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껴쓰고 다시읽기] ‘등단’보다 더 중요한 ‘출간’을 둘러싼 권력 (박현웅, 사막) :
신춘문예, D-51.
김성태, 성은주, 이길상, 이만섭, 강윤미, 유병록, 권지현, 박현웅. 중앙일간지 여덟군데에서 지난 2010년에 신춘문예를 통해 배출한 시인들 명단입니다.
유독 이 해의 당선자들 이름이 생소해지는 건 이른바 ‘메이저’ 시집들 중 유병록 시인 단 한 명만이 시집을 냈을 뿐, 나머지 시인들은 아직껏 그렇지 못하다는 데 있습니다. (혹은 생소한 출판사였거나 아예 못낸 경우 등)
문단 내에서의 권력은 이렇듯 ‘메이저’라는 이름 하에서의 차별, 배제, 텃세 등을 일컫게 됩니다. 그들의 면면은 창비, 문지, 문학동네, 현대시, 현대문학, 문학사상, 민음사 등이고요.
설령 그 어떤 다른 경로로 ‘등단’을 했더라도 ‘메이저’ 시집을 출간하기만 하면 크디큰 명성을 얻게 마련이며, 제 아무리 신춘문예 당선자라 해도 그 이름을 얻지 못하면 위에 열거한 이름들처럼 아쉽게도 뜨자마자 지는 별들이 되곤 합니다. (물론 이들도 계속 치열히 각자의 시세계를 살아왔고 또 십여년만에 첫 시집을 펴낸 경우들도 있었음을,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중의 외면을 받을 수밖에 없었음을 함께 기억해두어야 한다는… 그런 면이 좀 불공평하다고 느껴지는)
연휴 끝, 새로운 한주의 시작입니다.
오늘도 좋은 하루 되십시오.;
사막
- 박현웅
오랜 공복의 위(胃), 넓고 메마른 허기를 본다.
반짝거리는 털을 곧추세우고 걸어가는
몇 마리 신기루가 보였다
아니, 걷는 것이 아니라 건너고 있는 중이다
평생 모래를 건너도 모래를 벗어나는 일 없이
발목의 높이를 재보는 은빛여우
오래전 모래 속에서 귀를 빌려온 죄로
사막에 소리를 맡기고 다녀야하는 은빛여우
넓은귀로 입맛을 다신다.
사구의 그림자가 모래 속에서 걸어 나와 주름으로 눕는 밤
은빛여우의 눈은 빛의 껍질을 벗겨낸 말랑한 과육
소리에 민감한 어둠덩어리다
허기진 소리들이 더욱 환해지며 서로의 먹잇감이 되듯
무서운 것은 포식자가 아니라
찾아야할 작은 먹잇감이다
바람이 불 때를 기다려 식사를 끝내고
약간의 풀이 있는 곳, 여우가 제 발자국을 오래 천천히 핥는다.
작고 빛나는 사막 한 마리가 죽어있다
바람이 만들어 놓는 칼날, 서서히 날이 서가는
죽음의 속도보다 느리게 생명을 쓰러뜨린다.
여우의 몸을 떠난 숨결이 오래
은빛 털을 핥는다.
걸음을 내려놓고 날개 없이 은빛 털들이 날아오른다.
채색하는 모래바람은 일렁이는 밀밭풍이다
사막에서 살찌는 것은 바람뿐이다
* 2010년 중앙신인문학상 당선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