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노트

최현우, '충돌 지점' (바야흐로 정치의 계절)

단정, 2025. 4. 20. 04:37

 
 
  
   충돌 지점 
 
    
   시간의 살은 언제 갈변하는가
   
   읽으려던 책 말고
   읽었던 책이 불쑥 책기둥 복판에 끼어 있을 때
   잊었던가, 잃었던가
   하물며 저기
   어느 날 영혼의 앞뒤를 바꾸었던 문장이 있었는데
  
   그저 그렇게
   처박혀 있는
  
   고속도로를 달리는 트럭에서 빠져나온 종이컵으로도
   따라오는 차의 앞 유리가 깨지듯
 
   울지 않고 웃으면서
   조용히 빛을 씹던 자들의
   이빨자국 모여드는 밤이 있다
  
   현생과 전생까지 순식간에 끌려 들어와
   박살이 나는 찰나가 있다
  
   날개와 허공이 마찰하는 부분은
   공중의 어떤 곳을 망가뜨리는가
  
   운다
  
   혼자면서
   혼자로 두지 않으려 했던 사람은 얼마나 두려웠나
   
   통증 없이도 이토록 멍들 수도 있는가 

 
 
   * 최현우, 우리 없이 빛난 아침 (창비, 2025) 
 
 
   ... 
 
 
   바야흐로 정치의 계절 : 
 
 
   주말에는 각 정당들의 대통령선거 준비 소식들로 몹시 분주해진 신문을 읽습니다. 두 번째 대통령 탄핵을 겪은 나라에서는 보기 힘든 '희망적' 메시지들만 내비칠 뿐, 실제로 겪게 될 시련과 위협의 정도까지를 분명히 드러낼 줄 아는 분위기로는 아직 아닌 듯합니다. 정작 실생활과 가장 밀접한 분야가 바로 '정치'이거늘 '네거티브' 전략의 폐해는 '증오'와 '혐오'라는 극단적 사생아까지 낳은 형국입니다. 아무도 관심이 없습니다. 진지한 모색과 토론과 타협을 기대하기가 어렵습니다... 아무튼, 
   '꽤나 익숙한 정서'를 보여준 최현우 시인의 두 번째 시집이 창비시선의 맨 마지막 순서를 차지하게 됩니다. 발행일자는 2025년 4월 25일... 즉, 닷새를 앞서서 먼저 쓰게 되는 소개입니다. 최현우 시인이 지난 2014년 조선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했었으니, 이제 막 등단 12년차가 됩니다. 첫 시집을 7년차에 문학동네에서 냈었고 이어서 12년차에 두 번째 시집이면 그리 늦지도 않았겠지만, 독자들의 조바심은 오히려 더 컸을 듯합니다. 
   "읽었던 책"의 "영혼의 앞뒤를 바꾸었던 문장"은 과연 어떤 것이었을까를 잠시 생각해보게 만드는 구절들입니다. 하지만, 시인의 말대로라면 "현생과 전생까지 순식간에 끌려들어와 박살이 나는 찰나"가 존재하며 "어떤 곳을 망가뜨리"기도 합니다. 주로 삶을 겪으면서 누구나 입게 될 '상처'를 뜻합니다. 나와는 다른 생각, 나와는 다른 입장과 태도들로 말미암아 겪게 되는 상처... 시인이 처한 고통은 말 그대로 '보편화'가 되며, 그것에 대한 치유의 방식은 아직 드러나진 않았습니다. 다만 몇 마디 말로 이를 대신하고자 한 시인의 말이 있어 오늘 아침의 글은 시인의 말을 인용해두기만 하도록 하겠습니다. 
   차분하고도 즐거울만한 일요일 하루 보내셨으면 좋겠습니다. 
   
   
   들꽃을 주워 화병에 담아 기른 적 있다. 
   밟혀서 짓무른 줄기가 곧잘 살아나기도 했는데 
 
   너는 왜 없는 것들만 적어두냐고 묻는다. 
 
   그래도 오늘 아침, 
   한번만 더 물을 주면 안 될까요? 
   다시 파고 
   좀더 살지 모르잖아요. 
 
   빈 병을 품에 안고 차례를 기다린다. 
 
   멀리 누군가 햇볕을 끼얹으며 까르르 놀다가 
   말없이 옆에 와서 같이 늙어준다. 
   
   
   2025년 봄
   최현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