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껴쓰고 다시읽기] '현대시'와의 면접을 임하는 태도 :
면접 스터디
허리를 반으로 접고 아 소리를 내면
그게 진짜 목소리라고 한다
진짜 목소리로 말하면 신뢰와 호감을 얻을 수 있다고
그러자 방에 있던 열댓 명의 사람들이 제각기 허리를 숙인 채
아 아 아 소리를 낸다
복부에서 흘러나오는 진짜 목소리가 방 안을 채운다
이제 그 음역대로 말하는 겁니다
억지로 꾸며낸 목소리가 아닌 진짜 당신의 목소리로요
엉거주춤 허리를 편 사람들이 첫인사를 나눈다
안녕하십니까 반갑습니다 저는 대전에서 왔고……
멋쩍은 미소를 짓고 몇 번 더듬기도 하면서
말을 하다가 불쑥 허리를 접고 다시 아 아 거리는 이도 있다
나는 구석에 앉아 이 광경을 바라본다
선생님이 손짓한다
이리 와서 진짜 목소리를 찾아보세요
쭈뼛거리며 무리의 가장자리에 선다
허리를 숙인다 정강이가 보이고 뒤통수가 시원하다
아 아 아
낮지도 높지도 않은 미지근적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옆집 아이와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쳐 어색하게 안부를 물을 때
보다는 낮고
지저분한 소문을 전할 때
보다는 높다
언뜻 저 사람과 그 옆 사람의 목소리하고 똑같다
우리 셋이 동시에 얘기하면 참 재미있겠죠
진지한 모임에서 그런 말은 할 수 없어서
그저 소리만 낸다
아 아
교실은 소리를 머금은 상자가 되고
이가 나간 머그잔에 물을 담아 마시다가 바닥에 흘렸다
닦아내려고 허리를 숙인 찰나
물 위로 번지는 그림자가 보였다
진짜 같았다
고개를 들었다
진짜사람들이 진짜미소를 지으며 진짜 멋진 진짜옷을 입은 게
이제야 눈에 들어왔다
우리는 다 합격할 수 있을 거예요
진짜행복이 밀려왔다
* 강지수, 2024 문화일보 신춘문예 당선작
신춘문예를 통해 쏟아져 나온 당선작들과 등단자들의 면면을 하나둘씩 살펴보는 정초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우호적인 편인 시인들 세 명 (문태준, 나희덕, 박형준)이 나란히 심사를 맡은 문화일보를 주목해서 본 편인데, 강지수라는 이름의 당선자가 내놓은 '면접 스터디'는 현대사의 단면을 포착한 내용으로도 주목을 받은 모양이네요. 심사평을 잠깐 훑어봅니다.
"취업 준비를 위해 면접 스터디를 한다는 시적으로 풀어내기 힘든 소재를 통해 진짜와 가짜, 진심과 위선의 문제를 유쾌하고 활달하게 풀어내어 힘 있게 읽힌다. 특히 진짜인 척 행사되는 현실의 거짓을 시작부터 끝까지 아이러니 형식으로 건드리는 자기식의 어법이 안착된 유니크한 솜씨가 발군이었다. 당선작과 함께 투고한 다른 작품들에서도 오랜 습작기를 거쳤을 것이라고 믿어질 만큼의 정확한 문장과 개성, 그리고 안정감이 느껴졌다." (심사평 중에서)
전자의 심사평은 오히려 낯익은 말들이어서 그다지 큰 감흥이 없었지만, 후자의 평대로 "오랜 습작기"와 "정확한 문장" 또 "개성, 그리고 안정감"이라는 덕목들은 여전히 유효함을 갖는다고 생각합니다. 더구나 이 말들은 비단 이 세 명의 시인들 말고도 여럿의 입을 통해 들었던 바여서 더더욱 그렇게 느꼈나 봅니다. 불과 어젯밤만 해도 백석 시인의 '흰 바람 벽이 있어'를 놓고 "내가 사랑한 여인"을 "내가 어여삐 한 여인"으로 고쳐서 써야 한다고, 그게 더 정확한 표현이라며 강변하던 제 강퍅한 모습이 불쑥 떠올랐으니까요.
만일 '현대시'라는 면접관 앞에서 면접을 치르게 된다면? 이런 상상을 또 해보았습니다. 점점 더 독자들을 잃어가는, 그럼에도 스스로 자기의 '미학'을 한층 더 끌어올렸다고 자부하는 '현대시'의 자부심에 대해 어떤 말이 좀 더 설득력이 있을까를 고민해온 시절들이 있습니다. 여태까지의 결과들은 썩 신통치가 않은데, 그렇다면 면접관의 문제인지 아니면 제 문제인지도 제대로 따져볼 필요가 있어서겠죠. (정작 더 중요한 건 이 면접을 통과해야만 '등단'이라는 타이틀도 생깁니다. 고민을 않을 수 없는 부분이라서요.)
참과 거짓을 분간할 필요는 없겠지만 그걸 분간해야만 하는 엄연한 현실이 존재하며, 거짓을 통해 참을 알려야 하는 시의 존재는 유니크함보다는 '진정성' 쪽에 더 몸을 기대는 편이 유력하다고도 생각해왔습니다. 솜씨를 뽐낼만한 감각이 빛난다면 물론 더 좋겠지만, 그것들보다 더 값진 부분은 아마도 꾸준한 노력이지 않을까로도 보는 편이고요. (그 흔한 신춘문예 당선도 또 문학상 수상도 단 한차례 없는 보기 드문 수작들이 세상에는 여럿 존재해온 까닭이기도 합니다.)
유난히 부산하기만 한 새해 첫 한 주가 이제 목요일로 향합니다. 아직도 바깥은 캄캄하기만 한데, 이제 서서히 낮도 길어지고 또 잘하면 매화꽃부터 줄줄이 새 식물들이 자라고 솟을 봄의 초입을 알릴 테니 그리 고독하지만은 않은 듯합니다. 이른 봄의 기운 역시 반가이 인사하며 맞을 마음은 미리 넉넉히 갖추려는 편입니다.
오늘도 즐겁고도 차분한 아침 맞으시기 바랍니다.
https://youtu.be/1py4QXyTQoU?si=bYcWzirHqohiEDh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