공장에서
푸른 연기가 쉬지 않고
공중으로 흩어졌다
흰 빨래는 내어놓질 못했다
너의 얼굴을 생각 바깥으로
내보낼 수 없었다 그것은
나로 인해서 더러워지고 있었다
이 도시를 둘러싼 바다와 바다가 풍기는 살 냄새
무서웠다 버스가 축축한 아스팔트를 감고 돌았다
버스의 진동에 따라 눈을 감고
거의 다 깨버린 잠을 붙잡았다
도착 이후에 끝을 말할 것이다
도시의 복판에 이르러 바다가 내보내는 냄새에
눈을 떴다 멀리 공장이 보이고
그 아래에 시커먼 빨래가 있고
끝이라 생각한 곳에서 다시 바다가 나타나고
길이 나타나고 여수였다
너의 얼굴이 완성되고 있었다
이 도시를 사랑할 수밖에 없음을 깨닫는다
네 얼굴을 닮아버린 해안은
세계를 통틀어 여기뿐이므로
표정이 울상인 너를 사랑하게 된 날이
있었다 무서운 사랑이
시작되었다
# 서효인, 여수 (문지, 2017)
2018년 제26회 대산문학상 수상작 :
강성은, Lo-fi
https://daesan.or.kr/business.html?d_code=3327&uid_h=459&view=history
"예심에서 선정된 10권의 시집을 대상으로 이루어진 본심에서는 1, 2차 심사를 통해 강성은의 "Lo-fi", 김정환의 "개인의 거울", 이영광의 "끝없는 사람", 허만하의 "언어 이전의 별빛"이 최종심 대상작에 올랐다. 유령의 심상세계와 좀비의 상상력으로 암울하고 불안한 세계를 경쾌하게 횡단하며 끔찍한 세계를 투명한 언어로 번역해 낸 "Lo-fi"가 수상작으로 선정되었다." (심사평 중에)
2005년에 "문학동네"를 통해 등단한 강성은 시인은 창비와 문지에서 각각 시집을 출간한 이후, 세번째 시집으로 데뷔 13년차만에 무려 대산문학상을 거머쥐었습니다. (현재 시와 소설을 함께 쓰고 있는 작가죠.) 몇몇의 시인론에서도 자주 언급돼온 '환상 속 세계'가 갖는 서사들은 기이하고 끔찍하지만 낯선 감흥을 불러일으키기에도 충분한 모습입니다.
밤의 광장
검고 푸른 밤이었다 길을 걷다 광장에 이르렀다 좁은 골목길을 빠져나오자 광장이 내 앞에 펼쳐져 있었다 광장은 넓고 고요하고 아무도 없었다 나는 광장의 침묵 속에 한참 서 있다가 광장을 가로질러 작은 샛길로 들어갔다 미로처럼 얽힌 좁은 골목들과 처마를 지나 불 켜진 창을 지나 교회와 상점들을 지나자 또다시 광장이 나타났다 광장은 여전히 고요했고 바닥에는 버려진 깃발과 전단지들이 굴러다녔다 진흙과 피의 냄새가 공기 중에 스며 있었고 어디선가 낮은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개 울음소리인지 고양이 울음소리인지 사람의 울음소리인지 분간이 가지 않았다 두려운 마음에 나는 급히 광장을 빠져나왔다 길은 이어져 있었고 이 길은 집으로 가는 길이었다 불 꺼진 시장을 통과해 학교와 약국과 정류장을 지났는데 내 집은 나타나지 않았다 좁은 골목들과 창문들을 지나 작은 다리를 건너자 다시 광장이 나타났다 어둠 속에 시체들이 줄지어 누워 있었다 그들은 내 가족과 친구들과 꿈속에서 보았던 사람들, 내가 아는 모든 이들이었다 그리고 그들의 끝에는 내가 누워 있었다 나는 나의 얼굴을 만져보았다 그는 뜨거웠고 내 손은 차가웠다 죽어 있는 것은 나였다 우리 모두가 이곳에서 죽었다는 게 떠올랐다 우리 모두가 이곳에서 부르던 노래가 떠올랐다 이 광장을 벗어날 수가 없구나 이 노래는 끝나지 않는구나 매일 밤 모든 길은 광장으로 이어졌다 벗어나려 할수록 더 그랬다
# 강성은, "Lo-fi" (문지, 2018)
2019년 제27회 대산문학상 수상작 :
오은, 나는 이름이 있었다
https://www.daesan.or.kr/business.html?d_code=3327&uid_h=467&view=history
"예심에서 선정된 10권의 시집을 대상으로 이루어진 본심에서는 1, 2차 심사를 통해 나희덕의 "파일명 서정시", 송재학의 "슬프다 풀 끗혜 이슬", 오은의 "나는 이름이 있었다", 이경림의 "급! 고독"이 최종심 대상작에 올랐다. 언어 탐구와 말놀이를 통해 사람의 삶에 대한 진정성있는 성찰을 이끌어내고 사람의 내면을 다각도로 이야기하면서 젊은 세대의 감성을 언어탐구로써 표현하는 참신한 시세계를 형성한 "나는 이름이 있었다"가 수상작으로 선정되었다." (심사평 중에)
등단 여부와 관계없이 큐레이터들이 출간을 결정하는 시스템, 독립출판사 '아침달'에서 엄청난 기록을 탄생시켰습니다. 첫 메이저 수상이라는 대기록과도 무관하게 독립출판이라는 새로운 시도와 도전들이 기존 제도권에 진입할 수 있고 어떻게 포지셔닝할 수 있을까에 관한 가능성 등을 크게 열었다는 점만으로도 이 해의 수상기록은 가히 기념비적입니다. (물론 오은 시인은 이미 민음사, 문학동네, 문학과지성사, 현대문학을 통해 네 권의 시집을 출간했던 출중한 베테랑이긴 했지만요.)
궁리하는 사람
이야기가 필요해
사람이 있고 집이 있고
집에는 책이 있고
식탁 위에는
꽃병도 있는 이야기
정작 꽃병에 물이 없었다
이야기가 났으니 말이지,
사람에게는 자신만의 이야기가 있지
숨기고 싶고
들킬까 봐 전전긍긍하고
그래도 누군가는 알아줬으면 하는 이야기
집 안에도, 책 속에도
식탁 위에도
이야기는 무궁무진하지
이야기를 바탕으로 꽃은 시들고 있었다
암만 씻어도
아무리 청소해도
제아무리 들여다봐도
표가 나지 않아서 그렇지
이야기를 떠올리다
꽃병에 물을 채워야겠다고 생각했다
꽃에 물을 주는 것과는 엄연히 다른 이야기
오고가야
나누는 것이 되고
담론이 되어 밤을 밝히고
항간에 떠돌며 손상되기도 하다가
이야기의 끝에서 기적적으로 만나는 이야기
밥때가 되면
식탁 위에서 다시 외로워지는 이야기
운때가 맞지 않아
집 안에서 자취를 감추는 이야기
침묵하는 꽃을 핑계 삼아
또다시
이야기는 장황해지고
이야기는 쓸데없어지고
이야기는 황당무계해지고
이야기는 거짓말 같아지고
꽃병에 물을 채우다
이야기를 꺼낸 사실을 잊고 말았다
사람이 있고 집이 있고
집에는 책이 있고
꽃병에 물만 채우면
소문처럼 부풀어 오를 줄 알았던
이야기가
말문 밖으로 새어 나가기 시작했다
궁리하지 않으면
말하기 전에 벌써 곤궁해졌다
# 오은, 나는 이름이 있었다 (아침달, 2018)
2020년 제28회 대산문학상 수상작 :
김행숙, 무슨 심부름을 가는 길이니
https://www.daesan.or.kr/business.html?d_code=3327&uid_h=483&view=history
"고형렬의 "오래된 것들을 생각할 때에는", 조용미의 "당신의 아름다움", 김행숙의 "무슨 심부름을 가는 길이니", 신해욱의 "무족영원"이 최종심 대상작에 올랐다. 고통의 삶에 대한 반추, 미래를 향한 열기 등의 주제의식이 탁월한 리듬감과 결합하여 완성도 높은 시 세계를 형성하면서도 인유의 시적 가능성을 한껏 밀고 나간 "무슨 심부름을 가는 길이니"가 수상작으로 선정되었다." (심사평 중에)
비교적 늦은 나이인 서른 살에 등단을 해 올해로 만 53세, 데뷔 24년차가 된 김행숙 시인은 이미 굵직굵직한 공모전과 문학상 심사위원으로도 여럿 이름을 올렸던 적이 있어 제법 익숙한 분들이 많을 것 같습니다. 다섯번째 시집 역시 문학과지성사를 통해 출간을 했는데, 이는 문지에서만 네번째이기도 합니다. 데뷔 후 이듬해인 2000년에 이미 '대산창작기금'을 수상한 바 있었는데, 딱 20년만에야 '대산문학상'을 수상하게 되었습니다.
무슨 심부름을 가는 길이니?
잘 아는 길이었지만...
우리가 아는 그 사람처럼
알다가도 모를 미소처럼
안개가 자욱하게 낀 날이었어요.
눈을 감고도 갈 수 있는 길이었지만
눈을 감지 못하는 마음이었어요.
나는 전달책 k입니다.
소문자 k입니다.
거기까지 가는 길은 아는데
왜 가는지는 모릅니다.
오늘따라 울적합니다, 왜 그런지는 모르겠어요.
이럴 때 나는 내가 불편합니다.
만약 내가 길가에 떨어진 돌멩이라면
누군가가 나를 주워 주머니에 숨길 때의 그 마음을
누군가가... 누군가를 쏘아보며 나를 집어 던질 때의 그 마음을
내가 어떻게 알겠어요?
내가 알면 뭐가 달라지나요?
평소에도 나는 나쁜 상상을 즐겨했습니다.
영화 같은
영화보다 더 진짜 같은
그러나 상상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라면
우리의 모든 상상이 비껴가는 곳에서
나는 나를 재촉했습니다.
한 명의 내가 채찍을 들고
한 명의 내가 등을 구부리고
잘 아는 길이었는데
눈을 감고도 훤히 보이는 길이었는데...
안개가 걷히자
거기에 시체가 있었습니다.
두 눈을 활짝 열어놓고 우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 김행숙, 무슨 심부름을 가는 길이니 (문지, 2020)
2021년 제29회 대산문학상 수상작 :
김언, 백지에게
http://www.daesan.or.kr/business.html?d_code=3327&uid_h=484&view=history
"김승희의 "단무지와 베이컨의 진실한 사람", 김언의 "백지에게", 김현의 "호시절", 백은선의 "도움 받는 기분"이 최종심 대상작으로 올랐다. 단어나 문장을 연쇄적으로 나열하여 자신만의 어휘사전, 단어사전을 만들고 또한 단지 사전을 쓸 뿐만 아니라 문장을 뒤집고 사유하며 우리 사회의 모순과 부조리를 끈질기게 드러낸 "백지에게"가 수상작으로 선정되었다." (심사평 중에)
최근 10년 동안 대산문학상에서 수상을 한 시인들 중 무려 아홉 명이 50대의 나이였습니다. (유일한 40대가 오은 시인이었네요.) 재작년에 일곱번째 시집인 "백지에게"로 대산문학상을 수상한 김언 시인 역시 올해를 기점으로 해 50대의 대열에 마저 합류할 텐데요, 부산대 산업공학과 출신으로는 실로 보기 드문 족적을 남기게 됩니다.
백지에게
백지가 되려고 너를 만났다. 백지가 되어서 너를 만나고 백지처럼 잊었다. 너를 잊으려고 백지답게 살았다. 백지가 저기 있다. 백지는 여기도 있다. 백지는 어디에나 있는 백지. 그런 백지가 되자고 살고 있는 백지는 백지답게 할 말이 없다. 대체로 없고 한 번씩 있다. 백지가 있다. 백지에서 나오는 말들. 백지에서 나와 백지로 돌아가기를 거부하는 말들. 도무지 백지가 될 수 없는 말들이 한마디로 그치지 않을 때 두 마디로도 그치지 않고 모자랄 때 모자란 만큼 잠식하는 백지의 운동은 백지를 갉아먹는다. 백지를 지워 나간다. 백지를 삭제하는 방식으로 말하는 백지의 운동은 점점 더 백지를 떠난다. 백지가 되지 않으려고 너를 만난 것 같다. 백지가 되지 않아서 너를 만난 것 같기도 하다. 백지는 충분한데 백지는 불충분한 사람을 부른다 백지는 깨끗한데 백지처럼 깨끗하지 못한 사람을 다시 부른다. 백지는 청소한다. 백지에 낀 백지의 생각을. 백지는 도발한다. 백지처럼 잠든 백지의 짐승을. 으르렁대는 소리도 으르렁대다가 눈빛만 내보내는 소리도 백지는 다 담아 준다. 백지가 아니면 담기지 않는 소리를 백지가 담으니까 이렇게도 어수선하고 시끄럽고 그걸 다 모아서 백지는 입을 다문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것처럼 백지 한 장이 있다. 너무 소란스러운 가운데 백지 한 장을 찾는다. 백지가 어디로 갔을까? 비어 있다고 백지는 아니다. 백지로 차 있다고 해서 백지는 아니다. 백지는 백지답게 불쑥 튀어나온다. 백지였다는 생각을 잠시 잊게 만드는 백지 앞에서 백지를 쓴다. 백지라는 글자를 쓰고 또 잊는다.
# 김언, 백지에게 (민음, 2021)
2022년 제30회 대산문학상 수상작 :
나희덕, 가능주의자
http://www.daesan.or.kr/business.html?d_code=3327&uid_h=504&view=history
"나희덕의 "가능주의자", 송재학의 "아침이 부탁했다, 결혼식을", 신용목의 "비에 도착하는 사람들은 모두 제시간에 온다", 신철규의 "심장보다 높이", 이수명의 "도시가스"가 최종심 대상작으로 선정되었다. 지속과 변이 사이의 균형을 지키면서 스스로를 진화시켜온 나희덕 시의 결실이라는 평을 받으며 "가능주의자"가 수상작으로 선정되었다." (심사평 중에)
1998년, 김수영문학상 (민음사)
2001년, 김달진문학상 (서울신문)
2003년, 현대문학상 (현대문학)
2005년, 이산문학상 (문학과지성사)
2007년, 소월시문학상 (문학사상)
2014년, 미당문학상 (중앙일보)
2019년, 백석문학상 (창비)
2022년, 대산문학상 (대산문화재단)
작년은 역대 두번째로 '그랜드슬램'이 달성된 한 해입니다. (최초의 '그랜드슬램'은 지난 1999년에 황지우 시인이 기록했던 바 있으므로, 23년만에야 나온 대기록입니다.) 영예의 주인공은 올해로 만 57세, 1989년 중앙일보 신춘문예로 등단을 해 데뷔 34년차가 되는 나희덕 시인이었습니다.
가능주의자
나의 사전에 불가능이란 없다,
그렇다고 제가 나폴레옹처럼 말하려는 건 아닙니다
오히려 세상은 불가능들로 넘쳐나지요
오죽하면 제가 가능주의자라는 말을 만들어냈겠습니까
무엇도 가능하지 않은 듯한 이 시대에 말입니다
나의 시대, 나의 짐승이여,*
이 산산조각난 꿈들을 어떻게 이어붙여야 하나요
부러진 척추를 끌고 어디까지 가야 하나요
어떤 가능성이 남아 있기는 한 걸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가능주의자가 되려 합니다
불가능성의 가능성을 믿어보려 합니다
큰 빛이 아니어도 좋습니다
반딧불이처럼 깜박이며
우리가 닿지 못한 빛과 어둠에 대해
그 어긋남에 대해
말라가는 잉크로나마 써나가려 합니다
나의 시대, 나의 짐승이여,
이 이빨과 발톱을 어찌하면 좋을까요
찢긴 살과 혈관 속에 남아 있는
이 핏기를 언제까지 견뎌야 하는 것일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무언가 가능하다고 말하는 사람이 되는 것은
어떤 어둠에 기대어 가능한 일일까요
어떤 어둠의 빛에 눈멀어야 가능한 일일까요
세상에, 가능주의자라니, 대체 얼마나 가당찮은 꿈인가요
* 오시프 만델슈탐, 「시대」, 『아무것도 말할 필요가 없다』, 2012, 조주관 옮김, 96쪽.
# 나희덕, 가능주의자 (문학동네, 2022)
2023년 8월 4일 (금)
최근에 쓴 일련의 시리즈들 중 아무래도 가장 친숙할 법하며 또 자주 시도한 글쓰기는 다름아닌 ‘시평’이었던 것 같습니다. 단 한 편의 시를 놓고서 작가의 이모저모를 살펴본다는 건 사실 꽤 무리라고도 생각하는 편인데, 부득이하게도 짧은 지면과 제한된 시간 탓에 그렇게 글을 쓸 수밖에 없는 형편이기도 했어요. 아무튼,
그동안 몇 편의 글을 유사한 형태로 써놓았던 게 있어 우선은 그것들부터 좀 정리해두려 합니다. (사실 어쩌면 이런 류가 제겐 일종의 ‘시인열전’과도 같은 역할이지 않을까도 해서) ;
:: 베껴쓰고 다시읽기 ::
‘분노와 슬픔’을 넘어서는 ‘구도와 헌신’ (이제니, 발견되는 춤으로부터)
https://dante21.tistory.com/m/4127
가장 현대적인, 가장 가까운 정서로서의 ‘서정’ (박준, 입속에서 넘어지는 하루)
https://dante21.tistory.com/m/4135
그대 움츠려 앉은 구석에서 눈물이 빛날 때 (이병률, 슬픔이라는 구석)
https://dante21.tistory.com/m/4141
소멸을 통해 소외를 이야기하려는 형상화의 달인 (박형준, 산책로 벤치에 앉아 있는 노인들)
https://dante21.tistory.com/m/4144
가장 '전위적'인 섬, 격렬비열도에서 외친 혁명적 유머 (박정대, 시)
https://dante21.tistory.com/m/4147
"시는 허구다"는 말, 현대의 서정 (김경주, 간절기)
https://dante21.tistory.com/m/4183
시답지 않은 시로 등극한 '아이돌'의 현주소 (황인찬, 이걸 내 마음이라고 하자)
https://dante21.tistory.com/m/4186
33년의 추억, 33년의 궤적... 변함없는 노동의 세월 (오민석, 일터로 가는 아내에게)
https://dante21.tistory.com/m/4337
[베껴쓰고 다시읽기] 감각적 사물들이 서정을 빛내는 순간 (진은영, 청혼) :
청혼
나는 오래된 거리처럼 너를 사랑하고
별들은 벌들처럼 웅성거리고
여름에는 작은 드럼을 치는 것처럼
네 손바닥을 두드리는 비를 줄게
과거에게 그랬듯 미래에게도 아첨하지 않을게
어린 시절 순결한 비누거품 속에서 우리가 했던 맹세들을 찾아
너의 팔에 모두 적어줄게
내가 나를 찾는 술래였던 시간을 모두 돌려줄게
나는 오래된 거리처럼 너를 사랑하고
벌들은 귓속의 별들처럼 웅성거리고
나는 인류가 아닌 단 한 여자를 위해
쓴 잔을 죄다 마시겠지
슬픔이 나의 물컵에 담겨 있다 투명 유리조각처럼
- 계간 <창작과비평>, 2014년 가을호
“가장 아름다운 시”라는 찬사를 들으며 지난해에 열렸던 창비의 제24회 백석문학상을 수상하기도 한 작품입니다. (원래는 지난 2014년에 <창작과비평>을 통해 발표된 시였다가, 10년만에 새롭게 발간된 작년의 새 시집에서 권두시로 함께 실리기도 했죠.)
시를 읽으면서 가장 먼저 떠오른 시인은 송기원이었습니다. 그의 데뷔작인 ‘회복기의 노래’에 관한 심사평은 두고두고 회자된 칭찬이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신춘문예에 응모해줘서 고맙다"는 인삿말이 등장했습니다.)
마치 "연초록으로 물들고" "야광충이 되어" 떠돌던 그것처럼 "오래된 거리"와 "순결한 비누거품" 또 "투명 유리조각"은 눈과 귀를 유혹하는 즐거움입니다.
한 편의 영화와도 같을 서사, 또 노래 한 곡조를 대신할만한 리듬과 운율, 그리고 또 한 편의 그림이 빚을 법한 풍경과 순간 등을 고루 담는 미덕이 시의 한 정점임을 깨닫게 하는 지점이기도 했습니다.
(이하 인용)
“진은영이 추구하는 시는 무의식적 차원의 ‘감각의 재분배’(자크 랑시에르)를 통해 세계를 근본적으로 재구성하려는 미학적이며 정치적인 운동이다. ‘사랑’과 ‘혁명’의 동의어인 이 운동은 세계가 그대로여도 주체가 위치와 행위를 바꿈으로써 진전된다. 진은영의 말처럼, 같은 장소도 다른 문으로 들어가면 다른 세계가 열린다.” (김수이, 문학평론가)
2023년 8월 6일 (일)
[베껴쓰고 다시 읽기] 김수영의 시론과 변증법적 상상력, '화엄'과 '자본' 사이 (황지우, 겨울-나무로부터 봄-나무에로) :
겨울-나무로부터 봄-나무에로
나무는 자기 몸으로
나무이다.
자기 온몸으로 나무는 나무가 된다.
자기 온몸으로 헐벗고 영하 십삼 도
영하 이십 도 지상에
온몸을 뿌리박고 대가리 쳐들고
무방비의 나목(裸木)으로 서서
두 손 올리고 벌 받는 자세로 서서
아 벌 받은 몸으로, 벌 받는 목숨으로 기립하여, 그러나
이게 아닌데 이게 아닌데
온 혼으로 애타면서 속으로 몸 속으로 불타면서
버티면서 거부하면서 영하에서
영상으로 영상 오 도 영상 십삼 도 지상으로
밀고 간다, 막 밀고 올라간다
온몸이 으스러지도록
으스러지도록 부르터지면서
터지면서 자기의 뜨거운 혀로 싹을 내밀고
천천히, 서서히, 문득, 푸른 잎이 되고
푸르른 사월 하늘 들이받으면서
나무는 자기의 온몸으로 나무가 된다.
아아, 마침내, 끝끝내
꽃피는 나무는 자기 몸으로
꽃피는 나무이다.
