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기다리지 않아도 오고
기다림마저 잃었을 때에도 너는 온다.
어디 뻘밭 구석이거나
썩은 물 웅덩이 같은 데를 기웃거리다가
한눈 좀 팔고, 싸움도 한 판 하고,
지쳐 나자빠져 있다가
다급한 사연 들고 달려간 바람이
흔들어 깨우면
눈 부비며 너는 더디게 온다.
더디게 더디게 마침내 올 것이 온다.
너를 보면 눈부셔
일어나 맞이할 수가 없다.
입을 열어 외치지만 소리는 굳어
나는 아무것도 미리 알릴 수가 없다.
가까스로 두 팔 벌려 껴안아 보는
너, 먼 데서 이기고 돌아온 사람아.
* 이성부, 우리들의 양식 (민음, 1974)
...
'리얼리즘' 시가 갖는 미덕 :
1998년의 <창비> 게시판에서 독자 시로 '동지들 남긴 술잔엔'이라는 습작을 올려놓았던 적이 있는데, 그 글의 댓글로 '몽당연필'이라는 닉네임을 가진 분께서 홀연히 남겨놓으신 선물로 받게 되었던 이 시를 무려 27년 만에 다시 꺼내 읽습니다. 이 시가 처음 발표된 해가 1974년이었으니, 발표된 지부터로는 51년이 지난 셈입니다. 한 편의 시가 갖는 효용은 몇백 년 정도가 아주 우스운 경우일 테므로 크게 놀라운 일도 아닙니다.
매섭게 찬 꽃샘추위도 어느덧 차츰 잦아들고 바야흐로 본격적인 봄이 오려는 모양입니다. 황사가 점차 기승을 부려 날씨는 제법 궂은 편인데, 요즘은 해마다 똑같은 일기예보를 접하느라 이마저 익숙해진 풍경입니다. 아침 일찍 호수공원에 나가 안개가 자욱한 사진 몇 장을 찍었는데, 그 와중에 고뿔인지 기관지염인지 모를 간지러움 탓에 연신 신경을 쓰며 이번 글을 적습니다.
며칠 전에 한 지인분께서 최근의 '현대시'가 갖는 특징들을 물어보신 적이 있습니다. 대뜸 '미래파'의 영향권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국내 문단의 현실에 대해 몇 마디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이야기를 나누던 도중에 내내 속으로는 '옹호한다'는 입장이 마치 무슨 적개심이라도 품은 것처럼 비판조로만 들렸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제 발언을 후회하기도 했었나 봅니다.
여전히 독자들로부터 외면을 당하고만 있는 시단의 모습은 이제 안타까움을 넘어선 자조로까지 이어져 때때금 "주부와 시인의 공통점" 같은 화젯거리로 희화화되기 일쑤이며, 오히려 그 앞장에 선 제 진중치 못한 행동들도 한몫 단단히 하고 있음을 숨기지도 못하겠습니다.
일명 '신서정'이라는 타이틀로 호기롭게 기치를 내건 현주소 역시 애석하기는 마찬가지여서, 차라리 굳이 그 정의 자체를 하지 않았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더 큰 요즘이기도 합니다. (1990년대의 '신서정'이라 하면 그 대표주자 격인 박형준 시인도 있겠는데 시인이 보면 하품이 나올 법한 풍경이라서 더더욱 그렇기도 하고요)
아무튼, 아주 고답적인 자태일 뿐이더라도 과거의 '리얼리즘' 시가 갖던 미덕으로부터 결코 자유스럽지 못한 것 또한 엄연한 현실이겠기에 오늘은 그 이야기를 꺼낼 뿐입니다. 이제 더는 '시인'이라는 타이틀조차 무색하기만 한 박노해 시인의 최근 행보 또는 더 이상 시집이 나오지 않고 있는 그 시절의 기라성 같은 명단들이 아직도 빼곡한 제 책장을 잠시 생각해 보는 일일 뿐입니다.
정서가 정서만으로도 빛을 발할 수 있는, 사전적 의미로서의 시어가 그 자체만으로도 하나의 훌륭한 형상화 과정을 이룩할 수 있는, 비범한 일상언어가 아니라 해도 충분히 제가 꾸며놓은 풍경을 음미할만한 독자로서의 여유 같은 게 있었던 시절에 대한 이 일말의 동경은 단지 '그리움' 차원의 그것보다는 오히려 '시의 본령은 무엇일까?'를 향한 물음표 한 개로 더 족할 것 같다는 생각도 좀 듭니다.
마땅히 훌륭한 '현역들' 중 한 명인 각각의 이름들인 박준, 문태준, 도종환, 이병률, 나태주 등이 갖는 이 '아우라'는 언어의 질적 측면 이외에도 갖추어야 할 시인의 덕목으로 그 어떤 인간미라거나 따스함이라거나 혹은 인류에의 훈훈한 기대감 같은 감정들이 고스란히 배어 나오는 까닭에 사랑받을 자격이 충분했다고도 생각하는 편입니다.
제 아무리 훌륭한 기교와 넘치는 수사에도 불구하고 결국 '사랑받고 싶다'는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해서는 스스로 먼저 그 '사랑'을 베풀 의무가 있다고도 여겨집니다. 그래야만 그 '사랑'을 받을 자격도 함께 부여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입니다. 현 시단을 바라보는 제 시각 또한 마찬가지의 문제를 갖습니다. 암만 제 말이 틀렸다고 해도 숨길 수 없는 제 생각일 뿐입니다.
...