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숲에 당신이 왔습니다
그 숲에 당신이 왔습니다
나 홀로 걷는 그 숲에 당신이 왔습니다 어린 참나무 잎이 지기 전에 그대가
와서 반짝이는 이슬을 텁니다 나는 캄캄하게 젖고
내 옷깃은 자꾸 젖어 그대를 돌아봅니다 어린 참나무 잎이 마르기 전에도
숲에는 새들이 날고 바람이 일어 그대를 향해 감추어두었던 길 하나를
그대에게 들킵니다 그대에게 닿을 것만 같은 아슬아슬한 내 마음 가장자리에
이슬이 반짝 떨어집니다
산다는 것이나
사랑한다는 일이나 그러한 것들이 때로는 낯설다며 돌아다보면 이슬처럼 반짝 떨어지는 내
슬픈 물음이 그대 환한 손등에 젖습니다 사랑합니다 숲은
끝이 없고 인생도 사랑도 그러합니다
그 숲
그 숲에 당신이 문득 나를 깨우는 이슬로
왔습니다
# 김용택, 그 여자네 집 (창비, 1998)
...
여름의 숲을 향하는 길목에서 :
봄의 마지막 절기인 곡우를 거치면서 이제 계절은 여름의 초입을 향해 치닫습니다. 시간은 워낙 화살처럼 빠르고 기억은 늘 제자리걸음인데 오롯이 제 게으름 탓임을 자각하는 편이어서 더욱 부지런해야겠다는 생각뿐입니다. 월요일 아침입니다.
아직 일과시간이 시작되기 전이니 서둘러 짤막한 글 한 편 올려두고자 합니다. (아직 뉴스도 읽지 못한 상태) 주말에 연천을 다녀온 탓인지 그만 늦잠을 자버렸네요... ㅎㅎ
아침의 호수공원이 모처럼 찬란한 해돋이를 자랑하는 동안에도 계속 풀리지 않는 의문을 안고 무언가를 좀 생각해보는 중입니다. 참, 지난 주말에는 어떤 한 지인께서 부지런히 공부를 해야겠다는 말씀을 남기기에 저 스스로도 그동안 무엇이 게을렀나를 함께 반성해보기도 하였습니다.
사실상 창비 진영을 대표할만한 시인들 중 한 명인 김용택 시인이 어느덧 교장 선생님에서 정년퇴임을 한 지도 벌써 17년이나 흘렀습니다. 시인은 이렇게 늙어가지만 시만큼은 오롯이 남아 아직도 현재를 비추게 됩니다. 모든 시인들이 가장 꿈꾸는 순간이기도 합니다.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한강 시인의 데뷔작도 11년이라는 세월이 흘러서야 비로소 읽히고 있습니다.
예전에 어떤 분과 나누었던 마지막 대화에서 "시는 일종의 화석과도 같은 존재여서, 그게 '화석화'되지 않으려면 끊임없이 퇴고를 해야 한다"는 말을 던지기도 했는데, 막상 제 습작들 중 제대로 퇴고를 거쳐간 게 얼마나 될까도 생각해 보는 중입니다.
아름다운 연시로 꼽힐만한 이 시에서 시인은 "그대에게 들킵니다"만 그 "마음 가장자리에 이슬이 반짝" 하는 순간들도 엄연히 있었을 겁니다. 시인이 살아가는 거의 유일한 원천이자 힘이기도 합니다. 그 "슬픈 물음"이 "환한 손등에 젖"는 순간을 통해 시는 비로소 한 편의 작품으로 완성되는가 봅니다. "당신이 문득 나를 깨우는 이슬로" 찾아오기까지 시인은 한평생을 바치기도 합니다.
이른바 '초심'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해볼 차례인가 봅니다.
의미있는 한 주 새롭게 잘 시작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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