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와도 젖은 者는
- 巡禮 1
강가에서
그대와 나는 비를 멈출 수 없어
대신 추녀 밑에 멈추었었다.
그 후 그 자리에 머물고싶어
다시 한 번 멈추었었다.
비가 온다, 비가 와도
江은 젖지 않는다.
나를 젖게 해 놓고, 내 안에서
그대 안으로 젖지 않고 옮겨가는
시간은 우리가 떠난 뒤에는
비 사이로 혼자 들판을 가리라.
혼자 가리라, 江물은 흘러가면서
이 여름을 언덕 위로 부채질해 보낸다.
날려가다가 언덕 나무에 걸린
여름의 옷 한 자락도 잠시만 머문다.
魚族은 강을 거슬러 올라
하늘이 닿은 지점에서 일단 멈춘다.
나무, 번뇌, 날짐승 이런 이름 속에
얼마 쉰 뒤
스스로 그 이름이 되어 강을 떠난다.
비가 온다, 비가 와도
젖은 者는 다시 젖지 않는다.
* 오규원, 사랑의 기교 (민음, 1978)
-
:: 메모 ::
그러므로, 길 가는 이들이여
그대 비록 악을 이기지 못하였으나
약과 마음을 얻었다면
아픈 세상으로 가서 아프자
- 황지우, <산경> 중에 (게 눈 속의 연꽃, 문지 19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