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껴쓰고 다시읽기] "더블"의 영광과 "불혹"의 한 정점 :
왼편
집의 왼편에는 오래된 빌라가 있다
오랫동안 빌라를 떠나지 못한
가족들이 한 번씩 크게 싸우곤 한다
너는 왜 그래. 나는 그래. 오가는
말의 흔들림이 현관에 쌓일 때마다
나는 불면증을 지형적인 질병으로
그 가족들을 왼손처럼 서투른 것으로
그러나 아직 희망은 있다
집의 왼편에 있는 모든 빌라가
늙은 새처럼 지지배배 떠들면서도
일제히 내 왼쪽 빌라의 편이 되는
어떤 날과 어떤 밤이 많다는 것
내 편은 어디서 뭘 하고 있을까
아직 잠들어 있을 내 편을 생각한다
같은 무게의 불면증을 짊어진 그가
내 가족이고 가끔 소고기를 사준다면
나는 그가 보여준 노력의 편이 되겠지
그러나 왼편에는 오래된 빌라가 있고
오른편에는 오래된 미래가 있으므로
나는 한 번씩 그렇지, 하면서 끄덕인다
부서진 화분에 테이프를 발라두었다고
다시 한 번 싸우는 사람들로부터
따뜻하고 뭉그러진 바람이 밀려든다
밥을 종종 주었던 길고양이가 가끔
빌라에서 밥을 얻어먹는 건 다행이다
고양이도 알고 있는 것이다
제 편이 되어줄 사람들은 싸운 후에도
편이 되어주는 걸 멈추지 않는다
* 한백양, 2024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당선작
올해 신춘문예에서는 "더블" 즉 한 해에 2관왕의 영예를 안은 두 명의 신인이 등장했습니다. 한 명은 문화일보와 매일신문에서 각각 당선의 영광을 안은 강지수 시인이요 또 다른 한 명은 오늘 소개할 동아일보와 세계일보 당선자인 한백양 시인인데요. 동아일보와 세계일보의 당선작인 두 편의 시들인 <왼편>과 <웰빙> 중에 굳이 하나를 고르려니 <왼편>을 택했을 뿐, 당선과 낙선 사이의 차이도 어쩌면 딱 이만큼이 아닐까로도 생각합니다. (하물며 같은 시인의 두 작품들 중에도 이럴진대, 한쪽은 어마어마한 기쁨 뿐이요 다른 한쪽은 오로지 끝없는 절망 뿐이라는 현실은 너무도 역설적이기만 해서 오히려 전자는 큰 두려움과 단단한 각오를 또 후자는 좌절하지 않는 기백과 용기를 필요로 할 뿐이니까요.)
특히 시인의 나이도 벌써 마흔 가까이나 되었기에 더더욱 '늦깎이' 문학도들한테는 큰 용기가 되어줄 법합니다. 언젠가도 한 번 대충 추론해본 잠정치로는 3천 편 가량의 습작량과 3만 권 정도의 독서량 이상이면 누구라도 충분히 '등단'할 수 있을만한 역량을 갖추었다고 볼 수 있겠는데, 대개는 그 정도에 이르기도 전에 불쑥 등단을 해온 편들이니 사실상 '운구기일' (운이 구할이요 재능은 일할)일 뿐임도 맞는 얘기니까요. 즉, 어느 정도 "불혹"의 경지에까지 접어든 시점이 또 그래서 더는 당락 따위에도 개의치 않는 글쓰기에의 정진만이 오히려 가장 중요한 덕목이라는 사실은 변함이 없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특별히 나머지 한 작품, 세계일보 당선작도 함께 읽는 시간을 마련해봅니다.
오늘도 좋은 하루 되십시오.
:: 2024년 세계일보 신춘문예 당선작 ::
<웰빙> : "힘들다는 걸 들겼을 때 // 고추를 찧는 방망이처럼 / 눈가의 벌건 자국을 휘두르는 편이다 // 너무 좋은 옷은 사지 말 것 / 부모의 당부가 이해될 무렵임에도 / 나는 부모가 되질 못하고 // 점집이 된 동네 카페에선 / 어깨를 굽히고 다니란 말을 듣는다 // 네 어깨에 누가 앉게 하지 말고 / 그러나 이미 앉은 사람을 / 박대할 수 없으니까 / 한동안 복숭아는 포기할 것 // 원래 복숭아를 좋아하지 않는다 / 원래 누구에게 잘하진 못한다 // 나는 요즘 희망을 앓는다 // 내일은 국물 요리를 먹을 거고 / 배가 출렁일 때마다 / 생각해야 한다는 걸 잊을 거고 // 옷을 사러 갔다가 // 옷도 나도 / 서로에게 어울리지 않는 곳에서 / 잔뜩 칭찬을 듣는 것 // 가끔은 진짜로 / 진짜 칭찬을 듣고 싶다 // 횡단보도 앞 노인의 짐을 들어주고 / 쉴 새 없이 말을 속삭일 때마다 / 내 어깨는 더욱 비좁아져서 // 부모가 종종 전화를 한다 밥 먹었냐고 // 밥 먹은 나를 재촉하는 부모에게 / 부모 없이도 행복하다는 걸 설명하곤 한다"
https://youtu.be/5_n6t9G2TUQ?si=dsY5hqaW1pBH-Dd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