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로 인한 감기
택시기사 아저씨는 우리나라 대통령이
꼭 참두꺼비를 닮아 가뭄이 난다고
김정은이 죽어야 한다며 열을 토하고
난 연신 웃음을 참다가 차창 밖으로
우수수 떨어지는 빗방울들을 바라본다
언제부터인가 검은 비가 내리면 그만큼
내 우산 위로 다닥다닥 붙어왔던 죽음
그 짧은 비행을 생각한 적이 있었다
저쪽 하늘에서 가끔 들려오는 소식에
사람들 일손 놓고 또 시름하던 때에도
길마다 지키고 앉은 소녀들이 담배 물고
수줍은 엉덩이를 툭 치던 유행에 대하여
아무도 핀잔 준 적 없는 그 지루한 시간
비겁한 자위의 말들이 점점 길어지고
저마다 하나둘 감추어둔 핑계를 쫓아
시내 서점마다 초라한 단어로 치장하고
내 어깨 위에도 삼류라는 딱지가 붙는다
치욕스런 시절을 견뎌냈던 숱한 이들이
배신에 아파하고 그 고통을 입에 문 채
절망의 대열 속에 합류하였을 때에도
제대로 된 변명 하나 차려두지 못한 채
지하도 골목마다 수그린 볼품없는 동정
내게도 그런 상처는 혹시 남아 있을까
여전히 건널목마다 처녀들의 흰 다리는
육체가 곧 종교요 숭배의 대상일 뿐인데
거울에 내비치는 허연 눈자위가 굼뜨고
우산을 받쳐 든 안도감은 웃지 못한다
솔직하지 못한 때문인가 교만하기조차 한
연단 위의 설교자한테 욕설조차 포기했던
내 비겁하지도 못했던 시절에 열을 앓았던
새우잠을 들깨우는 후배의 넉넉한 넉살이
비에 흥건한 나뭇가지 위에서 춤을 추는데
핑그르르 추락의 가벼운 몸짓을 계속하는데
아스팔트에 튕겨져 올라오는 빗방울들은
이내 내 몸 위로 옮겨 앉아 나를 조금씩
어두운 그늘 아래로 쓰러뜨리고만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