# 황지우, 겨울-나무로부터 봄-나무에로 (민음, 1985)
개인적으로는 가장 '김수영문학상'에 잘 어울릴 법한 시인으로 황지우를 꼽곤 했습니다. 박노해 시인과 함께 <시와 경제> 동인 출신이기도 한 그의 가족력에서는 '혜당' 스님과 '소외된 삶의 뿌리를 찾아서'를 쓴 정인 작가를 빼놓을 수 없겠습니다. (그의 형과 아우였던)
사실 시세계가 얼추 완성된 격인 네번째 시집 "게 눈 속의 연꽃"에서 드러냈던 '화엄경'에의 열망은 또 대산문학상을 수상하기도 한 1998년의 마지막 시집인 "어느 날 나는 흐린 주점에 앉아 있을 거다"에 나타나던 마르크스의 '자본'까지를 한데 아우르는 장대한 산맥을 펼쳐보이기까지 했습니다.
- 산경
- 너를 기다리는 동안
- 화엄광주 (이상 "게 눈 속의 연꽃" 중)
- 뼈아픈 후회
- 살찐 소파에 대한 일기
- 어느 날 나는 흐린 주점에 앉아 있을 거다
등등의 시편들도 매우 중요하겠지만, 개인적으로는 이미 전작들에서부터 비롯된 힘의 크기가 워낙 막강했었다는 기억을 함께 갖습니다. (이들은 주로 오늘 소개하는 시집과 풀빛에서 나온 "나는 너다" 등을 포괄하겠죠.)
제3회 김수영문학상을 수상했던 첫 시집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에 이어 민음사에서 출간된 두번째 시집의 이 표제작은 한때 낭만적인 뉘앙스로 서울 곳곳의 커피숍에서는 메뉴판의 배경들로 쓰이기도 했었죠. (100만부 이상 팔린 시집들이 즐비했었던, 시가 가장 대중화된 시절이기도 했으니까요.)
누군가의 표현을 빌리자면, 가장 '직렬적'인 형태로의 형상화를 시도하는 그의 시 스타일이 잘 드러난 이 시에서 "나무"는 곧 '시'요 '사상'이자 '시인' 내지는 '인류' 그 자체인지도 모릅니다. "온몸"으로 "헐벗고" 또 "벌 받는" 목숨은 "애타면서", "불타면서", "거부하면서", 또 "부르트면서"도 "막 밀고 올라"갑니다. "끝끝내"는 "온몸으로" "꽃피는" 나무입니다.
대뜸 떠오른 게 김수영의 시론입니다. "온몸으로 밀고 나가는 시"는 그래서 세상을 향해 "침을 뱉"습니다. 나와 너, 우리를 한데 아우르는 시정신이야말로 김수영과 황지우를 관통하는 가장 큰 교집합이 아닐까 합니다. 또 이는 '부정의 부정'이라는 변증법적 상상력을 오롯이 품는 대표적 수사이기도 합니다.
2023년 8월 7일 (월)
[베껴쓰고 다시읽기] ‘뛰어난 문장’이라는 말, 시인의 산문 쓰기 (박형준, 나는 이제 소멸에 대해서 이야기하련다) :
나는 이제 소멸에 대해서 이야기하련다
어둠을 겹쳐 입고 날이 빠르게 어두워진다
가지 속에 웅크리고 있던 물방울이 흘러나와 더 자라지 않는,
고목나무 살갗에 여기저기 추억의 옹이를 만들어내는 시간
서로의 체온이 남아 있는 걸 확인하며
잎들이 무섭게 살아 있었다
천변의 소똥 냄새 맡으며 순한 눈빛이 떠도는 개가
어슬렁 어슬렁 낮아지는 저녁해에 나를 넣고
키 큰 옥수수밭 쪽으로 사라져간다
퇴근하는 한 떼의 방위병이 부르는 군가 소리에 맞춰
피멍울 진 기억들을 잎으로 내민 사람을 닮은 풀들
낮게 어스름에 잠겨갈 때,
손자를 업고 나온 천변의 노인이 달걀 껍질을 벗기어
먹여주는 갈퀴 같은 손끝이 두꺼운 마음을 조금씩 희고
부드러운 속살로 바꿔준다 저녁 공기에 익숙해질 때,
사람과 친해진다는 것은 서로가 내뿜는 숨결로
호흡을 나누는 일 나는 기다려본다
이제 사물의 말꼬리가 자꾸만 흐려져간다
이 세계는 잠깐 저음의 음계로 떠는 사물들로 가득 찬다
저녁의 희디흰 손가락들이 연주하는 강물로
미세한 추억을 나르는 모래들은 이 밤에 사구를 하나 만들 것이다
지붕에 널어 말린 생선들이 이빨을 딱딱 부딪치며
전혀 다른 말을 하기 시작하고,
熔岩처럼 흘러다니는 꿈들
점점 깊어지는 하늘의 상처 속에서 터져나온다
흉터로 굳은 자리, 새로운 별빛이 태어난다
그러나 나는 이제 소멸에 대해서 이야기하련다
허름한 가슴의 세간살이를 꺼내어 이제 저문 강물에 다 떠나보내련다
순한 개가 나의 육신을 남겨놓고 눈 속에 넣고 간
나를, 수천만 개의 반짝이는 눈동자에 담고 있는
멀리 키 큰 옥수수밭이 서서히 눈꺼풀을 내릴 때
- 박형준, 나는 이제 소멸에 대해서 이야기하련다 (문지, 1994)
숨막히는 열대야가 있겠고, 또 주중에는 태풍이 한반도를 관통하리라는 예보까지 있습니다.
‘뛰어난 문장’은 쟝르나 형식을 뛰어넘는 속성을 갖기에 노랫말이든 소설의 한 구절이든 시 한 편을 들이밀게 되더라도 결국 전하고자 하는 내용과 어법은 같습니다. (김승옥의 감각적인 문체는 한 편의 시를 가볍게 능가해온 이력을 갖기도 하죠. 박경리의 서사와 최인훈의 사유 역시 비슷한 힘을 가졌습니다. 필사에도 아주 큰 도움과 깨달음을 주던 경험들이요 훌륭한 스승들입니다.)
박형준 시인을 저번에 한번쯤은 제대로 소개해본 적도 있던 것 같은데, 오늘은 그의 대표작 격인 데뷔시집의 표제작과 또 함께 실렸던 짤막한 산문을 함께 꺼내보도록 합니다. ;
(이하 인용)
“모두가 죽지 않는 유년의 王國에서, 어느 날 갑자기 어른이 되어 죽은 사람들과 식탁에 둘러앉아 식사를 하는 풍경 속에서, 마치 오세기나 그 이전의 깊은 지층에서 살아나는 듯한 추억 때문에 숟가락을 놓쳐본 적이 있는가.
나무 뒤에 숨어 바라보는 집과 집 뒤에 숨어 바라보는 나무는 늘 슬픔에 관해서 생각하게 만든다. 짙은 연못을 바라보는 일만으로 하루를 보내본 사람은 안다. 그게 얼마나 참담한 人生인가를.
한번도 슬픔을 완성하지 못했고 완성된 것은 슬픔이 아니라는 생각을 했었다. 새벽 거리를 떠도는 불빛 하나가 빗물 고인 웅덩이에 내려와 푸르스름한 떨림을 이루고 있다. 그 속에는 몰래 꿍쳐둔 빨래처럼 잎들이 가지에 꾸욱 달려 있다.
구름, 하늘의 자라기 한쪽 부서진 자리, 파란 눈빛 속에 잃어버린 주소지를 담고 있는 집 나온 고양이, 짙은 숨소리, 고동, 빗물 고인 웅덩이.”
[베껴쓰고 다시읽기] '구체시 제1호'에 얽힌 추억, 독일 구체시 70년 (이제니, 우비를 입은 지구 소녀) :
우비를 입은 지구 소녀
오후의 오로라
오지 않는 비행선
우비는 젖지 않는다
없는 들판의 없는 얼굴
내리지 않는 비를 맞는
우비를 입은 지구 소녀
길은 물든다
날개 잃은 벌레
입속에 담긴 편지
미세레레 미세레레
여백에서 들리는 노래
몰약처럼 빛나는 눈동자
아직도 내 목소리가 들리나요
아직도 나와 같은 단어를 쓰나요
유리잔 바닥에 가라앉은 녹차 찌꺼기
머릿속을 떠도는 마이너의 피아노 음계
길게 흰 줄을 그으며 날아가는 어제의 비행운
손끝에서 푸른빛이 나온다면 어디를 가리키게 될까
땅에 닿기도 전에 사라지는 물방울의 행렬
춥고 그리운 우기의 맛
물고기 가면을 쓰고 걸어가는
우기의 복화술사는 입을 다문다
구름 구름
설탕 설탕
창문 창문
제라늄 제라늄
빗방울 빗방울
- 이제니, 아마도 아프리카 (창비, 2010)
다소 생경한 시 한 편을 꺼냈는데, 사실 이런 류의 작품들한테 모태가 된 독일의 '구체시'라는 개념은 무려 1955년에 탄생했다는군요... 꽤 오랜 전통을 갖는 이 '구체시' 역시 미술사조에서 비롯된 역사를 갖습니다. (그 이름도 어마무시한 몬드리안, 칸딘스키의 추상미술이 원조 격에 해당되는데... 사실 미술과 문학은 적용되는 양태가 사뭇 다르긴 합니다. 예로써, 미술사조 중의 '미래파'라는 용어는 현 문단에서 주되게 통용돼온 '미래파'랑은 아예 다른 성격을 갖는, 20세기 초에 기술 문명에 대한 열광적 옹호와 낙관에 기댄 입장이자 후기에는 또 하필 '파시즘'과도 연루된 바가 있었죠.)
전통적인 시에서 단어들이 이미지나 상징, 은유 등으로 쓰이면서 전달하려는 의미를 담는다고 본다면, 구체시는 이들을 반복해 배열하거나 일정한 법칙에 따라 늘어놓는 방식을 취함으로써 전혀 새로운 기능을 부여하는 데 초점을 두는 방식입니다. (가장 대표적인 게 위에서 꺼낸 '우비를 입은 지구 소녀' 같은 작품이겠죠. 올해 봄에 새로 나왔던 이소호의 시집 "홈 스위트 홈"에도 이와 유사한 작품이 실렸던 바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선 ‘테크닉’ 면에서 가히 발군의 기량을 과시해온 것으로 평가받는 이제니 시인은 '용감하게도' 자신의 2010년 첫 시집에서 이 작품을 선보였는데요. 더 놀라운 건 이 시집이 실험적이기로 유명한 문학과지성사나 문학동네도 아니고, '리얼리즘의 총본산' 격이라 할 창비에서 출간되었다는 사실이겠죠. (이제 사실상 특정 출판사를 특정 사조나 성향 등으로 구분한다는 게 아무 의미없는 일이 되었음을 함께 시사합니다.)
개인적으로는, 진작에 폐간된 <시와 사회>에서 이에 관한 특집을 읽으며 처음 접했던 기억도 납니다. 그해에 썼던 습작들 중 '구체시 제1호'라는 제목을 붙인 게 있었는데, 문득 그때 생각이 나서 잠시 웃었습니다. 오늘도 좋은 하루 되시기 바랍니다. (끝으로 '말놀이' 형태라는 흐름도 최근까지 문단 내에서 꽤 유행을 탄 적이 있어, 이제니 시인의 다른 시집에 실렸던 '기린이 그린'이라는 작품을 함께 소개해놓고자 합니다.)
기린이 그린
기린이 그린 그림은 기린이 그린 그림
구름이 그린 기린은 구름이 그린 기린
그림 속의 기린은 구름이 될 수 있다
그림 속의 구름은 기린이 될 수 있다
구름이 달리면 기린은 둥실 떠오르고
기린이 눈을 감으면 구름은 잠이 들고
잠이 든 구름 곁으로 초원이 놀러오면
초원의 초록 들판을 기린이 가로지르고
기린이 그린 구름이 초원 위로 흐를 때
초원 위로 흐르는 것은 기린인가 구름인가
대답하는 대신 다시 묻는 네가 있고
긴 목을 휘저으며 그저 웃는 구름이 있고
뭉게뭉게 휘날리며 흩어지는 기린이 있고
묻는 대신 대답하는 오늘의 내가 있고
기린이 그린 그림은 기린이 그린 구름
구름이 그린 기린은 구름이 그린 그림
그림 속 구름이 기린이 그린 그림이고
초원 위 그림이 기린이 보는 구름일 때
기린은 하늘을 날 수 있고
구름은 구름을 낳을 수 있어
초원은 마음속에 펼쳐지는 것
풀벌레 하나까지 아낌없이 펼쳐지는 곳
초원의 기억은 기린을 지나치고
지나친 기억은 구름처럼 지나치고
어제의 사람은 어제의 사람으로 흐르고
기린이 그린 그림은 기린이 그린 그림
구름이 그린 기린은 구름이 그린 기린
- 이제니, 왜냐하면 우리는 우리를 모르고 (문지, 2014)
2023년 8월 8일 (화)
[베껴쓰고 다시읽기] “노동자”에서 ‘비정규직/알바’로, “무산계급”에서 ‘자영업/긱경제’로 (박노해, 가리봉 시장) :
가리봉 시장
가리봉 시장에 밤이 깊으면
가게마다 내걸어 놓은 백열전등 불빛 아래
오가는 사람들의 상기된 얼굴마다
따스한 열기가 오른다
긴 노동 속에 갇혀 있던
우리는 자유로운 새가 되어
이리 기웃 저리 기웃 깔깔거리고
껀수 찾는 어깨들도 뿌리뽑힌 전과자도
몸부벼 살아가는 술집여자들도
눈을 빛내며 열이 오른다
돈이 생기면 제일 먼저 가리봉 시장을 찾아
친한 친구랑 떡볶이 500원어치, 김밥 한 접시
기분나면 살짜기 생맥주 한 잔이면
스테이크 잡수시는 사장님 배만큼 든든하고
천오백원짜리 티샤쓰 색깔만 고우면
친구들은 환한 내 얼굴이 귀티난다고 한다
하루 14시간 손발이 퉁퉁 붓도록
유명브랜드 비싼 옷을 만들어도
고급오디오 조립을 해도
우리 몫은 없어,
우리 손으로 만들고도 엄두도 못내
가리봉 시장으로 몰려와
하청공장에서 막 뽑아낸 싸구려 상품을
눈부시게 구경하며
이번 달엔 큰맘 먹고 물색 원피스나
한 벌 사야겠다고 다짐을 한다
앞판 시다 명지는 이번 월급 타면
켄터키치킨 한 접시 먹으면 소원이 없겠다 하고
마무리 때리는 정이는 2,800원짜리
이쁜 샌달 하나 보아둔 게 있다며
잔업 없는 날 시장 가자고 손을 꼽는다
가리봉 시장에 밤이 익으면
피가 마르게 온 정성으로
만든 제품을
화려한 백화점으로,
물 건너 코 큰 나라로 보내고 난
허기지고 지친
우리 공돌이 공순이들이
싸구려 상품을 샘나게 찍어 두며
300원어치 순대 한 접시로 허기를 달래고
이리 기웃 저리 기웃
구경만 하다가
허탈하게 귀가길로
발길을 돌린다
- 박노해, 노동의 새벽 (풀빛, 1984)
대한민국에서 시집 한 권으로 100만 부가 넘게 팔린다는 건 도합해서 물경 1,800만 부 이상을 팔았다는 이문열의 소설 전체만큼이나 대단한 기록이자 하나의 큰 상징이겠죠.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박노해의 시집이지만, 학교 때는 표제시를 근간으로 해 ‘팍팍한 대지의 새벽을 고함’이라는 평문도 썼었지만, 고단하고 남루한 일상 속 삶에서의 비애와 좌절과 슬픔과 분노 따위 등은 따로 형용하기 어려운 구석들도 분명히 존재한다고 생각합니다. (이 시에서 드러낸 ‘정서’ 역시 그렇다고 보는 편예요.)
사회주의는 진작 몰락했으며, 21세기를 혼자 주무르고 있는 글로벌 자본주의의 행태는 어쩌면 더는 “노동자”나 “무산계급” 같은 단어들만으로 설명하기는 불가능한 부분일 테나, 여전히 주변의 삶들 속에선 또 다른 이름을 갖는 ‘소외’들이 있습니다… 그건 또 ‘고용불안’과 ‘취업절벽’과 ‘최저임금’과 ‘가계부도’의 위험들과도 직접적으로 맞닿는 문제들이기도 하고요. ‘남의 일’이 아닙니다.
이들에 대한 해법을 연구하는 일이 비단 시인만의 숙제는 아닐 테지만, 그렇다고 눈 딱 감고 묵과할만한 세상은 더더욱 아니기에 이렇게 따로 적어둡니다. (그의 시집이 100만 부가 넘게 팔린 이유도 그렇게 읽는 까닭입니다.)
2022년 8월 9일 (수)
[베껴쓰고 다시읽기] 현대시에서의 '낭만'을 이야기하려거든 (박정대, 음악들) :
음악들
너를 껴안고 잠든 밤이 있었지, 창밖에는 밤새도록 눈이 내려 그 하얀 돛배를 타고 밤의 아주 먼 곳으로 나아가면 내 청춘의 격렬비열도에 닿곤 했지, 산뚱 반도가 보이는 그곳에서 너와 나는 한 잎의 불멸, 두 잎의 불면, 세 잎의 사랑과 네 잎의 입맞춤으로 살았지, 사랑을 잃어버린 자들의 스산한 벌판에선 밤새 겨울밤이 말달리는 소리, 위구르, 위구르 들려오는데 아무도 침범하지 못한 내 작은 나라의 봉창을 열면 그때까지도 처마 끝 고드름에 매달려 있는 몇 방울의 음악들, 아직 아침은 멀고 대낮과 저녁은 더욱더 먼데 누군가 파뿌리 같은 눈발을 사락사락 썰며 조용히 쌀을 씻어 안치는 새벽, 내 청춘의 격렬비열도엔 아직도 음악 같은 눈이 내리지
# 박정대, "내 청춘의 격렬비열도엔 아직도 음악 같은 눈이 내리지" (민음, 2001)
'낭만'이라는 단어가 일제시대 때의 유산인 까닭에 원래의 어원인 'Roman' 따위로의 변경을 시도해본 전력도 더러 있었지만, 아직까지도 줄곧 '낭만'을 사용해온 건 그만큼 우리나라 사람들이 이 단어가 갖는 'Context'에도 또한 깊은 애정을 갖고 있음을 뜻합니다. "그 시절엔 낭만이란 게 있었어" 따위의 회고담들은 이미 잊혀졌거나 또는 그게 아쉬울 법한 소감 등에서의 주된 용례가 되곤 하는데, 만일 현대시에서 그 단어를 찾아본다면 대뜸 떠오르는 건 아무래도 박정대 시인입니다. (다소 과격하긴 해도) 개인적으로는 시집 "아무르 기타"에서의 서정적인 시편들이거나 또 다른 시집 "그녀에서 영원까지"에 등장한 매우 긴 시인 '의기양양' 같은 작품을 대표적으로 생각하기도 하는데, 분량이 너무 긴 관계로... 오늘 아침엔 그의 데뷔시집만 살짝 꺼내보겠습니다. 표제시 성격을 갖는 '음악들'입니다. 오늘도 좋은 하루 되시기 바랍니다.
2023년 8월 10일 (목)
[베껴쓰고 다시읽기] 담담한 어조, 치열한 독백 (임동확, 섬진강의 돌) :
섬진강의 돌
한 연대의 멱살을 거머쥔 채 흐르는 강물로 흐르지 않는 풍경을 적시며 지금 섬진강은 골고루 노을 빛으로 깨어나고 있다. 사랑하는 정아, 저 징검다리 건너 몇구비 물목을 지나 희고 둥근 조약돌들이 모래 무지 처럼 살아 있다. 그리하여, 하류에서 상류까지 물장구치며 파닥인다, 뛰쳐오른다, 방향을 잡는다, 그리고 균형을 취하며 정확히 목표물에 내려 앉는다. 바로 이게 사랑의 시작이다. 그런대로 모난데 없이 안정된 형상을 이루기까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바람과 함께 떠 다녔으며, 또 얼마나 수고로운 인욕과 침묵이 필요했던가 물으며 돌을 집는다. 사랑은 늘 그런 아픔과 그리움을 한 없이 낮은 곳으로 이동시키는것. 잊지 말자, 한 인간이 태어나 죽기까지, 우린 저 어둠 속에 박힌 익명의 별처럼 외로워하고 쓸쓸해 하며 더 기다려야 한다. 끝도 시작도 불투명한 이 시대의 싸움처럼 아무것도 의식하지 않은채 묵묵히 봄 강 언덕에 자운영을 띄우며 첫아기 처럼 예쁜 조약돌 하나 내게 안겨주는 강변을 따라 흐르며 너를 가만히 불러본다. 정아, 이제 세상을 향해 보채지 말자. 제 임자를 기다리다 끝내 풍덩, 물살 센 강물 속으로 다시 빠져드는 돌이거나, 혹은 정에 목마른 신의 손바닥 체온을 받아 남빛 물망초로 이 지상에 또 다시 소생하는 것 모두 하늘과 세월의 뜻인 것. 우린 저 물바람 속의 저녁 안개 처럼 망가지며 아름다워지는 법을 배워가야 할는지 모르겠다. 마치 물때 썰때 마다 강물은 새로운 태양을 되돌려 주 듯, 우리는, 바위 같은 미움의 덩어리를 조약돌로 다듬고, 모래알 같은 기쁨의 알갱이로 일어서는 조국을 위해 헌신해야 할지 모르겠다. 지금 섬진강은 물 흐르는 소리만 남기고 일제히 숨을 고루며 나뭇가지 위의 새처럼 잠들고 있다.
# 임동확, 운주사 가는 길 (문지, 1992)
'태풍의 눈'이 한반도를 관통하기로 한 새벽, 이른 잠에서 깨 몇 줄의 시편을 찾아 읽습니다.
