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이 덜 깬 아침
먼발치
게슴츠레한 눈을 뜨면 허연 달빛, 아파트 옥상에 걸려 있었다
술이 술을 낳고 배가 배를 낳으면 어느덧 청년이 중년이 되고
중년은 이제 곧 노년으로 향하겠지
어설피 울음을 낸 새들 몇 이른 나뭇가지 털며
또 다른 세상을 지향하고
고양이 한 마리도 잽싸게 몸을 숨긴다
이른 새벽
어두컴컴한 전망이 서서히 밝아올 때쯤이면
이내 속 쓰린 멍울에도 꽃이 필까
모르겠어,
구겨진 영수증 하나 툭 떨어졌다
12만 5천 원
언젠가 노래방에서 한껏 노래를 부르다 만 선배
조용히 눈물을 흘렸지 돈이 없어서였을까
비참해지는 노년을 애도하며 그게 곧 운명임을
직감한다
아뿔싸, 회사에 또 늦겠어
서둘러 슬리퍼를 끌고 향하는 집
벚나무도 싹을 틔우고
바람은 실랑이며 봄을 재촉하고
더딘 봄을 못내 아쉬워할 법한데
노년의 봄은 여전한 겨울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