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를 이토록 사랑한 적
누군가를 이토록 사랑한 적
시들어 죽어가는 식물 앞에서 주책맞게도 배고파한 적
기차역에서 울어본 적
이 감정은 병이어서 조롱받는다 하더라도
그게 무슨 대수인가 싶었던 적
매일매일 햇살이 짧고 당신이 부족했던 적
이렇게 어디까지 좋아도 될까 싶어 자격을 떠올렸던 적
한 사람을 모방하고 열렬히 동의했던 적
나를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게 만들고
내가 달라질 수 있다는 믿음조차 상실한 적
마침내 당신과 떠나간 그곳에 먼저 도착해 있을
영원을 붙잡았던 적
* 이병률, 누군가를 이토록 사랑한 적 (문지,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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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시'에 부합하지 않는 '서정시'의 미덕 :
작년 한 해 동안 가장 많은 사랑을 받은 시집으로 당당히 이름을 올린 이병률의 신작 시집은 다분히 전통적인 '서정시'에 더 가깝고, 창비 계열로 치자면 문태준이나 신용목도 아닌 도종환 시인의 그것과도 많이 닮은 구석이 있습니다. 서간문을 차용한 듯한 말투와 직접적인 화법과 관념적 명사들도 스스럼없이 구사하고 있는 점, 또 서사적 전개에 따른 심상을 그려내고 있는 점 등에 있어서 말이죠.
'이토록' 사랑한다는 말이 갖는 범위를 시인은 한껏 그려내봅니다. 그 둘레는 '주책맞게도 배고파'하는 반면에, '울어'보기도 하고 '조롱받'기도 하지만 그래도 늘 '당신이 부족했'고 '자격을 떠올렸'으며 '열렬히 동의'했던 순간들을 포함합니다. '믿음조차 상실'할만큼 열렬한 그 사랑은 '마침내' '먼저 도착해 있을 영원'을 꿈꾸는 순간까지를 향해 질주하는 감수성이기도 합니다. 이 단단한 고집스러움에 구체적 에피스드들을 단박에 드러낸 정서가 과연 최근의 '현대시' 분위기에 맞는 것일까를 잠시 고민하게 됩니다. (전통적인 '서정시'라고 일컫는 형태들은 사실 그렇지 못한 대다수 시풍들을 한데 아우르는 말이기도 하며, 오히려 폄하하는 표현일까 싶어 가급적 자제해야 맞는 말일 테고요.)
기법과 사상의 면에서도 결코 '현대시'보다 못하다는 게 아닌, 그저 독자들의 사랑을 한층 더 받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이 서술적 분위기와 은유 및 상징을 최대한 배제하고픈 충동이 드는 건 단지 요즘 시단의 풍경 뿐만이 아니라 원래 '시가 맡았어야 할 영역'의 한 본령이지 않을까 하는 의문이 들어서입니다. (그걸 철저히 배격하는 듯한 최근의 시풍에 대한 아쉬움도 살짝 들어서 말이지요.)
* 단정,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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