예전에 김현 선생이 쓴 <행복한 책읽기>를 읽던 추억이 있는데, 그 책에서 소개했었던 두 명의 시인들 중 임동확 시인이 먼저 생각났어요. 개인적으로는, 인터넷을 LAN으로 연결해 하루종일 본격적으로 쓰기 시작했던 첫 해인 1998년의 중앙일보 메인화면에서 뜻하지 않게 조우한 그의 '지상의 가을날'이라는 시를 읽던 반가움이 크게 앞서기도 했고 또 시집의 제목 하나만으로 화순에 있는 운주사를 몇 번이나 찾았던 발걸음의 경험들도 있고 해서요. (사실 앞의 책에서 소개한 주제는 '오월의 형상화'였는데, 지금은 차분한 서정시가 더 긴요한 시간이라 이제 더는 소개조차도 힘들 '섬진강에서'를 대신해 그의 세번째 시집에 실렸던 '섬진강의 돌'을 꺼냈습니다.)
오래된 시편들의 가장 큰 미덕은 무슨 각을 잡고 시를 분석, 해석할 필요가 그리 없다는 점이겠죠. 그래서 생략합니다.
어제는 바람이 많이 불었고, 지금은 비가 내리는 중입니다. ;
(시인의 산문, 인용)
"시는 단연 정치와 종교적 세계와는 상극의 위치에 놓여 있다. 아니 그 둘 사이의 팽팽한 긴장감 속에 그만의 고유한 시의 길이 있다. 그래서 시는 결정적으로 통속적이지도 신성하지도 않다. 또한 현실에 붙들여 있으되 늘 현실을 배반하고 초월을 꿈꾸되 결코 초월하지 못한다. 그런 점에서 시인은 차라리 지옥과 천상계의 중간 지점에 존재한다는 연옥적 영혼을 소유한 자다. 만일 죄받는 중생이 보리도(菩提道)에 이르지 못하면 성불하지 않겠다던 지장경적(地 經的) 세계관을 지닌 자들이다. 나는 그걸 신념으로 지지한다. 달콤하지만 최소한 시에 있어 관념의 극한은 현실의 절실성만큼 금기의 대상이고 그 역도 역시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행여 그 어느 쪽에라도 기울게 되는 순간 시는 사라지고, 대신 인간을 억압하는 ‘유령의 언어’ ‘죽음의 말’이 어느덧 세상을 지배하려 들기 때문이다."
2023년 8월 11일 (금)
[베껴쓰고 다시읽기] 과거의 '회상'으로부터 미래의 '예견'까지 (박준, 여름의 일) :
여름의 일
- 묵호
연을 시간에 맡겨두고 허름한 날을 보낼 때의 일입니다 그 허름함 사이로 잊어야 할 것과 지워야 할 것들이 비집고 들어올 때의 일입니다 당신은 어렸고 나는 서러워서 우리가 자주 격랑을 보던 때의 일입니다 갑자기 비가 쏟고 걸음이 질척이다 멎고 마른 것들이 다시 젖을 때의 일입니다 배를 타고 나갔던 사내들이 돌아와 침과 욕과 돈을 길바닥으로 내던질 때의 일입니다 와중에도 여전히 돌아오지 못한 이들이 있어 사람을 기다리는 사람이 있던 때의 일입니다 아니 갈 곳 없는 이들만 떠나가고 머물 곳 없는 이들만 돌아오던 때의 일입니다 잠에서 깨어났지만 한동안 눈을 감고 있는 일로 당신으로부터 조금 이르게 멀어져보기도 했던, 더해야 할 말도 덜어낼 기억도 없는 그해 여름의 일입니다
- 박준, 우리가 함께 장마를 볼 수도 있겠습니다 (문지, 2018)
백석, 김소월과 김영랑, 그리고 허수경과 이병률? (개인적으로는 박형준) 신형철 교수가 박준의 시를 보면서 떠올린 이름들입니다. 백 년의 역사를 갖는 현대시에 대해 "서정의 근본형식이 회상"이라는 말을 끄집어낸 건 돋보이는 지적이겠습니다. 또 다른 측면에서는, 신형철 교수가 언급하지도 않았던 미당, "현존하는 미당"이란 평을 듣던 정호승, 또 "여전히 잘 팔린다"는 문태준과 나희덕, 안희연 등도 같은 맥락에 놓고 함께 읽어볼 시집들이겠습니다.
현대판 '연금술사'라는 칭호를 과거판 '계관시인'처럼 생각해본 적 있었는데, 가장 섬세히 시어를 선택해 잘 배치된 문장들은 항상 아름다운 편입니다. 또 박준의 시들은 그 아름다움의 한 경지를 구현한다는 면에서는 충분히 높은 평가를 받아도 무방하다고 보는 편입니다. (그가 "실천문학"을 통해 등단을 했고, 창비의 신동엽문학상을 수상한 게 이상하다고 느껴진다면 딱 그만큼이 보는 이들 스스로가 갖고 있던 지독한 편견일 따름입니다.)
유독 이문재 시인과도 친한가 봅니다. 이 시집에서도 "이문재의 취한 말"이 등장했는데 실은 두 시인의 얼굴들마저 좀 닮은 구석이 많게 느껴지곤 합니다. 세상을 진실로 살아가는 몇 안되는 이들의 눈빛은 숨길 수 없는 선량함을 갖습니다.
시를 읽다가 문득 최근의 일들 여럿이 떠오릅니다. 누군가는 이 빗속을 뚫고 종로 한복판을 걸었고 또 누군가는 설레는 심경으로 귀갓길을 걱정해주었습니다. 딱 그만큼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이라고 생각해본 때입니다.
비가 추적추적 계속 내리는 새벽입니다. 태풍이 잦아드는 모양입니다. 신춘문예 응모작들이 쓰레기통에 구겨지던 그때의 그 습작들도 함께 잊혀질 무렵의 일입니다.
P.S. 문학회 동기들이 몇년만에 함께 모여 육십첩반상이라는 연안부두의 한 횟집을 작정해 방문하고자 인천터미널에 제일 먼저 도착해 한시간 가량을 기다리다 새로 나왔다며 읽고 샀던 한 시집을 추억함
2023년 8월 17일 (목)
[베껴쓰고 다시읽기] '음악'과 '미술' 사이, 시의 본래적 위치 (郭在九, '沙平驛에서') :
沙平驛에서
막차는 좀처럼 오지 않았다
待合室 밖에는 밤새 송이눈이 쌓이고
흰 보라 수수꽃 눈시린 琉璃窓마다
톱밥난로가 지펴지고 있었다.
그믐처럼 몇은 졸고
몇은 감기에 쿨럭이고
그리웠던 순간들을 생각하며 나는
한줌의 톱밥을 불빛속에 던져주었다
內面 깊숙이 할 말들은 가득해도
靑色의 손바닥을 불빛속에 적셔두고
모두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산다는 것이 때론
한 두릅의 굴비 한 광주리의 사과를
만지작거리며 歸鄕하는 기분으로
침묵해야 한다는 것을
모두들 알고 있었다
오래 앓은 기침소리와
쓴약 같은 입술담배 연기 속에서
싸륵 싸륵 눈꽃은 쌓이고
그래 지금은 모두들
눈꽃의 和音에 귀를 적신다
子正 넘으면
낯설음도 뼈아픔도 다 雪原인데
단풍잎 같은 몇 잎의 차창을 달고
밤 열차는 또 어디로 흘러가는지
그리웠던 순간들을 呼名하며 나는
한 줌 톱밥의 불꽃을 불빛 속에 던져주었다.
- 중앙일보 신춘문예 당선작 (1981)
역대 신춘문예 당선작들 중 송기원 시인의 '恢復期의 노래', 그리고 이 곽재구 시인의 '沙平驛에서'만큼이나 유명하고 또 대단했던 당선작들이 최근에도 더 있었을까 싶습니다. 어떤 분은 올해 경향신문 당선작인 박선민의 '버터'를 또는 서울신문 당선작인 임후성의 '볼트'를 꼽기도 합니다만...
한 편의 애틋하고도 쓸쓸한 화폭을 매우 잘 담아낸 빼어난 수작이자, 한 시대를 풍미한 데뷔작이요 대표작인 이 시를 놓고 김용택 시인은 "한 편의 회화 같다"고 말했던 게 기억납니다. 한 편의 아름다운 시가 갖는 이미지들은 때때로 음악을, 또 때로는 미술을 꽤 닮습니다. 이성복 시인의 경우에도 "시의 한 끝은 아름다움과 추상이고, 다른 끝은 진실과 구체"라면서 전자는 미래를 또 후자는 과거를 향한다고도 시론집인 "무한화서"에서 말한 적이 있었죠... 믿거나 말거나요.
1981년 신춘문예는 그 타이틀 자체만으로도 이미 '오월'과 '광주'라는 문맥을 그저 묵묵히 상징할 뿐입니다. 대표적인 '오월시' 동인이기도 한 시인이 다녔던 학교와 그해 오월의 기억만큼은 비단 이 시 한 편으로도 모자랄 거대한 산맥이요 그 어떤 한 원천이 되기도 합니다. (황지우 시인 역시 무려 십여 년이 지난 후에야 네번째 시집인 "게 눈 속의 연꽃" 중에서 '華嚴光州'를 통하여 그 아픔을 토해냈던 바가 있고요.)
참고로, 신춘문예의 원작과 비교해 데뷔시집인 창비의 "사평역에서"에 실렸던 표제시는 살짝 그 모양새를 달리 합니다. 시인들도 끊임없이 '퇴고'를 하고 있습니다. (끝 구절이 조금 다른 이유예요... ※ 원작 : "한 줌 톱밥의 불꽃을 불빛 속에 던져주었다." / 개작 : "한줌의 눈물을 불빛 속에 던져주었다.")
2023년 8월 30일 (수)
[베껴쓰고 다시읽기] 사소한 리얼리티와 ‘일상성’ (원동우, 이사) :
이사
아이의 장난감을 꾸리면서
아내가 운다
반지하 네평 방을 모두 치우고
문턱에 새겨진 아이의 키눈금을 만질 때 풀석
습기찬 천장벽지가 떨어졌다
아직 떼지 않은 아이의 그림 속에
우주복을 입은 아내와 나
잠잘 때는 무중력이 되었으면
아버님은 아랫목에서 주무시고
이쪽 벽에서 당신과 나 그리고
천장은 동생들 차지
지난번처럼 연탄가스가 새면
아랫목은 안되잖아, 아, 아버지
생활의 빈 서랍들을 싣고 짐차는
어두워지는 한강을 건넌다 (닻을 올리기엔
주인집 아들의 제대가 너무 빠르다) 갑자기
중력을 벗어난 새떼처럼 눈이 날린다
아내가 울음을 그치고 아이가 웃음을 그치면
중력을 잃고 휘청거리는 많은 날들 위에
덜컹거리는 서랍들이 떠다니고 있다
눈밭에 흐려지는 다리를 건널 때 아내가
고개를 돌렸다, 아참
장판 밑에 장판 밑에
복권 두 장이 있음을 안다
강을 건너 이제 마악 변두리로
우리가 또 다른 피안으로 들어서는 것임을
눈물 뽀드득 닦아주는 손바닥처럼
쉽게 살아지는 것임을
성냥불을 그으면 아내의
작은 손이 바람을 막으러 온다
손바닥만큼 환한 불빛
* 1993년 세계일보 신춘문예 당선작
1990년대는 ‘포스트모던’이 먼저 있었고, 사회주의의 몰락은 오히려 그 다음입니다. (이 거대한 사조가 최초로 위기를 겪은 건 2008년의 글로벌 경제위기였겠죠. ‘신자유주의’의 열풍이 그토록 거셌습니다.)
홀연히 나타난 한 신인은 국민은행 직원이었습니다. 찾아온 손님들로부터 쉬이 들었을 법한 이 드라마도 어쩌면 ‘자전’이었거나 또는 ‘업무’였을 것 같습니다.
전혀 ‘포스트모던’하지 않았던 시인도 변변한 시집 몇 권 없이 벌써 환갑 가까운 나이가 되었습니다.
1993년 신춘문예 당선작품집을 읽다가 유일하게 깊은 눈물을 흘리기도 했던 이 아름다운 작품은 ‘일상성’이 곧 시가 된다는 중요한 교훈을 일깨웁니다.
(나머지 말들은 저보다 훨씬 더 말을 잘한 이승하 시인의 글로 대신합니다.) ;
https://m.blog.naver.com/sidong6832/220903500105
2023년 9월 5일 (화)
[베껴쓰고 다시읽기] 대산문학상, 김수영, 그리고 신춘문예 (양안다, 천사를 거부하는 우울한 연인에게) :
천사를 거부하는 우울한 연인에게
내가 내 문제를 끝낼 수 있게 도와줘.
우리가 혼절한 단어를 너무 많이 받아 적었잖아.
우리는 해롭고 틀린 방식으로 기절합니다. 새벽이면 우리의 방에 청색 리듬이 필요합니다. 등불이 밤새도록 헤엄치고. 목구멍은 가끔 악기가 되어서. 슬픔에 잠긴 돌, 이름을 붙여줄까요? 중력이 우리를 지배합니다. 무너지는 집을 떠나야죠. 척추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유연함은 우리의 전공입니다. 그래요. 새벽에 적응하지 못한 짐승이 졸도하는 시간이에요. 어두운 숲에서 눈뜨고 잠든 건 나무가 아니라
우리였습니까?
짐승이 되는 꿈은
해일을 일으킨다. 악몽은 당신을 가파른 협곡으로 몰아붙인다.
당신의 발에 두 손을 얹을게. 새벽 욕조의 푸른색으로.
온수입니다. 물속에서 빛나는 우리 발목을 봐. 어떤 어류가 우리를 간질인다.
피울 때마다 안개가 드리웠지요. 입맞추기 전에 기도를 가볍게 올렸어요.
우리는 인어의 방식으로 익사하지 않는다.
잠깐 잊은 꿈을 말해줄게.
그 꿈에서 우리는 온순한 짐승을 기다리고 있었다.
창문 밖으로 작은 나룻배가 적란운 사이를 떠다녔지.
당신은 악몽을 떨쳐내려 밤의 악보를 소리 내어 읽었어.
가라앉은 문장들이 우리의 목소리라고 하지 말아줘.
멀고 공허해. 텅 빈 공간도 망령으로 가득차 있다고 믿었잖아.
별들은 오리온자리 배열로 빛나는데. 그래, 내가 잘게 흩어졌어.
그리고 나는 당신에게 지평선이 불탄다고 말했다.
그리고 나는 당신에게 우리 반지의 테두리가 빛난다고 말했다.
당신은 내가 외면한 슬픔의 총체인 걸까.
우리는 아름다운 종류의 괴물을 천사라고 부르기로 합의했는데.
우리가 영원히 깨어날 수 없다는 말에 동의해줘.
이곳에서 기절하지 않을 거야.
우리는 좋은 부부가 될 거야. 우리는 좋은 부모가 되지 못할 거야.
알 수 없는 구름 속으로 나룻배가 산산조각나고 있어. 내가 절반 이상 죽은 줄 알았어.
그리고 가느다란 월식. 그리고
누군가가 우리의 문을
노크할 때.
창문에서 새벽빛이 쏟아진다. 블루.
- 양안다, "천사를 거부하는 우울한 연인에게" (문학동네, 2023)
오랜만에 인사드려요. 이제 9월입니다.
대한민국 문단에서의 9월은 여러모로 각별한 의미들을 갖습니다.
명실상부한 국내 최고 권위의 문학상으로 발돋움하게 된 '대산문학상' 심사가 이제 시작되었고, 지난달 말까지로 출간을 한 올해의 신작들을 대상으로 그 영예의 주인공을 선정하는 과정이 길게 펼쳐질 시즌이 되겠습니다. 또 한편으로는 '미등단'을 포함한 신인들만을 대상으로 해 역사적 계보를 갖는 '김수영 문학상'의 타이틀을 놓고 응모작들을 마감하는 날이 바로 오늘이기도 하죠. 한 해의 대미를 장식하면서 내년 1월 1일자 신문들을 장식하게 될 신춘문예 응모작들의 마감일 역시 이제 불과 석달도 채 남지가 않았습니다. (날짜를 세어보니 오늘이 "D-86"이더군요.)
9월은 달력만을 기준으로 해 '가을'의 시작이기도 하고요. 이른 새벽부터 9월의 첫 습작을 잠시 써보기도 했는데, 왜 문득 '화엄사'부터 생각이 났는지는 잘 모르겠어요... 몇 해에 걸쳐 세밑과 정초를 즈음해 찾곤 했던 장소들인데 한동안 못 가본 탓인지도 모릅니다. 어쩌면 그만한 큰 시련을 그동안 겪지 않고도 무사히 잘 지내온 편일까 하는 생각도 좀 듭니다만,
대뜸 궁금한 건 올해의 '대산문학상' 수상작이 과연 어느 작품일까 하는 문제입니다. 무릇 모든 학문들이 갖는 가장 궁극적 목표 중 하나는 다름아닌 '미래에 관한 예측'일 테니까요. 여러 씬들을 통해서도 올해 후보작들을 놓고 갑론을박해온 풍경들 역시 자주 목격했던 부분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작년 이맘 때에 출간했었던 진은영의 새 시집 "나는 오래된 거리처럼 너를 사랑하고"를 제일 먼저 손꼽아온 편인데, 진은영 시인은 이미 지난 2013년에 이 상을 수상했던 이력이 있습니다.)
주변의 상황이나 서점가의 풍경들만을 놓고 본다면 아무래도 황인찬의 신작인 "이걸 내 마음이라고 하자" 역시 아주 강력한 후보임에는 틀림이 없겠는데, 막상 이 시집이 상을 수상하게 된다면 적잖이 실망하게 될 부분들도 꽤 많아 말은 좀 아껴두려 합니다.
올해에 들어서만 새롭게 필사를 한 시집들도 꽤 수북한 편인데, 저도 정확한 숫자를 몰라 '필사' 카테고리의 글들을 대충 세어보니 3백 권은 족히 넘는 것 같습니다. (물론 아주 오래된 시집들도 상당히 많았어서 작년과 올해의 시집들만 추려본다면 고작 백여 권도 안될 것 같긴 해도) 이들 중에서 수상작을 점쳐본다면? 글쎄요... 쉽게 답을 내놓기가 힘든 형편인 게 솔직한 제 의견입니다.
양안다 시인 역시 분명히 후보작들 중 하나로 손꼽힐만한 역량을 갖추었다고 보는 편인데, 올해 <현대문학> 신인추천작에서도 당선소감에 이름을 올려놓은 걸 보면 이미 충분하게 영향력을 행사해온 편임도 알 수 있겠네요. 나름대로는 신선한 시도였을 '창작동인 뿔'에서의 활동 못지 않게 개인으로도 꽤 많은 작품활동을 해온 편인만큼 충분히 또 다른 강성은, 오은, 김행숙의 포지션을 노려볼만한 시즌이기도 합니다.
안부를 몇 자 좀 적으려니 정작 시에 관한 얘기는 거의 쓰지도 못했나 봐요... 오늘의 독해는 독자들 각각의 시각에 선뜻 일임해두려는 편입니다.
오늘도 좋은 하루 되시기 바랍니다.
2023년 9월 8일 (금)
[베껴쓰고 다시읽기] 애처로운 사랑노래 (나희덕, 귀뚜라미) :
귀뚜라미
높은 가지를 흔드는 매미소리에 묻혀 내 울음 아직은 노래 아니다.
차가운 바닥 위에 토하는 울음, 풀잎 없고 이슬 한 방울 내리지 않는 지하도 콘크리트벽 좁은 틈에서 숨막힐 듯, 그러나 나 여기 살아 있다.
귀뚜르르 뚜르르 보내는 타전소리가 누구의 마음 하나 울릴 수 있을까.
지금은 매미떼가 하늘을 찌르는 시절 그 소리 걷히고 맑은 가을이 어린 풀숲 위에 내려와 뒤척이기도 하고 계단을 타고 이 땅 밑까지 내려오는 날
발길에 눌려 우는 내 울음도 누군가의 가슴에 실려가는 노래일 수 있을까.
- 나희덕, 그 말이 잎을 물들였다 (창비, 1994)
가을인가 봅니다. 제법 높은 하늘 위로 두둥실 구름들이 떠다니는 모습을 한참 동안이나 넋놓고 바라보게 만듭니다. 저 구름들이 꿈꾸게 만든 일들은 무엇이며, 나는 무엇을 얻었으며 도 무엇을 이루고자 또 어디로 향하고만 있는 걸까를 함께 꺼대어 묻습니다. 늘 대답은 애매모호하고, 명료하지 못한 채인 낱말들 속에 섣불리 오해를 살까 싶어 얼른 사전을 펴보기도 합니다. 김행숙 시인이 말한 '정확함'의 표현에 대해 여전히 스스로와의 사투를 벌이는 중인가도 모르겠습니다. 아직도 날씨는 뜨겁고 이른 새벽에서야 선선한 바람이 간혹 불기도 하지만, 밤새 형광등마저 꺼놓은 채로 자그만 스탠드 하나에 기댄 채 방안을 희미하게 밝혀두며 혼자 앉아서 시집 몇 권을 필사하거나 새로이 소설 습작을 머뭇대며 써본다거나 혹은 때때로 지난 시편들을 도로 꺼내어 최신 유행인 스타일로도 다시 한번 퇴고를 하며 새벽을 맞는 긴 긴 시간들만큼은 온전히 고독 속에 잦아들 법한 시절들이기도 했습니다. 또 누군가는 외롭고 쓸쓸해 사람을 그리워하기도 하고 또 누군가는 철 지난 옛 이름들을 하나둘씩 추억하면서 낙엽처럼 닳아가는 습작들 속에 간간이 나이테처럼 새겨넣기도 하는 시절들입니다. 현대인들의 고달픈 외로움을, 그 애처로운 사랑을 노래한 수작들로는 제법 꽤 유명해진 안치환의 옛 노래가 있었습니다. 1994년의 나희덕 시집에 수록된 그 오래된 추억들만큼 새로이 희미하게 다가오는 어떤 한 불빛을 오래도록 사랑하며 또 그리워하기 시작하는 계절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오늘의 신청곡입니다.
https://youtu.be/SMMMXere7SA?si=ej1S4Rt1nvtZBz1D
2023년 9월 9일 (토)
[베껴쓰고 다시읽기] 노력이 곧 천재를 만든다 (장석주, 날아라, 시간의 포충망에 붙잡힌 우울한 몽상이여) :
날아라, 시간의 포충망에 붙잡힌 우울한 몽상이여
1
신생의 아이들이 이마를 빛내며
동편서편 흩어지는 바람속을 질주한다
짧은 겨울해 덧없이 지고
너무 오래된 이 세상 다시 저문다
인가 근처로 내려오는 죽음 몇 뿌리
소리없이 밤눈만 내려 쌓이고 있다
2
회양목 아래에서
칸나꽃 같은 여자들이 울고 있다
증발하는 구름 같은 꿈의 모발,
어떤 손이 잡을 수 있나
3
밤이 오자 적막한 온천 마을
청과일 같은 달이 떴다.
