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껴쓰고 다시읽기] '초심'으로 돌아간다는 일 :
화이트 크리스마스
크리스마스이브
눈 내리는 늦은 밤거리에 서서
집에서 혼자 기다리고 있는
늙은 아내를 생각한다
시시하다 그럴 테지만
밤늦도록 불을 켜놓고 손님을
기다리는 빵 가게에 들러
아내가 좋아하는 빵을 몇 가지
골라 사들고 서서
한사코 세워주지 않는
택시를 기다리며
20년 하고서도 6년 동안
함께 산 동지를 생각한다
아내는 그 동안 네 번 수술을 했고
나는 한 번 수술을 했다
그렇다, 아내는 네 번씩
깨진 항아리고 나는
한 번 깨진 항아리다
눈은 땅에 내리자마자
녹아 물이 되고 만다
목덜미에 내려 섬뜩섬뜩한
혓바닥을 들이밀기도 한다
화이트 크리스마스
크리스마스이브 늦은 밤거리에서
한번 깨진 항아리가
네 번 깨진 항아리를 생각하며
택시를 기다리고 또
기다린다.
* 나태주, 슬픔에 손목 잡혀 (시와시학, 2000)
크리스마스 이브입니다.
이른 새벽에 잠깐 밖을 나섰을 때만 해도 싸락눈이 내리고 조금씩 쌓여 '화이트 크리스마스'가 될까 싶었는데, 지금은 날씨가 또 어떤가도 궁금해지는군요. 이 글을 다 쓰면 도로 나설 생각입니다. 교과서에 실렸던 김종길의 '성탄제'를 먼저 떠올린 새벽이었는데, 아침에 도착한 갤러리에서 나태주 시인의 시가 있길래 '그래, 요즘은 나태주다' 싶어 이렇게 올려놓습니다.
생각을 해보니 일제 강점기를 중심으로 한 김소월, 한용운, 윤동주 또 이육사, 김춘수 등의 시를 교과서로 배운 세대와 한글세대 이후부터 민주화 등을 거친 백석, 김수영, 신동엽, 김지하, 신경림 그리고 황지우의 '너를 기다리는 동안'까지를 교과서로 배운 세대가 서로를 바라보는 차이만큼은 딱 '시대적 격차'요 대한민국 현대사의 높낮이였겠구나 싶기도 합니다.
'초심'을 잃지 않는다는 것.
이 말을 떠올리면 항상 생각하는 가수는 박효신이었습니다. 스무 살 무렵의 인터뷰를 보며 처음 좋아하게 된 가수였는데 그 '진정성'이 지금까지 지속될 수 있었기에 그를 최고의 반열에 올려놓았겠다고도 생각하는 편입니다. (눈이 내리는 새벽이라 '눈의 꽃'을 골랐었는데, 이미 새벽부터 여러 차례 흘러나온 터라 다시 3집 앨범의 '좋은 사람'을 꺼내듭니다.)
신춘문예가 모두 마감되었고, 이제 각자가 또 다른 출발점 앞에 섰습니다. 여전히 변하지 않음은 오직 그 '초심'일 것 같습니다. 그래서 '초심'으로 돌아간다는 일은 어쩌면 해마다 반복되는 한 일상이기도 하여, 그래서 더더욱 익숙해질 필요가 있는 어떤 한 '루틴'이어야 할 법하다는 생각도 해보게 되는 아침입니다. (매일같이 새벽기도를 다니던 어떤 마음가짐을 떠올리며)
사흘 연휴의 중간인 오늘, 편안하고 행복한 시간들 되셨으면 합니다.
https://youtu.be/wYsNiLvQ__8?si=fU5McyLHOTomljs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