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노트

유수연, '애인' ('차이'와 '다름'에 관한 존중의 방식)

단테, 정독 2023. 10. 6. 07:20

 

 

 

[베껴쓰고 다시읽기] '차이'와 '다름'에 관한 존중의 방식 (유수연, 애인) : 

 

 

"오늘날 한국 시의 큰 병폐 중 하나로 소통의 결핍과 부재를 들 수 있다. 시를 쓴 사람과 시를 읽는 사람이 서로 소통되지 않는 원인은 무엇일까. 그것은 현실적 삶과 동떨어진 비구체성, 환상과 몽상의 방법으로 인간의 고통을 이해하고 해결하려는 언어적 태도, 개인의 자폐적 내면세계에 대한 지나친 산문적 천착 등으로 규정할 수 있다. 따라서 가능한 한 이러한 시들을 제외하고 시적 형성력의 구체성이 높은 작품을 우선하기로 먼저 논의했다. (중략) 
'애인'은 시대적 삶의 투시력이 엿보이는 시다. 오늘의 정치 현실을 통해 무엇이 우리 삶의 진실인가 질문을 던지는 시다. 그러나 단순히 정치 현실을 바탕으로 세태를 풍자한 시라기보다는 인간관계로 이루어지는 총체적인 삶의 진실을 추구한 시다. 여와 야, 적과 동지, 승자와 패자로 나뉘어 서로 적대하는 관계가 오늘의 정치 현실적 관계라면, 이 시는 "나는 나를 견디고 너는 너를 견딘다"와 "더는 넘길 게 없는 달력을 바라보며 너는 평화, 말하고 나는 자유, 말한다"에서 알 수 있듯 인내를 통한 평화와 자유의 관계가 현실적 삶의 진정한 원동력임을 이야기하고 있다. "애인은 여당을 찍고 왔고 나는 야당을 찍었다"에서도 갈등과 분열의 모습을 드러내는 듯하지만 실은 그 가치의 공존성을 역설적으로 드러낸다. 오늘 우리의 삶을 애인 관계의 공생성에서 찾아내 부정을 긍정으로 전환하는 데에 성공한 이 시를 통해 내일 우리의 삶은 분명 사랑과 희망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심사평 중에서) 

  

정호승 시인과 문정희 시인이 함께 심사한 지난 2017년의 조선일보 신춘문예에서 두드러진 면모는 '차이'와 '다름'을 해석하는 태도와 이들을 존중하는 방식에 관한 문제가 아닐까 합니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매번 부닥치는 문제들 중 'different'와 'incorrect'를 헷갈리는 경우를 종종 목격하곤 해도, 저마다 각자 살아온 배경과 느낌과 정보들이 판이한 까닭에 어쩌면 너무 당연한기만 한 얘기일 수도 있겠어서요. 심지어 "부부는 일심동체"라 해도 결국 타인에 불과한 이와 함께 거처를 공유하고 운명공동체가 되는 현실을 깊게 숙고해볼 필요가 있겠다는 생각입니다. 

 

시인들이 점점 더 어렵게 시를 쓰기만 하는 시대, 독자들은 점점 더 시를 읽는 시간을 줄여가고만 있는 이 시대는 서로에 대한 이해도 배려도 없이 막판까지 치닫는 폭주를 몇해째 계속하는 중입니다. 이게 곧 대한민국 시단의 현실이요, 그 어떤 대대적인 모멘텀 없이는 쉽게 그 궤도를 변경할 가능성도 희박해 보입니다만... 그래도 누군가는 시를 계속 쓰겠고 그걸로써 독자들한테 무언가 절실히 하고픈 이야기가 있을 테며, 또 어떤 이는 시린 가슴과 외로운 역경을 단 한 줄의 문장으로도 달랠 마음을 갖고 어떻게든 또 다시 시집을 찾곤 합니다. 

그 희박한 가능성에 기댄 채 평생을 시쓰기에 몸바치기로 한 사람들은 충분히 인식하여야 할 문제이기도 하겠고요... 

 

어제의 한 편지에서도 제가 그런 말을 누군가한테 건넨 적이 있습니다. "비록 동의는 아니더라도 존중하여야 할 부분"이라는 말, 언제나 내가 옳다는 오만과 편견이야말로 아집이자 독선에 불과할 뿐이니까요... 타인과 함께 세상을 살아가는 방식으로 가장 필요한 덕목은 어쩌면 '인간에 대한 예의'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걸 또 배워야 할 시절입니다. 당선작이 선보인 이 낯선 행갈이와 연갈이도 한번쯤은 저 역시 검토해볼만한 일이겠군요.

오늘도 좋은 아침입니다. 날씨는 매우 쌀쌀해졌습니다. ;

  

    

   애인  

 

   - 유수연

 

    

   애인은 여당을 찍고 왔고 나는 야당을 찍었다

   서로의 이해는 아귀가 맞지 않았으므로 나는 왼손으로 문을 열고 너는 오른손으로 문을 닫는다

   손을 잡으면 옮겨오는 불편을 참으며 나는 등을 돌리고 자고 너는 벽을 보며 자기를 원했다

   악몽을 꾸다 침대에서 깨어나면 나는 생각한다

   나를 바라보고 있는 애인을 바라보며 우리의 꿈이 다르다는 것을

   나는 수많은 악몽 중 하나였지만 금방 잊혀졌다

   벽마다 액자가 걸렸던 흔적들이 피부병처럼 번진다 벽마다 뽑지 않은 굽은 못들이 벽을 견디고 있다

   더는 넘길 게 없는 달력을 바라보며 너는 평화, 말하고 나는 자유, 말한다

   우리의 입에는 답이 없다 우리는 안과 밖

   벽을 넘어 다를 게 없었다

   나는 나를 견디고 너는 너를 견딘다

   어둠과 한낮 속에서 침대에 누워있었다 티브이를 끄지 않았으므로 뉴스가 나오고 있다 

 

 

   * 2017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당선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