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첫 번째 여름
사랑을 말한다 했던 우리의 여름은 자유로운 배영과 같았다
숨 쉬듯 말하던 사랑은 닳고 닳아서 낡아버렸고
우리의 언어는 더 이상 사랑이라 칭할 수 없었다.
우리는 왜 우리의 숨결이 영원할 거라 생각했을까
당연하다 생각했던 모든 것들의 일부는 결국 찰나의 기억일 뿐인데
서로를 전부라 매료시켜 마법에 감긴 듯 영원을 뱉는다
매일을 사랑했던 우리의 헛됨이 사랑하지 말자는 후회도 늦은 지 오래
추억이 잔뜩 묻은 우리의 흔적을 분리하자 수많은 감정이 쏟아져 나온다
우리가 말했던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다는 것을
우리의 여름은 사랑으로 시작해 여름으로 끝났다
나의 첫 번째 여름에는 너의 전부가 스며들었는데 나는 이제 무슨 여름을 추억해야 하나
서로의 입안에 달콤한 사탕을 물려주고
마지막 흔적을 꼭꼭 씹어 삼킨다
# 차정은, 토마토 컵라면 (부크크,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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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가출판의 '대박', 베스트셀러 1위 시집 :
차정은이라는 이름을 혹 들어보신 적 있는가 모르겠어요... 올해 교보문고 베스트셀러 1위에 당당히 오른 시집입니다.
(실은 작년에 이미 독립출판 플랫폼인 '부크크'에서 출간을 했고 총 분량은 80페이지로 그리 많지도 않은, 가격도 8천 원밖에 안 하는 아주 얇고도 가벼운 시집이죠.)
성공의 요인들을 몇 꼽는다면,
우선은 청춘 세대들한테 어필할만한 '사랑'을 주된 소재로 했다는 점과, 그리 어렵지도 않고 대단한 '재능'도 느껴지진 않을 문장들 그리고 SNS 중심으로 더 활발히 독자들의 반응을 이끌어냈다는 점 등이겠습니다. 하나를 굳이 덧붙이자면, 그리 많지 않은 분량과 부담 없는 가격 역시 일조했다는 생각도 좀 듭니다.
시는 비교적 간단합니다. "자유로운 배영"과 같았던 우리의 '사랑'은 "더 이상 사랑이라 칭할 수 없"는 상황이며, "마법에 감긴 듯 영원을 뱉"던 일들도 그저 "헛됨"으로 또 "후회"로 "추억이 잔뜩 묻은" 흔적으로 남을 뿐입니다. 그 "마지막 흔적을 꼭꼭 씹어 삼킨다"는 독백은 그걸 통째로 "여름"으로 치환합니다. 시인한테 "여름"의 이미지는 곧 끝난 '사랑'의 추억일 뿐입니다.
'사랑'에 관해서는 그 어떤 성찰과 묘사도 없이 이 '무한대' 수준인 관념어에 곧이곧대로 자신의 '정서'를 투사한 이 시야말로 전형적인 '대중시'의 양상인데, 당연히 대중들한텐 더 뜨거운 반응을 불러일으킨 모양입니다. (이를 굳이 '통속시'라고까지 폄하할 생각은 전혀 없습니다. 오히려 독자들이 더 '친근하게' 느꼈다는 사실은 기성 문단이 더 비판받을 대목이기도 해서)
오히려 '등단'이라는 과정을 거치지 않은 일반인 (고등학생?)인 데다가, 심지어 기고만장할 법한 브랜드를 갖는 출판사 따위도 아닌 일종의 '독립출판' (그것도 가장 평판이 열세인 편인 부크크)를 통해 무려 베스트셀러 1위 시집으로 등극했다는 면에서 가히 기록적일 것 같습니다. 성공요인을 제대로 잘 따져볼 필요가 있을만한 아주 재미있는 사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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