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월
쏟아지는 비를 피해 찾아갔던 짧은 처마 밑에서 아슬아슬하게 등 붙이고 서 있던 여름날 밤을 나는 얼마나 아파했는지
체념처럼 땅바닥에 떨어져 이리저리 낮게만 흘러다니는 빗물을 보며 당신을 생각했는지. 빗물이 파 놓은 깊은 골이 어쩌면 당신이었는지
칠월의 밤은 또 얼마나 많이 흘러가 버렸는지. 땅바닥을 구르던 내 눈물은 지옥 같았던 내 눈물은 왜 아직도 내 곁에 있는지
칠월의 길엔 언제나 내 체념이 있고 이름조차 잃어버린 흑백영화가 있고 빗물에 쓸려 어디론가 가 버린 잊은 그대가 있었다
여름날 나는 늘 천국이 아니고, 칠월의 나는 체념뿐이어도 좋을 것
모두 다 절망하듯 쏟아지는 세상의 모든 빗물. 내가 여름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 허연, “밤에 생긴 상처” (민음,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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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메모 ::
어느 한 '절망적'인 소년의 여름철 시편을 읽는 아침,
작년의 김수영 문학상 심사대에서 그를 처음 조우했었다.
그는 과연 내 시편들을 조금은 기억할까? 알 수 없었다...
올해는 만나지 않을 작정이다. 그래도 안부인사는 묻자...
안녕하셨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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