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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 달의 이마에는 물결무늬 자국 (이성복)

잘 읽혀지 않는 시인들이 있다. 기형도, 또는 이성복 등이 그렇다. 유달리, 마치 니체의 철학책처럼, 외딴 섬과 같은 그 이미지들은 때때로 내게도 생경했거나 아니면 무관심의 대상이었나 보다. 이성복의 철 지난 시집을 오랜만에 꺼내든다. 한국 시단의 프린스와도 같은 존재, 동시대를 살았던 시인들 중에 박노해와 황지우가 있다면 단언컨대 No.3의 자리는 그의 몫만 같았다. 빌보드를 점령하던 시절의 마이클 잭슨과 마돈나가 있었지만 오랜 팬들이 기억하는 아티스트로는 프린스를 빼놓을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저주받은 천재, 불우한 고독, 심오한 경지 등도 퍽 닮았다. 유독 두드러진 특징을 갖는 이번 시집의 화법은 외국 시의 한구절을 인용해놓곤 이내 세련된 '안티테제'풍의 문장으로 한편의 '아우라'를 형성해놓는 ..

문학노트 2022.11.25

[시집] 상처적 체질 (류근)

그가 쓴 시들보다 그가 더 유명한 시인이 있다. 시집을 하나둘 꺼내 읽는다. 처음엔 좀 짜릿하고 B급 영화의 감수성이랄까? 그가 말했던 '시인 2만명의 시대'를 온몸으로 관통하고 있는 중인 한 시인의 잔혹한 투쟁사가 파편들처럼 놓여 있다. 방황하는 영혼의 삭막한 기록이라 불러도 좋겠지만... 그가 시를 써서 밥벌이를 한다면 좋겠다.

문학노트 2022.11.24

[시] 돌과 돌 그림자 (문태준)

산문을 닮아가는 시들은 몇가지 테마를 함께 내세운다. 어떤 이야기를, 어떤 회화를 또는 어떤 심경을 드러낸 시들은 산문의 탈 안에서 음율이 아닌 이미지를 구축하게 된다. 문태준의 낯선 시들은 주로 행갈이를 쓰지 않는 일부의 편린들 속에서 이야기를, 아니면 심경을 주로 나타내는데 그 스탠스는 비교적 관조적인 듯하다. '이야기시'라는 한 쟝르를 개척해낸 시인도 있겠고, 또 박준도 이미지를 고도로 응축해내는 데 일가견이 있음은 틀림없어 보이니 어쩌면 이 문태준의 창작은 차라리 그 어떤 심경을 묘사하는 데 더 익숙하다고 표현하는 게 더 맞을까. 비교적 평온함 속의 목요일, 월드컵 첫 경기가 열리는 이곳 광화문에도 저녁 무렵부턴 응원의 물결이 물밀듯 찾아올 하루다. 오후에 미팅이 있고 또 내일의 재택근무를 위해 ..

문학노트 2022.11.24

[시] 풀꽃 1 (나태주)

온 국민이 사랑하는 시 한편을 놓고 시집이 아닌 시선집을 꺼내본다 요즘은 마침표를 찍지 않는 게 유행 같길래 한번 그렇게 써본다 월드컵에서 사우디가 아르헨티나를 이겼고 일본이 독일을 꺾었지 오늘은 우리나라랑 우루과이가 맞붙는다 11월의 월드컵은 또 처음이야 그치? 생각해보니 벌써 또 11월이네 2022년도 이렇듯 빨리도 저무는구나 신춘문예 마감도 이제 일주일 앞으로 다가왔어

문학노트 2022.11.24

[시] 나의 무한한 혁명에게 (김선우)

가장 최근에 읽었던 시들 중에서 딱 한편을 꼽으라면, 김선우 시인의 이 작품을 올렸던 게 기억난다. (무려 시쓰기를 하기 전부터도 그는 소설을 써온 강자다.) 점심시간, 또 다시 교보문고를 찾는다. 광화문 일대를 직장으로 둔 이들의 큰 축복 중 하나, 자주 찾진 못했지만. (책을 살 요량도 아니었기에) 지금 다시 읽어도 여전히 치열하다. 치열하면서도 세련된 멋을 풍긴다는 건 꽤 어려운 작업임에 틀림이 없다. 그게 곧 시인의 역량이겠지. 11월, 날씨는 화창하고 바람은 서늘하다. 겨울이 곧 다가온다.

