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껴쓰고 다시읽기] 드라마 "나의 아저씨" 다시보기 :
잠의 살은 차갑다
깊은 잠에 빠진 살은 차다
간장에 양지를 졸이는 꿈을
며칠 이어 꾼 것을 두고
나는 마음으로 즐거워했다
으레 그럴 때면
외투를 한 겹 더 입었다
겨울옷의 소매들은 언제나 길고
나는 삐져나온 손끝을 보며
얼마 남지 않은 욕실의 치약과
굳은 치약을 힘주어 짜냈을
안간힘에 대해 생각했다
물건을 새로 뜯지 못하는
나의 버릇을 병이라기보다는
몸가짐이라 부르고 싶었다
이 겨울과 밤과 잠과
아직 이른 순荀과 윗바람 같은 것들은
출현보다 의무에 가까웠으므로
불안은 누구의 것도 아니었다
* 박준, 우리가 함께 장마를 볼 수도 있겠습니다 (문지, 2018)
세밑의 큰 우울함이었던 배우 이선균의 죽음을 추모하는 행사로 (개인적으로는 또는 한 가정의) 드라마 "나의 아저씨" 다시보기를 1천 분 이상의 런닝타임과 함께 한 시간이 오늘 새벽에야 좀 마무리되었습니다. 며칠째 소리없이 '잠적'한 큰 이유이기도 한데, 한 인간존재의 죽음을 둘러싼 사회적 포르노 현상과 철저히 말살된 인권의 문제와 뻔뻔함을 갖지 못하는 양심의 가냘픔에 관한 애처로운 이벤트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극 초반에는 현실과의 대입 때문에 자주 가슴이 먹먹해 도중에 몇 차례를 쉬었고 두 번의 잠을 잤으며 잠시 도서관으로 가서 밀린 책들을 반납했고 심리학 입문서 두 권을 독파하였고 호수공원을 모처럼 들러 사진 몇 장을 찍기도 했습니다. 후반부로 접어들면서는 도로 인생연기를 펼친 아이유를 향한 애틋함에 또 유일한 삶의 원천인 이선균의 막막한 희망을 함께 응원하면서 몇 차례씩이나 더 눈물이 나서 여러번을 더 쉬었나도 모르겠습니다.
드라마는 끝났고 배우는 이제 저 세상 사람이 되었고 그 소박하게 아름다운 삶들이 남겨놓는 무늬들 속에서 작가의 영혼이 애써 전하려 한 메시지를 찬찬히 느끼며 글쓰기의 원천에 대해서도 생각해보는 시간입니다. 좋은 글이 독자에게 남겨줄만한 가장 큰 선물에 관한 부분이기도 해서, 좀 더 오래 사려할 일이기도 하고요.
여전히 박준을 능가해볼만한 새 시인을 찾는 일이 올해 신춘문예에서도 드러나지 않는 건, 박준의 뛰어남보다는 현 시단에서 크게 놓치고 있을 무언가에 관한 속절없는 아쉬움 정도일 것 같습니다.
화려한 색채들과 다양한 실험들 속에서 막상 '독자'라는 단어가 혹 실종되진 않았을까에 대한 자격지심일 수도 있겠고 또는 서점가 풍경의 불우함을 애써 강변해보려는 속내일 수도 있겠지만요.
아무튼 박준의 마지막 시집이 벌써 5년 전이기도 해 그 아쉬움을 담아 시 한 편을 마저 올려놓습니다.
1월의 첫 주말은 평온한 편입니다. 밤새 눈이 내렸고 일어나자마자 잠시 거닐었던 바깥에서 눈을 밟는 소리에도 잠시 귀를 기울여봅니다. 곧 녹아내릴 눈 위로 언제쯤 '봄비' 같은 소식들도 함께 내릴까를 상상해보는 건 순전히 이상주의자의 몫이라는 지적에도 경청하는 노력을 기울여볼 참입니다. 미뤄둔 숙제들도 많아 이제 곧 그것들도 시작해보려 하고요.
경건하고도 편안한 휴일 보내시기 바랍니다.
https://youtu.be/cMB4cQHJt6Y?si=yd1T7FEOGTZw-uz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