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류시화씨와의 대담
마른 기침을 안고 돌아오는 버스 안에선
여전히 축축한 냄새가 난다. 마치 장작개비처럼
그것은 서서히 젖은 복장을 해제시키고
노랗게 퍼져 올라오는 아지랑이에 취하다
문득 라디오 프로에 귀가 쏠리게 되면
전파 속에 갇힌 아지랑이의 지친 일상성과
내 몸 구석구석 퍼지는 독기어린 비애는
동시에 하나의 전구빛으로 점멸하는 객기.
인도로 히말라야로 또 얼마전엔 제주도로
맨손에 자전거를 끌고 고행을 자처한 용감함과
긴 머리칼의 고독이 우수수 떨어지던 감수성
라디오 전파음만큼이나 가볍게 날려 보내는
끈기 있는 구도심에 대하여, 아무 말도 않는다.
제 이름의 평화, 어때요, 심오하죠. 하하
다시 기침이 난다. 버스 안은 여전히 후텁지근하고
후텁지근하다 못해 비질비질 땀이 쏟아진다.
나도 저런 고행의 길을 자처하며 떠나야 한 걸까,
여전히 아스팔트엔 칠이 벗겨진 금들이 묻어 있고
어젯밤의 치욕들은 저렇게 질주하는데
독특한 냄새가 나죠, 라즈니쉬의 냄새 같아요.
친구들의 결혼식에 가지 못한 건 시적이 아니라서
오, 나의 불우함이 가져다준 이 질시의 누더기.
오민석이 쓴 시론을 읽다 잠이 든다. 누더기 속에서
선잠이 얼핏 깨고 나면 눈꺼풀 위로 가시처럼 햇살
따갑다.
구름처럼 부풀어진 몸을 뭉그적대며 버스를 내린다.
휘청 한다. 햇살은 따갑기만 한데,
어디서 그들을 찾아 숨을 텐가.
아스팔트에 다시 아지랑이가 피어오르고 나는
마른 눈썹 위 엉긴 땀을 닦는다. 손수건 가득히
축축한 내음, 그때 덮쳐오는 전파의 복음.
그것에 대해 말해야 한다.
그러나,
무엇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나의 칼날 같은 속단에 대하여
혹은 이부자리마다 꼬깃꼬깃한 땀자국들에 대하여
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여전히 그대가 그립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