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껴쓰고 다시읽기] 진부하다, 직설적이다, 상상력이 부족하다 :
생활의 발견
소스 맛에는 중독성이 있다
때로 소스를 맛있게 먹기 위해
돈가스가 존재하는 게 아닌가 싶다
돈가스 소스는 돈가스를 가장 맛있게 먹을 수 있게
연구하고 만든 것일 테지만
소스만 있으면 어떤 특정 음식의 맛을
상당 정도 느낄 수 있다
예컨대 맨밥에 돈가스 소스를 끼얹어 먹으면
돈가스와 흡사한 맛이 난다
시작법은 시의 소스
제 소스의 레시피를 가진 시인들이 부럽다
언제라도 한 접시 먹음직한 시를 내놓는 그들!
나는 레시피도 없고,
찬장 깊숙한 데서 꺼낸 인스턴트 돈가스 소스는
유통기한이 1년이나 지났다
그래도 가난한 나는
맛있게 먹지
* 황인숙, <못다 한 사랑이 너무 많아서> (문지, 2016)
홍상수 감독의 필모그래피 중 같은 제목을 가진 영화가 있지만, 이는 임어당의 수필에서 차용된 제목이라고 합니다. 우연의 일치라고는 해도 '생활의 발견'이라는 타이틀이 갖는 그윽함은 뭇 작가들의 탄성과 시샘을 한 몸에 받는 모양입니다. 황인숙 시인은 시쓰기의 '괴로움'을 노래한 편인데, 거꾸로 그가 심사위원을 맡았던 신춘문예들에서 문학지망생들은 똑같은 고민을 전혀 다른 관점에서 설득해내야 하는 의무를 짊어지곤 했습니다.
진부하다, 직설적이다, 상상력이 부족하다.
모든 작가들이 가장 듣기 두려운 말들이자 어쩌면 스스로한테 가해온 채찍과도 같을 낱말들이 떠오른 건 결코 우연이 아닙니다. 가장 사랑하는 독자한테서 받는 충고는 그래서 값지고 고귀한 편이며, 그것들을 극복하기 위한 유일한 힘의 원천이기도 해요... 무릇 문학이라는 작품을 통해 작가는 독자들과의 대화를 시도하면서도, 그 대화의 성패를 가르는 건 결국 '내용'의 힘이라는 사실을 오롯이 인식할 필요도 있겠습니다. (어제와 오늘에 걸쳐 들었던 생각 몇몇)
날씨가 계속 혹독할만큼 차갑습니다. 새벽에 폭설이 내릴 거라며 호들갑을 떨던 일기예보는 아랑곳없이 멀쩡하기만 한 새벽하늘을 잠시 쳐다보다가, 그래도 1월, 그래도 곧 봄, 그 생각을 마저 꺼내봅니다.
https://youtu.be/bbqr6NkJ88A?si=Tv20GKFok3dSz7-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