바람은 낮은 처마의 불빛을 흔들고
우리가 적막한 헤매임 끝에
문득 빈 수숫대처럼 어둠속에 설 때
가을 산마다 골마다 만월의 달빛을 받고
하얗게 일어서는 야윈 물소리.
4
어둠 속을 쥐떼가 달리고
공포에 떨며 집들이 긴장한다.
하나의 성냥개비를 켤 때
또는 타버린 것을 버릴 때
더 깊고 단단하게 확인되는 밤
쥐떼의 탐욕의 이빨이 빛나고
피묻은 누군가의 꿈이 버려져 있다
5
하오 3시, 바다는 은반처럼 빛난다
흰 공기 속을 통과하는 햇빛의 정적
바람이 분다, 벌판에
흰 빨래처럼 처박힌 저 어두운 바다가 운다.
포악한 이빨을 드러내는 바다, 하오 4시
위험한 시간 속으로 웃으며 뛰어드는 아이들
6
전파는 다급하게 태풍 경보를 예보하고 탁자의 유리컵에는 바다가 갇혀서 필사적으로 몸부림치고 있다
폐쇄된 전해안
새파랗게 질린 풀들이 울고 그 풀들 사이에 누군가의 거꾸로 처박힌 전생애가 펄럭거리고 있다
오, 병든 혼,
아이들은 폭풍속을 뚫고 하얗게 떠 있는 바다로 달리고, 내 붉은 피톨은 쿵쿵 혈관을 뛰어 다니며 울부짖고 있다
7
햇빛 그친 낡은 문짝에 쇠못들이 박혀 녹슬고 있다
잊혀진 누군가의 이름들
8
바람은 오늘의 풀을 흔들며 지나가지만
흙속의 풀의 흰뿌리는 다치지 못한다
9
통제구역 팻말이 꽂혀 있다
끝없이 거부하며 어둠으로 쓰러지고
풀뿌리 밑에서 피투성이가 되어 잠들곤 했다
팻말뒤에서 펄럭이는 막막한 어둠
어두운 창너머 벌판에는 비가 뿌리고
잠자면서도 절벽을 보았다, 밤마다
시간, 오오, 가혹한 희망과 다정한 공포여
소멸의 이마를 스치는 푸른 번개
서치라이트의 섬광만 미친 짐승처럼
이빨을 번득이고
나는 꿈속에서도 필사적인 질주를 하며
땀을 흘리고 울었다
아, 1975년 여름
절벽에 부딪쳐 산산히 튀어 오르는
파도 조각처럼 부서지고 싶었다, 그때.
- 1979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당선작
신춘문예 D-82.
당분간 기성 시집들보다는 눈앞의 현안이자 올해의 마지막 이벤트요 내년 정초의 각 지면들을 장식하게 될 중앙일간지 총 여덟군데에서의 역대 신춘문예 당선작들을 (이번엔 순서없이) 또 다시 읽어보는 시간을 갖겠습니다. 그 첫번째입니다. :
1979년, 하면 대뜸 기억에 떠오르는 이름, 장석주입니다. 심사평에서는 "기법의 참신성, 주제설정의 여유와 내면성, 전체 사상이 시로 형상화되는 시 정신의 탄력" 등을 이유로 당선작에 뽑혔는데, 벌써 44년이 지난 이 시는 아직까지도 다분히 '현대적'이기까지 합니다.
개인적으로 ‘천재’는 99%의 노력을, 또 ‘수재’는 98%의 노력으로 이루어진다는 말을 믿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시인은 가히 ‘천재’에 더 가깝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이하 인용, 2010년의 인터뷰 기사 한토막)
"장석주 시인은 1955년 충남 논산 출생으로 1975년 <월간문학> 신인상에 시가 당선되면서 문단에 나왔다. 1979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는 시가 당선되었고, 동아일보에는 문학평론이 당선되면서 시인과 문학평론가의 길을 동시에 걷고 있다. 올해 초 14번째 시집인 『몽해항로』를 출간했는데, 이 시집으로 제1회 질마재 문학상을 수항했다. 『나는 문학이다』 등의 평론집과 『지금 어디선가 누군가 울고 있다』 등의 산문집, 『취서만필』 등의 서평집을 비롯해 60권에 가까운 저서를 선보였다. 국악방송의 <행복한 문학>을 진중한 언어로 진행해 호평을 받기도 했다. 2000년 여름 정착한 경기도 안성의 호숫가에 지은 ‘수졸재’(守拙齋)와 평택의 작업실을 오가면 독서와 글쓰기, 산책과 명상을 하며 산다.
여러 시인들이 밥에 관한 시를 썼다. 시인 고운기는 <비빔밥>이라는 시에서 “허기 아닌 외로움을 달래는 비빔밥 한 그릇”이라며 밥을 칭송했고, 함민복 시인은 <긍정적인 밥>에서 삼천 원하는 시집을 두고 “내 시집이 국밥 한 그릇만큼 / 사람들 가슴을 따뜻하게 덥혀 줄 수 있을까 / 생각하면 아직 멀기만 하네”라며 시집보다 밥의 숭고함을 노래했다. 하지만 내게는 장석주 시인의 <밥>이 유난스럽게 마음을 두드린다. “한 그릇의 더운 밥을 먹기 위하여 / 나는 몇 번이나 죄를 짓고 / 몇 번이나 자신을 속였는가” 묻는 질문에는 대답이 궁색하지만 “밥 한 그릇 앞에 놓고, 아아 / 나는 가롯 유다가 되지 않기 위하여 / 기도한다. 밥 한 그릇에 / 나를 팔지 않기 위하여” 라는 시구에서는 어떤 결기가 느껴진다. 그 장석주 시인을 만나기 위해 경기도 평택으로 지금 간다.
책은 밥이다 장석주 시인에게 책은 밥이다. 식상한 표현일지 모르나, 밥을 먹지 않고는 살 수 없듯, 그는 책을 읽지 않고는 살 수 없기 때문이다. 몇 해 전 출간한 서평집 『책은 밥이다』에 시인은 이렇게 썼다. “더운 밥과 찬 술을 구하듯 매일 책을 찾아 읽으며 조금씩 진화해서 온유한 인격을 갖게 되리라 믿는다. 한편으로 책읽기는 밥을 구하는 노동과 관련이 있으며, 고루함과 독단에서 벗어나는 영혼의 수행을 위한 장엄미사, 번뇌를 끊고 열반 정적에 나아가기 위한 참선이기도 하다. 무엇보다도 먼저 책읽기는 다른 무엇으로 대체할 수 없는 지적인 흥분과 열락감을 준다. 책읽기가 즐겁지 않고, 기분을 화창하게 하지 않는다면 나는 기꺼이 책읽기를 그만둘 생각이다.” 장석주 시인은 어려서부터 유별난 독서광이었다. 최근 우연히 중·고등학교 친구들과 만나게 되었는데, 친구들의 눈에 비친 장석주 시인은 “낯선 존재” “외계인” “딴 세상사람”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학교 공부와는 담을 쌓고 오로지 학교 도서관에 틀어박혀 책을 읽는 게 유일한 낙이었기 때문이다. 시인은 이미 그때부터 문학을 하겠다고 굳게 마음먹은 터였다. 그렇게 도서관에 틀어박혀 읽은 책들 중에 이광수의 소설을 비롯한 한국문학전집이 있었고, 헤르만 헤세의 소설들, 헤밍웨이의 작품들도 있었다. 까뮈의 작품들을 섭렵하기도 했는데, 시인은 스스로 “체계라고는 하나도 없이 무작정 책이 좋아 읽던 시절 이야기”라고 했다. 아무튼 그렇게 체계 없는 독서 중에 시인의 삶에 새로운 도전을 하게끔 만든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도 있었고, 프랑스의 철학자 가스통 바슐라르의 책들도 있었다. 평생 글쓰기의 길잡이가 되어주는 문학평론가 김현의 글과 책도 있었다. 탁월한 심미안과 아름다운 문장, 왕성한 독서력을 선보이며 문학의 근원적 질문에 천착했던 김현은 그러나 아쉽게도 48세의 나이에 저 세상 사람이 되었다. 오로지 글과 책으로 만나 사숙하게 되면서 장석주 시인은 문학과 함께 평론을 꿈꾸게 되었다.
읽어도 읽어도 배가 고픈 게 책 장석주 시인은 스스로의 결정으로 대학에 가지 않았다. “문학을 하겠다고 마음먹었는데, 굳이 대학을 갈 필요가 있을까”라는 마음이 컸고, 세상의 조직과 제도에 대한 극도의 거부감 또한 한몫했다. 장석주 시인은 “조직과 제도에 편입되어서 동전 찍어내듯이 내 정신과 생각이 그 제도 속에 압착되는 것을 참을 수 없다”고 했다. 결국 조직과 제도가 원하는 인간이 되는 것에 반발할 수밖에 없었다. 10대 후반에 읽었던 콜린 윌슨의 『아웃사이더』가 영향을 주기도 했다. 콜린 윌슨은 17세 때 이미 제도교육에서 뛰쳐나왔고, 이후 6개월은 일하고 6개월은 국립도서관에 틀어박혀 책을 읽고 글을 썼다. 장석주 시인은 “콜린 윌슨의 삶이 황홀하게 느껴졌다”고 했다. 콜린 윌슨의 책이 그렇다고 대학 진학을 하지 않기로 한데만 영향을 준 것은 아니다. 콜린 윌슨의 책들은 문화적 충격과 함께 그가 이제까지 써온 글들의 하나의 전범(典範)이 되기에 충분했다. 아무튼 “여러 가지 현실적인 이유와 청년의 낭만주의적 착각”에 의해 스스로 대학을 포기했지만 학벌사회가 고착된 한국 사회에서 사회적 편견에 오래도록 시달린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극복했다. 극복 정도가 아니라 자긍심을 느낄 정도로 소중한 경험이자 삶의 자양분이 되었다. 대학을 나오지 않은 자신에게 여러 대학과 대학원에서 강의를 부탁한다. 장석주 시인의 학벌이 아니라 경력과 전문적 지식을 높이 평가하고 있다는 반증인 셈이다. 내친 김에 장석주 시인은 대학의 현실에 대해 이야기했다. “대부분의 학생들이 대학에 가다 보니 일종의 학력 인플레가 심합니다. 학생들을 가르치다 보면 어떻게 이런 학생이 대학에 왔지? 의문이 드는 학생들도 있어요. 그런데 그런 학생들도 별 이상 없이 졸업장 받고 졸업해요. 하지만 수준은 말 그대로 학력(學力)과는 멀어 보입니다. 전부는 아니겠지만 공부하지 않는 교수들도 많은 게 현실 아닙니까?” 장석주 시인은 다치바나 다카시의 『도쿄대생은 바보가 되었는가』를 예로 들며 대학 졸업장이 공신력을 잃어버린 사회가 우리에게도 현실이 되었음을 지적했다. 아울러 장석주 시인은 “나에게는 책이 대학이자 대학원이었다”면서 “책을 통해 모든 필요와 결핍을 채웠고, 지금도 허기진다. 읽어도 읽어도 배가 고픈 게 책”이라고 강조했다. 1년에 천여 권, 한 주에 두 박스 분량의 책을 사고 속속들이 읽어내는 장석주 시인은 책이라는 대학에 묻혀, 오히려 더 예리한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있다.
니체에게 삶의 희열과 열광을 수혈받다 장석주 시인에게 니체는 특별한 존재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처음 읽었을 때의 충격 이후 니체의 모든 책을 찾아 읽었다. 니체, 특별히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는 장석주 시인의 글쓰기에 영감을 준 원천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장석주 시인은 니체에게서 “꿈과 기대, 삶의 희열, 열광 같은 것을 수혈받는다”고 했다. 자신이 오독했을지 모르지만 니체의 책은 낙관적 철학으로 가득하다는 것이 시인의 생각이다. 말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이 책은 읽어보지도 않고 이곳저곳에서 주워들은 이야기들을 조합해 니체가 암울하다느니, 비관적이라느니 이야기한다. 니체와의 인연은 출판사로도 이어졌다. 한 출판사 편집장 자리를 거쳐 스물여섯 되던 해에 청하출판사를 차려 독립했다. 오로지 제대로 된 『니체 전집』을 읽고 싶다는 작은 희망 때문이었다. 당시 전세가 200만 원하던 때였다. 장석주 시인은 전세금을 빼서 10권 짜리 『니체 전집』을 만들고야 말았다. 중역본밖에 없던 시절, 30대의 젊은 번역가들이 번역을 맡은 『니체 전집』은 입소문을 타면서 제법 많은 부수가 팔렸다. 장석주 시인의 말대로 “제대로 된 인문학 독자 1만 명은 있던 시절”이었다. 장석주 시인은 “어떤 번역본들은 최근 나온 번역본들보다 읽기가 편하다”며 자신이 기획하고 출간한 『니체 전집』에 자부심을 나타냈다. 장석주 시인은 지금도 니체에 관한 새로운 책이 나오면 주저 없이 구입한다. 지난 세월 글쓰기에 영감을 주었기 때문이 아니다. 앞으로의 글쓰기는 물론 삶의 모양을 형성하는 데도 니체의 글과 책은 적절하고 유효한 영감을 주기 때문이다. 시인은 절망과 좌절에 빠진 요즘 젊은 세대가 니체에 주목하기를 바라는 듯 했다. 갈 길 몰라 하던 시절, 자신에게 삶의 희열과 환희, 꿈과 기대를 선사했던 니체야말로 계속해서 읽혀야 할 텍스트라는 것이다.
수졸재, 낮은 자리에서 낮음을 지키다 ‘장석주 시인’하면 사람들은 노자와 장자를 떠올리곤 한다. 몇몇 방송에서도 예의 진중한 언어로 동양사상에 관해 이야기해서일까. 장석주 시인은 2000년에 30년 넘는 서울 생활을 정리하고 경기도 안성의 금광호수 옆에 수졸재(守拙齋)를 짓고 칩거에 들어갔다.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노자와 장자를 읽기 시작했다. “마음 공부한다는 심정”이었다. 그것에 관한 책을 쓰려는 생각은 애초에는 하지도 못했다. 도시 생활 30년에 남은 것은 육식성의 삶밖에 없었다. 호숫가에 앉아 노자와 장자를 읽으며 초식성의 삶으로 되돌리려 애썼다. 주변에서 자란 푸성귀를 뜯어먹고 제철 음식을 먹으며 건강을 되찾았고, 마음도 서서히 안정을 찾아갔다. 시인은 그 즈음 노자와 장자가 “마음에 젖어들듯이 흡수되었다”는 은밀한 고백을 들려주었다. 노자와 장자 외에도 『주역』을 탐독한다. 삶과 자연의 이치를 하나로 꿰뚫는 『주역』은 여전히 삶과 글쓰기에 영감을 주는 소중한 책이다. 그이의 마음을 평정케 한 수졸재로 가고 싶었다. 장석주 시인은 선선히 차를 몰아 20분 거리의 수졸재로 향했다. 호수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수졸재에서 음악을 들으며 또 책 이야기를 나누었다. 수졸재(守拙齋), 수졸(守拙)은 바둑에서 겨우 자기의 집이나 지킬 정도라는 뜻으로, 초단(初段)을 이르는 다른 말이기도 하다. 바둑을 즐기기도 하지만 속뜻은 “가장 낮은 자리에서 그 낮음을 지키며 산다”는 일종의 겸양이며 또한 다짐이다. 2만여 권의 책이 옹기종기 모여 내밀한 대화를 나누는 곳, 부러움이 앞섰지만 이내 마음이 차분해졌다. 생전 처음 보는 책들도 부지기수. 장석주 시인은 이곳에서 노자와 장자를 읽으며 마음공부 중이다. 장석주 시인은 수졸재 바로 아래 문학관을 지을 예정이다. 가을이면 윤곽이 잡힐 거라며 빈터로 일행을 안내했다. 손수 작은 연못을 만들어 놓은 품이 정겹다. 문학관에는 함께 영화도 보고, 공연도 할 수 있도록 만들 생각이다. 와서 연주하겠다고만 하면 수많은 솔로이스트들에게도 무료로 자리를 내줄 생각이다. 내 것이라 주장할 이유는 없다. 함께 즐거움에 동참하면 그뿐. 그것이 바로 시인이 수졸재에 기거하는 지난 10년 동안 터득한 삶의 이치다.
오로지 책을 통한 지식의 승계 노자와 장자 등 동양철학뿐 아니라 장석주 시인은 서양철학에도 조예가 깊다. 들뢰즈의 철학에 관한 책을 준비하기 위해 최근 집중적으로 독서를 하고 있다는 그이는, 들뢰즈 철학이 한국 사회에서 관심의 대상인 이유를 “동양사상과 맥을 같이 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서양철학의 근간이라고 할 수 있는 이성주의에 한계가 명백한 이때에 동양사상이 갖는 여백의 지식 혹은 지혜가 들뢰즈 철학에서 엿보인다는 것이다. 들뢰즈와 가타리가 쓴 『천 개의 고원』은 그런 점에서 우리 시대 독자들이 한번쯤 읽어봄직한 책이다. 들뢰즈뿐 아니다. 레비스트로스의 책들, 특히 『슬픈 열대』를 사랑하고, 롤랑 바르트를 탐독했다. 레비나스의 철학에도 일가견이 있다. 수전 손택은 특별히 사랑하는 저자 중 하나다. 한 가지 아쉬운 것은 국내에 소개된 이들의 책의 번역 수준이 들쭉날쭉하다는 사실이다. 『니체 전집』 때처럼 이들의 책을 다시 출간하기 위해 출판사를 할 수도 없는 노릇. 번역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속히 형성되기를 바랄 뿐이다. 국내에서는 김현과 김우창의 글을 애지중지 읽었다. 김우창 교수의 글과 책은 20대 시절부터 탐독했는데, 그의 글쓰기가 아름아름 알려지던 1970년대 후반만 해도 인정해주는 사람이 없던 시절이었다. 어렵기도 했거니와 김우창 특유의 문체에 익숙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장석주 시인은 그의 길을 줄기차게 따라왔고, 이제는 그이의 학문을 잇고자 연속성을 추구한다. 시인은 이를 두고 “지식의 승계”라고 했다. 정식으로 사제의 연을 맺은 적은 없지만, 선배가 남겨둔 발자취를 따라가며 뒤이을 수 있다는 것, 그것을 오로지 책만이 할 수 있는 가장 위대한 일 아닐까 싶다.
세상 모든 것에서 배운다 사실 요즘 장석주 시인은 지식인들마저 책을 읽지 않는 현실에 조금 놀라고 있다. 책을 읽지 않으면서 자신의 지식은 신념처럼 받아들인다. 지식이 신념이 되면 결국 사회는 퇴행할 수밖에 없다. 오늘 우리 현실이 바로 그렇지 않은가. 책을 읽지 않고 지식인이라 불려 마땅한가를 묻기 전에 책을 읽지 않고 사유할 수 있는가를 묻고 싶은 게 시인의 솔직한 심정이다. 언젠가 그렇게 묻기 위해 시인은 새벽 4시면 일어나 산책을 하고 하루 종일 작업실에 틀어박혀 자정을 넘기면서까지 책을 읽고 글을 쓴다. 보통 한 작가의 책을 연속적으로 읽는데, 장석주 시인은 이를 두고 “꽂히면 끝까지 가는 것”이라고 표현했다. 김현과 김우창이 그랬고, 고종석도 끝까지 갔다. 최근에는 이진경과 문광훈의 글과 책에 주목하고 있다. 이진경과 문광훈의 책을 나오기가 무섭게 읽었다. 장석주 시인은 선생의 개념을 확장하고 있었다. “어린 게 무슨 상관이에요. 내가 배울 것이 있다면 후배도 선생이고, 아이도 선생이죠.” 세상 모든 것에서 배우고자 하는 그이의 정성이 묻어나는 대목이다. 한편으로는 주제에 따라 책을 읽곤 하는데, 최근에는 몸에 대한 책을 읽고 있다. 현대인들을 몸을 기능적으로만 생각한다. 감기에 걸리기만 해도 어떻게든 빨리 낫겠다고 수많은 약을 입안으로 털어 넣는다. 열이 나면 해열제를, 작은 상처에도 항생제를 남발한다. 장석주 시인은 “우리 몸에는 충만한 복원력이 있다”면서 “해열제나 항생제를 먹는 것은 자살행위나 다름없다”고 일침을 가한다. 올해 초, 시인은 호된 감기를 앓았다. 누런 코가 연신 흘러내렸고 며칠 동안 몸은 불덩이였다. 그래도 약 한 알 먹지 않고 버텼다. 누런 코와 진땀은 몸속 노폐물을 빼내는 과정이요, 열은 내 몸에서 나쁜 바이러스들이 죽어나가는 신호였기 때문이다. 2주 정도 앓고 나서 오히려 몸은 이전보다 더 맑아졌다. 시인은 “병을 오래된 친구 모시듯 반기라”고 말했다. 병도 끌어안고 살아야 할 우리 몸의 일부인 것이다.
