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앨범/필사

전윤호, '수몰 지구' ("세상의 모든 연애", 파란 2019)

단테, 정독 2024. 6. 24. 16:35

 
 
 
   수몰 지구 
 
 
 
   자꾸 네게 흐르는 마음을 깨닫고 
   서둘러 댐을 쌓았다 
   툭하면 담을 넘는 만용으로 
   피해 주기 싫었다 
   막힌 난 수몰 지구다 
   불기 없는 아궁이엔 물고기가 드나들고 
   젖은 책들은 수초가 된다 
   나는 그냥 오석처럼 가라앉아 
   네 생각에 잠기고 싶었다 
   하지만 예고 없이 태풍은 오고 소나기는 내리고 
   흘러 넘치는 미련을 이기지 못해 
   수문을 연다 
   콸콸 쏟아지는 물살에 수차가 돌고 
   나는 충전된다 
   인내심에 과부하가 걸리지 않기를 
   꽃 피는 너의 마당이 잠기지 않기를 
   전화기를 끄고 숨을 참는다 
   때를 놓친 사랑은 재난일 뿐이다 
 
 
 
   * 전윤호, 세상의 모든 연애 (파란, 2019) 
 
 
 
      
   :: 메모 ::

   연애시의 '정석'이라고 칭찬을 받는 한 시인의 시편에서 그 애절함만큼의 그 비통함만큼의 정서를 잘 읽어낼 수 있다면, 전혀 다른 스토리에서도 역시 이를 잘 응축해낼 법한 이미지들을 찾고 연구해볼 필요가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