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노트 142

일산, 도시와 이미지 4

... 광장, 그리고 화두. 작고하시기 전까지 살았던 도시에 대해 갖는 큰 호감은 한겨레 인터뷰를 보면서 처음 느꼈던 감정인 듯합니다. 소설 '화두'에도 등장하던 서울예전 문창과 교수 시절의 에피소드들과 당대 최고라는 타이틀한테 사숙하면서 꿈을 그려본 시절들도 벌써 수십년전입니다. ... 몇년전엔가, 비로소 박경리 선생의 '토지'를 겨우 겨우 완독했던 겨울의 밤들이 또 있습니다. 이제는 '화두'가 아닌 '토지'를 자연스레 제 인생의 첫권으로 꼽게 되겠지만, 그래도 지난 청춘들의 방황과 사색 속에는 늘 광장, 그리고 화두가 함께 했다는 기억은 분명히 존재합니다... ... 역시 작고하신 김현 선생은 '행복한 책읽기'에서 그를 "사상적 리얼리스트요, 문학적 모더니스트"로 평하기도 했습니다. 분단과 자본의 첨..

개인노트 2020.05.23

일산, 도시와 이미지 3

... 연희동, 상도동, 일산신도시와 명륜동, 다시 가회동 또 강남... 그리고, 구기동. 역대 대통령들을 배출한 동네들 중 단연 압권은 종로입니다. 전현직과 당적을 막론해 모두 네명의 대통령을 배출한 이 '정치 1번지'가 공교롭게도 저한텐 그저 '직장'입니다. 출근길에 문득 대통령 생각을 잠시 해봅니다. ... 2002년 대선 때도 숱한 인파들 틈에서 검은 코트를 입고 연신 손을 흔들며 빌라촌을 나선 노무현 당선인의 모습을 TV에서 본 적이 있습니다. 그 이후로는 매번 당선인의 자택에서 첫 연설을 하는 장소까지 이동하는 경로가 핫한 생중계로 잡히다보니, 이젠 제법 익숙하고도 시들해진 풍경이기도 하네요. (흥미롭게도, 대한민국 현대사에서 아직까지 아파트 단지를 나서는 대통령을 본 적은 없습니다.) .....

개인노트 2020.05.22

일산, 도시와 이미지 2

... 십년도 넘는 세월이 흘렀음에도, 여전히 일산에서 가장 건재한 두 랜드마크를 꼽으라면 호수공원과 정발산이라고 생각합니다. 전자는 안온한 일상을 대변한다면, 후자는 건강한 휴식을 대변하는 것도 같았죠... ... 첫번째로 호수공원을 한번 얘기했으니, 응당 두번째는 정발산 얘기부터 해야겠어요. 해발 백미터도 채 안되는 아주 야트막한 산인데 원래는 고봉산과도 붙어 있던 자락으로 들었습니다. ("고양"이라는 명칭도 이 고봉산과 행주산성으로 더 유명한 덕양산을 합친 지명이고요. 하지만 실제로 살다보니 고봉산 일대와 덕양산 일대는 사뭇 다른 정경이기도 하네요... 신도시냐 아니냐, 등등) ... 일제시대 때 경의선을 놓기 시작하면서부터? 고봉산으로부터 댕강 잘려나간 부분인데, 그 중간쯤에 서있게 되었다는 일산..

개인노트 2020.05.22

일산, 도시와 이미지 1

... 사실 사람들이 "일산" 하면 떠오르는 곳이 바로 호수공원이 아닐까 해요, 국내 최대규모인 이 인공호수도 어느덧 세월이 흐르면서 점차 자연을 닮아갑니다. 호숫가를 채운 풀잎들과 들꽃의 풍경이, 또 여름이면 절로 피곤 하는 연꽃들도 마찬가지입니다... ... 사계절을 불문하고 집밖으로 슬리퍼를 신고 터벅터벅 걷다보면 어느새 고즈넉한 풍경 앞에서 스스로 마음을 다스릴 때가 많았죠... 조만간 '리모델링'을 계획중이라는 소식도 들려 이제 이 호수공원의 풍경 또한 익숙함에서 또 다른 낯설음로 채워질 공산도 크겠다는 생각을 해보네요. ... 사실 "일산"은 1기 신도시의 한 명칭이고, 행정구역으로도 신도시가 아닌 지역들을 모두 포함해 동구와 서구로 나뉜 까닭에, 같은 생활권 안에서 이를 명확히 구분짓기가 되..

