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담
후회가 전화를 걸어와서 같이 밥을 먹자고 했다. 나는 반가워서
후회를 만나 밥을 먹고 커피를 마시고 함께 산책을 했는데 후회가
자꾸 이상한 농담을 해서 나는 말했다. 이를 덜덜 떨며 말했다. 당신이...... 당신이 그런 말을 하다니......
나는 압력솥 안의 쌀알처럼 들끓었는데 창밖의 태풍인 듯 휘몰아쳤는데
세월이 흐르자 흰 그릇에 담긴 밥처럼
고요한 밤하늘처럼
무심해졌지.
후회가 한 농담은 생각조차 나지 않았다.
아, 그런데 그건 눈 내리는 밤의 고독한 사람에 대한 농담이었을까? 매우 우아하고 아름다운 농담이었을 텐데
그런데 왜 나는 그토록......
십년 이십 년 삼십 년이 지난 뒤에 나는
십 년 이십 년 삼십 년 전으로 돌아가서 나는
후회를 계획적으로 외면한 뒤에 혼자
그리워하려고 했다.
그 시절에는 후회가
누구인지도 몰랐는데
나는 마침내 노인이 되어 생각한다. 눈 내리는 밤의 고독한 사람 곁에는 후회가 없을 거라고
밤하늘처럼
기도처럼
후회가 없을 거라고
나는 백반집에 앉아 텔레비전을 바라보며 혼자 밥을 먹었다.
흰 그릇에 담긴 밥을 먹었다.
익은 쌀알이 부드러워서
전화를 걸었다.
후회가 받지 않기를 바라며
전화를 걸었다.
그것을 물어보려고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슬쩍
그것을 물어보려고
그때 그 농담이 무엇이었느냐고
대체 어떤 농담이었는데 지금 내가
이토록 쓸쓸한 것이냐고
* 이장욱, 음악집 (문지,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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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의 시작, 새로운 한 주 :
드라마처럼 드라마틱한 주말의 뉴스들을 찬찬히 살펴보는 주말이었으며, 어느덧 벚꽃들이 만개하기 시작한 수도권의 아침은 청명하기만 합니다.
대통령 파면으로 곧장 대통령 선거철이 됐는데, 워낙 당연한 수순이어서인지 다들 별 말은 없습니다. 6월 3일이 12월 중반을 대체하게 된 건 불과 10년도 채 지나지 않은 일들입니다만, 여름철의 대선은 여전히 낯설기만 합니다.
본격적으로 4월을 시작해보려 합니다.
이장욱의 시를 꺼내 읽었고, 그가 최초로 주창했다는 '미래파'의 시단을 잠시 또 떠올려 봅니다. 이제는 이를 '신서정'으로 대체해야 할 수도, 또는 어쩌면 이 둘 다 모두 그저 그랬던 '유행'으로 돌려세우며 새롭게 개척해보는 게 더 타당하고 더 좋은 일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다면, 여전히 문제는 '문학' 그 자체입니다.
그동안 시단에서는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던 한강의 유일한 시집이 이미 10년도 넘어선 이 시점에 갑자기 압도적인 베스트셀러로 등극했다는 소식은 기쁘기보다는 조금 두렵습니다. '팬시상품화'가 된다는 일을 극도로 피해온 게 지난 이력이라면, 이제 거꾸로 그걸 도모해야 하는 걸까도 고심스럽기는 마찬가지라서입니다. (훨씬 더 '자본'의 논리가 유리해질 게 뻔한 일이어서)
누구를 탓할 일도 아닌 일입니다.
모든 게 자업자득인 모양입니다.
역대 최다득표를 해 대통령이 된 인물이 겪고 있는 이 시절의 수치를 실은 그한테 지지를 보냈던 그 숱한 유권자들 역시 함께 겪는 게 맞지 않을까도 싶은 계절이기에, 보다 더 "공존"에 대해 생각해보는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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