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상실

단테, 정독... '종로학파' 2021. 12. 11. 14:08

 

    

   

 

상실 

 

 

 

  갯여울에 담긴 발목 아래로 한꺼풀의 삶이 또 넘어집니다. 서늘한 여름밤이면 저만치서 구슬피 울려오는 뱃고동 소리, 하나 둘 헤아리며 먼지 낀 내일의 약속들을 기억하곤 했습니다. 

 

  발이 차갑습니다. 물 위에 구르던 먼지들도 바람에 매섭게 날리는데, 한점 동요도 없이 이 물의 무덤 위에는 저렇게 밀려온 안개의 허망함만 응어리진 채로 한겨울처럼 몸을 웅크리고 있습니다. 

 

  이미 고동 소리는 떠나버린 자국처럼 멀겋고, 간헐적인 하얀 파문... 고백을 새겨놓은 십자가처럼 아직도 말이 없는데, 가슴 속에서 여전히 빛나고 있는데. 이미 떠나간 이의 무덤은 왜 이리도 젖어 있는지.

 

  가끔씩 비수로 떨게 만드는 이 어둠은 어디서 오는지. 

 

  두렵습니다. 

 

  차가운 물 소리를 들으며, 이제는 이곳을 떠나렵니다. 한동안 내 발목에 잠겼던 회한과 간밤을 서리친 어깨는 저만치 돌아나서고, 물끄러미 그 그림자를 배웅하던 손짓도 어느새 조금씩 희미해지는데. 

 

  이미 알고 있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