시, 삶이 영글면 저절로 한 줄의 언어로 응축된다 이제까지 시인의 이름으로 나온 책은 모두 58권. 장석주 시인은 올해가 가기 전에 60권을 채울 것 같다고 했다. 그리고 전혀 목표하지 않았던 100권의 저서를 낼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한 권이라도 쉽게 생각하여 쓰지 않았다. 삶의 순간순간마다 최선을 다해 책을 읽었고, 그것들을 쏟아낸 것이 바로 시인의 책이다. 곧 그이의 이름으로 우화소설이 한 권 탄생한다. 오래 전부터 구상만 하던 것을 올해는 본격적으로 다듬어 내고 있는 중이다. 시인으로 불리면서 소설을, 그보다 많은 인문학 관련한 텍스트를 쏟아내고 있으니 어이할까. 그래도 시인을 즐겁다. 삶이 영글면 시는 저절로 한 줄의 언어로 응축되어 나올 것을 믿기 때문이다. 평택 작업실을 거쳐 수졸재를 나서는 일행을 배웅하기 위해 마당에 선 장석주 시인은 고향집 큰 형님처럼 푸근한 얼굴로 "또 오라"는 인사를 던졌다. 문학관이 지어지고 재미난 행사가 열리면 곧 오마고 했으나, "꿀 같이 단 책이 내 벗이며 가족"이라고 했던 그이 옆에 좀 더 눌러 앉아 책들이 전해주는 내밀한 대화에 귀 기울이고 싶었다. 책의 풍경과 마주하고 온 하루, 낮은 마음을 가다듬는다. 수졸재에서 바라본 금광호수와 주변 풍광이 아직도 선명하다."
2023년 9월 13일 (수)
[베껴쓰고 다시읽기] 미래의 '여성성'에 관한 한 조언 (강은교, 우리가 물이 되어) :
우리가 물이 되어
우리가 물이 되어 만난다면
가문 어느 집에서들 좋아하지 않으랴.
우리가 키 큰 나무와 함께 서서
우르르 우르르 비오는 소리로 흐른다면.
흐르고 흘러서 저물녘엔
저 혼자 깊어지는 강물에 누워
죽은 나무뿌리를 적시기도 한다면.
아아, 아직 처녀(處女)인
부끄러운 바다에 닿는다면.
그러나 지금 우리는
불로 만나려 한다.
벌써 숯이 된 뼈 하나가
세상의 불타는 것들을 쓰다듬고 있나니.
만 리(萬里) 밖에서 기다리는 그대여
저 불 지난 뒤에
흐르는 물로 만나자.
푸시시 푸시시 불꺼지는 소리로 말하면서
올 때는 인적(人跡) 그친
넓고 깨끗한 하늘로 오라.
- 강은교, “풀잎” (민음, 1974)
대한민국에서 '서정시'를 쓰는 시인들 이름 몇몇을 꼽으라면, 대뜸 떠오르는 이름들 중 하나인 강은교 시인의 작품들은 주로 정갈하면서도 깊이 우려낸 찻물을 마시는 것과 같은 은은한 매력을 갖습니다. (개인적으로도 좋아하는 시인 중 한 명이고요.)
다만 현대시의 작법과 화풍들이 제법 실험적이다 보니 강은교 시인의 시들이 기대만큼에는 미치지 못할 유명세를, 각종 문학상 수상소식에서도 크게 주목받지 못한 건 꽤 애석할 법한 일입니다. 반대로 두드러진 명성을 쌓아온 김혜순, 김승희, 황인숙 그리고 이제니 등등까지의 계보 및 각종 수상이력들에서 이만한 '정서'가 그동안 담겨지지 못해왔다는 건 국내 문단에서의 '여성성'이라는 담화가 얼마나 전투적인 '실험성'에만 그치면서 또는 어쩌면 오로지 '파격'에만 주되게 매몰되었었는가도 반성하게끔 만드는 대목일 수 있겠습니다.
물론 현대문학상과 몇몇의 수상이력들이 시인의 위상을 전혀 깎아내릴 수 없을만한 굵직한 성과들이긴 해도, 좀 더 차분하고 따스한 음성으로 시의 본령 중 하나였을지 모를 일종의 '구원'과도 같을 역할을 기대해본다면 그것 또한 과한 욕심인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끝으로 또 한 명의 걸출한 '서정시' 대표주자 격인 문태준 시인의 예전 단평을 함께 옮겨 싣습니다.
[애송시 100편-16편] 우리가 물이 되어 (문태준)
물은 선하다. 물은 그 자체로 흐르는 모습이다. 흐르는 에너지이다. 물은 작은 샘에서 솟고, 뿌리에게 스미고, 하나의 의지로 뭉쳐 흐르고, 환희로 넘치고, 작별하듯 하늘로 증발하고, 우수가 되어 떨어져 내리고, 다시 신생의 생명으로 돌아와 이 세계를 흐른다.
우리가 태어나고 사귀고 웃고 슬프고 울고 아득히 사라질 때에도 물은 우리보다 먼저 이 세계에 왔으며 우리보다 먼저 사라졌으며 우리보다 먼저 다시 태어났으니, 유한한 우리에게 물은 한 번도 태어난 적이 없고 한 번도 사라진 적이 없다. 물은 불과 흙과 공기와 더불어 이 세계가 온존하는 한 온존할 것이다. 해서 물은 모든 탄생과 소멸을 완성하며, 그 자체로 소생하고 순환하는 생명이다.
이 시를 읽을 때면 '선한 물'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불이 어떤 부정과 대립이라면 물은 그마저도 끌어안는 어떤 관용. 물은 사랑. 자주 침묵하지만 한 번도 사랑을 잊은 적이 없는 마음 큰 이. 우리도 서로에게 물이 되어 서로의 목숨 속을 흐를 수 없을까. 우리는 그렇게 만날 수 없을까. 물과 같고 대지와도 같은 침묵의 큰 사랑일 수 없을까.
강은교(62) 시인이 '사랑法'이라는 시에서 '떠나고 싶은 자/ 떠나게 하고/ 잠들고 싶은 자/ 잠들게 하고/ 그리고도 남는 시간은/ 침묵할 것// 또는 꽃에 대하여/ 또는 하늘에 대하여/ 또는 무덤에 대하여// 서둘지 말 것/ 침묵할 것.// (중략)// 가장 큰 하늘은 언제나/ 그대 등 뒤에 있다.'라고 노르했듯이.
강은교 시인은 1968년에 등단해 올해로 등단 40주년을 맞았다. 초기에 발표한 시들이 강한 허무 의식을 드러냈기 때문에 그녀를 '허무의 시인'이라고 부르기도 했지만, 그녀의 시는 민중적인 서정에도 가 닿고, 사소하고 하찮은 생명들을 끌어안기도 하는 등 아주 큰 스펙트럼을 보여주었다. 나는 어느 해엔가 그녀가 시의 낭송과 울림을 통해 사람들의 마음 속 질병과 상처를 치료하는 '시 치료' 공연을 하는 것을 감명 깊게 본 적이 있다. 그때에도 지금에도 강은교 시인은 이 세계의 순례자로서 이 세계의 구원을 위해 생명수를 구해오는 바리데기의 현신이다.
- 조선일보 (2008년)
[베껴쓰고 다시읽기] '관록'의 힘과 스스로 겨루고자 한 '순수'한 내면의 깊이 (임후성, 볼트) :
볼트
코끼리를 보라
코끼리끼리는 볼 수 없는 코끼리를 보라
꼬리를 위해 서 있는 네 번째와 세 번째 다리를 보라
걸음을 뗄 때 발을 남기고 벗겨질 것만 같은 발의 접힌 거죽을 보라
달라붙어 있지 않고
그것은 끌려다닌다
우리의 난제였던 바깥이다
실체는 헐렁헐렁하다
그 안에서 기관을 해체하는 망치질 같은 코끼리의 걸음을 보라
눈앞에 직접 정의된 코끼리를 보라
걸을 때마다 부서지고 있지 않은가
간신히 어금니로 연결되어 있지만 조금씩 무너져 내리고 있지 않은가
코끼리 안으로 들어가지 마라
안과 바깥은 서로에게 통증이 그지없다
뒤쪽 숲을 보라
나뭇잎들이 가지에 붙어 벌어졌다 오므라들었다 한다
나무 주위를 맴돌며 탈출이 어려운
바람의 원숭이들을 보라
가장 가까운 붉은색을 볼 수 없는 원숭이의 눈을 보라
저 영특한 종족은 의혹의 못에 박힌 매혹이다
이때 고개를 돌려 완전한 불의 형태로 시간을 태우는 대관람차를 보라
오전의 하품 같은 간격을 보라
회전의 무의미 아래 네게 권해지는 네 머릿속을 보라
주차장에서 마주친 사 년 전 그 사람을 보라
하천이 흐르는 대로변에서
다리 아래로 유혹해
교량의 접합부마다 극렬하게 박힌 볼트를 해가 질 때까지 함께 보았던 그 사람을 보라
볼트 하나를 빼 보고 싶었던 그 사람을 보라
그가 너를 찾아 나섰는지는 알 수 없다
그는 볼트 하나를 갖고 있다
그와 상관없이 혼자서 한 번 더 다리를 건너라
다리는 흔들거린다
그 아래를 보라
조그만 구멍을 남기고 녹슨 생략이 있다
- 2023년 서울신문 신춘문예 당선작
신춘문예 D-78,
지난번에 이어 역대 신춘문예 당선작들을 톺아보는 두번째 시간입니다. 오늘은 가장 최근인 올해 신춘문예 당선작들 중 한 편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올해 신춘문예 당선작들 중 경향 신춘문예 당선작인 박선민의 '버터'와 함께 가장 높은 평가를 받은 작품은 서울신문 신춘문예 당선작인 올해 58세의 늦깎이 신인이 된 임후성의 '볼트'였지 않았을까 합니다. 특히 이순을 코앞에 둔 나이임에도 꾸준한 정진 끝에 거둔 성과였던 탓에 많은 이들이 수상작 못지않게 큰 관심을 갖게 된 면도 없지 않았을 것 같군요...
박선민의 '버터'가 맑고 아기자기한 상상력들을 한껏 펼쳐보였다면 반대로 임후성의 작품에선 디테일이 살아 숨쉬는 듯한 철저한 '내공'의 힘이 엿보입니다. 이는 단순히 기술적 재능 차원을 넘어선 어떤 '인생의 깊이'와도 연관을 갖게 만드는 힘인데, 이 역시 꾸준한 훈련에 의한 것이지 저절로 형성되는 건 아니라는 점이 큰 '함정'일 수도 있겠네요. (부단한 습작 또한 물론 중요하겠지만 스스로 얼마나 퇴고의 시간을 잘 연마하며 남은 시간들을 버텨냈는가가 사실 더 중요한 문제는 아닐까 하는 의견을 함께 보태려 합니다.)
당선소감 또한 큰 화제였습니다. 아내를 향한 무한한 신뢰와 존중, 지인들과 가족을 향한 다사로운 애정, 모국어에 대한 언급과 맨 마지막으로 내놓은 한 마디도 충분히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만한 문장입니다.
:: 당선소감 (일부, 인용) ::
당선 소식 후 잠시 자리를 피해 줬던 일상이 다시 제자리로 돌아온다. (중략) 겨울이 느리게 가는구나. 일상은 왠지 사소한 일에도 조금 더 책임을 요구하는 것 같다. (중략)
하늘에 계신 어머니, 아버지 그립습니다. 존경하는 극작가이신 아내 김성민님께 감사드립니다. 당신은 늘 저를 보호하고 삶과 문학을 위한 수공업적 자세를 길러 주셨습니다. 저는 문학과 예술의 동료로서 당신에게 속합니다. 외롭고 높게 인문 연극하는 극단 피오르에 감사드립니다. 서현과 진서에게 감사합니다. 당신들은 나의 변증법입니다. (중략)
예선을 거쳐 최종심까지 질식의 시간을 견뎌 준 '볼트'에게 감사합니다. (중략) 아름답고 절실하고 성스러운 모국어에 감사합니다. (중략)
나는 오늘의 관습 앞에서 순결한 존재의 먼 얼굴을 회상한다. -끝-
:: 심사평 (일부, 인용) ::
"한 명". 신춘문예는 한 명을 찾는 일이다. 인파 속에서 그 사람을 찾아야 한다. 예년보다 응모작이 많은 데다가 수준 또한 높아서 심사장은 후끈후끈했다. 한 명이 될 수 있는 이들이 많았다는 얘기다. 793명이 응모한 3001편의 시들을 집중하며 읽었다. 팬데믹의 여파가 경기 침체, 청년 실업 등의 양상으로 응모작에 나타났다. 삶의 피로와 미래에 대한 비관이 진득하게 느껴졌다. 이태원 참사를 추모하고 기후 위기를 염려하는 시도 눈에 띄었다.
본심에 올라온 세 명의 응모자는 개성으로 빛났다. 개와 오리와 코끼리 등 동물이 시를 이끄는 존재로 등장하는 것은 공통점이었다. (중략)
토론 끝에 '볼트' 외 2편을 응모한 임후성을 그 '한 명'으로 결정했다. '볼트'는 코끼리 다리에서 볼트를 연상하고 코끼리 몸집과 사회 구조를 빗대어 전개하는 시다. 코끼를 알기 위해서는 코만 만져 봐서는 안 된다. 펄럭이는 귀, 네 개의 튼튼한 다리, 길쭉한 코, 단단한 상아까지 만져 봐야 한다. 그의 시 쓰기가 톺아보기를 지향하는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막힘없는 상상과 내달리듯 호흡하는 문장은 읽는 맛도 더해 주었다. 당선자에게 축하를 보낸다. 코끼리처럼 성큼성큼 나아가되 주변의 작은 존재들을 살피는 일을 게을리하지 않기를 바란다. 아울러 응모해 주신 분들께 깊은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신해욱, 오은, 정끝별)
2023년 9월 14일 (목)
[베껴쓰고 다시읽기] 등단을 해도 첫 시집은 또 20년 (박미란, 목재소에서) :
목재소에서
고향을 그리는 생목들의 짙은 향내
마당 가득 흩어지면
가슴 속 겹겹이 쌓인 그리움의 나이테
사방으로 나동그라진다
신새벽,
새떼들의 향그런 속살거림도
가지 끝 팔랑대던 잎새도 먼 곳을 향해 날아갔다
잠 덜 깬 나무들의 이마마다 대못이 박히고
날카로운 톱날 심장을 물어뜯을 때
하얗게 일어서는 생목의 목쉰 울음
꿈 속 깊이 더듬어 보아도
정말 우린 너무 멀리 왔어
눈물처럼
말갛게 목숨 비워 몇 밤을 지새면
누군가 내 몸을 기억하라고 달아놓은 꼬리표
날마다 가벼워져도
먼 하늘 그대,
초록으로 발돋움하는 소리 들릴 때
둥근 목숨 천천히 밀어올리며
잘려지는 노을
어둠에도 눈이 부시다
- 1995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당선작
신춘문예 D-77.
1995년은 이병률 시인이 등단한 해이기도 합니다.
당시의 등단자들 명단을 살펴보니 대충 이렇네요... 김지연 (동아), 윤을식 (세계), 윤지영 (중앙), 이병률 (한국), 이은옥 (경향), 장경복 (서울) 정도인데 실제로 현 문단에서 아직까지 시집을 펴내고 활동하고 있는 시인은 한 명 정도 뿐이겠어요. 실제로 등단을 한다 해도 끝까지 살아남아 작품활동을 해내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매년 1월 1일, 종이로 된 신문들을 가판대에서 모두 사모은 다음에 하루종일을 각 신문마다 발표된 당선작들을 내내 읽고 또 감상평을 써내곤 하던 시절들도 기억을 돌이켜보니 이 해가 맨 마지막이었지 않았나 싶습니다. (이후부터는 직장생활로 꽤 바쁘게 지냈으며, 또 인터넷이 생긴 다음부터는 아예 제대로 시간을 내면서까지 읽어둔 적이 없었으니까요.)
1995년 1월 1일에 제가 뽑았던 그해 최고의 작품은 간호사 생활로 이미 수해째의 직장생활을 하고 있던 한 여성이었고, 이제는 기억조차 희미해져버린 무슨 동인으로 활동하고 있던 중이었던 만만치 않은 실력의 소유자였습니다.
연말까지 인테리어 공사로 휴관 중인 정독도서관을 거의 매일같이 방문하였던 지난 봄에 비로소 그의 첫 시집을 읽었던 게 제일 기억에 남습니다. 등단한 지 무려 20년만에야 펴낸 그 시집에서도 온통 직장생활에 관한 (즉, 생사를 오가던 병동에서의 아주 다양한 에피소드들이 중심이 된) 시편들에 온통 지면을 할애했음에도 반갑게 상봉하게 된 데뷔작만큼은 여전히 고고한 자태를 뽐내더군요. 황동규 시인의 심사평을 의식한 듯, 살짝 수정된 버전이 실렸었는데 모처럼 등단작을 다시 꺼내봅니다.
2023년 9월 15일 (금)
[베껴쓰고 다시읽기] 밀리언셀러 시인 류시화의 등단작 (안재찬, 생활) :
生活
窓을 닦다 보면
마치 세상의 한 끝을 닦는 것 같다.
어둠의 門을 열고
맨 처음 세상으로 나온 아이의
맑은 눈을 들여다보는 것 같다.
하늘을 바라보았을 때
아침은 소리없이 움직임만으로 와서
그러나 거부할 수 없는 힘
四方에서 입술을 부비며 스며든다.
손바닥 위에 놓인 生의 조각들을 쪼아먹는
소망의 뜰에 내린 새 몇마리
앉아있다 날아간 자리
버리고 남은,
버릴 수 없이 슬픈 이야기들은 모두
지난 밤의 꿈으로 문질러두고
지금 窓을 닦고 있는 내 손길 아래
세상의 어느 한 곳이 닦여지고 있다.
톱밥처럼 흩어지는 日常의 책장들
良識은 굳은어깨뼈처럼 튼튼하지 못하고
길모퉁이에 잠복해 있는
먼지의 덫, 보이지 않는 손들의 굴레
一部分씩 닦여져 나간다.
빈 접시에 채우는 하루분의 양심과
빵 하나의 自由로 시작되는
이 아침, 햇빛은 하늘의 층계를 걸어내려와
無垢한 눈망울을 가진
내 아이들의 손을 잡고
어디로 어디로 데려가는가.
아침의 門을 열고
맨 처음 밖으로 나온 아이의 두 눈
窓을 닦다 보면
마치 세상의 어느 한 끝을 닦는 것 같다.
# 1980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당선작
신춘문예 D-76.
우리나라에서 그동안 100만부 이상의 시집을 판매한 시인들 목록을 보면 의외로 등단을 거친 시인들이 꽤 드물다는 흥미로운 사실을 경험하게 됩니다. 역대 최고의 황금기라고 평가받곤 하는 1980년대만 해도 무려 세 명의 밀리언셀러 시인들이 있었는데, 이미 1984년에 가장 먼저 100만부 이상의 판매고를 기록하였던 박노해 시인을 비롯해 1989년에 이르기까지의 <홀로서기>를 쓴 서정윤 시인과 <접시꽃 당신>의 도종환 시인 등이 기억나는군요... 요즘도 베스트셀러 시집 분야를 보면 현 본격문학 진영에서 크게 주목을 받아온 시인들의 이름은 맨 아래에 겨우 하나 둘 정도만 오를 뿐, 대다수의 나머지 시집들은 '등단'을 거치지 않고 출간된 시집들인 경우가 태반이죠.
박노해 시인은 '시와 경제' 동인으로만 활동을 했었고 또 비록 '등단'을 거치긴 했어도 도종환 시인 역시 신춘문예가 아닌 동인지 '분단시대'를 통해 데뷔를 하였으므로, 아마도 거의 유일한 신춘문예 당선자 출신의 밀리언셀러 시인으로는 딱 한 명 바로 류시화 시인이 있습니다. 워낙 많은 시집들을 출간하기도 했고 또 대부분 스타덤에 오를만큼 혁혁한 판매부수를 자랑해온 시인이기도 하죠. 하지만 신춘문예에서는 비교적 본격문학에 더 가깝다고 할 등단작으로 데뷔를 한 셈이겠습니다. (게다가 이 실력 또한 상당히 뛰어났던 편이어서 한번쯤은 따로 읊어둘만하다는 생각입니다.)
2023년 9월 17일 (일)
[베껴쓰고 다시읽기] '당선작'의 최우선 전제조건 둘 (이정화, 골조의 미래) :
골조의 미래
푹신한 의자와 비어 있는 벽
대화를 시작하기 전에 선생이 건네주는 사탕 두 알
공기가 더없이 건조해지고
서서히 등이 굽어질 때 묻는다
- 그 집이 제 것이 맞을까요
수년간 지어온 이 집엔 각별한 애정이 있지만
한 발만 들여도 금세 다시 지어야 할 만큼 형편없다
- 전 애인이 가져다준 벽돌 하나. 지문이 남은 채 굳어버린 시멘트. 이유 없이 생긴 자국들. 망치로 못을 내려칠 때 들었던 노래라든가. 한순간에 닫히는 문은 제 것이 아니었는데.
선생과 나는 동시에 나무 집을 만들어간다
니스칠 된 벽이나 바람이끼어들 수 없는 단단함을 떠올리며
코앞 사탕에 손을 뻗는다 사탕 껍질을 벗겨내 입안에 굴린다
- 함께 벽지를 발랐어요
이따금 거짓말이 필요하다
선생은 지금 나의 집을 짓고 있으니가
- 사탕이 더 달게 느껴지는 것 같아요
선생과 마주한다
서로의 집을 들여다볼 수 있을 것 같은 긴 시선
돌이켜보면 내가 말한 집이라는 건 어디선가 발견될 수도 있다
그때 나는 그 집이 나의 것이 아니라고 둘러대면 그만이지만
- 선생님, 그 집이 저의 집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 줄자로 잴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여기서부터 여기까지, 딱 이만큼이 너의 집이다......
사탕 껍질을 구기고 선생의 말을 기다린다
벽 너머 누군가 이곳에 들어왔다가 나가는 소리
- 그렇지만 모든 건 영원히 당신의 것이겠죠
나와 선생 사이 단단한 정적이 완성에 가까워지고. 노크 없는 문. 새것 같은 폐허에 깃드는 숨소리. 컴퓨터 작동. 선생 뒤에 여전히 깨긋한 유리와 어려운 형태의 오브제. 녹은 사탕이 혀 밑으로 미끄럽게 굴러가는데. 다시 선생과 눈을 마주한다. 등을 평평하게 편다.
# 2023년 문학동네 신인상 당선작
신춘문예 D-74.
요즘 시들이 좀 그렇죠? ㅎㅎ
신춘문예 특집이긴 해도 이제 주요 문예지 신인공모가 더 주목을 받는 시대인만큼 올해 문학동네 신인상으로 '등단'을 한 이정화의 작품을 한번 꺼냅니다.