문학노트 2022.11.23

[시집] 능소화가 피면서 악기를 창가에 걸어둘 수 있게 되었다 (안도현)

시집 제목만큼은 아주 고색창연했지 수요일, 비가 온다는 예보도 잊은 채 출근하는 열차에 기대고 서서 시 몇편을 꺼내든다 제대로 읽진 못한 채 도서관에 반납을 하느라 서진 몇장만을 남겨두었어 '당대 최고의 시인'이라는 수식어에 걸맞지 않게 몇몇 시편들이 기시감을 갖고, 아마도 이는 내 형편없는 국어 실력 탓임을 스스로 잘 안다 요즘 들어 마침표를 찍지 않는 시집들이 늘었길래 무슨 노래 가사처럼 들리기도 하고 회사에서 장표마다 찍어낸 헤드라인의 문체도 가끔 닮았다는 생각을 했어 사소한 일상 한켠에서 시나 시집을 꺼내든다는 일은 때때로 큰 작심을 한 모양인데, 얼마나 더 해낼 수 있을까도 잘 모르겠지만

문학노트 2022.11.23

[시] 우리 살던 옛집 지붕 (이문재)

이 시를 처음 보았던 때가 1994년인가 뜨거운 여름의 방안에서 혼자 더듬듯 낡은 시집을 꺼내 필사를 했고 묵직한 이미지의 군락들이 한없이 펼쳐지던 그때, 어쩌면 시의 전성기였을까 모르겠다 21세기다, 아무도 시를 읽지 않는 시절 다시 꺼내본 그의 시집은 아직도 묵직하기만 한데 시사저널 기자로 살아온 세월들이 궁금타 어떤 의미를 더한 삶을 살아왔을까도 그렇다

문학노트 2022.11.23

편집을 한다는 것

정독도서관이다. 시집 코너에서 안도현이 엮은 시선집을 잠시 읽어본다. 내 블로그가 가장 주되게 할 일도 결국 이런 류의 글쓰기, 즉 창작과 비평의 '변증법'일진대... 다분히 창작 뿐만이 아닌 비평 쪽에서의 (즉 글쓰기가 아닌 책읽기) 노력이 오히려 더 '시인'에 가깝다는 안도현 시인의 말이 먼저 와닿는다. 내가 시인이 되려면? 많은 창작보다도 또 더 많은 비평이 수반되어야 함을 잘 안다.

노예의 시 4

- 현금의 흐름 통장이 또 바닥났어 월급날이 채 오기도 전에 우수수 빠져나간 돈은 또 어디로 사라졌을까 씀씀이가 헤퍼서 그래, 핀잔만 듣게 생겼다 부랴부랴 샀던 주식을 털고 더 생기지도 않을 월 수입을 탓하며 연신 담배만 피워 문다 지금도 늦지 않아, 하지만 대안도 없는데 현대판 샐러리맨의 가계는 미미하고 궁핍해 그날 그날의 용돈벌이가 대수롭진 않아도 그게 곧 생활의 큰 원천임을 안다는 일 출근을 준비해야 할 시각 오늘도 어김없는 미팅을 잡고 갑질에 익숙해 팀장은 별의별 잔소리만 또 다시 늘어놓겠지 억지웃음으로 버텨낼 하루 일과라면 가능해 돈을 번다는 게 어디야, 이 생각만으로 버틸 어디든 '알바' 소리를 듣지 않을 직장은 없어 스스로 위안도 해보겠지만, 꼭 그렇지도 않아 자꾸만 서성이게 돼 대학로의 배..

