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과 봄 사이
외우(畏友) 지하가 그려준
그림 속의 난이 베란다 안쪽에서
힘차게 웃고 있네
그림 속 자연은 언제나 청춘
오랜만에 들려온 영상 10도 소식
외투 벗고 나갔다가
오싹- 도로 들어왔다
겨울과 봄이 함께 내 안에 있을 줄은
* 김주연, 강원도의 눈 (문지,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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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직업'은 스스로 증명하는 일 :
김현 선생과 함께 엮어낸 <문학이란 무엇인가>는 문학도들의 입문서로 가히 '고전'이라 할만큼 대단한 책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1976년에 나온 이 책이 이제 벌써 초판을 발행한 지도 50년이 다 돼갑니다. 지난 50년 동안 이 책을 통해 문학을 처음 접했거나 또는 '체계적인 커리큘럼'이라는 타이틀로도 접했을 숱한 문창과 출신들 중 얼마나 많은 이들의 가슴속에 아직 살아 숨쉬고 있을까는 잘 모르겠지만, 적어도 똑같은 아니면 유사한 제목을 달고 나온 후대의 책들을 모두 다 합쳐본들 이 책만이 갖는 '아우라'를 능가하기란 영 쉽지 않게도 보입니다.
평론가로만 도합 60년을 꼬박 채운 이 노년의 신사가 엮어낸 시집이 문학과지성사에서 올해 첫 시집으로 나온 건 순전히 우연으로만 볼 수 없는 또 다른 힘을 갖습니다. (김현 선생은 시집을 펴낸 적이 없었기에 더더욱 그럴 수 있겠습니다만) 한 시대를 풍미했던, 문학과지성사라는 거대한 산맥을 내내 이끌고 지탱한 큰 힘이 돼온, 이제는 거목이 된 그의 면면을 지그시 바라보는 즐거움은 해당 출판사의 '문학과지성 시인선'에서 1호로 출간되었던 황동규 시인의 신작시집을 반갑게 맞으며 읽는 기분만큼 충분히 좋습니다. 자고로 시인이라는 타이틀이 '평생직업'의 일종임을 오롯이 증명해내는 순간들이기 때문이며, 비로소 그에 걸맞는 작품활동 역시 소소한 귀감을 사기에도 충분할 테니까 더더욱 그렇겠습니다.
아침에는 은행을 잠시 다녀왔는데, 지난 번에 예탁해둔 계좌의 투자상품에 대한 설명을 한참 동안 듣다가 무심코 꺼낸 말이 "앞으로도 계속 이렇게 빈둥대며 지낼 순 없잖아요?"였습니다... 직장인이라는 '운명'이 갖는 유한성을 극복하려면 제게도 어쩌면 또 다른 '직업'을 새로이 갖기 위한 구직자로서의 노력을 함께 시작해볼 차례라는 생각 때문인데, 그게 돈을 벌든 아니든간에 또 아니면 번듯한 정규직이든 그저 '알바' 자리일 뿐인 비정규직이든간에 그런 속성들이 이 고민을 크게 좌우하는 어떤 '기준'이 되진 않으므로 좀 더 '본질적'인 사고를 갖고자 합니다. (당장 해야만 하는 일, 그동안 가장 하고팠던 일, 가장 잘할 수 있는 일, 가장 크게 보람을 느낄만한 일 등등이겠습니다.)
벌써 4월이고 이제 마지막 눈을 바라본 순간들도 저만큼 멀어진 완연한 봄날의 기운 속에서, 또 다른 봄을 맞기 위한 다양한 뉴스들을 접하고 있는 중입니다. 당장 눈앞에 펼쳐질 가장 큰 선거철을 앞두고 정치면은 연일 대선주자들의 행보를 앞다퉈 싣는 풍경이며, 트럼프 정부가 내건 관세정책의 파동 속에서도 경제면 역시 분주하기만 합니다. 고비는 늘 또 다른 변곡점에 불과하기에 그 다음이 더 궁금하고 기대될 측면이지 당장에 벌어진 일을 놓고 왈가왈부할 겨를이 더 부족해진 건 사실입니다만, 한강이 말했던 '문학'의 역할에서처럼 누군가는 이를 곱씹고 또 그 여파에 대한 추적을 일삼거나 그 어떤 '반성'이라는 지점을 내내 천착하며 지내는 세월인지도 모를 일입니다.
인생의 모든 문제들이 비단 '속도'만으로 해결될 리 만무하기에 또 그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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