예전부터 '당선작'의 조건, 즉 일정한 형태의 '공식'에 관한 의문과 논란들이 제법 많았지만 결국 그 근본에는 크게 두가지 정도의 <핵심>이 있었지 않나 싶습니다.
그 첫째는 다름아닌 '안정감'예요. 워낙 명멸하기 쉬운 문단 또 시단의 특성으로 인해 힘들여 뽑은 시인이 자칫 데뷔작을 마지막 작품으로 남긴 채 숱하게 사라져간 이력들이 많습니다 어떻게든 그 생명력을 우선시할 수밖에 없겠는데, 이는 출품한 작품들간의 고른 수준과 '정서'의 일관성에 큰 비중과 주안점을 두게 되겠죠.
아마도 둘째는 또 '시대정신'일 것 같아요. 신인다운 패기나 전혀 새로운 미학을 제시하려면 아무래도 '기시감'을 어떻든간에 극복해야만 할 문제가 있겠죠. 이는 과거의 숱한 시인들이 지문처럼 새겨놓은 각각의 문체와 시풍을 얼마나 닮지 않았느냐, 완전히 새로운 그 무엇이냐를 놓고 따진다는 얘기인데요... 올해 문학과사회 신인문학상 심사평에서 이제니 시인도 그 '억울함'에 대해 언급하기조차 했습니다. 좀 가혹할 수도 있다는 얘기죠. (왜냐하면 기성 시인들끼리도 분명히 일정한 '교집합'들은 존재해왔으니까요.)
자, 그렇다면 올해의 문학동네 신인상 당선작은 과연 어떻게 평가해볼 수 있을까요?
첫째, 일단은 시를 풀어내는 솜씨나 태도 등은 상당 부분 '안정적'인 편입니다. 당장 저부터도 그 큰 유혹을 쉽게 떨치기가 힘든, 실험정신에만 앞서 조악한 수준에 그치게 되는 경우를 이 시인은 철저히 배격해놓고 이야기를 풀어내는 역량을 보여주었다고 봅니다.
둘째, 그렇다면 '참신함'의 문제에서는요? 글쎄요... 입니다. 이미 여러 기성작품들에서 쉽게 보아온 표현방식, 아니 어쩌면 더 익숙해진 듯한 말투나 시어들의 사용법 등이 오히려 큰 '기시감'만을 느끼게도 만드는데...
그렇다면 문학동네 심사자들은 아마도 '시대정신' 즉 새로운 시단의 미래를 고민하기보다는, 좀 더 '안정감'을 갖고 이 척박하기 이를 데 없는 동토에서 당장의 현실부터 좀 어떻게든 우선 살아남고 보려는 취지로 해당 선정기준을 두었겠지 싶은 생각도 좀 드네요...
요즘 시단의 풍경을 엿볼만한 대목일 수도 있겠습니다.
남은 휴일도 즐겁게 보내시기 바랍니다.
2023년 9월 22일 (금)
[베껴쓰고 다시읽기] 시 같은 산문을 한편 더 읽다 (강은교, 우리가 물이 되어) :
우리가 물이 되어
우리가 물이 되어 만난다면
가문 어느 집에선들 좋아하지 않으랴.
우리가 키 큰 나무와 함께 서서
우르르 우르르 비 오는 소리로 흐른다면.
흐르고 흘러서 저물녘엔
저 혼자 깊어지는 강물에 누워
죽은 나무뿌리를 적시기도 한다면.
아아, 아직 처녀인
부끄러운 바다에 닿는다면.
그러나 지금 우리는
불로 만나려 한다.
벌써 숯이 된 뼈 하나가
세상에 불타는 것들을 쓰다듬고 있나니
만리 밖에서 기다리는 그대여
저 불 지난 뒤에
흐르는 물로 만나자.
푸시시 푸시시 불 꺼지는 소리로 말하면서
올 때는 인적 그친
넓고 깨끗한 하늘로 오라.
:: 산문 ::
새날이여, 이제 우리를 지난해의 무덤에 덮인 수많은 거짓과 거짓의 말들로부터 떠나게 하시고, 매일 밤의 허약한 꿈과도 이별하게 하십시오.
조금씩 더 깊이 썩게 하시고, 그러나 썩음으로써 제 정신을 아주 잃게 할 것이 아니라, 제 정신의 싸움의 본령을 재빨리 깨달아 알게 하시고, 운명의 때를 기다리는 인내를 주시고 그리하여 언제나 썩음의 즐거움, 시듦의 위대함에 경배하게 하십시오.
시간에 강한 자가 되게 하시고 길고 긴 복도에 끝없이 울리는 바흐의, 제목도 없는, 사랑의 노래처럼 시간에 끌려가는 자가 아니라 시간을 끌고 가는 자가 되게 하십시오.
조금씩 더 어리석어지게 하시고, 어리석음으로써 최후의 어리석음을 극복하게 하시고, 어리석음이 이 시대에선 오히려 칭찬받게 하십시오.
이 수많은 거짓말 속에서 단 하나의 참말이 있다면 그건 바보라는 말임을 믿게 하십시오.
아침엔 장님이, 대낮엔 귀머거리가, 저녁엔 절름발이가 됨으로써 스스로 자기의 허약함을 깨닫게 하십시오.
어울리지 않는 날개를 달고 자기를 잃어버린 시대에서 헤매는 인간들.
원컨대 우리에게서 이 미혹의 날개를 떼어 주시고, 자기에게도 돌아가게 하여 주십시오.
돌아간다는 일이 한 모금의 따스한 물처럼 사랑스럽게, 가볍게 하여 주십시오.
어디엔가 있을 우리 본디의 자리를 찾아 우리를 늘 시험하게 하십시오.
끝없이 시험하는 것만이 먹는 일보다 영원한 것임을 인정하게 하십시오.
죽은 아이들을 결코 잊지 말게 하십시오.
지난 여름 나는 한 아이를 만났습니다. 그때 거리는 열기와 먼지로 한없이 더럽고 말들은 공중에서 만나며 몸부림치며 얽히고, 사람들의 얼굴은 번들거려 차마 서로를 똑바로 쳐다보기 어려웠습니다.
도시 한복판, 모든 것이, 휴지 조각들조차도 분노에 찬 눈초리로 서로를 노려보고 있었습니다.
그 땀과 열기로 번쩍이는 거리 한복판에서 믿을 수 없이 튀어나오는 아이 하나를 만난 것입니다. 마치 어린 왕자처럼 당당하게, 그러나 하늘에서가 아니라 지하에서 그 아이는 불쏙 솟아 나왔습니다.
거의 벌거벗었고, 형편없이 가는 팔다리며 마른 엉덩이는 일부러 먹물이라도 칠한 듯 거뭇거렸지만, 그러나 그 눈은 결코 세 살짜리 아이의 눈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마흔 살의 교활함에 젖어 빛났습니다.
어느 주머니에선가 동전이 하나 떨어졌습니다.
그때 번개처럼 달려들어 동전을 집어 들고 수확의 기쁨으로 달아나던 그 눈, 세 살짜리의 그 슬픈 탐욕은 모든 늙은 탐욕들을 압도해버렸습니다.
모든 거짓이 거기 있었습니다.
우리가 잃어버린, 눈부신 아이가 거기 있었습니다. 나의 아이도 있었습니다. 백일도 못 되어 죽은 나의 아이, 그 전에 수없이 죽은 나의 동생, 언니......
아아, 언제나 새날엔 원컨대 자주 울게 ㅎ시고 눈물이 우리 살肉의 지붕에 넘치게 하십시오. 우리의 눈물이 이 땅의 곡식들을 기름지게 하도록, 우리의 눈물이 전쟁과 시기猜忌와 미움을 씻어 가도록.
우리의 눈물이 이 메마른 땅에 비를 채우고 바다를 살찌우도록.
결코 우렛소리를 잊지 마십시오. 어느 때 어느 곳에서나 기쁜 마음으로 우렛소리를 기다리게 하십시오.
당신의 우렛소리는 때로는 무참히 떨어지는 꽃잎으로, 또는 가을의 평화로눈 낙엽으로 오실 것입니다.
당신의 우렛소리는 박쥐들의 날개를 떨게 하시고, 마침내 무상無常으로 돌아가게 할 것입니다.
새날엔 언제나 시간이여, 모든 죽은 아이를 깨우시고, 착한 이의 잠에 축복을 내리시고, 탐욕엔 뇌출혈을 일으키게 하십시오.
거짓엔 무덤의 흙을 덮으시고, 단 하나의 우렛소리를 보내십시오.
# 강은교, 시·산문집 "꽃을 끌고" (열림원, 2022)
강은교 시집을 계속 읽고 있는 주말입니다.
오늘은 마치 주기도문처럼 유유히 흐르는 문장 하나를 함께 올려놓습니다.
무릇 시인은 산문 역시도 제법 잘 써야 할 일인가 봅니다.
즐거운 오후시간 되시기 바라며...
2023년 9월 27일 (수)
[베껴쓰고 다시읽기] 계절은 항상 바뀌게 마련이며, 그리움도 계속 희미해져만 가는 법입니다 (박준, 환절기) :
환절기
나는 통영에 가서야 뱃사람들은 바닷길을 앞이 아니라 배가 지나온 뒤의 광경을 기억한다는 사실, 그리고 당신의 무릎은 아주 차갑다는 사실을 새로 알게 되었다
비린 것을 먹지 못하는 당신 손을 잡고 시장을 세 바퀴나 돌다 보면 살 만해지는 삶을 견디지 못하는 내 습관이나 황도를 백도라고 말하는 당신의 착각도 조금 누그러들었다
우리는 매번 끝을 보고서야 서로의 편을 들어주었고 끝물 과일들은 가난을 위로하는 법을 알고 있었다 입술부터 팔꿈치까지 과즙을 뚝뚝 흘리며 물복숭아를 먹는 당신, 나는 그 축농(蓄膿) 같은 장면을 넘기면서 우리가 같이 보낸 절기들을 줄줄 외워보았다
# 박준,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 (문학동네, 2017)
추석 연휴가 곧 시작됩니다.
진은영 시인의 책을 한 권 계속 읽고 있습니다. "시시하다"는 여러 시편들에 대한 시인의 상념들을 소박히 담은 책자인데요, 오늘은 맨 처음에 실린 우리나라 시인인 박준의 '환절기'를 한 편 감상하도록 하겠습니다.
함께 시장을 거닐고 함께 물복숭아를 먹던 추억들이 몇 번의 계절들을 함께 했었는가는 그리 궁금하지 않지만, 인생이라는 큰 계절들 중 불과 몇일 뿐인 그 계절들을 추억하는 방식은 저마다 제각각일 것 같다는 생각은 좀 들었습니다.
며칠째 계속 내리기만 한 가을비도 이제 멎는 모양입니다. 이별은 늘 망각이라는 든든한 디딤돌 덕택으로 감당해낼 수 있는 몫인가도 모르겠습니다. 이별은 곧 새로운 만남의 시작을 의미할 테며, 또 누군가는 그 새로운 만남을 양식으로 해 허기진 옛 추억들을 극복하기도 할 테고요. 만남과 헤어짐에 그리 큰 의미를 두지 않게 된 건 그것들이 어차피 스쳐 지나갈 운명 뿐이라는 생각도 늘 갖고 있는 편이어서인 듯합니다. 대신에 우리는 항상 그 어떤 새로운 이름을 얻곤 합니다… 그만큼 나이도 많이 늙어가고 그만한 지혜도 함께 갖추는가는 계속 자문해볼 일입니다.
풍성한 한가위 되시기 바랍니다.
2023년 9월 30일 (토)
[베껴쓰고 다시읽기] 김명인 vs. 정호승, 1973년 신춘문예의 추억 (김명인, 출항제) :
추석 이후로 처음 아침인사를 드려요, 이제 벌써 올해 신춘문예는 "D-61" 즉 딱 두 달만이 남았습니다. 한햇동안 치열히 준비해온 습작들을 벼르고 또 마지막 퇴고를 시작할 즈음이기도 합니다.
한때는 '반시' 동인으로도 굵고 긴 나이테를 새긴 두 시인은 1973년의 한 신춘문예에서 본심의 경쟁상대로 맞붙었던 적이 있습니다. (물론 본심에서 겨룰만한 실력은 이미 출중한 두 수준인 까닭에 나머지 한 명 역시 다른 지면을 통해 등단을 하게 됐습니다. 참고로, 전 이 후자의 '서울의 예수'를 굉장히 좋아하던 한 팬이었고요.)
그 재미있는 일화를 담고 있는 당선작 한 편, 오늘의 첫 소개입니다.
출항제
- 김명인
겨울의 부두에서 떠난다.
오랜 정박의 닻을 올리고
순풍을 비는 출항제,
부두의 창고 어둑한 그늘에 묻혀 남몰래 우는
내 목숨같던 애인이여.
오오, 무수히 용서하라 울면서 지켜보는 시대여.
지난 봄 갈 할것없이 우리들은 성실했다.
어두운 밤길을 걸어
맨 몸으로 떠나는 날의 새벽,
눈 내리는 세계.
우리들의 항해일지 속 뜨거운 체험으로 끼워 넣으면
불손했고 쓰라렸던 사람을 덮는다.
감동도 없이 붙들어 지킬 신념도 없이
한 때 깊이 빠져가던 우리들의 탐닉,
일상의 식탁과 우울한 밤의 비비적거림이
한갖 구설의 불티처럼 꺼져가고 있다.
이제는 당당하게 떠나리라,
아, 실어 올린 전생애는 제 나이만큼 선창속에서 보채고
흰 가슴에 사나운 물빛을 겨들고
먼 바다로 달려가는 무서운 시간들.
내 의식의 깊이를 횡단해가는
알 수 없는 설레임도 들리고 있다.
차가운 눈발의 동행속에서
하얗게 서려오던 유년의 숲,
꺾어진 꽃대궁을 끌어안고
그 때 눈물로 다스리던 가슴이여.
북풍처럼 사납게 몰려와서
목숨의 한 끝을 쪼아대는 이웃의 이목속에서 피흘리고
문득 생사의 늪에 앙상한 채 버려지던 지난 날,
마지막 한 방울의
숨어 있던 야성의 피가 깡깡 굳은 풍토병을 적시고
한 세대의 사슬을 의롭게 풀어내던 것을,
질기고 칙칙한 동면을 몰아세우고
우리들은 깊이 잠든 식솔들을 마저 깨웠다.
불면으로 지새우며 밤새껏 항해도를 뒤적이며
아, 버려진 모든 목소리를 새롭게 걸러내며
내 울음이 시대의 물목을 지켜서고.
이윽고 여명속에 떨어지는 아득한 별빛,
우리들은 마침내 물빛 푸른 어장을 찾아내었다.
풀려나는 긴장으로 또한번 감기는 눈꺼풀 속을
파고드는 새벽잠을 털어내고
성실한 두 팔로 기어오르는 불안을 뿌리칠 때,
우리들은 순수한 믿음의 항해 속
차고 맑은 파도처럼 떠도는 저 보이지 않는 역사의
새로운 부활을 감시한다.
끈끈한 적의를 안개처럼 피워올리며
난파의 갯벌을 휩쓸며 바람은
한 때 우리들이 열던 출항의 부두로 내리 몰지만
허나, 굳센 믿음의 밧줄을 이어 잡으며
목숨의 한 끝을 건져내는 강인한 힘,
우리들은 불의 힘에 온 몸을 태운다.
아직도 몰아치는 눈보라에 하염없이 쓰러지며
이마 위에 솟는 피만큼 검붉게
흉중을 헹궈내는 식솔이여,
이제는 내 돗폭의 그늘에 마저 숨어라.
신선한 믿음도 밑바닥이 보이잖게
금린 밝게 떠도는 물빛, 아침의
아아, 무한한 폐활량.
우리들은 태어나지 않은 역사의 새로운 잉태속으로 떠난다.
온 핏속에 또다시 떠도는 체험의
오오, 무수히 용서하라, 울면서 지켜보는 시대여.
비로소 우리는 오랜 정박의 닻을 올리고
순풍을 비는 출항제,
겨울의 부두에서 떠나고 있다.
# 1973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당선작
2023년 10월 1일 (일)
[베껴쓰고 다시읽기] 십년전의 당선작을 꺼내며 (이병국, 가난한 오늘) :
"통념을 깨는 상징을 찾아라, 감각의 명증성을 보여라, 생명의 도약에 공감하라, 세계의 찰나를 경이로써 보여주라." (심사평 중에서, 장석주/장석남)
벌써 10년전입니다. 동아일보 신춘문예 심사평은 현대시가 갖추어야 할 덕목들을 아주 간명히 드러냅니다.
또 이들 각각은 올해 또 앞으로의 신춘문예 역시 이 '그라운드 룰'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을 것임도 함께 시사하는 대목이겠습니다.
과거와의 결별과 극복, 새로운 단어를 정의하는 인식, 미래를 향한 포부와 전망, 디테일에 능통한 작법의 수려한 정도 등은 아마도 평생을 갈고 닦아야 하는 모든 시인들의 숙명이자 숙제가 아닐까도 싶습니다...
이제 불과 두 달만을 남겨놓은 올해 신춘문예입니다.
연휴를 끝으로 해 다시금 정진과 건필을 당부드릴 시간이기도 해서, 십년전의 일기 대신에 그 당선작을 꺼내놓습니다. ;
가난한 오늘
- 이병국
검지손가락 첫마디가 잘려나갔지만 아프진 않았다. 다만 그곳에서 자란 꽃나무가 무거워 허리를 펼 수 없었다. 사방에 흩어 놓은 햇볕에 머리가 헐었다. 바랜 눈으로 바라보는 앞은 여전히 형태를 지니지 못했다.
발등 위로 그들의 그림자가 지나간다. 망막에 맺힌 먼 길로 뒷모습이 아른거린다. 나는 허리를 펴지 못한다. 두 다리는 여백이 힘겹다.
연필로 그린 햇볕이 달력 같은 얼굴로 피어 있다. 뒤통수는 아무 말도 없었지만 양손 가득 길을 쥔 네가 흩날린다. 뒷걸음치는 그림자가 꽃나무를 삼킨다. 배는 고프지 않았다.
꽃이 떨어진다.
# 2013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당선작
2023년 10월 2일 (월)
[베껴쓰고 다시읽기] 1994년의 '풍경'과 2023년의 '풍경' 사이 (심보선, 필요한 것들) :
다들 꿈을 찾는 시간에 홀로 현실만을 버티며 헤맨다는 일은 때때로 좀 곤혹스러운 일입니다.
조용한 독서와 글쓰기가 제격이긴 해도, 구태여 전할 마음이 생기면 편지를 써보곤 하지만 이내 몇 시간째를 허비할 그 일들도 까마득한 꿈속을 헤매는 상대방한테는 그저 남 같은 얘기일 뿐, 동시간대를 함께 걷는 일보다는 훨씬 더 고독할 법한 까닭이기에 그렇습니다.
며칠전에 역대 신춘문예 당선작들을 보면서 대뜸 송기원의 '회복기의 노래'를 다시 한 소절 읊을까도 생각했지만, 여름밤이 아닌 계절에는 이 역시 중언부언이길 반복해 아예 그만두기로 합니다. (이미 몇차례에 걸쳐 소개를 한 적도 있겠고)
대신에 오늘 새벽에 띄워보는 노래는 심보선 시인입니다. 1994년 조선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한 올해 53세의 이 시인도 사회학도 출신인 데다가 이미 어엿한 대학교수가 된 시대입니다.
"오후의 정적은 작업복 주머니 모양 깊고 허름하다" "마주보고 있는 불빛들은 어떤 악의도 서로 품지 않는다" "기다림의 부피란 언제나 일정하다" 등과 같은 싯구들을 남긴 그의 데뷔작 '풍경'은 중국 말로 바람과 볕/빛을 뜻합니다. 즉, 마음에 비치는 것들과 눈에 비치는 것들을 함께 일컫는 말이겠죠...
올해 가을이 미래조차 불투명한 모든 문학도들한테도 한줄기 바람의 빛, 눈에 맺힌 한줄기 이슬처럼 무언가를 던져줄 수 있을만한 불꽃 혹은 가볍고도 편안할만큼 자연스러운 나뭇잎들의 몸짓을 닮아가게 된다면 참 좋겠습니다.
필요한 것들
- 심보선
나에게는 6일이 필요하다
안식일을 제외한 나머지 나날이 필요하다
물론 너의 손이 필요하다
너의 손바닥은 신비의 작은 놀이터이니까
미래의 조각난 부분을 채워 넣을
머나먼 거리가 필요하다
네가 하나의 점이 됐을 때 비로소
우리는 단 한 발짝 떨어진 셈이니까
수수께끼로 남은 과거가 필요하다
만약 그래야만 한다면
모든 것이 이해되는
단 한 순간이 필요하다
그 한 순간 드넓은 허무와 접한
생각의 기나긴 연안이 필요하다
말들은 우리에게서 달아났다
입맞춤에는 깊은 침묵을
웅덩이에는 짙은 어둠을
남겨둔 채
더 이상 말벗이기를 그친 우리......
간혹 오후는 호우를 뿌렸다
어느 것은 젖었고 어느 것은 죽었고
어느 것은 살았다
그 어느 것도 아니었던 우리......
항상 나중에 오는 발걸음들이 필요하다
오직 나중에 오는 발걸음만이 필요하다
바로 그것, 그것인, 아닌,
아무것도 아닌, 아무것인,
모든 것이.......
# 눈앞에 없는 사람 (문지, 2014)
2023년 10월 3일 (화)
[베껴쓰고 다시읽기] '신서정'을 다루기 위한 몇 가지 교범에 관한 생각들 (이진우, 멜로 영화) :
"범속한 생활 감정을 의미가 분광하는 이미지로 빚어낼 뿐 아니라, 자연스러운 언어 감각과 섬세한 느낌의 표현은 시의 풍부화를 이루는 데 보탬이 되었다. 숙고와 머뭇거림에서 길어낸 사유를 자기의 리듬에 실어 전달하는 능력, 능숙한 악기 연주자가 악기를 다루듯이 시를 연주할 줄 안다는 것은 분명 귀한 재능이다. 이 응모자가 첫 시집을 낸다면 서점에서 누구보다 먼저 시집을 구입해 읽고 싶다는 게 우리 속마음이다." (심사평 중에서)
개천절입니다. 올해 신춘문예 중 보기 드문 찬사를 얻은 바 있는 이진우의 '멜로 영화'를 다시 끄집어낸 건 순전히 미래의 화두, 즉 '신서정'에 얽힌 요즘의 제 생각들 탓인 듯합니다. 읽기 쉽고 편하게 써야 한다, 이미지의 입체감을 살리되 기시감을 최대한 줄이고 새로운 심상을 개척해야 한다, 시대의 산물임을 잊지 않고 사회의 목소리를 대변할 줄 알아야 한다, 울림과 떨림의 시간적 효용에 관한 이해를 바탕으로 한 사유의 깊이를 저울질할 줄 알아야 한다, 등등...
