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춘문예 D-14.
아우라지 (김경주)
벼루 위에서 마른 먹처럼 강은 얼어 있습니다
바람에 어두운 물소리가 실려 옵니다 바람 속으로 물속의 어둠이 번지는 시간인 것입니다 그런 저녁을 가만히 견뎌야 한다면 무덤을 빠져나온 사람들은 강 속에 죽은 두 손을 담그고 앉아 있겠습니다
인간의 영혼에 다가가기 위하여 밤이면 빛은 얼마나 먼 행성에서 날아오고 있는 것인가요 그런 밤이면 가지에 거꾸로 매달려 잠든 새들은 검은 이를 갈고
오랜 비행을 마친 인간은 깨어나 조용히 기체를 떨고 있겠습니다
무명의 별에서 빛 한 채가 날아옵니다 그 빛의 세월이 내 눈까지 날아오는 데 걸리는 음악의 생은 또한 얼마나 고독해야 하는가요 외로운 사람은 눈을 감고 걷고, 눈이 외로운 사람은 강심에 그 눈의 음을 숨겨야 하는 밤입니다
멀리 산중의 나무에 붙은 백색의 얼음들이 왜성처럼 천천히 빛을 뿜습니다 그러나 오래전 불빛에 등을 돌려버린 짐승들은 바람이 얼어붙은 눈으로 내 이쪽에서 저쪽까지 울어대고 지금 나에게 참여하는 영혼은 물밑의 어두운 돌들을 나르는 강물, 당신의 눈을 나르던 밤입니다
물이 그늘을 밖으로 천천히 밀어내는 소리입니다 그 바람을 열면 누군가 무덤을 나와 묽은 얼굴을 하고 지나간 흔적이 있습니다
* 나는 이 세상에 없는 계절이다 (랜덤하우스코리아, 2006)
:: 짧은 편지 ::
"최선은 최고보다 아름답다" - 이 유명한 문장은? 방금 제가 직접 만든 말입니다. ^^
신춘문예가 불과 두 주, 14일의 투고기간을 남겨놓습니다. 오늘은 수능시험이 치러지는 날이기도 하고요.
아침의 날씨는 우려와 달리 비교적 포근한 편인데, 실제 시험이 치러질 시각의 온도가 어느 정도까지 오르느냐가 사실 더 중요해서 말은 아끼기로 합니다. 다들 '최고'가 되진 못하더라도 '최선'을 다하는 오늘이 되셨으면 좋겠습니다.
평론을 쓰기 시작했고 중간지점 정도를 경과하고 있습니다.
제목은 "세기를 넘어서려는 '신서정'과 대한민국 시단의 미래" 정도를 주제로 해 정하려고 하며, 예전까지 이론비평과 실천비평을 두루 써왔던만큼 이번에 욕심을 내볼 차례는 이 둘을 조합해 어중간한 형태로서의 글쓰기를 시도하려고 합니다. (시와 소설은 각각 탈고를 해 내일까지 출품하는 게 목표요, 평론은 아마도 마감일까지 꽤나 씨름해볼 작정이기도 해요.)
오늘부턴 하루에 단 한 편의 시를 소개하고자 합니다.
막바지에 이른 열네 편의 시들을 어떻게 고를까 하다가, 제 취향대로면 박정대 시인의 '음악들'을 또 다시 올려놓고자 했는데 다른 분들을 위해 제 취향과는 별개로 김경주 시인의 '아우라지'를 소개해놓습니다. (일종의 '레퍼런스'라는 뜻입니다.)
즐겁고도 행복한 하루 이어가시기 바랍니다.
수험생 또는 그들의 부모님들 모두 화이팅입니다!
https://youtu.be/CFRjMIhu-Fo?si=soULTbM5T3g_5hg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