글/습작노트 2022.11.21

노예의 시 2

- 도서관 삶은 전쟁터 삶을 살아내는 방식 중 가장 고상한 게 공부 또 한번의 싸움을 치르기 위해 집을 나선다 때로는 걷고 또 때론 자전거를 타며 향하는 전쟁터의 사랑, 그 삶을 사랑하기 위해서다 서고에 빼곡히 꽂힌 책, 오늘 뭘 읽지 짐짓 망설인다, 발길이 더 익숙하구나 시집의 이름들을 빠르게 스캔하는 동안 내게는 바람 한번 일지 않았다 삶은 배움터 삶을 이겨낼만한 가장 치열한 방식, 공부 또 한나절의 득도가 열람실 안에 있었다 문장은 짧았어도 여운이 길게 남곤 했어 사랑해온 말들, 오래 익혀두고자 함이다 - 화석연료를 과연 언제까지 써야 할까 - 김민정의 시집 제목은 왜 그랬던 걸까 - 경제학자들이 왜 노벨상을 받아야 하나 : 몇몇 물음 앞에 섰다, 혼자 중얼거린다 찾지 못한 책들은 또 폐기된 모양이..

글/습작노트 2022.11.18

노예의 시 1

- 2023 수능 아내가 한참 잔소리를 한다 듣기 싫다고 했음에도 듣는 건 감수할 몫 묵묵히 술병을 잔에 기울여 안주를 집고 비좁은 부엌 한켠에 앉아 저녁을 마신다 밖에 나가면 소주가 5천원이야 대학 1학년, 포장마차에서 천원을 받던 반병이 생각났고, 이내 한병을 마셨다 박노해가 신새벽에 마셨던 소주가 있고 전화기를 붙잡고 노래한 임창정이 있고 김수영 시인을 얘기해준 선배도 있었지 모두 다 없어진 시절, 또 시를 써본다 도무지 다듬어지지 않는 시를 붙잡고 생각한다고 다 씌어지는 게 아니잖아 재주가 부족함을 탓해야지 별 수 없다 그래도 쓴다 노동하는 예술은 노예, 시도 노예다 이름이 있고 없음은 중요하지 않아 먹고 사는 일, 또 다른 시가 되겠지 그래서 쓴다 수능이 끝났다 아이들이 좋은 꿈을 꿀 수 있다면..

글/습작노트 2022.11.18

정주여건

점점 거 줄어들기만 하는 인구, 각 지역들마다 이 시대를 관통하려면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 고민이 많아진다. https://m.blog.naver.com/source234/222835105473 서울 여자들이 보는 지방...jpg 여성 커뮤니티 뿐아니라 다양한 커뮤니티에서 나오는 이야기네요 지방 균형발전은 이제 사회적 문제로 보여... blog.naver.com P.S. 신도시의 가장 큰 매력? 결국 정주여건일 뿐.

재택근무, 연말

재택근무를 하려니, 정말 회사 가기가 싫다. 그래도 "지속가능한 현금흐름"을 확보하려면 뭔가 대안을 찾든가 아니면 최선을 다해야지. https://news.v.daum.net/v/20211221212028352?x_trkm=t '늙음'으로 차별할 수 없게..'행복한 老동자' 가이드라인 세워야 [내막노:내 마지막 노동일기] [경향신문] 노인 노동 총괄 컨트롤타워 부재 활동적이고 생산적인 노후 위해 사회참여 보장하는 ‘법률’ 필요 일하는 노인이 많아지는 시대, 국가는 어떤 역할을 해야 할까. 일할 수밖에 없도 news.v.daum.net

[시] 구체화된 시작 5

구체화된 시작 5 - 푸르던, 기억. 이유 없이 그런 걸까 마치 칼 끝에서처럼, 그 푸른 색조에 두려운 걸까 LED등에 푸르게 쌓인 먼지 속 기생하는 숨소리는 낡은 베갯잇 뒤척이다 남몰래 돋아나던 눈물일까 그 눈물이 갉아내는 소리, 그 향기는 자국만 남아 가난해진 시계는 귀 기울여 맴돌고, 다시 멈추고 또 기다리고, 저만치 사라지면 다시 어둡던 기억 문 열고 들어서는 앞마당엔 날카로운 벌레의 울음 비에 젖어 화분들도 멍울져 흔들리지, 눈을 들면 방안 새록새록 피곤에 젖어 허옇게 묻어나온 늙음 지친 숨소리가 겹겹이 먼지만 쌓여 장식음이 되고 곳곳에 무늬로 남은 화상을 지우다 보면, 어느새 창문을 통해 스며든 바람조차 젖어 흔들리고 있어 빗소리에 씻기는 소리, 밤새 침잠해있던 숨소리는 다시 조금씩 호흡을 가..

2021.12.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