추석연휴의 마지막 날 아침이기도 해요.
남은 하루도 잘 마무리하시고, 다가오는 시월 첫주를 차분히 준비하여야 할 차례입니다.
오늘도 즐거운 하루 되십시오. ;
멜로 영화
- 이진우
서른다섯 번을 울었던 남자가 다시 울기 시작했을 때 문득 궁금해집니다
사람이 슬퍼지려면 얼마나 많은 복선이 필요한지
관계에도 인과관계가 필요할까요
어쩐지 불길했던 장면들을 세어보는데
처음엔 한 개였다가 다음엔 스물한 개였다가
그다음엔 일 초에 스물네 개였다가 나중엔 한 개도 없다가
셀 때마다 달라지는 숫자들이 지겨워진 나는
불이 켜지기도 전에 서둘러 남자의 슬픔을 포기해버립니다
이런 영화는 너무 뻔하니까
안 봐도 다 아는 이야기니까
이 사이에 낀 팝콘이 죄책감처럼 눅눅합니다
극장을 빠져나와 남은 팝콘을 쏟아 버리는데
이런 영화는 너무 뻔하다고
안 봐도 다 아는 이야기라고
누군가 중얼거립니다
이런 얘기들은 등뒤에서 들려오곤 하죠
이런 이야기들의 배후엔 본 적도 없는 관객을 다 아는 세력이 있죠
문득 다시 궁금해집니다
뻔한 것들엔 아무 이유도 없는지
안 봐도 안다는 말에 미안함은 없는지
우리의 관계는 상영시간이 지난 티켓 한 장일 뿐이므로
텅 빈 극장엔 불행과 무관한 새떼들이 날아다니고 있을테지만
그것들은 다른 시간대로 날아가지 못합니다
가끔 이유 없이 슬픈 꿈을 꾸기도 합니다 사랑하고 있을 때도 그랬습니다
# 2023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당선작
2023년 10월 4일 (수)
[베껴쓰고 다시읽기] 신춘문예 '탈락'의 지름길이 된 '낭만'은 무죄다 (박정대, 시) :
때때금 '등단'의 경로에 관해 질문을 받을 때가 종종 생깁니다. 글쎄요... 이미 등단한 시인들은 무슨 말을 어떻게 하는지 잘 모르겠습니다만, 일정한 형태의 '패턴'이 존재해왔음은 역대 당선작들을 봐도 어렵지 않게 유추가 가능해질 것 같아요. 대표적인 게 오늘의 화두, 즉 '낭만'입니다.
한때는 가장 '낭만파'에 속한다고도 생각해온 박정대 시인은 아시다시피 신춘문예에서 당선된 적이 없었죠. 아마도 그의 화풍이 '미래파' 일색이었던 현 시단과는 그리 잘 어울리지 못하였던 까닭일 것 같습니다. (이럴 때면 우리는 다시 또 각종 문예지들을 떠올리곤 합니다.)
개인적으로는, 오히려 더 공산품마냥 획일화된 전국단위 공모전들의 '패턴'을 슬쩍 비켜서 한층 더 '개성'을 드러낼만한 신작들도 좀 더 자주 나왔으면 제법 풍성해지진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 이 정도의 고민은 이제 신춘문예가 아닌 역대 각종 문학상 수상작들을 보면 훨씬 더 뚜렷해집니다. 한 시대를 풍미하며 호령해온 듯한 박준이나 황인찬도 이제니도 안희연도 아직 수상을 못한 국내 최대 상금규모라는 대산문학상의 역대 수상자 목록에는 바로 박정대 시인이 당당히 이름을 올렸으니까요.
날씨가 꽤 차갑습니다. 시월의 첫 일과가 시작될 오늘, 기운차게 보내시기 바랍니다. ;
시
- 박정대
미스터 션샤인의 말투로 말하겠소
키치라 해도 좋소
무더운 여름밤을 건너가기엔 그 말투가 좋았던 것이오
자정이 넘은 코케인 창가에서 홀로 술을 마시며 바라보는 적막한 거리 풍경이 좋았던 것이오
햇빛 씨의 열기가 대낮의 조국을 뜨겁게 달구고 그 열기는 밤이 되어서도 식지 않았소
111년 만에 찾아온 최악의 폭염이라 했소
폭탄을 맞은 폐허의 도시처럼 허공에 떠도는 풍문은 흉흉했소
어디를 가도 숨이 가빠오는 숨 막힐듯 뜨거운 열기의 나날이었소
111년 전이면 1907년인데 나의 말투는 1907년의 고독 씨처럼 어느덧 그 시절을 흉내 내고 있었던 것이오
러브가 무엇이오 나는 모르오
시는 또 무엇이오 나는 모르오
조국이 이토록 뜨거운데 내가 어찌 조국보다 더 뜨거운 시를 쓸 수 있겠소
밤이면 코케인에서 술을 마셨소
창가에 앉아 혼자 술을 마시는 게 나는 좋았소
그렇게 여름을 지날 수만 있다면
말투야 어떻든 괜찮았던 거요
술을 한잔 마시고 돌아오는 새벽이면 생각했던 거요
나는 줄곧 적막한 새벽의 길을 걸어
거대한 고독의 시간을 횡단하고 있었다는 것을
꿈꾸는 자들은 언제나 대낮과 제국의 반대편이었고
오롯이 자기 꿈 동지였다는 것을 말이오
검은 말 한 마리 웅크리고 있는 밤이었소
여전히 깊고 어두운 검은 밤이오
*
춤이 없는 혁명은 일으킬 가치가 없는 혁명이오―브이 포 벤데타
미스터 션사인이라 했소 누가 햇빛 씨인지 나도 모르오
한낱 주말 밤에 방송되는 드라마라기엔 대사들이 깊었소
몇몇 깊은 대사를 이곳에 옮길 의도는 없소
다만 그 말투가 투박하고 좋았던 것이오 물론 그게 다였겠지만 말이오
퐁피두센터가 생기기 전 파리의 건물 고도제한은 25미터였소
먼 이국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보다가 문득 시를 쓰고 싶다는 생각을 했소
가난한 예술가들이 모여 살던 파리의 목조 건물 세탁선에 관한 기록을 보았소
그런 여름밤엔 밤새 시를 쓰고 싶었는데 밤에도 열대야는 계속되고 시는 써지지 않았소
조국이 이렇게 뜨거운데 내가 어찌 조국보다 더 뜨거운 시를 쓸 수 있겠소
그리고 슬픔이 시작되었소 몇 날 며칠 폭염과 염천의 하늘이 이어졌소
말을 타고 떠났는지 기차였는지 배를 타고 떠났는지 나는 모르오
어느 날 아침 뉴스를 보다가 그가 떠났다는 사실을 알았소
그것은 비보였소 살아생전 한 번도 만난 적도없는 자의 죽음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자의 죽음이 이토록 사람을 황망하고 슬프게 만든다는 사실에 전율했소
아무것도 할 수 없었소 며칠 동안 술만 마셨소
나의 고독은 나의 침묵은 나의 음주는 아무것도 구할 수 없었소
그래서 고독했고 그래서 침묵했고 그래서 음주만 했던 것이오
나에겐 불의에 대항할 총이 없었고 허무에 맞설 사랑이 없었고 열대야를 재빠르게 건너갈 서늘한 신념조차 없었던 게요
귀하를 러브하오 그런데 러브는 과연 무엇이오
도대체 이 뜨거운 열기는 어디로부터 오는 것이오
귀하는 또 어디에서 이 뜨거운 밤을 혼자 건너가고 있는 것이오
밤하늘에 보이는 건 그저 깊고 깊은 구름뿐이오
태양탐사선 유진파커호를 보냈다하오
살아남은 자의 슬픔이 서로 연대하는려는 지상의 밤이오
연락하오 귀하는 누구요 안녕
깊은 밤하늘에 그가 있소
* 불란서 고아의 지도 (현대문학, 2019)
2023년 10월 5일 (목)
[베껴쓰고 다시읽기] 슬픔과 죽음에 관한 예술, 극복하기 위한 나날들 (황지우, 뼈아픈 후회) :
시월, 사월만큼 잔인한 하늘이 드높게 펼쳐진 하루는 슬픔 가득한 나날들의 시작을 알릴 뿐입니다. 슬픔이란 감정은 때때금 잊혀질 법하면 다시 찾아오곤 한 익숙함이기에 이토록 담담한 채 받아들일만도 해서 그리 대수롭지 않은 일이기도 합니다.
예전에 영화 "세상의 모든 아침"을 보면서 '슬픔과 죽음에 관한 예술'을 무척 오랫동안이나 생각해본 적이 있습니다. 과연 예술의 정수가 슬픔과 죽음 뿐이라면, 세상의 모든 예술가들은 한없이 불행하고 어둡기만 한 삶의 단면 그 자체일 뿐이겠습니다.
과연 그럴까? 아니면 안 될까? 하는 회의감에 젖은 채 보낸 세월들도 무상히 무덤덤히 스쳐 지나갈 뿐인 나날들일 것 같습니다.
사월을 잔인한다고 말한 Eliot가 쓴 '전통과 개인적 재능 Tradition and Individual Talent'라는 글을 읽던 시절이 벌써 수십 년도 더 된 아주 오랜 옛날 일임을 새삼 깨닫습니다. 인생의 어느 한 토막은 반드시 행복할 것이라 믿어온 시절들이기도 했어서 오늘은 유난히 그 청춘의 희망들이 그립기만 합니다.
눈부시게 맑기만 해서 눈물이 날 것만 같은 하늘, 눈부시게 그리운 사람들을 추억하면서 가슴 벅찬 회한에 잠길만도 한 하루입니다. 오늘은 황지우의 예전 소월시문학상 수상작인 '뼈아픈 후회'를 또 꺼내 읽습니다. 드라마 '그들이 사는 세상'에서도 나온, 더 지난 날에는 사회주의의 몰락 이후 처음 접하게 된 그의 복귀작이요 소월시문학상이라는 '그랜드슬램'의 주인공이 되기도 한 작품이었죠... 그때 그 시절을 추억하면서 다시 맞는 시월이기도 합니다.
오늘도 의미있고 소중한 하루 되시기 바랍니다. ;
뼈아픈 후회
슬프다
내가 사랑했던 자리마다
모두 폐허다
나에게 왔던 모든 사람들,
어딘가 몇 군데는 부서진 채
모두 떠났다
내 가슴속엔 언제나 부우옇게
바람에 의해 이동하는 사막이 있고;
뿌리 드러내고 쓰러져 있는 갈퀴나무, 그리고
말라 가는 죽은 짐승 귀에 모래 서걱거리는
어떤 연애로도 어떤 광기로도
이 무시무시한 곳에까지 함께 들어오지는
못했다, 내 꿈틀거리는 사막이, 그 고열(高熱)의
에고가 벌겋게 달아올라 신음했으므로
내 사랑의 자리는 모두 폐허가 되어 있다
아무도 사랑해 본 적이 없다는 거;
언제 다시 올지 모를 이 세상을 지나가면서
내 뼈아픈 후회는 바로 그거다;
그 누구를 위해 그 누구를 사랑하지 않았다는 거
젊은 시절, 도덕적 경쟁심에서
내가 자청(自請)한 고난도 그 누구를 위한 헌신은 아녔다
나를 위한 헌신, 나를 위한 나의 희생, 나의 자기 부정;
그러므로 나는 아무도 사랑하지 않았다
그 누구도 걸어 들어온 적 없는 나의 폐허
다만 죽은 짐승 귀에 모래알을 넣어 주는 바람뿐
* 1994년 소월시문학상 수상작
2023년 10월 6일 (금)
[베껴쓰고 다시읽기] '차이'와 '다름'에 관한 존중의 방식 (유수연, 애인) :
"오늘날 한국 시의 큰 병폐 중 하나로 소통의 결핍과 부재를 들 수 있다. 시를 쓴 사람과 시를 읽는 사람이 서로 소통되지 않는 원인은 무엇일까. 그것은 현실적 삶과 동떨어진 비구체성, 환상과 몽상의 방법으로 인간의 고통을 이해하고 해결하려는 언어적 태도, 개인의 자폐적 내면세계에 대한 지나친 산문적 천착 등으로 규정할 수 있다. 따라서 가능한 한 이러한 시들을 제외하고 시적 형성력의 구체성이 높은 작품을 우선하기로 먼저 논의했다. (중략)
'애인'은 시대적 삶의 투시력이 엿보이는 시다. 오늘의 정치 현실을 통해 무엇이 우리 삶의 진실인가 질문을 던지는 시다. 그러나 단순히 정치 현실을 바탕으로 세태를 풍자한 시라기보다는 인간관계로 이루어지는 총체적인 삶의 진실을 추구한 시다. 여와 야, 적과 동지, 승자와 패자로 나뉘어 서로 적대하는 관계가 오늘의 정치 현실적 관계라면, 이 시는 "나는 나를 견디고 너는 너를 견딘다"와 "더는 넘길 게 없는 달력을 바라보며 너는 평화, 말하고 나는 자유, 말한다"에서 알 수 있듯 인내를 통한 평화와 자유의 관계가 현실적 삶의 진정한 원동력임을 이야기하고 있다. "애인은 여당을 찍고 왔고 나는 야당을 찍었다"에서도 갈등과 분열의 모습을 드러내는 듯하지만 실은 그 가치의 공존성을 역설적으로 드러낸다. 오늘 우리의 삶을 애인 관계의 공생성에서 찾아내 부정을 긍정으로 전환하는 데에 성공한 이 시를 통해 내일 우리의 삶은 분명 사랑과 희망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심사평 중에서)
정호승 시인과 문정희 시인이 함께 심사한 지난 2017년의 조선일보 신춘문예에서 두드러진 면모는 '차이'와 '다름'을 해석하는 태도와 이들을 존중하는 방식에 관한 문제가 아닐까 합니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매번 부닥치는 문제들 중 'different'와 'incorrect'를 헷갈리는 경우를 종종 목격하곤 해도, 저마다 각자 살아온 배경과 느낌과 정보들이 판이한 까닭에 어쩌면 너무 당연한기만 한 얘기일 수도 있겠어서요. 심지어 "부부는 일심동체"라 해도 결국 타인에 불과한 이와 함께 거처를 공유하고 운명공동체가 되는 현실을 깊게 숙고해볼 필요가 있겠다는 생각입니다.
시인들이 점점 더 어렵게 시를 쓰기만 하는 시대, 독자들은 점점 더 시를 읽는 시간을 줄여가고만 있는 이 시대는 서로에 대한 이해도 배려도 없이 막판까지 치닫는 폭주를 몇해째 계속하는 중입니다. 이게 곧 대한민국 시단의 현실이요, 그 어떤 대대적인 모멘텀 없이는 쉽게 그 궤도를 변경할 가능성도 희박해 보입니다만... 그래도 누군가는 시를 계속 쓰겠고 그걸로써 독자들한테 무언가 절실히 하고픈 이야기가 있을 테며, 또 어떤 이는 시린 가슴과 외로운 역경을 단 한 줄의 문장으로도 달랠 마음을 갖고 어떻게든 또 다시 시집을 찾곤 합니다.
그 희박한 가능성에 기댄 채 평생을 시쓰기에 몸바치기로 한 사람들은 충분히 인식하여야 할 문제이기도 하겠고요...
어제의 한 편지에서도 제가 그런 말을 누군가한테 건넨 적이 있습니다. "비록 동의는 아니더라도 존중하여야 할 부분"이라는 말, 언제나 내가 옳다는 오만과 편견이야말로 아집이자 독선에 불과할 뿐이니까요... 타인과 함께 세상을 살아가는 방식으로 가장 필요한 덕목은 어쩌면 '인간에 대한 예의'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걸 또 배워야 할 시절입니다. 당선작이 선보인 이 낯선 행갈이와 연갈이도 한번쯤은 저 역시 검토해볼만한 일이겠군요.
오늘도 좋은 아침입니다. 날씨는 매우 쌀쌀해졌습니다. ;
애인
- 유수연
애인은 여당을 찍고 왔고 나는 야당을 찍었다
서로의 이해는 아귀가 맞지 않았으므로 나는 왼손으로 문을 열고 너는 오른손으로 문을 닫는다
손을 잡으면 옮겨오는 불편을 참으며 나는 등을 돌리고 자고 너는 벽을 보며 자기를 원했다
악몽을 꾸다 침대에서 깨어나면 나는 생각한다
나를 바라보고 있는 애인을 바라보며 우리의 꿈이 다르다는 것을
나는 수많은 악몽 중 하나였지만 금방 잊혀졌다
벽마다 액자가 걸렸던 흔적들이 피부병처럼 번진다 벽마다 뽑지 않은 굽은 못들이 벽을 견디고 있다
더는 넘길 게 없는 달력을 바라보며 너는 평화, 말하고 나는 자유, 말한다
우리의 입에는 답이 없다 우리는 안과 밖
벽을 넘어 다를 게 없었다
나는 나를 견디고 너는 너를 견딘다
어둠과 한낮 속에서 침대에 누워있었다 티브이를 끄지 않았으므로 뉴스가 나오고 있다
* 2017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당선작
2023년 10월 7일 (토)
[베껴쓰고 다시읽기] '90년대식 '신서정'이 아직껏 살아남는 이유 (박형준, 가구의 힘) :
신춘문예, D-54.
1990년대 신춘문예 당선자 출신들 중 이후의 작품성과 활동성 등을 따져 문단 내에서 가장 높은 평가를 얻은 시인은 다름아닌 박형준 시인이었습니다. (예전에 그를 '형상화의 달인'이라로 소개했던 제 글도 있는데, 인용을 했던 시인의 말을 다시 빌리자면 "소외와 결핍을 통해 시를 쓰고, 슬픔을 의지로 전환해서, 또 그것을 딛고 일어서는 벌판을 만들겠다"던 담화도 여전히 유의미한 지침이라고 개인적으로는 생각하는 편입니다.)
대표작에 해당될만한 첫 시집인 "나는 이제 소멸에 대해서 이야기하련다"와 얼마전에 창비에서 나온 "줄무늬를 슬퍼하는 기린처럼"에 실렸던 몇몇 수작들을 또 꺼낼 법도 한데, 어느덧 올해 신춘문예도 이제 불과 두어달 남짓밖에 안 남은 시기인 까닭에 오늘은 그의 데뷔작이요 등단작인 1991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당선작 한 편을 올려놓습니다.
편안한 주말 저녁시간 되시기 바랍니다. (세계불꽃축제 카운트다운이 방금 막 끝난 시각에) ;
가구의 힘
- 박형준
얼마 전에 졸부가 된 사람이 있다
그 사람은 나의 외삼촌이다
나는 그 집에 여러 번 초대받았지만
그때마다 이유를 만들어 한번도 가지 않았다
어머니는 방마다 사각 브라운관 TV들이 한 대씩 놓여있는 것이
여간 부러운 게 아닌지 다녀오신 얘기를 하며
시장에서 사온 고구마 순을 뚝뚝 끊어 벗겨내실 때마다
무능한 나의 살갗도 아팠지만
나는 그 집이 뭐 여관인가
빈방에도 TV가 있게 하고 한마디 해주었다
책장에 세계문학전집이나 한국문학대계라든가
니체와 왕비열전이 함께 금박에 눌려 숨도 쉬지 못할 그 집을 생각하며,
나는 비좁은 집의 방문을 닫으며 돌아섰다
가구란 그런 것이 아니지
서랍을 열 때마다 몹쓸 기억이건 좋았던 시절들이
하얀 벌레가 기어 나오는 오래된 책처럼 펼칠 때마다
항상 떠올라야 하거든
나는 여러 번 이사를 갔었지만
그때마다 장롱에 생채기가 새로 하나씩은 앉아 있는 것을 보았다
그 집의 기억을 그 생채기가 끌고 왔던 것이다
새로 산 가구는
사랑하는 사람의 눈빛이 달라졌다는 것만 봐도
금방 초라해지는 여자처럼 사람의 손길에 민감하게 반응하지만,
먼지 가득 뒤집어쓴 다리 부러진 가구가
고물이 된 금성라디오를 잘못 틀었다가
우연히 맑은 소리를 만났을 때만큼이나
상심한 가슴을 덥힐 때가 있는 법이다
가구란 추억의 힘이기 때문이다
세월에 닦여 그 집에 길들기 때문이다
전통이란 것도 그런 맥락에서 이해할 것----
하고 졸부의 집에서 출발한 생각이 여기에서 막혔을 때
어머니가 밥 먹고 자야지 하는 음성이 좀 누그러져 들려왔다.
너무 조용해서 상심한 나머지 내가 잠든 걸로 오해 하셨나
나는 갑자기 억지로라도 생각을 막바지로 몰고 싶어져서
어머니의 오해를 따뜻한 이해로 받아들이며
깨우러 올 때까지 서글픈 가구론을 펼쳤다.
* 1991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작
2023년 10월 8일 (일)
[베껴쓰고 다시읽기] ‘수줍음’의 정서에 관하여 (박준, '마음, 고개') :
신춘문예, D-53.
(이하 인용) 대학교 1학년 때 습작을 시작했다. 6년 동안 1천 편 가까이 쓰면서 신춘문예와 문예지를 가리지 않고 줄기차게 문을 두드렸다. 대부분 최종심에도 오르지 못했다. 100여 차례 고배를 연거푸 마셨다. 당시 상황을 그는 “지배적인 감정은 분노였고 골방에 앉아 혼자서 독재를 했던 것”이라고 표현했다. “그렇게 3년쯤 지나자 다행히도 몸의 반절에서 ‘너는 못 써’라고 말하는 냉혹한 평론가가 생겼어요. 나머지 몸의 절반은 ‘와, 어떻게 이렇게 멋있는 시를 쓰지’라고 여전히 칭찬했고요. 창작자에게는 ‘자아존중감’과 ‘냉철한 자기비평’이 정확히 ‘50 대 50’으로 있어야 하는 듯해요.” ‘자아존중 100% 독재자 습작생’에서 ‘균형감각 있는 시인’으로 알을 깨고 나오는 “억겁의 과정”을 헤쳐나온 것이다.
