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껴쓰고 다시읽기] 그래도 여전히 '양대산맥'... 창비시선의 고군분투 :
꽃잎 세탁소
꽃양귀비 붉은 꽃잎 위에 청개구리가 엎드려 있어서 나도 납작 엎드려 뭐 하나 들여다봤더니, 제 목울대로 꽃의 주름을 펴는 게 아닌가, 그 호박씨만 한 것이 앞발 뒷발로 붉은 천 꽉 부여잡고 꽈리 풍선 불어가며 다림질하는 동안 내 마음도 꽃수건처럼 펴지고 있었다
개망초 하얀 꽃잎 위에 나비가 날개를 접고 있어서 나도 땅두릅 그늘 아래서 올려다봤더니, 계란 노른자 같은 꽃술을 빨아대는 것이 아닌가, 그 상추씨만 한 입으로 꽃잎을 빠는 동안 하얀 베갯잇 같은 구름이 간지러운 듯 몸을 뒤틀었다 하늘이 갓 세수한 듯 말개지고 있었다
* 김해자, 니들의 시간 (창비, 2023)
어제는 문지 시인선 594호 소식을 전했는데 오늘은 또 창비시선 494호 소식을 함께 전합니다. 문지와 함께 대한민국 문단의 양대산맥을 형성해온 '창비'입니다만, 이미 꽤 오래전부터 문지에는 한참 밀리기 시작해 아직 500호를 넘어서지 못했네요... 그래도 곧 500호 기념 앤쏠로지가 나올 것 같습니다. 두번째로 많은 시집들을 펴낸 셈이죠.
김해자 시인은 이미 지난 2008년에 백석문학상을 수상한 바 있는 중견으로, 역시 문지와는 인연이 없어 덜 알려진 편입니다만 이번 여섯번째 시집을 통해 산업재해와 일본의 핵폐기수 방류 문제 등을 고발하는 내용을 담아냈습니다.
블로그의 소개글을 몇몇 읽다가 추천을 한 '꽃잎 세탁소'는 다분히 국어의 아름다움을 느낄 법한 수사들과 전통적인 의인화 수법 등을 표현해낸 편인데, 그래도 '고운 시'에 속하는만큼 오늘의 아침인사로 전할까 하고요.
벌써 새로운 한 주가 시작됩니다. 드디어 신춘문예 당선소식들이 제법 올라올만한 한 주이기도 해요... 참고로 전 수요일 연차 예정입니다. (느닷없이 안 나타날 수도 있다는 뜻)
주초라서 많이들 바빠질 텐데, 여유를 잃지 않는 하루 되시기 바랍니다.
https://youtu.be/evOsUf9en-Y?si=RVkEk2rBcQaV2s9J