개인노트 2020.05.22

텍스트와 콘텐츠, 매체의 변화

... 이른바 '책을 쓰는 일' 따위를 현시대에 맞게 재정의해야 한다면, 시가 아닌 산문의 시대와 문자가 아닌 영상으로서의 매체 등이 대뜸 떠올려진다. 서정과 서사의 시대는 저물었고 이미지와 메시지가 그 자리를 사실상 대체하고 있다. 실은 시의 서정이 곧 이미지요, 텍스트가 갖는 서사는 콘텐츠의 메시지다. 순수한 기호학 차원에서는 그 가장 극단적 형태가 현재의 웹 미학이 된다. 이 자리에서 더 이상 서정과 서사의 죽음 따위를 논한다거나 슬퍼할 까닭은 없다. 오히려 '죽음' 같은 피해의식의 발로보다는 '진화'라는 긍정적 표현을 애써 더함으로써 그 분절적인 형태들과 삽화로서의 한계들을 있는 그대로 수용하는 편이 더 맞겠다. 예술은 더 이상 고상한 척 시간을 내면서까지 향유되어야 할 교양의 범주를 벗어나 아예..

개인노트 2019.07.07

소멸하는 것은 아름답다

- 격정의 한 시절을 목숨걸고 지켜낸 아름다움들이 비로소 늙어가고 또 죽음을 맞이하는 계절, 봄. 그 이름들을 기억해낸다. 아버지, 또 노회찬과 최인훈과 세월호 그리고 노무현, 문학회 시절의 시화전들과 그 찻집, 또 다른 부음들과 그때마다 쓸쓸했던 감정들과 이미 익숙해져버린 결별의 아픔들과 처연할 뿐인 고독과 손창섭의 단편들, 황지우의 옛 시집과 백분토론에서의 추억들. 몇번의 선거들. 여름을 향했던 광장에서의 외침들. 용겸형이 써내려간 T. S. Eliot는 말 그대로 '황무지'였을까... 또는 '침묵보다 더 고요한 죽음의 행진'일 뿐인가. -

개인노트 2019.04.17

가을, 11월

... 먼발치로 해가 뜨고 지고 또 오늘처럼 간혹 비는 내린다 분주한 일상이 미처 쫓기 전에 가을은 저만큼 달아나버렸다 봄이 무색하게 세월을 비껴서 가을은 온통 낙엽투성이다 그래도 선물, 아랑곳없이 지난 한해를 돌아보게 만든다 낙엽이 곧 죽음을 뜻한다면 가을은 죽음을 알리는 계절 코가 큰 프랑스 배우가 나와 예술의 본질은 슬픔과 죽음이라 했던가 그 죽음을 배우기 위해 슬픔을 배운다 한나절, 걸어온 길 그곳엔 저마다 그리움 뿐인 낙엽 그리고 슬픔, 죽음을 배우는 중 ...

개인노트 2018.11.08

북한산을 갈까?

쉽지 않은 이번 여름, 또 이틀의 연휴. 주말이다. 느즈막히 잠에서 깬 탓 벌써부터 푹푹 찌는 무더위 그래서 더 조용한 바깥 소음 지척에 있는 북한산 기슭에 아직도 다람쥐는 살고 있을까 한번 다녀와야겠다는 생각 말 뿐인 게 벌써 여러해째다. 세수를 하고 아침을 먹는다 밖으로 나갈 채비를 하며 팔월의 초입은 늘 한산하고 또 경이롭다. 무언가 시작하자 딱 좋은 계절이다. 여름.

개인노트 2018.08.04

새벽; 7월 마지막날

드문드문 잦아든 회식자리는 일정표에도 빈칸들을 눈에 띄도록 만들었다. 경기가 어렵다는 말은 도처에서 확인된다. 썰렁해진 식당들과 번화가엔 자발적 '통금'이라도 생겼을 성싶다. 곰곰히 생각해봐도 비상구는 보이질 않는다. 남북경협 소식이라면 모를까, 경제라는 단어의 어려운 문맥은 스스로 제 갈 길조차도 모르는 모양새다. 무더위에 눈을 뜬 새벽, 생뚱맞은 슬리퍼 차림으로 폭염 속을 걷는다. 지구온난화는 재앙을 넘어 어느덧 종말에 가까운 그림자마저 내밀까? 인류의 미래 또한 경제만큼이나 막막해졌다. 알고 보면 다 '욕망'이다. 남을 이기고 제 혼자서만 잘살겠다는 극도의 이기주의, 국가주의, 보호무역이 판을 친다. 인류애라곤 아예 찾을 길 없는. 피리소리를 따라 단체로 낭떠러지를 향한 들쥐떼마냥 이토록 맹목적일 ..

개인노트 2018.07.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