그 진통을 견뎌가면서도 왜 시를 붙들고 있었을까. “시가 좋아서 썼어요. 무인도에 혼자 남아도 시를 쓸 것 같아요.” 그는 단순명쾌하게 답했다. “좋은 시를 한 편 쓰고 나면 엄청 행복하거든요.” ‘좋은 시’는 어떤 시일까. “문학적으로 합의한 좋은 시라는 건 미학적이고 새롭고 객관적이면 좋다고 얘기해요. 그런데 제가 얘기하는 좋은 시는 ‘가장 최근에 쓴 시’예요. 왜냐면 내가 좋다고 생각하지 않으면 시를 끝내지 못하니까요. 부족한 점을 짚고, 퇴고하고, 이런 과정을 뚫고 나와 발표해도 좋은 시라고 저 자신과 합의할 수 있는 수준에 가닿으면 ‘좋다’고 얘기할 수 있어요. 그걸 완성했을 때 ‘행복하다’고 하는 거죠.” (인용 끝)
당대의 원톱이라 할만한 박준 시인의 인터뷰입니다. 백 번이 넘는 낙방을 거듭하면서도 끝끝내 놓지 않았다는 그의 시작활동은 많은 문학도들한텐 큰 귀감이자 선례가 될 것 같아 따로 옮겨놓습니다.
때때금 ‘수줍다’는 말을 생각해보기도 합니다. 무언가 제대로 인정받지 못할 것 같은 두려움과 그 반대편의 풋풋한 희망 따위, 그래도 여전히 제 방향을 잃지 않으려는 간절함과 스스로를 믿는 넉넉하기만 한 담담함 등이 한데 엉킨 듯한 표정과 옷매무새와 몸짓들을 우리는 그렇게 부르기로 합니다. 모든 문청들이 신춘문예의 문턱에서 마지막으로 퇴고를 한 습작들을 봉투에 넣고 주소를 네임펜으로 꾹꾹 눌러 적으며 우체국 안에서 서성거릴 때의 풍경 또한 마찬가지였으리라 짐작합니다.
그래서 그 ‘수줍음’은 한탄과 울음섞인 절망의 처음이요, 여전한 아름다움의 일부로도 존재하는 법이란 걸 배웠던 시절이 있습니다.
깊고 고요한 새벽, 오늘 배우는 문장 속에서 그 ‘수줍음’을 다시 한 번 꺼내서 읽어봅니다.
편안한 휴일입니다. 행복하셨으면 좋겠습니다. ;
마음, 고개
당신 아버지의 젊은 날 모습이
지금의 나와 꼭 닮았다는 말을 들었다
잔돌을 발로 차거나
비자나무 열매를 주워 들며
답을 미루어도 숲길은 좀처럼 끝나지 않았다
나는 한참 먼 이야기
이를테면 수년에 한 번씩
미라가 되어가는 이의 시체를
관에서 꺼내 새 옷을 갈아입힌다는
어느 해안가 마을 사람들을 말하려다 그만두었다
서늘한 바람이
무안해진 우리 곁으로 들었다 돌아 나갔다
어깨에 두르고 있던 옷을
툭툭 털어 입으며 당신을 보았고
그제야 당신도
내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사람으로 맞이하지 않아도
좋았을 날들이 이어지고 있었다
* 우리가 함께 장마를 볼 수도 있겠습니다 (문지, 2018)
2023년 10월 9일 (월)
[베껴쓰고 다시읽기] 문예지들이 더 강세? 그렇다면, 신춘문예의 향후 해법과 전망은? (이제니, 페루) :
신춘문예, D-52.
현 주류 (소위 ‘메이저’ 시집들을 출간하고 있으며, 각종 공모전 심사 및 주요대학 강단에 서있는 이들) 중에서 어쩌면 유일한 신춘문예 출신은 이제니 시인일 것 같군요… 박준, 황인찬, 안희연, 오은 등등이 모두 신춘문예를 아예 거치지 않고 각기 다른 문예지들을 통해 등단했었기 때문인데, 확연히 달라진 시단의 풍경을 대변하기도 하는 대목예요.
따라서 이는 향후 주요 신춘문예 심사를 여전한 관록에 기댄 채 안도현, 문태준, 송경동 등이 맡겠느냐 아니면 다른 문예지들처럼 ‘미래파’ 성격에 훨씬 더 우호적인 이들이 도맡느냐에 따라 그 당선작의 향배도 크게 엇갈릴 수 있을만한 부분이기에 따로 언급해두려는 거고요. (올 한햇동안 문학과사회, 현대문학, 창비 등에서의 주요 심사경위들을 살펴보면 분명히 막연한 “잘쓰면 그만”이라는 지침과도 같을 표현이 갖는 상대적 굴곡에 대해서도 시사점과 고민거리를 함께 제공해준다고 봅니다. 단적으로 말해, 어떤 문예지에선 극찬과 당선을 갖는 작품도 어떤 문예지에선 아예 본심조차 오르지 못할 수 있는 경우들이거든요.)
신춘문예 역대 당선작들 중에도 이런 ‘경향’을 갖는 부분이 있다면? 전적으로 아니라고 보긴 어렵더라도 아예 이들을 싸잡아 “요즘 시들이 이렇다”고까지 말할 부분도 결코 아닐 것 같습니다. 주요한 ‘패턴’이 설령 발견된다 해도 또 다음 신춘문예에서는 그게 곧 ‘치트키’로 작용하진 않아서예요. 차라리 ‘과유불급’이 더 적절한 평가이어야 맞겠습니다.
새벽 다섯시인데도 아직 컴컴합니다. 연휴 마지막 날, 한글날이죠? 오늘 하루도 의미있고 소중히 보내시기 바랍니다. ;
페루
- 이제니
빨강 초록 보라 분홍 파랑 검정 한 줄 띄우고 다홍 청록 주황 보라. 모두가 양을 가지고 있는 건 아니다. 양은 없을 때만 있다. 양은 어떻게 웁니까. 메에 메에. 울음소리는 언제나 어리둥절하다. 머리를 두 줄로 가지런히 땋을 때마다 고산지대의 좁고 긴 들판이 떠오른다. 고산증. 희박한 공기. 깨어진 거울처럼 빛나는 라마의 두 눈. 나는 가만히 앉아서도 여행을 한다. 내 인식의 페이지는 언네자 나의 경험을 앞지른다. 페루 페루. 라마의 울음소리. 페루라고 입술을 달싹이면 내게 있었을지도 모를 고향이 생각난다. 고향이 생각날 때마다 페루가 떠오르지 않는다는 건 이상한 일이다. 아침마다 언니는 내 머리를 땋아주었지. 머리카락은 땋아도 땋아도 끝이 없었지. 저주는 반복되는 실패에서 피어난다. 적어도 꽃은 아름답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간신히 생각하고 간신히 말한다. 하지만 나는 영영 스르로 머리를 땋지는 못할 거야. 당신은 페루 사람입니까. 아니오. 당신은 미국 사람입니까. 아니오. 당신은 한국 사람입니까. 아니오. 한국 사람은 아니지만 한국 사람입니다. 이상할 것도 없지만 역시 이상한 말이다. 히잉 히잉. 말이란 원래 그런 거지. 태초 이전부터 뜨거운 콧김을 내뿜으며 무의미하게 엉겨붙어버린 거지. 자신의 목을 끌어안고 미쳐버린 채로 죽는 거지. 그렇게 이미 죽은 채로 하염없이 미끄러지는 거지. 단 한번도 제대로 말해본 적이 없다는 사실이 안심된다. 우리는 서로가 누구인지 알지 못한다. 말하지 않는 방식으로 말하고 사랑하지 않는 방식으로 사랑한다. 길게 길게 심호흡을 하고 노을이 지면 불을 피우자. 고기를 굽고 죽지 않을 정도로만 술을 마시자. 그렇게 얼마간만 좀 널브러져 있자. 고향에 대해 생각하는 자의 비애는 잠시 접어두자. 페루는 고향이 없는 사람도 갈 수 있다. 스스로 머리를 땋을 수 없는 사람도 갈 수 있다. 양이 없는 사람도 갈 수 있다. 말이 없는 사람도 갈 수 있다. 비행기 없이도 갈 수 있다. 누구든 언제든 아무 의미 없이도 갈 수 있다.
* 2008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당선작
2023년 10월 10일 (화)
[베껴쓰고 다시읽기] ‘등단’보다 더 중요한 ‘출간’을 둘러싼 권력 (박현웅, 사막) :
신춘문예, D-51.
김성태, 성은주, 이길상, 이만섭, 강윤미, 유병록, 권지현, 박현웅. 중앙일간지 여덟군데에서 지난 2010년에 신춘문예를 통해 배출한 시인들 명단입니다.
유독 이 해의 당선자들 이름이 생소해지는 건 이른바 ‘메이저’ 시집들 중 유병록 시인 단 한 명만이 시집을 냈을 뿐, 나머지 시인들은 아직껏 그렇지 못하다는 데 있습니다. (혹은 생소한 출판사였거나 아예 못낸 경우 등)
문단 내에서의 권력은 이렇듯 ‘메이저’라는 이름 하에서의 차별, 배제, 텃세 등을 일컫게 됩니다. 그들의 면면은 창비, 문지, 문학동네, 현대시, 현대문학, 문학사상, 민음사 등이고요.
설령 그 어떤 다른 경로로 ‘등단’을 했더라도 ‘메이저’ 시집을 출간하기만 하면 크디큰 명성을 얻게 마련이며, 제 아무리 신춘문예 당선자라 해도 그 이름을 얻지 못하면 위에 열거한 이름들처럼 아쉽게도 뜨자마자 지는 별들이 되곤 합니다. (물론 이들도 계속 치열히 각자의 시세계를 살아왔고 또 십여년만에 첫 시집을 펴낸 경우들도 있었음을,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중의 외면을 받을 수밖에 없었음을 함께 기억해두어야 한다는… 그런 면이 좀 불공평하다고 느껴지는)
연휴 끝, 새로운 한주의 시작입니다.
오늘도 좋은 하루 되십시오. ;
사막
- 박현웅
오랜 공복의 위(胃), 넓고 메마른 허기를 본다.
반짝거리는 털을 곧추세우고 걸어가는
몇 마리 신기루가 보였다
아니, 걷는 것이 아니라 건너고 있는 중이다
평생 모래를 건너도 모래를 벗어나는 일 없이
발목의 높이를 재보는 은빛여우
오래전 모래 속에서 귀를 빌려온 죄로
사막에 소리를 맡기고 다녀야하는 은빛여우
넓은귀로 입맛을 다신다.
사구의 그림자가 모래 속에서 걸어 나와 주름으로 눕는 밤
은빛여우의 눈은 빛의 껍질을 벗겨낸 말랑한 과육
소리에 민감한 어둠덩어리다
허기진 소리들이 더욱 환해지며 서로의 먹잇감이 되듯
무서운 것은 포식자가 아니라
찾아야할 작은 먹잇감이다
바람이 불 때를 기다려 식사를 끝내고
약간의 풀이 있는 곳, 여우가 제 발자국을 오래 천천히 핥는다.
작고 빛나는 사막 한 마리가 죽어있다
바람이 만들어 놓는 칼날, 서서히 날이 서가는
죽음의 속도보다 느리게 생명을 쓰러뜨린다.
여우의 몸을 떠난 숨결이 오래
은빛 털을 핥는다.
걸음을 내려놓고 날개 없이 은빛 털들이 날아오른다.
채색하는 모래바람은 일렁이는 밀밭풍이다
사막에서 살찌는 것은 바람뿐이다
* 2010년 중앙신인문학상 당선작
2023년 10월 11일 (수)
[베껴쓰고 다시읽기] '시정신'에 관한 한 교범 또는 '천로역정' (조정권, 산정묘지 1) :
신춘문예, D-50.
"산시(山詩)를 쓰는 사람들은 '절대고독'을 아는 사람들이다." 주간경향에 실렸던 한 칼럼에서 조정권 시인을 다룬 대목입니다.
새벽공기가 차갑습니다. 완연한 가을로 접어든 날씨가 이제 곧 단풍을 알릴 것 같은 기별을 해오면, 접어둔 공책을 꺼내 아주 오래된 시들을 다시 찾아 읽습니다. 그윽하다는 말, 불멸의 시편들만이 갖는 거의 유일한 특권이기도 합니다.
황지우가 심사평에서 "놀랍도록 진지함"을 김수영의 시정신에 빗대 추천한 이 작품에서 시인은 정신세계의 고결함을, 그 고독을, 그 절망의 깊이와 의지의 견고함을 노래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미학의 첫째 봉우리인 '숭고미'를 발견해내는 일은 퍽 어려운 일입니다만, 어쩌면 그의 시편들과 또 비슷한 시절을 풍미했던 황지우, 김명인, 임동확 등이 함께 피력해온 '화엄'의 웅장함 등은 앞으로도 계속 추구해볼 법한 세계관 중 하나일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는 김정웅의 "천로역정, 또는" 역시 엇비슷한 시도로 읽어낸 경험을 갖기도 합니다.)
이미 타계한 시인의 노래는 어느덧 한 편의 '고전'이 된 채 신춘문예라는 등대 앞을 휘젓는 한 척의 나룻배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유유히 헤엄치는 그 안내의 흔적들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시월, 새벽입니다. ;
산정묘지(山頂墓地) 1
겨울산을 오르면서 나는 본다.
가장 높은 것들은 추운 곳에서
얼음처럼 빛나고,
얼어붙은 폭포의 단호한 침묵.
가장 높은 정신은
추운 곳에서 살아 움직이며
허옇게 얼어터진 계곡과 계곡 사이
바위와 바위의 결빙을 노래한다.
간밤의 눈이 다 녹아버린 이른 아침,
산정(山頂)은
얼음을 그대로 뒤집어 쓴 채
빛을 받들고 있다.
만일 내 영혼이 천상(天上)의 누각을 꿈꾸어 왔다면
나는 신이 거주하는 저 천상(天上)의 일각(一角)을 그리워하리.
가장 높은 정신은 가장 추운 곳을 향하는 법.
저 아래 흐르는 것은 이제부터 결빙하는 것이 아니라
차라리 침묵하는 것.
움직이는 것들도 이제부터는 멈추는 것이 아니라
침묵의 노래가 되어 침묵의 동렬(同列)에 서는 것.
그러나 한 번 잠든 정신은
누군가 지팡이로 후려치지 않는 한
깊은 휴식에서 헤어나지 못하리.
하나의 형상 역시
누군가 막대기로 후려치지 않는 한
다른 형상을 취하지 못하리.
육신이란 누더기에 지나지 않는 것.
헛된 휴식과 잠 속에서의 방황의 나날들.
나의 영혼이
이 침묵 속에서
손뼉 소리를 크게 내지 못한다면
어느 형상도 다시 꿈꾸지 않으리.
지금은 결빙하는 계절, 밤이 되면
물과 물이 서로 끌어당기며
결빙의 노래를 내 발밑에서 들려주리.
여름 내내
제 스스로의 힘에 도취하여
계곡을 울리며 폭포를 타고 내려오는
물줄기들은 얼어붙어 있다.
계곡과 계곡 사이 잔뜩 엎드려 있는
얼음 덩어리들은
제 스스로의 힘에 도취해 있다.
결빙의 바람이여,
내 핏줄 속으로
회오리 치라.
나의 발끝에서 머리끝까지
나의 전신을
관통하라.
점령하라.
도취하게 하라.
산정의 새들은
마른 나무 꼭대기 위에서
날개를 접은 채 도취의 시간을 꿈꾸고
열매들은 마른 씨앗 몇 개로 남아
껍데기 속에서 도취하고 있다.
여름 내내 빗방울과 입맞추던
뿌리는 얼어붙은 바위 옆에서
흙을 물어뜯으며 제 이빨에 도취하고
바위는 우둔스런 제 무게에 도취하여
스스로 기쁨에 떨고 있다.
보라, 바위는 스스로의 무거운 등짐에
스스로 도취하고 있다.
허나 하늘은 허공에 바쳐진 무수한 가슴.
무수한 가슴들이 소거(消去)된 허공으로,
무수한 손목들이 촛불을 받치면서
빛의 축복이 쌓인 나목(裸木)의 계단을 오르지 않았는가.
정결한 씨앗을 품은 불꽃을
천상의 계단마다 하나씩 바치며
나의 눈은 도취의 시간을 꿈꾸지 않았는가.
나의 시간은 오히려 눈부신 성숙의 무게로 인해
침잠하며 하강하지 않았는가.
밤이여 이제 출동 명령을 내리라.
좀더 가까이 좀더 가까이
나의 핏줄을 나의 뼈를
점령하라, 압도하라,
관통하라.
한때는 눈비의 형상으로 내게 오던 나날의 어둠.
한때는 바람의 형상으로 내게 오던 나날의 어둠.
그리고 다시 한때는 물과 불의 형상으로 오던 나날의 어둠.
그 어둠 속에서 헛된 휴식과 오랜 기다림
지치고 지친 자의 불면의 밤을
내 나날의 인력으로 맞이하지 않았던가.
어둠은 존재의 처소(處所)에 뿌려진 생목(生木)의 향기
나의 영혼은 그 향기 속에 얼마나 적셔두길 갈망해 왔던가.
내 영혼이 내 자신의 축복을 주는 휘황한 백야(白夜)를
내 얼마나 꿈꾸어 왔는가.
육신이란 바람에 굴러가는 헌 누더기에 지나지 않는다.
영혼이 그 위를 지그시 내려누르지 않는다면.
* 1991년 제10회 김수영 문학상 수상작
몇가지 단상
- 수국, 종로학파
글이 장황스럽고 복잡해지는 이유는 세상이 그렇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온 편입니다.
이를 지극히 단순하고도 명료히 표현한다는 건 굉장한 오만이라고도 생각해왔습니다.
특히 헌신적인 사랑, 민주주의에의 열망, 진리를 향한 학문적 양심 등과 같은 말들은 평생을 공부한다 해도 과연 이를 정확히 표현해낼 수 있을까 하는 막연한 느낌마저 갖기도 합니다.
일생에 걸쳐 단 하나의 말을 정의하기 위해 노력하는 이들도 많습니다. 철학자, 시인, 물리학자 등등이겠지요...
대개의 경우, 그런 부분들을 '장황스럽고 복잡하다'고 느끼게 된 연유는
듣는 사람의 사랑이 상대적으로 더 적기 때문이라고도 생각합니다. (말하고 있는 상대편에서는 피를 토해내고 있음에도)
즉, 말하는 이와 듣는 이가 갖는 사랑의 크기가 다르기 때문에 벌어지는 현상이겠죠...
그래서, 근본적으로는 '소통'이라는 게 과연 가능할까 싶은 회의마저 들기도 합니다.
모든 말과 글들은 결국 '사랑의 속삭임'이며, 그걸 얼마나 잘 '소통'과 '이해'로 만들 수 있느냐의 문제인 것 같습니다...
어쩌면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이 바로 그 '소통'이며,
그 간극을 줄이기 위해 노력하는 일이 곧 '사랑'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대개의 경우,
절대적 확신이라는 허영을 갖지 않고자 노력해온 편입니다.
절대적 확신을 가질만한 단어들도 불과 몇 안되고요...
변증법, 사랑, 민주주의, 인간 등등
어쩌면 소쉬르의 말대로 모든 진리라는 게 공시적으로는 진리요, 통시적으로는 오류일 수도 있겠습니다.
그래서,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건 결국 그의 말을 얼마나 주의깊게, 관심을 갖고 경청하느냐의 문제인지도 모를 일입니다.
제게 가장 부족한 점이 있다면, 아마도 이것이 아닐까 하고요.
그래서, 그러지 않기 위해, 어떤 누군가를 손쉽게 함부로 '판단'하지 않기 위해 노력하기 시작했습니다.
그게 곧 '사랑'이라는 단어를 제 나름대로 증명하는 길이기도 할 테니까요...
2023년 9월 20일 (수)
83일 동안의 짤막한 여행
발행일 : 2023년 10월 13일
지은이 : 정독, 종로학파
출판사 : 퍼플
출판등록 : 제 300-2012-167호 (2012년 9월 7일)
주소 : 서울시 종로구 종로1가 1번지
대표전화 : 1544-1900
홈페이지 : www.kyobobook.co.kr
ⓒ 정독, 종로학파 2023
이 책 내용의 전부 또는 일부를 재사용하려면 반드시 저작권자의 동의를 받으셔야 합니다.
83일 동안의 짤막한 여행
발행일 : 2024년 3월 31일
지은이 : 정독, 종로학파
펴낸이 : 한건희
펴낸곳 : 주식회사 부크크
출판등록 : 2014.07.15 (제2014-16호)
주소 : 서울특별시 금천구 가산디지털1로 119 SK트윈타워 A동 305호
전화 : 1670-8316
메일 : info@bookk.co.kr
ISBN :
www.bookk.co.kr
ⓒ 정독, 종로학파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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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3일 동안의 짤막한 여행
발행일 : 2024년 3월 31일
지은이 : 정독, 종로학파
펴낸이 : 한건희
펴낸곳 : 주식회사 부크크
출판등록 : 2014.07.15 (제2014-16호)
주소 : 서울특별시 금천구 가산디지털1로 119 SK트윈타워 A동 305호
전화 : 1670-8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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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3일 동안의 짤막한 여행
발행일 : 초판 1쇄 2023년 10월 13일
초판 2쇄 2024년 4월 5일
지은이 : 정독, 종로학파
출판사 : 퍼플
출판등록 : 제 300-2012-167호 (2012년 9월 7일)
주소 : 서울시 종로구 종로1가 1번지
대표전화 : 1544-1900
홈페이지 : www.kyoboboo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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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국판 (초판 2쇄, 퍼플, 2024년 4월 5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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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국판 (초판, 퍼플, 2023년 10월 13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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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판, Realigned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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