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그리운 집

단테, 연분홍/연초록, 정독, 그리고 종로학파 2023. 5. 18. 16:19

   

   겨울, 그리운 집 

           
       
    
   한나절을 걸어온 길, 그곳엔 아직도 바삭바삭 밟히는 낙엽이 있고 저마다 두툼한 외투에 싸여 그 화음을 경청하는 밤, 남몰래 밟아보는 낙엽들에서 지난 가을에 부르던 노래가 문득 흘러나오는데   

   내게도 그런 음악을 꿈꾸던 계절이 있어, 악보들이 쌓인 자리엔 장식음처럼 바람이 불고 그 흔적마다 스산히 뒹구는 낙엽, 이미 완연한 겨울로 흐르고, 철 지난 아쉬움을 달래려는 길목에서 

   호호 손을 불며 걷던 기억도 나는데, 나 역시 장갑을 마련해야지 하던 생각에 슬그머니 꺼내 문 담배, 그렇게 잊혀가는 것들엔 가슴속 꽁꽁 매어두던 그리움도 있어, 다시금 연기 속에 피어오르고 

      내 목소리도 곧 들릴 거야
      건네준 편지 속 힘겹게 울던 표정  
      아무 말이 없었지
      말할 수 없는 것들조차 괴로운
      그 신열을 누가 모를까
      하지만, 지금 남아있는 것들
      모두 사라지고 난 저녁
      물밀듯 흐르고 있는 곡조에 대하여  
      
   옆자리마다 피곤한 일상이 안식하는 그것을 그리고, 고독한 떠남이 아무 대답도 해주지 않는 것을 알면서도 말이지 

   아직도 길가엔 바람이 불고, 어둑해진 자리마다 하나둘 가로등이 켜지는데, 저문 술집으로 향하는 마음 한켠 웅크리고 앉아 말없이 주고받는 위로처럼 

   한나절을 걸어온 그 길, 그곳엔 아직도 뼈저리게 그리운 낙엽들이 있고 사람들은 제각기 낡은 책가방을 꺼내 드는 밤, 남몰래 밟아보는 낙엽처럼 지난 가을의 설렘이 지는데 

   고개 숙여 떠나는 사람들 이제 가로등 불빛처럼 또 다른 흔적을 찾고, 그렇게 찾은 자리마다 새로운 그리움이 약동하는 시간을 꿈꾸고, 다시 사람들 모여들 시간이면 이 술집에도 지난 그 노래가 들리겠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