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다만, 때 아닌, 때 늦은 사랑에 관하여
어느 잔칫집 어느 상갓집에도 찾아다니며 피어나고
떨어지는 것들의 낮은 신음 소리에 맞추어 녹은 것
구부러진 것 얼어붙은 것 갈라터진 것 나가떨어진 것들
옆에서 한 번, 한 번만 보고 싶음과 만지고 싶음과 살 부비고 싶음에
관하여 한 번, 한 번만 부여안고 휘이 돌고 싶음에 관하여
이제는 다만 때 아닌, 때 늦은 사랑에 관하여
- 이성복, 뒹구는 돌은 언제 잠 깨는가 (문지, 1980)
사랑은
누군가를 아끼고 보듬고 보호한다는 일
보채지도 않고 원하지도 바라지도 않고
그저 상처를 주지 않고 지켜본다는 일
그저 살아 있음에 기뻐할 줄 알면서도
모두한테 위로가 되어줄 수 있을만한 일
한 떨기 능소화 꽃이 지는 풍경을 보면서
그 고혹함에 속절없이 안타까워 하는 일
인사동 길가에 핀 연초록 수국 꽃잎에도
그저 감사하다는 인사를 먼저 해야 할 일
그리하여
사랑이 왜 위대한가를 스스로 증명할 일
이제는 다만, 때 아닌, 때 늦은 사랑이란
그저 의미론과 존재론의 변증법 안에서
기다리지도 굴하지도 않은 채로 제 홀로
새벽의 달빛만큼 고고하게만 흐르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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