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노트

나희덕, '시와 물질' (따뜻한 정서가 감싼 시의 효용)

단정, 2025. 4. 23. 08:25

  
  
   
   시와 물질 
   
     
   로알드 호프만은 화학자이자 시인이었다
    
   그의 규칙을 적용한 물질에는
   몇 가지 폭발물과 독극물도 포함되어 있었다
   아무도 생각해보지 못한 물질들이었다

   그 책임을 묻는 질문에 호프만은 대답했다

   세상에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물질은 없습니다
   게다가 나는 그 물질들의 특허권을 갖고 있지 않고
   그 결과로 돈을 벌지도 못했어요
   어떤 물질이 위험하다고
   그것을 발견한 책임을 과학자 개인이 져야 할까요?

   우리의 발견은
   물질들의 새로운 연관성을 보여주었을 뿐입니다

   우리의 발견은
   수십만 명의 과학자가 함께 맞추며 찾아가는
   거대한 퍼즐 속의 일부일 뿐입니다

   심지어 시도 사람을 해칠 수 있어요*

   슈테판 클라인과 로알드 호프만의 대화를 읽다가
   이 문장에 오래 멈춰 있다

   헤모글로빈 분자에서 아름다움을 읽어낸 호프만에게
   시란 어떤 것이었을까

   시와 물질,
   또는 시라는 물질에 대해 생각한다

   한 편의 시가
   폭발물도 독극물도 되지 못하는 세상에서
   수많은 시가 태어나도 달라지지 않는 이 세상에서
  
   
   * 슈테판 클라인,『우리는 모두 별이 남긴 먼지입니다』(2014)
 

 
   # 나희덕, 같은 제목의 시집 (문학동네, 2025) 
 

 
   ... 
  
  
   따뜻한 정서가 감싼 시의 효용 : 
 
 
   나희덕 시인의 열 번째 시집이 문학동네 시인선을 통해 출간되었습니다.
   이름하여 "그랜드슬램" 즉 현존하는 대한민국의 주요 문학상 다섯 개인 창비의 백석문학상, 교보문고가 주관하는 대산문학상, 문학사상의 소월시문학상 그리고 현대문학의 현대문학상과 민음사의 김수영 문학상까지를 모두 차지한 시인은 역대를 통틀어 고작 두 명뿐입니다. 지난 20세기 끝무렵에 황지우 시인이 <어느 날 나는 흐린 주점에 앉아 있을 거다>로 1999년 대산문학상과 백석문학상을 동시에 수상하면서 그 첫 번째 기록을 남겼고, 나희덕 시인은 <가능주의자>를 통해 2022년 대산문학상을 수상하면서 비로소 그 두 번째 기록을 남기게 됩니다. 이 수상결과가 시인의 업적을 평가하는 잣대로 보이기엔 다소 무리가 있음도 사실이겠지만, 만약에 야구 같은 종목이라면 오히려 훨씬 더 두드러진 성과로도 기억할만한 일이겠죠. 
   나희덕 시인한테서 전반적으로 풍기는 색채는 '따뜻함'의 그것입니다. 데뷔 때부터 지금까지 크게 변하지 않은 색채는 소외받고 상처받은 이들한테 살며시 건네는 다정한 위로의 말, 불의와 권력 앞에서도 용케 자존감을 잃지 않고 항변하려는 양심의 목소리 등을 대변한다 하겠습니다. 이들을 관통하는 정서는 아마도 '따뜻함'일 것 같아서입니다. 그건 다른 말로 해서 휴머니즘 또는 인본주의, 낙관적 전망이거나 인간 존재에 대한 깊이 있는 믿음 따위일 텐데 훨씬 더 근저에 깔린 정서로는 아마도 측은지심, 애민정신 같은 류의 것들과도 맥락이 닿아 보입니다. 
   물질이 세상 전체를 지배하는 시대에 시인은 그 '물질'에 관해서도 촉각을 곤두세웁니다. "몇 가지 독극물과 폭발물도 포함"된 그 물질은 세상을 지배하면서도 동시에 인간 존재를 위협하는 성질을 갖기에 "그 책임을 묻는 질문"이 뒤따르게 되고, 과학자들은 이에 "특허권을 갖고 있지 않고" "돈을 벌지도 못했"다며 "그것을 발견한 책임"에 대해 애써 항변하며 과학과 문학을 분리하고자 합니다.
   시인은 특히 이 말에 주목합니다. "심지어 시도 사람을 해칠 수 있어요"
   시도 하나의 물질, 즉 사람을 해칠 수도 있는 성질을 갖기에 시인은 시라는 물질에 대해서도 똑같은 잣대를 놓고 고심하기에 이릅니다. 하지만 "한 편의 시가 / 폭발물도 독극물도 되지 못하는 세상에서 / 수많은 시가 태어나도 달라지지 않는 이 세상에서" 그 고심이 과연 희망일까 절망일까에 대한 물음은 여전히 남습니다. (지난번 시집을 통해 허연 시인이 '휴면기'라는 시를 통해 밝혀놓은 바에 따르면 그 고심들은 오히려 희망보다는 절망 쪽에 더 가깝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여전히 누군가를 해칠 수 있고, 또 오히려 그렇게 해를 끼칠만한 '힘'조차 없는 시라는 물질을 통해 시인이 꾀하려는 바는 어쩌면 그 시의 '힘'을 얻고자 함이며 그 '힘'은 해치기 위한 것이 아닌 도와주고 응원하며 격려하는 몸짓을 하기 위함에 더 가까울 것이기에 풍기는 분위기가 '따뜻함'이었다는 해석 역시 타당해 보입니다. 그 시도가 맞았든 틀렸든 간에. 
   벌써 수요일 아침입니다. 늦은 산책을 준비하려던 참인데, 비가 그친 화창한 날씨 속에서 호수공원을 잠시 거닐며 또 앞으로 헤쳐나가야 할 일들에 대해서도 좀 생각해 두려는 시간입니다. 즐거운 하루 보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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