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노트

텍스트와 콘텐츠, 매체의 변화

단테, 연초록, 정독, 그리고 종로학파 2019. 7. 7. 1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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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바 '책을 쓰는 일' 따위를 현시대에 맞게 재정의해야 한다면, 시가 아닌 산문의 시대와 문자가 아닌 영상으로서의 매체 등이 대뜸 떠올려진다. 서정과 서사의 시대는 저물었고 이미지와 메시지가 그 자리를 사실상 대체하고 있다. 실은 시의 서정이 곧 이미지요, 텍스트가 갖는 서사는 콘텐츠의 메시지다. 순수한 기호학 차원에서는 그 가장 극단적 형태가 현재의 웹 미학이 된다. 

이 자리에서 더 이상 서정과 서사의 죽음 따위를 논한다거나 슬퍼할 까닭은 없다. 오히려 '죽음' 같은 피해의식의 발로보다는 '진화'라는 긍정적 표현을 애써 더함으로써 그 분절적인 형태들과 삽화로서의 한계들을 있는 그대로 수용하는 편이 더 맞겠다. 예술은 더 이상 고상한 척 시간을 내면서까지 향유되어야 할 교양의 범주를 벗어나 아예 찰나의 순간들을 CF 등과도 맞서야 하는 극히 일상적인 카테고리로 다시 자리잡게 된다. 

엉뚱한 의미에서 진정 "예술은 곧 일상"이 된다. 가장 대표적인 예가 각종 소셜 네트워크와 인스턴트 메신저 따위다. 많은 사람들이 홍수처럼 쏟아지는 콘텐츠 중에서도 특히 지인들과 나눌 법한 메모, 정보나 기사와 예술작품들까지도 기꺼이 실시간으로 공유하며 대화의 소재가 되곤 한다. 

어쩌면 글쓰기 같은 작업들이 더 이상 단행본과 간행물이 아닌 온라인 무크의 형태들로 (그것도 순전히 1인출판의 경로를 통해) 버젓이 독자들과 만나는 시대, 글쓰기가 변했다기보다는 그 유통의 형태가 바뀐 게 더 맞겠다. 오히려 오프라인 서점과 출판사들의 위기가 훨씬 더 두드러졌다. 

시대는 늘 제 성격에 맞는 쟝르를 택하곤 한다. 고대의 의식들이 종합예술의 양식을 갖던 측면도 그렇고, 개인주의가 저자의 이름을 전면에 내세운 것 또한 사회체제와 결코 무관하지가 않다. 어쩌면 보여지는 양식 따위는 순전히 시대적 산물로 순순히 받아들이는 편이 더 맞지 않을까도 싶다. 

오히려 더 중요한 건, 과연 인류가 서정과 서사를 필요로 하는 일이 완전히 사라질 수 있을까를 묻는 편이 더 생산적이겠다. 훨씬 더 경제적인 생산수단으로서의 텍스트와 훨씬 더 고도화된 서사양식으로서의 콘텐츠는 앞으로도 여전히 필요한 부분이겠다. 140글자의 짧은 싯구나 3분짜리 동영상 같은 것들로 온전히 채워지지가 않는 그것들은 때때로 한편의 완성된 시, 또 1시간을 훌쩍 넘긴 분량의 영화 같은 일들로 존재하게 될 것이다. 

다만 그 필요에 의한 양식의 존재들이 또 다시 시나 영화가 아닌, 일종의 아포리즘과 팟캐스트로 존재한다 해도 그게 작가정신과는 결코 무관하지 않겠는가? 어차피 본질은 텍스트요, 콘텐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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