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춘문예 D-13.
공리가 나오는 영화 (황인찬)
시간을 나누고 함께 밥 먹고
또 때로 함께 잠드는 이것이 사랑이라니
군부대 생활관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사랑을 하네
그게 아니라면 당신들이 군인이겠지
무료한 젊은이들은 TV에서 흘러나오는 영화를 말없이 보네
어쩐 일인지 그건 공리가 나오는 영화였는데
그게 <붉은 수수밭>인지 <귀주 이야기>인지는 지금도 잘 모르겠네
"이거 보자고 한 사람 누구야"
영화가 끝나고 젊은이 중 하나는 화를 냈는데
사실 그건 영화를 보자고 했던 것이 부끄러워 꺼낸 말
공리가 나오는 영화는 감동적이었지만, 젊은이들은 다들 눈가에 물기가 어린 채 말이 없었네
"미안해, 내가 그랬어"
다른 젊은이가 침묵을 깨고 사과를 했네 갑자기 혼자서 엉엉 울었네 밤늦은 시간이 되어 모두 잠들어야만 했고
군부대 생활관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사랑을 했네
그게 아니라면 당신들이 군인인 것이다
* 문학동네 여름, 2023
:: 짧은 편지 ::
수능시험이 끝났고 이제 유일하게 남은 이벤트는 신춘문예입니다.
제 일정대로라면 오늘 중에 시와 소설을 모두 탈고해 출품할 계획이며, 현재도 2만 자가 넘는 초고를 7천 자 가량 더 줄여서 압축해야 하는 꽤 곤혹스러운 형편이기에 적잖이 고생하는 중입니다. 비가 온 직후라서인지 바깥 날씨가 상당히 매섭습니다. 바람마저 쌀쌀합니다.
이제니 시인의 2021년 현대문학상 수상작을 꺼내들 차례인데, 역시 어제와 마찬가지로 '레퍼런스' 측면에서는 황인찬 시인을 빼놓기가 어려운 탓에 가장 최근에 발표된 신작 한 편을 소개해놓습니다. (황인찬 시인에 대한 논평은 이번 신춘문예 응모작에서도 다룰 예정이기에 굳이 더 언급하지는 않도록 하겠습니다.)
모든 등단작들은 후속작들이 능가해야 할 첫번째 장애물에 지나지 않기에 지나치도록 '등단'이라는 첫 계단에만 연연치 않는 태도 역시 함께 필요해서입니다. 약 일 년여치의 등단작을 후속작으로 이미 갖추고 있는 게 진정한 작가의 '클래스'가 아닐까로도 생각해온 편입니다. (현역들을 소개할 적마다 자꾸만 이제니 시인을 자주 생각해온 까닭이기도 합니다.)
신춘문예를 준비하고 도전하는 분들은 어느 정도 동병상련과 같을 일들이지만, 또 그렇지 않은 분들이 주변에는 훨씬 더 많습니다. 작고 소소한 일상들이 갖는 가벼운 농담과 고단한 말투와 어색한 머뭇거림과 때 아닌 연정 비슷한 감정들도 불쑥 불쑥 생겨 때로는 당혹스러운 적도 많았나 봅니다. 아름다운 글을 읽고 가슴에 새기고 또 아름다운 사람을 바라보며 애틋함을 느끼는 일들 따위는 사실 매우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항상 생각해온 편입니다. 올해 신춘문예에서 나올 당선작도 그런 아름다움을 갖춘 미덕으로 모두한테 기쁠 일이 되었으면 하는 생각도 함께 품어봅니다.
오늘의 신청곡은 아주 아주 '올드'한 가요 한 곡입니다. 김민기 선생을 직접 뵌 적은 단 한 번 없었지만 그의 생 한편이 남겨놓은 가요사의 족적들에 대해서도 잠시 생각해보려는 까닭입니다.
즐겁고 소중한 하루,
그 심연에 자리잡은 도저한 삶에의 '진지함'을 함께 생각하는 오늘이 되셨으면 좋겠습니다.
https://youtu.be/bDVebla4zNw?si=19lvMZ8s2_EO-ht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