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에 관하여
생각을 해보니 글쓰기를 처음 시작한 게 한글을 배우고 갓 초등학교 때 시작한 그림일기부터인 경우가 아니었을까 합니다. 학교에서 오만가지 숙제를 내곤 해 이후부터의 글쓰기는 주로 억지였던 것 같아요. 학업에 매달리던 시기에도 글쓰기는 제게 일종의 사치였던 것 같습니다.
대학을 입학해 처음 일기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쓰다보니 어느덧 아직까지 유일하게 쓰고 있는 쟝르이기도 합니다. 때로는 습작노트처럼, 또 때로는 철학노트처럼, 또는 연애담과 무용담들이 펼쳐지기도 했습니다. 가장 많이 쓴 날은 스프링노트 절반 정도를 쓰기도 했던 게 기억납니다.
문학회에서는 어렸을 적에 참으로 많은 구박을 당했던 기억도 납니다. 철학과를 다니던 한 선배가 시를 너무 못쓴다고 여러번 면박을 주어서 제 동기들 사이에선 공공의 적이 되곤 했는데, 어느날 훌쩍 독일로 이민을 떠난 바람에 회포를 풀긴 쉽지가 않게 되었습니다. 가끔 그 선배가 그립습니다. 1학년 때부터 줄곧 보아온 '장마' 연작을 60번 넘게 보아온 적이 있으니까요.
동기들 중엔 또 사학과를 다녔던 친구가 있는데, 시를 엄청나게 잘썼습니다. 많은 선배들이 최승자를 닮았다며 줄곧 추켜세운 바람에 무던히도 질투심이 생겼던 모양입니다. 그 시절에는 순전히 분노와 질투로 글쓰기를 배웠던 모양입니다. (공교롭게도 철학과랑 사학과를 다닌 두 여성이 제겐 그것들을 심어준 모양입니다.)
문학회 하면 많은 이들이 낭만, 고결함 등을 떠올릴 텐데 실상은 오히려 치정, 치졸함 등에 더 가까웠습니다. 너무 많은 선배와 동기들끼리의 염문 때문에 개인적으로 그 선배와 동기들을 무척 싫어했던 적이 있습니다. 요즘의 '미래파' 시들을 볼 적마다 가끔 그 시절 그 사람들 생각이 납니다.
여전히 일기를 씁니다. 스프링노트는 그만둔 채 싸이월드에서, 그리고 이젠 블로그에서 계속 쓰고 있습니다. 때로는 영화이론 스크랩으로, 아니면 여행일지와 사진첩으로, 또는 필사노트로 변화하면서 계속 타자를 하는 모습 하나만이 유일하게 남았습니다.
글쓰던 지인들이 하나둘씩 생활의 핑계로 교단에 섰고, 영화작가가 되었고, 대기업의 노예가 되어 열심히 출퇴근을 반복하고, 또는 변변한 수입을 못구해 지방에 낙향하기도 해 일년에 얼굴 한번 보기가 쉽지 않아졌습니다. 그래도 장례식이 있을 때면 유독 그 변변치 못한 힘겨운 일상들이 더 먼저 달려오곤 하는 것 같기도 해 늘 반가웠습니다.
여전히 글을 씁니다. 삶의 기록이라는 차원도 있겠지만, 때때로 때때로 철학과 경전은 문학으로 대체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곤 했습니다. 황지우가 내밀었던 화엄경을 유독 좋아했던 까닭도, 조정권의 선시와 김정웅의 시집을 탐독했던 시절의 편견이기도 합니다. 에세이를 여전히 가장 어려운 쟝르로 꼽는 이유이기도 하고요.
인생을 마라톤으로 비유하곤 합니다. 글쓰기의 인생 또한 마라톤의 각 구간들과도 대비해볼만한 구석이 있나 잠시 생각을 해봅니다.
학창시절의 글쓰기는 웨이트 트레이닝 정도에 더 가까웠던 것 같습니다. 좋은 코치를 만나고 좋은 영양분을 섭취하고 꾸준히 포기하지 않고 훈련하는 게 가장 기본적인 덕목일 것 같습니다.
어쩌면 등단은 고작 출발선으로부터 약 1킬로미터 정도 남짓한 첫 구간의 기록에 불과할 수 있습니다. (물론 대부분의 세계기록들은 이 첫 구간의 기록부터가 남다르긴 합니다.)
나머지 41킬로미터, 즉 나머지 결승선까지의 구간은 오로지 연습량에 의해 그 완주여부를 결정한다고 믿는 편입니다. 오버페이스도, 구간별 기록과 트로피 (각종 문학상)들도 그저 스쳐 지나가는 순간들일 뿐입니다.
개인적으로, 더더욱 중요한 건 완주이기 때문입니다. 순위는 그 다음의 문제입니다.
마라톤 선수가 되려면? 완주가 가능해야 합니다.
완주를 할 수 있어야만 비로소 작가가 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모든 작가들은 글을 쓰다가 죽었습니다.)
또 앞으로 있을 몇차례의 완주를 더 해내느냐와 세계기록을 돌파하느냐에도 문제가 있기 때문에 마라톤 선수, 즉 작가는 평생을 공부하면서 살아야 하는 존재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삶을 선택한 건 순전히 나 자신일 뿐입니다. 뿌듯해할 일도, 기쁘거나 후회할 일도 아닌, 거의 모든 사람들한테 공통적으로 부여된 일종의 생활양식 중 하나일 뿐이라고도 생각합니다.
모든 이들은 결국 누구한테의 (단 한 사람만에라도) 작가입니다. 다만 좋은 작가가 되느냐 그렇지 못하느냐의 차이가 있을 뿐이라고 보는 편입니다.
그 미세한 차이를 극복하려는 노력이 곧 글쓰기요, 이건 은퇴마저도 없는 삶이라고도 생각합니다.
그래서, 직업 이상의 그 무엇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