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노트

박정대, '눈 속을 여행하는 오랑캐의 말' (영하 11도의 주초, 다시 '낭만'에 대하여)

단테, 정독... '종로학파' 2024. 1. 8. 04:53

  
  
  

[베껴쓰고 다시읽기] 영하 11도의 주초, 다시 '낭만'에 대하여 : 

  

   
   눈 속을 여행하는 오랑캐의 말


   미스터 션샤인의 말투로 말하겠소
   햇살 좋은 아침이면 앞마당으로 나가 빨래를 너오
   그곳에 돌배나무, 목련, 배롱나무, 자두나무, 살구나무, 사과나무, 생강나무, 이팝나무, 자작나무들을 심었소
   자작나무에는 따로 이름을 붙여주었소
   가난하고 아름다운 사냥꾼의 딸, 꽃 피는 봄이 오면, 자작나무 우체국, 레아 세이두, 장만옥, 톰 웨이츠, 김광석, 빅토르 최, 칼 마르크스, 체 게바라, 아무르, 아르디 백작, 상처 입은 용, 짐 자무시, 짐 모리슨, 닉 케이브, 탕웨이, 아르튀르
   눈 속을 여행하는 오랑캐의 말들, 이들은 가난하고 아름다운 나의 열혈동지들이오
   돌배나무는 대낮에도 주먹만 한 별들을 허공에 띄우오
   그 여름 폭풍은 내 마음속에 있었소
   폭풍우 치는 낮과 밤을 동무들과 함께 어깨동무하고 견디오
   폭풍우 치는 한 계절이 지나면 장난처럼 고요하고 맑은 저녁이 내 작은 창가로 오오
   그리고 기적처럼, 등잔불 피어오르는 고요한 밤의 생이 시작되오
   나는 늘 등외에 있는 삶이었고 세상의 통계에 잡히지 않는 삶을 꿈꾸었소
   심지어 때때로 나는 태어나지 않았을 때도 많았소
   오랑캐의 말을 듣는 누군가의 귀처럼 푸른 이파리들 돋아나는 아침이오
   침묵의 함성이 하나의 행성이 되는 시간이 오고 있소
   지나가는 바람이 배롱낭구의 매끄럽고 단단한 살결에 입맞추는 아침이오
   미스터 션샤인이 빨래를 널고 있는 무한의 아침이오
   
   
   * 박정대, <눈 속을 여행하는 오랑캐의 말> (달아실, 2023)

  

  

   매서운 한파가 기승을 부리고 있는 새벽, 오늘 최고 기온이 영하 5도라는 전갈이 도착해 있습니다. 

   2024년의 새해를 막 대학교에 입학하려는 자녀의 게임방 안부와 지독한 감기에 걸린 한 선생님을 걱정하는 시간들로만 채우는 데 꼬박 일주일이 걸렸나 봅니다. 오늘은 아침부터 마케팅 전략회의가 있는 관계로 서둘러 출근을 해 지난주에 모아놓은 자료를 챙기고 또 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분주히 아침을 보낼 예정이기도 하고요. 

   주말 내내 드라마 "나의 아저씨"를 본 탓에 일종의 트라우마 같은 후유증이 계속 남아 있긴 해도, 일상의 잔인함은 그걸 용납하지 않는 관계로 서둘러 감정의 복귀도 꾀해야 할 마당입니다. (이에 관한 이야기들은 아마도 이르면 오늘 저녁 또는 아예 제껴버린 채 또 새로운 일상사로 묻혀질 것만 같고) 

   박정대 시인의 열한번째 시집이 나온 소식을 이제서야 안부삼아 올려놓습니다. '달아실'이라는 생소한 출판사 이름에 비해 시풍은 예전 작품들을 퍽 닮았습니다. <위풍당당>하던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도 퍽 그랬을까를 잠시 생각해보는 아침이기도 한데...  

   몇번째로 '낭만'을 이야기하고 있는지조차 모릅니다. 이를 대신해 그 '낭만'을 어떻게 구체적으로 형상화할 것이냐를 논하는 편이 더 유익할 텐데, 그건 오로지 작품으로만 말씀을 드려야 좋을 성싶기도 합니다. 부단한 창작이야말로 유일한 평론이 될 것이기에 미뤄둔 습작을 다시금 부여잡고 지내볼 참입니다. 예전 글 한 편으로 대체하려고 해요. 

   https://dante21.tistory.com/m/4205

 

박정대, '그때까지 사랑이여, 내가 불멸이 아니어서 미안하다' (창작연구 : '낭만'이란 무엇인가?)

[창작연구] '낭만'이란 무엇인가? (박정대) : 그때까지 사랑이여, 내가 불멸이 아니어서 미안하다 그날 불멸이 나를 찾아왔다 나는 낡은 태양의 오후를 지나, 또 무수한 상점들을 지나 거기에 갔

dante21.tistory.com

   즐거운 한 주 되시기 바랍니다. 

 

  

 

  https://youtu.be/ll4QIbU1kv4?si=6nXJIHaTZWkCjOB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