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체화된 시작 5
- 푸르던, 기억.
이유 없이 그런 걸까
마치 칼 끝에서처럼, 그 푸른 색조에 두려운 걸까
LED등에 푸르게 쌓인 먼지 속 기생하는 숨소리는
낡은 베갯잇 뒤척이다 남몰래 돋아나던 눈물일까
그 눈물이 갉아내는 소리, 그 향기는 자국만 남아
가난해진 시계는 귀 기울여 맴돌고, 다시 멈추고
또 기다리고, 저만치 사라지면 다시 어둡던 기억
문 열고 들어서는 앞마당엔 날카로운 벌레의 울음
비에 젖어 화분들도 멍울져 흔들리지, 눈을 들면
방안 새록새록 피곤에 젖어 허옇게 묻어나온 늙음
지친 숨소리가 겹겹이 먼지만 쌓여 장식음이 되고
곳곳에 무늬로 남은 화상을 지우다 보면, 어느새
창문을 통해 스며든 바람조차 젖어 흔들리고 있어
빗소리에 씻기는 소리, 밤새 침잠해있던 숨소리는
다시 조금씩 호흡을 가다듬고 중얼대는 기억일까
그 기억일까
내게 의식을 강요하던 떨림은, 야윈 볼 스친 바람
말이 없었지, 오래된 시계는 또 일어설 줄 모르고
색조만이 뒤덮는 이곳, 다시 뽀얗게 쌓이는 먼지
이제 비로소 익숙한 걸까
그 속에 함께 한 숨소리가 그리운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