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시에 남아 있는 것 항상 남아 있는 것이 있다 네게 종이를 한장 건네고 아무것도 쓰지 못했음을 깨닫고 돌아보지만 너는 이미 인파 속으로 사라진 후이고 정작 쓰지 못한 마음은 주머니 속에서 쓰디쓴 돌멩이처럼 굴러다닐 때 시계는 정지하고 남아 있는 것은 박동하지 않는다 눈이 녹은 뒤에도 남아 있는 것 파도가 사라진 뒤에도 남은 것 네가 떠난 뒤에도 남은 것 어둑한 너의 눈동자처럼 아직은 있는 것 손때 묻고 더러운 빈 종이, 그런 시를 들고 나는 영원히 한 시를 떠나지 못한다 # 이기성, 감자의 멜랑콜리 (창비, 2025) ... 시를 쓴다는 일에 대해서 : 요란한 밤비가 그친 후에도 벚꽃들의 안부가 궁금해 잠시 바깥을 다녀왔습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