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득 그 식당이 생각났다
따뜻한 인심이라든지 노동하는 사람들 특유의 부글거리는 생동감 같은 게 아니라, 그런 도식적이어서 죄스러운 수사들 때문이 아니라, 그 실험대 위를 비추는 마냥 쨍했던 형광등 아래, 닦아도 어쩐지 눅진눅진한 나무 식탁에서, 그토록 울고 싶었던 네 생각을 하면, 그 날의 식당이 꽤 든든한 위로처럼 느껴질 때가 있었다. 여느 24시간 운영하는 대형 식당처럼 아무도 옆 테이블을 신경 쓰지 않고 자신들의 뚝배기에, 술에 젖은 대화에 집중하는 곳, 탁 트인 높은 천장으로 인해 조금만 떠들어도 마구 공명하는 소리들, 하지만 그 탓에 시끄러운 말소리 사이로 울음을 터뜨려도 될 것만 같은, 그곳은 소음으로 감싸 안긴 은신처 같았다. 그래서 할 말 못할 말 다 해가며 눈물의 눈물, 그 밑천까지 다 드러냈을까. 바닥에 도는 온돌의 뜨끈한 온기로 푸지게 고아진 몸으로 그렇게 울고 울며, 야비하게 기름진 국물을 떠넘기며, 너는 목울대를 넘실거리던 몸 안의 누수도 함께 떠넘겼을까.
국물에 술을 말고 술에 밥을 말고 다시 국물을 붓는다. 더러운 방석에 앉아 뼈를 가르고 젓가락으로 누런 기름 엉긴 고깃살을 헤집으며, 뒤돌아서면 후회할 혹은 잊어버릴 이야기들을 쏟아냈던 그 식당에서 어쩌면 우리는 감자탕의 값이 아닌 소음의 값을 치루고 나왔던 건 아니었을까.
* 박준, 출처 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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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에 관한 위로의 글 한 편 :
아침에 문태준, 안도현 같은 아주 익숙하기만 한 이름들을 몇 차례 조우하게 됩니다. 대뜸 떠오른 이름이 있어 인터넷을 검색하다 보니 우연히 발견하게 된 글 한 편을 오늘은 이리 올려보려 합니다. (눈에 띌만한 문장이길래 옮겨오긴 했는데 공교롭게도 출처는 확실치가 않아 일단 비워둔 상태예요.)
"나를 파괴하는 자가 나를 구원하는 자다 :
그가 하는 말은 은유다. 이 은유를 듣고 있으면 리듬이 있다. 조용한 맥박 같은 것이 느껴진다. 동물적으로. 그래서 대화에 리듬이 생겼다. 내가 묻고 그가 대답하는 동안에 나는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다. 그는 자존감이 파괴된 상처를 딛고 일어섰다. 등단하기까지 적어도 시에 대해서만은 상처투성이로 살고 견뎌낸 것이다. 젊어서 고생은 사서 한다는 말처럼 등단 과정이 어려운 사람들이 좋은 작가가 된다. (중략)
“스무 살부터 시를 써서 한국의 거의 모든 공모전에 작품을 투고했어요. 6년 정도, 우체국에서 보낸 원고의 등기우편 영수증이 벽 하나를 가득 채울 정도였지요. 그러다 보니 너무 억울한 생각이 드는 거예요. 나보다 못 한 작품이 당선된 것 같다는 착각을 한 거죠. 당선작을 읽으면서 비교하며 '이것보다 내 것이…' 하면서 한탄했지요. 그런데 이런 오기 같은 것이 시적추진력을 만들어줬어요. 당시에는 질투의 힘으로 썼어요. 그런데요. 한 5년쯤 떨어지니까 이상한 변화가 오더군요. '초록이 지쳐 단풍 들 듯이' 말이지요. 뭔가 성장했다고 할까, 내 시가 좋지 않다고 느낄 때부터 내 작품이 태어나기 시작하더군요.”
시인은 마음 한구석이 서늘했다고 한다. ‘내가 쓴 작품이 타인의 작품보다 못 하다’라는 자각증상이다. ‘주관의 세계에서 내적 변화를 거쳐 객관 세계로 전이되는’ 과정이었다고 설명한다. 시는 주관과 객관을 연결하고 그 사이에서 발생하는 은유의 세상이다. 나를 보고 타인을 보고 다시 나를 본다. 그것은 온전히 주관도 객관도 아니다. 박준은 이때를 기점으로 변화했다."
(리빙센스, 2024년 6월 인터뷰 중에)
현재 명실상부한 국내 원톱의 위치에 서 있는 시인의 이름은 박준입니다. 화려한 수상경력과 판매실적을 모두 갖춘 이 당대 최고의 시인은 데뷔 전까지만 해도 무려 100여 차례 이상의 낙선만을 거듭했던 이력도 함께 갖고 있죠... (여러 차례 소개한 사연이기도 합니다. 시인에게 있어서 '등단' 자체가 갖는 의미를 애써 축소하려 할 적마다 주로 인용하곤 했습니다.)
무수한 실패들이 결국 내일의 성공을 부르는 유일한 열쇠임을 에둘러 말하고자 함인데, 그렇다고 그 실패들만을 내내 칭송하기도 뭣해 일종의 위로삼아 드리고픈 말씀입니다.
주말입니다. 흐린 날씨 탓에 해돋이도 외출도 모두 생략한 아침입니다.
그래도 봄날씨인만큼 다사로운 마음 유지하시며 편안히들 지내셨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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