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
삶을 살아가면서 우리가 유독 힘들어하는 문제들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에서 시작되는 경우가 많다. 가족이나 친구, 직장 생활에서 벌어지는 관계의 문제도 물론이겠지만 애정과 연애 관계에서 문제가 생길 때 우리의 마음은 더욱 아리다.
내가 상대를 애정하는 마음보다 상대가 나를 애정하는 마음이 작을 때 우리는 짝사랑이라는 병에 든다. 이 병은 열병이다. 발병부터 완치까지 나의 의지만으로 시작되고 끝난다. 다만 짝사랑이라는 감정은 우리가 어린 시절부터 숱하게 가져본 것이기 때문에 어느 정도 경험이 쌓이면 이 감정을 조절하는 데에 그리 큰 어려움을 겪지 않는다.
짝사랑보다 더 큰 문제는 내가 상대를 애정하는 마음보다 상대가 나를 애정하는 마음이 더 클 때 생긴다. 이럴 때 우리의 눈에 비치는 상대는 더없이 부담스럽기만 하다.
반면 상대와 나의 감정이 비슷하게 차오를 때 우리의 관계는 연애와 사랑의 세계로 전환된다. 연애의 세계에서 그리고 사랑의 세계에서 관계는 더없이 충만하며 인자하고 아름답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감정이라는 불안한 층위에 겹겹이 쌓아올려진 이 세계는 그리 안정적이지 않고 결코 영원하지도 않다. 그리고 우리는 곧 관계의 죽음을 맞는다.
나는 헤어진 연인에게 문자메시지를 보내거나 늦은 밤 전화를 걸어본 적이 있다. 물론 이 반대의 경우도 있었다. 이러한 상황을 소위 말하는 '미련'이라는 말로 치부하고 싶지만은 않다. 다만 관계가 조금 덜 죽어서 그런 것이라고, 이러한 행동 또한 관계를 잘 죽이기 위한 과정이라 생각한다.
눈을 감고 내가 가장 즐거웠던 한 시절을 떠올려보면, 그때 나의 눈앞에는 더없이 아름다웠던 연인이 웃음을 내보이고 있다. 그리고 그 연인의 정한 눈동자에는 나의 모습이 설핏 비쳐 보인다.
어쩌면 내가 가장 그리워하는 것은 과거 사랑했던 상대가 아니라, 상대를 온전히 사랑하고 있는 나의 옛 모습일지도 모른다.
* 박준, 산문 "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겠지만" (난다, 2017)
:: 메모 ::
'지속가능성'과 '찰나'의 사이에서 늘 <관계>는 위태롭기만 하다
믿음의 질과 시간의 양에 관한 문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