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껴쓰고 다시읽기] <시대와의 불화>, 참새와 허수아비 :
새시대
저는 미쳤어요 유유상종 끼리끼리 그러니까 내 친구들 모두 시인이었단 말이죠 얼마나 좋았겠어요 우리끼리만 읽을수 있었거든요 우리끼리는 뭐든 다 좋다고 그랬거든요 객관적으로도 사실이었어요 저는 미쳐서 이게 사랑이구나 싶었어요 그래서 못 썼어요 사랑 시 사랑 시 생각만 하느라 사랑은 보이지 않으니까 내 눈 앞에 살아 있는 사랑 사람들 그것만 보려고 언제 달라질지 모르는 마음이니까 뚫어져라 보기만 했어요 나서지도 못하고 혼자서 공공 앓았어요 가끔은 그랬어요 나 사랑 좇도 모르는 거 같아 사실이에요 나는 미쳤잖아요 미친년이 사랑하면 미친 사랑이지 사랑은 아니잖아요 돌아 버리잖아요 그래서 못 쓰는거예요 나도 쓰고 싶다 사랑 시 사랑 사랑 할 때마다 피치 못하게 쓸 때마다 구역질이 나 뒤가 간지러웠어요 근데 뭐 이게 나쁜가 그래서 그냥 안 썼어요 못 쓴 거였는데 말은 그렇게 했어요 안 들키기만 하면 되는 거잖아요 이걸 누가 읽겠어요 있는지도 모를 텐데 내가 말해 주지 않으면 보이지도 않을 텐데 쉽게 써 봤습니다 누구는 야 정말 기막히다 할지도 모르겠지만 그냥 썼습니다 별 이유도 없고요 하지만 사실만을 쓰고 싶었을 뿐 그게 미친 사랑이어도 어쩔 수 없었던 일이고요 사실 내가 제일 정상인지도 몰라요 다들 어떻게 알아 사랑을 그쵸 아는 척하면서 살고 하고 그러는 거지 다 몰라서 실수하는 거예요 애도 낳잖아요 자기와 자기의 복제품이라니 정말 끔찍해요 너넨 실수하지 마 친구들에게 신신당부하고요 저는 절대로 안 해요 여자랑도 안 해요 혹시 모르는 일이잖아요 손으로 한 사랑이 나을 수도 있는 거고요 비과학적인 일이라고 치부하기엔 말도 안 되는일 더 많으니까 말도 마세요 실수에 실수를 곱할 뻔했어요 평생 사랑으로 불렸더라면 나는 더 미쳤겠어요 다행이지요 아니면 그때부터 모르게 된 걸지도 아니면 빼앗긴 걸지도 사랑하실 분들에게 바칩니다 모든 걸 계산하세요 위험에 내몰리지 마세요 맞지 마세요 피 보지 마세요 탈의도 신중하게 할 거면 안전하게 안전하게 모든 형태의 사랑 모든 유형의 가족 존중합니다 인정합니다 응원합니다 그래도 결국 남는 건 없고요 추억 정도 남겠죠 그만도 못하면 기억 이런 진부한 말 다들 들어본 적 있잖아요 진부하잖아요 지나간 일인거 다 알면서 하는 거 알고 있잖아요 알면서도 하는 일 어째 보니 그건 용기군요 대담함이군요 몰랐어요 이제야 알았어요 미안해요 그래도 난 쓸 수 없어요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알려준대도 이미 실패했어요 괜찮아요 사랑 아닌 게 얼마나 많은데요 평생 그것만 말해도 아이고 벌써 바빠요 머리도 아프고요 그러니까 기억하세요 아무튼 아무튼지 간에 세상 천지에 아무도 없는 나도 이렇게 사랑 없이 잘 살고 잘 쓰고 잘 싸요 혼자서도 참 잘해요 야 너두 할 수 있어요 손과 의지만 있으면 돼요 쓸 수 있어요 쌀 수도 있다고요 부끄러워하지 말고 우선 하는 겁니다 해 보고 안 되면 그때 애기해요 내가 해 줄게요 말뿐이래도요 이게 진짜 사랑이지요 안 그래요 진짜 진한 사랑이라고요 이게 물보다 피보다 진해요 진하게 사랑하는 거예요 할 거면 제대로 하자고요 나 당신 정말 사랑해요
새시대의 사랑 풍경
참 멋진 커튼콜처럼
나는 여자 안으로 들어간다 여자 안의 집으로
* 박참새, 정신머리 (민음, 2023)
연애시를 되게 못쓴다고 욕을 먹으면서도 짐짓 웃어대기만 한 시간들이었음에도 어떻든간에 연애시 한 편 근사하게 만들어볼까를 궁리해온 시절들이 있습니다. 제42회 김수영 문학상을 수상한 박참새 시인의 패기만만한 습작들을 보면서 마음 깊은 곳에서의 감흥보다는 적지 않은 당혹감이 앞선다는 건 소설가 이문열이 쓴 책 제목처럼 '시대와의 불화'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들을 해보는 요즘입니다.
대종상 각본상에 무려 백상예술대상까지 거머쥔 한 후배가 문학회 시절의 습작으로 "미친년 꽃다발"을 써갖고 와서 한바탕 크게 화를 냈던 적이 있는데, 음... 제가 잘못한 일인 것 같습니다. 참새야 날아가버리면 그만인데 모든 잘못은 움직이지도 않은 채 흘러가는 세월만 지켜본 허수아비 탓이겠죠. 나중에라도 연락이 닿으면 그때의 일은 정식으로 사과해야겠어요. ^^
오늘도 즐겁고 유쾌한 수요일 되시기 바랍니다.
https://youtu.be/gyZTMPcZfek?si=YBZbvewieOWuEeD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