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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이라는 착각, 동기부여

단테, 연초록, 정독, 그리고 종로학파 2024. 7. 5. 06:30

  
  
  
   '상'이라는 착각, 동기부여
  

  

   '상'이라는 좋은 제도는 받는 이한테 "내가 이만큼 잘한다"는 착각을 선사하곤 합니다. 
   좋은 격려와 지지의 뜻이 자칫하면 자만과 허영을 불러일으켜 뜻밖의 곤란함이 돼버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초등학교 때 처음 받았던 상은 어느 신문사가 주관하였던 전국단위 미술대회에서의 입선이었던 것 같습니다. 
   당시에 제 꿈은 '화가'였고 우수한 학업성적으로 그만두게 되었지만 미술을 엄청 잘하는 줄 혼자 착각했었습니다. 
   한 지방자치단체에서 주관한 수학경시대회에서 1등을 차지한 바람에 '이공계'가 적성에 맞는 줄로만 알았습니다. 
   또 한 지방자치단체에서 주관한 과학경시대회에서 독후감으로 2등을 차지해 '과학자'의 꿈을 키우기도 했습니다. 
   초등학교 졸업식에서 교육감상을 받았을 때는 스스로 공부도 썩 잘하는 줄 알았습니다. 그래서 놀기 시작합니다. 
   중학교를 수석으로 입학하였을 때는 제가 무슨 천재라도 되는 줄 착각했고 방심을 하며 노력도 게을리 했습니다.  
   개근상을 받았을 때는 제가 매우 건강한 줄 착각하곤 했습니다. 운동은 게을리 하며 젊은 날의 방탕함도 많았고요. 
   대학에서 마지막으로 받았던 상은 하필 문학상이었습니다. 그래서 글쓰기가 제 구원의 길인 줄 또 착각했습니다. 
   사회에서도 마찬가지였는데, 어느 회사에서 '모범사원 표창'을 받은 적도 있지만 '롱런'과는 아무 상관도 없었습니다. 
 
   그때 그때마다의 '상'은 주로 제게 크디큰 착각을 만들기만 했었나 봅니다. 후회하고 있지는 않아도 그 당시의 제가 품은 착각들은 지금에 와 돌이켜 보니 참으로 부끄러운 노릇들이었나 봅니다. 자만과 허영... 스스로 발등을 찍는 일들이었죠. 
  
   며칠전에 어떤 분이 제게 물었습니다. "나이도 벌써 중년에 이르렀는데 인생에 있어서의 꿈이 대체 뭔가요?"라는 질문 앞에서 대뜸 호기롭게 "노벨문학상 수상입니다"고 외칠만큼 참 제멋대로인 인생을 살고 있습니다. 그 분 왈, "그렇게 허황된 목표 말고 제대로 실현 가능하게 목표를 좀 더 구체화해보세요"라는 주문에는 "그렇게 현실화하려면 지극히 초라해져서 무어라 말씀드리가 곤란하지만... 당장은 '메이저' 등단을 계속 도전해야 할 것 같고, 정 안된다면 '마이너' 등단이라도 계속 시도해봐야 할 일이며, 또 눈앞에서는 두번째 시집과 동인지 창간 등을 제일 먼저 노력해볼 일입니다"라고 다시 정중하게 말씀드렸던 것 같습니다. 
 
   '상'은 어떤 누군가한테 그만큼 잘했으니 그 성과를 인정해준다는 측면도 있겠지만, 그 이면에는 앞으로 더욱 더 잘하라는 주문을 항상 내포하게 마련입니다. 즉, 보람보다는 책무에 더 가깝겠고 그건 사실상 당근보다도 채찍에 더 가까울 일이겠습니다. 모든 수상자들한테 가장 먼저 주문해야 할 일 역시 기쁨보다는 무거운 부담일 수도 있겠지만요... 
 
   그렇다고 모든 '상'이 죄다 불필요하다는 이야기는 아닌 것 같습니다. 
   순전히 스스로만의 착각일 뿐이었다 해도, 그건 하나의 큰 '동기부여'가 될 일이므로. 
  

   전혀 미술적 소질이 없던 제가 화가의 꿈을 키우게 만들어준 고마운 선물이었으며, 
   취업도 힘든 문과계열보다는 조금 더 현실적인 이공계열을 선택하게 만들어준 자신감이었으며, 
   글쓰기와는 전혀 무관할 것 같은 자연과학이 얼마나 일상 곳곳에 배어있나를 일깨우는 일화였으며, 
   아무리 노력을 않는다 해도 결국 언젠가는 도로 책상 앞에 앉아 책읽기와 글쓰기를 할 줄 아는 본능을 깨달았으며, 
   신체의 건강함이 제 아무리 부유한 재물 앞에서도 더 큰 자산이 됨을 평생 동안 뉘우치고 노력할 줄 아는 계기들이었으며, 
   끝끝내 놓지 못하는 이 미련스러운 미련이 어쩌면 제겐 그 어떤 '구도의 길'임을 늘 자각하고 실천하게 만들어주었으며, 
   하물며 몇 번이고 좌절과 소외를 겪는 와중에도 스스로 이를 극복할만한 '서늘한 인내심'도 갖게 만들어준 고마운 기회들이었습니다. 
 
   '상'은 그래서 선물에 더 가까운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잘하지도 못하는 이한테 "잘한다"고 칭찬해주며 착각하게끔 만들어주는, 
   그래서 인생을 통해 그 소중한 '동기부여'를 매우 잘 실천하도록 또 노력할 수 있도록 북돋아주는
   아주 아주 선한 거짓말 중 하나일 것 같습니다.
  
   그래서 오늘도 또 누군가한테는 아주 작고 사소한 '선물'을 드려볼까 합니다. 
   그 작고 사소한 '상'이 누군가한테는 아주 크고 멋진 '상'이 될 수가 있겠고, 
   또 그래서 "지금까지 잘해왔고 잘하고 있고 앞으로도 잘 할 것"이라는 믿음의 표현이라면 
   오늘도 또 한 번 그렇게 거짓말을 해보려 합니다. 
  
   '동기부여'가 갖는 힘의 크기에 대해 생각해보는 아침입니다. 
   모든 '동기부여'가 갖는 목적은 결국 
   "재능은 고작 1%요 노력이 99%"라는 말을 떠올리기 위함입니다. 
   
   인생에서도 그렇듯이,
   이는 결국 사랑도 인간관계도 사회도 또는 심지어 사상에서도 동일하게 적용되리라 믿습니다. 
   
   그게 곧 '변증법'의 원천이기도 한 까닭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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