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랭 드 보통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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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세한 내용,
https://ggumsugi.tistory.com/440
“예술은 경험을 보존하는 수단이다. 삶의 경험 중에는 아름답지만 순간적으로 지나가는 것들이 무수히 많으므로 이를 담아둘 적절한 도구가 필요하다.
예술은 복잡성을 편집하여, 인생의 가장 의미 있는 측면들에 빠른 시간 내에 초점을 맞출 수 있게 해준다.
예술가란 시간을 정지시켜 우리가 순간순간 소홀히 지나치는 아름다움과 중요성에 우리의 관심을 집중시키는 것을 제 일로 삼은 사람이다.
예쁜 그림은 우리가 그 그림 속에 재현된 실물을 좋아하기 때문에 사랑받는다.
우리는 이 세계의 문제와 부당함을 지나치게 의식하는데, 그 앞에 서면 자기 자신이 지푸라기처럼 작고 약하게 느껴진다. 쾌활함은 일종의 성과물이고, 희망은 축하할 일이다. 낙천주의가 중요하다면, 이는 얼마나 낙천적으로 과업을 수행하느냐가 성과를 판가름하는 경우가 많이 때문이다.
사람의 운명은 재능 부족이 아니라 희망의 부재로 결정된다.
우리는 모두 내적으로 약간씩 균형을 잃었고, 그래서 내면의 부족함을 채워주겠다고 약속하는 스타일에 마음이 끌리게 된다.
예술작품은 우리의 성격에서 실종된 부분이 다시 제자리를 찾을 수 있게 도와준다. 예를 들어 내적으로 혼돈과 무절제와 소란을 느끼는 사람은 평온하고 순수하고 안정적인 실내장식에 강하게 끌릴 것이다.
마찬가지로 과도한 잔인함과 치밀함, 두려울 정도로 발전한 기술로 무장한 현대생활의 조급한 템포에 지나치게 노출되어 압박을 받는 사람은 소박함, 자연스러움, 포근한 낡음을 속삭이는 스타일에 매력을 느끼기 마련이다.
예술작품이 우리의 가치관에 결핍된 분량을 채워줄 때 우리는 그 작품을 '아름답다' 부르고, 우리가 위협적으로 느끼거나 우리를 이미 압도해버린 기분이나 모티프에 초점을 둔 작품은 '추하다' 하며 멀리한다. 예술은 내면의 완전성을 약속한다.
선을 염원하는 마음과 관련하여 우리는 종종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아크라시아, 즉 '자제력 결핍'으로 고생한다. 더 큰 일을 해내고 싶어 하지만, 결정적인 고비에서 동기를 잃어버린다.
반복이 중요하다. 어떤 물건의 정신이 우리에게 깊이 각인되려면 그 정신을 꾸준히 반복해서 접해야 한다.
자연 그대로의 산과 시내, 꽃과 나무에 열광하는 마음은 방치와 소홀에 대한 보상심리이자, 우리가 자연과 접촉하지 못하고 있다는 증거이다.
우리는 자연과 마치 수줍은 연애를 하듯, 사랑하는 사람 앞에 서서 말도 꺼내지 못하고 있다. 그러는 동안 우리는 그 사랑하는 사람을 살해하고 있는데, 한 가지 다른 점은 범죄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 알랭 드 보통, 아름다움과 행복의 예술
(은행나무, 20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